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50)
50화
처음에는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반지에게 갉아먹혔던 인간성이 회복됐다는 건가.
하지만, 나는 회복에 관련된 무언가를 사용한 적이 없다.
짚이는 점이라고는 하나뿐이었다.
나는 시험 삼아 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인간성이 미량 회복되었습니다.]환청이 아니라는 듯, 다시 들려오는 알림음.
은혜는 가끔 설아를 품에 안고 말한다.
치유된다고.
‘그게 진짜 되는 거였어?’
나는 설아를 내려다봤다.
설아도 나를 올려다봤다.
동글동글하고 맑은 눈동자.
자신이 뭘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으이구! 이 복덩이!”
“꺄악! 으헤헤!”
설아를 꽉 끌어안고 볼에 볼을 문댔다.
속으로만 생각해 오던 설아 테라피였는데, 실제로 효과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부드러운 감촉에 알림음이 연달아 떠올랐다.
[인간성이 미량 회복되었습니다.] [인간성이 미량 회복되었습니다.]* * *
나를 제외한 다른 사냥꾼의 보상은 모두 같았다.
근처 마나에 반응해 빛나는 광물, 마나 라이트였다.
순도가 높은 마나 라이트는 영약에 버금가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하이람이 판매를 주선해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팔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마 나처럼 약간의 가공을 거쳐 사용할 것 같았다.
‘사냥꾼에게는 필수품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니까.’
좋은 선택이었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은, 내 보상이었다.
나는 다른 사냥꾼들과 다른 보상을 받았다.
아마 잊힌 자를 사냥했기에 보상이 바뀐 거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보상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암네시아(Amnesia).’
내가 보상으로 받은 건 얼어붙은 눈물처럼 생긴 결정이었다.
손가락보다 작은 크기로, 혀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녹아드는 일종의 약이었다.
신체 능력을 상승시켜 주긴 하지만, 이 약은 영약이 아니었다.
왕의 반지와 마찬가지로, 부작용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복용한 자는 약 1년간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다.’
던전 이름이 ‘잊힌 자의 고분’이다.
어느 정도 맥락이 맞는 보상이긴 했지만.
솔직히 맥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다못해 마나 라이트라도 나왔다면.
판매해서 돈으로 바꿀 수 있을 텐데.
‘지금 이걸 사들이는 사람은 없겠지.’
영약을 비롯한 여러 약의 효과가 자세하게 밝혀지는 건 조금 나중의 일이다.
현대의 사냥꾼들은 영약의 효과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아직은 이런 물건을 감정해 줄 감정사라는 직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걸 먹을 수도 없고.’
근 1년간의 기억을 전부 잃어버린다면, 회귀했다는 사실이나 설아와 은혜에 관련된 기억도 잃게 된다.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었다.
차라리 안 먹고 말지.
‘그래도 가지고 있으면 돈 좀 되려나.’
나중에는 꽤 수요가 있는 영약이긴 했다.
근 1년간의 기억을 지운다는 효과 때문에 독약 같지만, 이 약은 트라우마나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을 도와주기도 했다.
특히 그때의 절망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없어서 못 구하는 수준이었다.
‘뭐, 아직 정산도 안 받았으니까.’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도 없었다.
하이람이 고용한 루터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곧 루팅한 물건도 정산받을 테고.
왕의 반지라는 아티팩트의 위험성을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영 꺼림칙했지만, 쉽사리 포기하기에는 조금 아까운 물건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깜짝이야.”
나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봤다.
은혜가 나를 보고 있었다.
“미안. 놀랐어?”
“아니. 아니야.”
은혜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시선은, 내 손가락에 끼워진 왕의 반지에 가 있었다.
“그거, 웬 거야? 너 그런 거, 잘 안 하잖아. 거추장스럽다고.”
“어? 아. 이거. 던전 공략 보상으로 받은 거야.”
“던전 공략 보상? 아티팩트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라더라.”
“그럼?”
저주받은 아티팩트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이람을 통해서 아티팩트가 아니라고 확인된 상태였다.
대충 얼버무리고, 하이람을 증인으로 세우면 되겠지.
“몰라. 그래도 혹시 몰라서 일단 끼고 있어.”
“그렇구나.”
은혜의 목소리 톤이 살짝 편해졌다.
왠지 모르겠지만 안심한 것 같았다.
설마 저주받은 걸 눈치챈 건 아닐 텐데.
잊힌 자와 전투에서 내가 비약적으로 강해지긴 했지만, 다른 사냥꾼들은 수호병 사냥에 집중하고 있을 터였다.
까탈스러운 성격의 하이람을 제외하면 좋게 넘어가는 분위기였는데.
‘아니겠지?’
은혜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 망설이고 있었다.
그 속마음은 도통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은혜야.”
“으, 응?”
“혹시 하고 싶은 말 있어?”
“……어.”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가자, 은혜는 당황한 듯 말끝을 흐렸다.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나는 차분하게 기다렸다.
은혜는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우리, 놀러 갈래?”
“뭐? 갑자기?”
“아니. 뭐. 놀러 가는데 갑자기가 어딨어?”
“그치만, 할 일이 많은데.”
설아의 첫 번째 불행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 했다.
그렇기에 무리해 가면서 던전을 공략하고, 훈련하는 거고.
“우리 둘 다 요새 바빴잖아.”
“그건 그렇지.”
“한 번쯤 이렇게 머리 식히는 시간이 있어야 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휴식은 능률 상승에 일조하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집에 올 때마다 설아 테라피를 받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유는 이게 끝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요즘 설아 행동, 생각해 봐. 뭔가 이상한 점 없어?”
나는 설아를 떠올렸다.
자꾸 전화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안긴다.
그냥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의 행동이기도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응석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같이 있으면 거의 무조건 달라붙는다.
은혜나 내 품속에 쏙 들어오곤 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가급적이면 붙어 있으려고 한다.
자기 전까지는 쭉 그랬다.
“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 누구보다 설아를 생각하고, 설아를 위해 움직였지만, 단 한 번도 설아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애가 의젓해서 티는 안 내도, 아마 외로울 거야.”
“……그래, 그럴 수 있겠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돌아왔다.
하지만 아직 부모로서는 은혜에게 뒤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설아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다른 무엇보다 설아의 행복이 먼저였다.
“좋아. 놀러 가자.”
* * *
다음 날.
비가 왔다.
아주 시원하게 내렸다.
거의 폭우 수준이었다.
새벽 훈련 때부터 흐려서 불안하더라니.
간밤에 온갖 놀러 갈 만한 곳을 물색했던 나와 은혜는 좌절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맑을 거라고 했는데.”
“역시 기상청은 믿을 게 못 되나 봐.”
창문 너머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설아랑 놀러 갈 생각에 잔뜩 기대감이 고조됐는데, 김이 팍 샜다.
은혜도 똑같은 심정인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설아는 우리를 보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음. 비 오면 안 돼요?”
“안 되는 건 아닌데. 설아야. 우리 내일 놀러 갈까요?”
“놀러 가요?”
설아의 눈이 반짝였다.
분명 잠에 취해 있었는데.
놀러 간다는 소리에 눈이 번뜩 뜨였다.
“원래는 오늘 놀러 가려고 했는데, 아쉽네.”
“오늘 놀러 가요? 정말?”
“아니. 오늘은 비 오잖아.”
“비 오면 못 놀러 가요?”
설아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야 실내에도 놀러 갈 만한 곳이 있긴 했다.
아니, 오히려 많았다.
박물관이나 체험관이라든지.
키즈 카페도 잘되어 있을 거다.
“우리가 너무 공원 쪽만 생각한 건 아닐까?”
은혜에게 제안하려는 순간.
총총 창문 쪽으로 가는 설아가 보였다.
잔뜩 부아가 난 듯, 양손으로 허리를 짚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모습도 사랑스럽기 그지없었지만 말이다.
먹구름에서는 무심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설아는 한 손을 들고 하늘을 가리켰다.
은혜와 나는 설아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지할 필요는 못 느꼈으니까.
“뚝!”
설아의 한마디에, 비가 그쳤다.
* * *
“아니 글쎄.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더니, 건물이 내려앉았다니까요.”
“그렇군요. 무너진 이유는 밝혀졌습니까?”
“모르겠네요. 그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길거리.
윌리엄 테일러는 중년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중년 여자는 이 근처에 사는 주민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건물이 돌연 내려앉았다고 했다.
지금은 철거되었기에, 윌리엄은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혹시, 이곳에 살던 여성을 기억합니까? Yoo, 유은혜라고 합니다.”
“유은혜? 어, 아! 그 혼자 애 키우던 아가씨? 알지, 그럼.”
“어떻게 압니까?”
“요 앞에서 일했거든. 싹싹하고 예의도 바르고 해서 기억하지.”
“그렇군요.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유. 아니에요. 한국어 되게 잘하시네.”
“칭찬 감사히 받겠습니다.”
윌리엄은 근처에 사는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철거된 흔적을 살폈다.
마나가 남아 있진 않은가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뭘 찾기엔 너무 늦은 것 같군요.”
윌리엄 테일러는 매번 허탕만 치고 있었다.
미전조 균열이야 원래 어떤 이유로 발생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지만, 암석 지대에서 있었던 대량의 마나에 대해서는 꼭 밝혀내고 싶었다.
이건 단순히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윌리엄 개인의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다.
경호원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제 슬슬 철수하셔야 합니다.”
“아직 기한이 남지 않았습니까?”
“마탑에서 윌리엄 님을 호출했습니다.”
“이 일을 해결하고 가도 늦지 않습니다.”
경호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발 물러섰다.
윌리엄 테일러는 턱을 잡고 고민했다.
처음에 의심한 건 이서준이나 유은혜였다.
암석 지대에서는 명백히 마법의 흔적이 있었고, 그곳에 드나들었던 사냥꾼은 몇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둘은 평범.’
물론 이서준과 유은혜는 신출내기 사냥꾼치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마나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필을 보면 납득이 안 가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라이선스 시험을 나란히 1, 2위로 통과한 루키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마법을 사용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설마.’
성수현의 말을 들은 후로, 계속 한 가지가 걸렸다.
너무 당연하게도 용의 선상에서 제외하고 있었던, 둘의 딸이었다.
용의 선상에서 제외한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그토록 어린아이가 마나를 다룬 사례는 여태껏 없었기 때문이다.
마나를 받아들이는 건 아무리 빨라도 고등학생 때다.
‘애초에 그 정도 마나를 다루는 마법사가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인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실마리가 잡히지 않더라도 그런 어린아이를 의심하다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윌리엄 테일러는 전화를 받았다.
“Hello?”
“마탑의 윌리엄 테일러 님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누구십니까?”
“한국 사냥꾼협회, 균열 관리 본부입니다.”
“균열 관리 본부가 무슨 일입니까?”
“최근 고려검산 인근에서 관측됐던 대량의 마나가 한 번 더 관측돼서 연락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