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52)
52화
동물원 구경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지하철 자리에 앉아 핸드폰 배경 화면을 바라봤다.
나를 벤치 중앙에 두고, 양옆에는 설아와 은혜가 앉아 있었다.
세 명 다 웃고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다 좋아지는 사진이었다.
‘응?’
처음에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내 머리 위로 손가락 2개가 뿅 튀어나와 있었다.
설아와 은혜가 합심하여 뿔을 만든 것이었다.
‘이거 하려고 날 중간에 세운 거구만?’
설아가 가운데에 앉고, 양옆으로 나와 은혜가 앉는 게 보기에 좋다.
그런데 어째 나를 중간으로 밀어내기에 왜 그러나 했더니, 이걸 하려고 그런 것 같았다.
복수라면 복수겠지만, 이렇게 귀여운 복수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덜컹, 덜컹.
지하철이 흔들렸다.
무언가 내 팔뚝으로 툭 떨어졌다.
졸던 설아의 머리가 옆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이렇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잘만 잔다.
하긴 그렇게 열심히 놀았으니 졸릴 만도 했다.
“다 왔는데, 깨울까?”
“아니야. 자게 둬. 업고 가지 뭐.”
은혜의 도움을 받아 졸음에 취한 설아를 업었다.
설아는 뭐라고 웅얼거리는가 싶더니, 내 등에 볼을 파묻고 잠들었다.
안온한 승차감을 제공하기 위해 걸음걸이에 신경을 써야 했다.
은혜는 그런 내 모습이 마냥 웃긴 모양이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고객 맞춤형 최고급 서비스 몰라?”
“나한테도 좀 그렇게 하지 그랬어.”
은혜의 한마디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만큼 스무 살 때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확실히 내가 은혜에게 잘해 줬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성격 좋은 애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네. 미안해.”
“아니. 여기서 반성하면 어떡해. 장난이야, 장난.”
내가 진지하게 사과하자, 도리어 은혜가 쩔쩔맸다.
아무리 그래도, 객관적으로 내가 못 해 준 건 사실이었다.
스무 살 시절의 나와 만나면 뒤통수 한 대 세게 때리고 싶었다.
한숨을 내쉬었다.
“있을 때 잘하라는 게 틀린 말이 아니야.”
“알긴 아네.”
헤어지고 나서 후회한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나는 은혜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 사건은 나중 일이니까. 아직 괜찮겠지.’
미래는 크게 바뀌었다.
은혜가 기사단에 소속된 것도 아닌 만큼.
그 사건에 연루될 가능성은 희박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설아가 이상한 방식으로 마탑과 연루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냥 방심하고 있을 수는 없긴 했다.
“……서준아.”
생각에 빠진 와중에,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앞서가던 은혜가 돌연 긴장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집 앞을 보니.
“오랜만입니다. Lee, 그리고 Yoo.”
마탑 소속 마법사.
윌리엄 테일러가 그곳에 있었다.
* * *
윌리엄은 이서준과 유은혜를 지그시 살폈다.
상당히 늦은 시간에 귀가했다.
복장을 봐선 놀러 갔다 온 것 같았다.
둘 다 왠지 모르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윌리엄은 조사를 위해서 이 집을 찾은 바 있다.
어느 정도 긴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표정이 굳었다.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
의식하고 보니, 유은혜 쪽은 약간 이상했다.
긴장이 아니라, 조금 경계하는 듯 살피는 눈빛.
반면 이서준은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테일러 씨.”
“기억하고 계셨군요.”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요. 뭐.”
순간적으로 시선이 교차했다.
이서준의 눈동자는 떨리지 않았다.
목소리 톤도 상당히 차분하다.
이런 경우 둘 중 하나였다.
정말 무고하거나.
‘아니면, 타고난 연기자거나.’
이토록 자연스럽게 넘어가려고 할 만큼 경험이 많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윌리엄 테일러는 쉽게 의심을 풀지 않았다.
“이번에는 또 무슨 용무십니까?”
“들어가서 얘기해도 괜찮겠습니까? 사적인 이야기라서요.”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가족들이 있어서 사적인 이야기를 하기엔 좋은 공간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다른 두 분께도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그럼 들어가죠.”
이서준은 쉽사리 문을 열지 못했다.
등에 설아를 업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손으로 설아의 허벅지를 받치고 있어야만 했다.
앞에 있던 윌리엄이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제가 잠깐 아이를 안고 있을까요?”
마법사는 마나에 민감하다.
특히 윌리엄 테일러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육안으로 봤을 때도 마나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설아에게서는 마나가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나는 숨길 수 있다.’
일류 마법사는 마나를 숨길 수 있다.
만약 대량의 마나 발생 두 건이 모두 마법사의 소행이라면.
그 마법사는 상당한 재능과 힘을 지녔을 것이 분명했다.
마나를 숨기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육안으로 봤을 때의 이야기.
‘접촉하면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데.’
숨긴 마나를 간파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접촉이다.
마법사와 마법사는 접촉했을 때, 서로의 마나를 느낀다.
아무리 잘 숨겼다고 해도, 가지고 있는 마나의 양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윌리엄은 접촉을 통해 설아가 마나를 가졌는지 확인할 요량이었으나.
“아니요. 괜찮습니다. 은혜야. 문 좀 열어 줘.”
“응.”
이서준은 장갑 없는 윌리엄의 손을 보더니, 간단하게 빠져나갔다.
이설아를 넘겨주고 싶지 않았던 건지,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은혜가 문을 열고 있는 동안 이서준이 집으로 들어섰다.
자연스레 은혜가 안에 들어가서 문을 잡아 줬다.
‘흠.’
자연스럽게 접촉해 보려는 것도 실패했다.
윌리엄 테일러도 아이를 의심하고 싶진 않았다.
무작정 이서준과 유은혜에게 협조를 요구할 수도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설아는 자게 둘 거야?”
“씻기고 재워야 하는데.”
이서준은 윌리엄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 테일러 씨가 가시고 해도 늦지 않으니까.”
할 일이 있다는 어필.
용건을 마치면 곧장 돌아가 달라고 돌려 말하고 있었다.
이서준은 설아를 침대 안쪽에 눕히고, 이불까지 확실히 덮어 줬다.
윌리엄은 명분이 없었기에 설아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
어쩔 수 없이 식탁 의자에 앉자, 유은혜가 차를 내왔다.
“그래서, 테일러 씨. 무슨 일이십니까? 저번 사건 때문입니까?”
“아니요. 새로운 사건입니다.”
저번 사건이라 하면.
미전조 균열과 암석 지대에서의 마나 발생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윌리엄이 이곳에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일대를 중심으로 기상이변이 발생했습니다.”
“기상이변이요?”
“예. 비가 갑자기 멈췄다고 합니다.”
“소나기였던 거 아닙니까?”
“기상청에서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기상청이 일을 잘하진 않습니다.”
이서준은 농담으로 응수했다.
“애초에, 그건 테일러 씨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요. 비가 사라질 때 암석 지대와 똑같이, 대량의 마나가 관측됐습니다.”
“아. 또 그거군요.”
천연덕스러운 대답.
이서준은 정말 몰랐다는 눈치였다.
애매모호했지만, 심증은 있는 상태.
그대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뭡니까?”
“대량의 마나가 관측됐다는 점. 그리고.”
윌리엄은 둘을 빤히 바라봤다.
“Lee와 Yoo가 중심에 있었다는 겁니다.”
암석 지대에서 대량의 마나가 관측됐을 때도.
이곳을 중심으로 먹구름이 사그라졌을 때도.
모두 이서준과 유은혜가 중심에 있었다.
의심할 근거는 충분했다.
“그렇군요. 사실 저는 짐작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짐작 가는 부분? 무엇입니까?”
이번에는, 이서준이 먼저 치고 나왔다.
“어디까지나 제 소견이지만, 균열과 관련된 일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균열? 계속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암석 지대에서, 필드 보스가 리젠 시간을 무시하고 나타났습니다.”
이미 윌리엄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서준은 말을 이어 나갔다.
“또 이 근처에서는 미전조 균열이 발생했죠. 둘 다 이례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평범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마 균열에 어떤 이상이 생겼기에 그런 일이 발생한 거고.”
“그 균열에서 대량의 마나가 발생했다, 이 말씀이십니까?”
이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윌리엄 테일러는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다지 설득력 있는 이론은 아니었다.
성수현도 한차례 제시한 바 있는 가설.
그렇기에.
‘그럴싸하군.’
오히려 설득력이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 생각했을 법한 의견이었다.
변명을 준비해 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런 일을 벌여 놓고 태평하게 놀러 갔다 온 것도 이상했다.
정말 이들의 소행이 아닌 걸까.
“미전조 균열은 몇 달 전에 나타났습니다. 이변이 발생했다면 그때 발생했을 겁니다.”
“여진 같은 느낌으로 나중에 나타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급발성 균열은 괴물을 토해 낸 뒤 바로 닫힙니다. 여파는 없습니다.”
“그렇군요.”
이서준은 몰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 되면 윌리엄 테일러가 헷갈릴 지경이었다.
자신의 추측이 맞나 의심이 들었다.
이 모든 게 정말 우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서준이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 일과 관련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모르겠습니다. 제가 던전에서 저주를 받은 걸 수도 있고요.”
“그런 사례는 아직 없습니다.”
“뭐든 첫 번째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서준은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윌리엄 테일러는 이서준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대로라면 말려든다.
“고려검산에 갔다 왔을 때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저번에 한 얘기 같은데요.”
“그때, 말씀하지 않으셨던 게 있더군요.”
“말하지 않은 거요?”
“아이도 데려갔다고 들었습니다.”
윌리엄 테일러는 말을 끊었다.
이서준은 일말의 동요도 없는 것 같긴 했지만.
‘Yoo는 감정을 제대로 못 숨기는군.’
유은혜 쪽에서 반응이 나왔다.
아주 살짝 눈동자가 떨린 것이다.
의식하고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수준의 동요.
그러나 분명 유은혜는 윌리엄 테일러의 말에 반응했다.
“미전조 균열 때도, 아이도 분명 같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말입니다. 아이가 이상한 물건을 줍진 않았을까 염려가 됩니다.”
“이상한 물건이요?”
“간혹 있는 일입니다. 어린아이가 유실된 아티팩트를 주웠다가 사고가 난다든지.”
윌리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이서준과 유은혜가 따라 일어났다.
둘 다 불안한 듯 윌리엄 테일러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윌리엄은 그런 둘을 잠깐 보다가, 유유히 설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설아에게 아티팩트가 있다면, 제가 알았을 겁니다.”
“마나가 검출되지 않는 아티팩트도 있습니다.”
윌리엄 테일러는 자연스럽게 침대 옆으로 갔다.
설아는 아무것도 모르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괜찮다면, 제가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윌리엄은 손을 설아의 이마 가까이 옮겼다.
손가락 끝이 설아의 이마에 닿으려는 순간.
콱.
이서준이 윌리엄 테일러의 손목을 잡아챘다.
윌리엄은 고개를 돌려 이서준을 봤다.
“죄송합니다만, 손.”
윌리엄 테일러는 처음으로 이서준에게서 적의를 느꼈다.
그 말속에는 분명 경고의 의미가 여실히 담겨 있었다.
“치워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