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56)
56화
아버지의 집 앞.
나는 은혜와 만났다.
은혜는 시종일관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살피며 불안한 눈치였다.
윌리엄의 일을 설명하니, 그제야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그게 먹으면 기억을 잃어버리는 영약이었구나.”
“응. 1년간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진다고 하더라고.”
“다시 떠오를 확률은? 왜, 드라마에서 가끔 그러잖아.”
“괜찮을 거야. 계속 시험해 봤는데,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더라고.”
“……그럼 반대로 기억을 되찾는 약 같은 건 없을까?”
“내가 알기로는 없는데.”
“그래? 으음.”
은혜는 설아를 데리고 급한 대로 아버지 댁으로 갔다고 한다.
아버지는 조금 당황하면서도 일단 은혜와 설아를 집에 들였다.
윌리엄 테일러의 부하라도 따라오지 않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
은혜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살폈다.
“그보다 너는 괜찮은 거야? 다친 데 없어?”
“멀쩡해.”
다행히 크게 다친 부분은 없었다.
왕의 반지에게 인간성을 갉아먹힌 게 전부였다.
이건 설아를 통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안도한 은혜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쪼그려 앉았다.
“다행이다…….”
“설아한테는 주의를 줘야 할 것 같아. 마법을 쓸 수 있는 사실은 숨기라고.”
“그래야지. 저번에 그, 비를 그치게 한 마법 때문에 들킨 거잖아.”
“응. 평범한 마법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설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법을 써서 다행이지.
기상을 조작하는 건 보통 마법이 아니었다.
잘만 하면 낙뢰 같은 것도 부를 수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강한 사냥꾼이라도 낙뢰에 맞고 살아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설아는?”
“아버님이랑 있어.”
“윌리엄 테일러를 보진 못했겠지?”
“아마도. 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설아는 아직 다섯 살이다.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은 숨기고 싶었다.
자칫하면 큰 트라우마로 남을 가능성도 있었다.
“평소대로 해.”
“알았어. 집으로 돌아갈까?”
“집, 지금 난장판이야. 내가 새벽에 정리해 둘게.”
“같이 하는 편이 빠르지 않겠어?”
“설아가 불안해하지 않게 옆에 있어.”
“……응. 고마워.”
이건 은혜를 위해서 한 말이기도 했다.
자식을 잃을 뻔한 건 보통 일이 아니다.
한번 잃어 본 나였기에 그 심정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심장이 내려앉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니, 설아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들어와라.”
아버지는 책을 들고 있었다.
아마 설아에게 읽어 주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동화책이 없다지만.
애한테 어른이 읽은 소설책을 읽어 주면 저렇게 되는 게 당연했다.
은혜는 아버지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버님. 혹시, 여기 칫솔 있나요?”
“흠흠. 부엌 쪽 선반에 있을 거다.”
“그래요? 설아야. 일어나세요. 치카치카 하고 자야지.”
은혜의 목소리에, 설아가 칭얼거렸다.
“으에에에.”
“앙탈 부려도 안 돼요. 얼른.”
“엄마가 설아 대신 치카치카 해 주세요…….”
“이설아.”
“흐이잉.”
은혜는 설아를 씻기고 재울 요량인 것 같았다.
잃어버릴 거라고 생각했던 일상적인 모습.
나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아버지가 내 옆에 앉았다.
“서준아.”
“네. 아버지.”
“무슨 일이냐.”
“무슨 일 없어요.”
“근데 왜 왔냐.”
“설아가 할아버지 보고 싶다고 떼를 써서요.”
“흐업.”
아버지는 여간 감격한 게 아닌지, 입을 틀어막고 흐느꼈다.
감동한 눈으로 설아를 바라본다.
이따금 설아는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 했으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윌리엄 테일러가 쳐들어왔다고 말할 수도 없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했다.
“너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해요. 집으로 갈게요.”
“아니. 자고 가라. 이미 애 씻기고 있잖냐.”
문이 활짝 열린 화장실 안쪽에 설아와 은혜가 보였다.
설아는 여전히 비몽사몽간인지,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있었다.
“이, 하세요.”
“이이.”
은혜가 대신 설아의 양치질을 시켜 주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성이 회복될 것 같은 광경이었다.
아버지는 흐뭇한 모습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저 세수 좀 하고 올게요.”
“오냐.”
싱크대로 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머리가 차갑게 식으며, 두 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다.
첫 번째는 설아의 기억을 흡수한 뒤 들려온 알림음.
‘뭐가 가속한다고 한 거지?’
잡음이 섞인 듯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시스템의 알림음은 매우 또렷하며, 사냥꾼이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반복한다.
하지만 다시 들려오지 않는 걸로도 보아, 정상적인 알림이 아닌 것 분명했다.
‘이건 답이 안 나오는 문제네.’
무엇이 가속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은 설아의 기억이었다.
내가 본 건 설아의 미래 같은 게 아니었다.
분명 있었던 일이었다.
‘아마도 그건, 지금의 설아가 겪었을 일이 아니다.’
내가 윌리엄 테일러를 막지 못했다면 설아가 겪었을 불행이 아니다.
이미 설아가 한차례 겪은 적 있는 불행.
즉, 회귀 전의 설아가 겪었던 일이다.
‘기억을 흡수했다고 했지.’
기억을 읽은 것도, 엿본 것도 아니라 흡수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애초에 내가 회귀한 것부터 말이 안 됐다.
퀘스트창을 열었다.
이설아의 다섯 가지 불행을 막으십시오. (1/5)
사라졌다.
윌리엄 테일러로부터 이설아의 신변을 보호하라는 문장이.
분명 첫 번째 불행이 진행될 때는 아래에 추가되어 있었는데.
첫 번째 불행을 막으면서, 동시에 사라진 것 같았다.
즉, 불행이 진행될 때만 추가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는 건.
‘설아의 불행은 미리 알 수 있다?’
설아의 다른 불행에 대해 잘 모르는 나다.
이건 이점이었다.
만약 두 번째 불행이 닥쳐오면,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
‘근데, 설아의 두 번째 불행이 뭘까.’
단순히 시간 순으로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였다.
설아가 마탑에 끌려간 건, 지금으로부터 약 5년 후.
그 전후에 발생했던 불행이라면.
아주 예전부터 짐작하고 있던 게 하나 있었다.
‘은혜가 죽는다.’
그건 분명 몇 년 후에 일어날 일이다.
그러나 마탑이 설아의 존재를 눈치채는 것도, 원래는 5년 후에나 일어났을 일.
즉, 당장 은혜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만약, 은혜가 죽는 원인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직은 여유가 있어.’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다.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 만큼, 그림을 크게 그려야 했다.
설아와 은혜의 안위도 확보하면서, 나도 성장한다.
일단 그걸로 족했다.
하지만 왤까.
인간성을 잃어버려, 감정이 무딜 텐데.
손이 덜덜 떨리는 걸 감출 수가 없었다.
* * *
“팀장님.”
“왜?”
“도대체 그때,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네 알 바 아니잖아. 사생활 침해야.”
“저는 알아야 합니다만.”
“프라이버시.”
하이테크 본사, 개인 사무실.
하이람은 경호원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노트북 화면에 눈을 고정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춤추듯 움직이는데, 대답은 또 대답대로 한다.
총을 양손에 들고 쏘는 만큼, 멀티태스킹에 재주가 있는 하이람이었다.
경호원은 조금 주저하다가 말했다.
“며칠 전, 보관 중이던 탄약 일부가 사라졌습니다.”
“그래? 도둑 들었나 보네.”
“CCTV에 팀장님께서 들어가시는 영상이 남아 있습니다. 팀장님 소행이…….”
“그 도둑이 내가 아니라고는 안 했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하이람은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을 작정인 듯 경호원을 몰아붙였다.
경호원은 이런 하이람 때문에 곤란할 때가 많았다.
그의 주된 임무는 경호지만, 특별히 위험한 일이 없다면 하이람의 편의를 봐준다.
그런데 하이람은 상당히 제멋대로인 성격이라,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나 바빠. 쫑알쫑알 옆에서 떠들지 마.”
“회장님께서 이 사실을 아신다면…….”
“모르면 되겠네. 영상 지우고 와. 내가 시켰다고 하고.”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책임지고 커버 쳐 줄게. 됐지?”
“……끙. 알겠습니다.”
경호원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이람은 상당히 고집이 센 사람이다.
아무리 의견을 제시해 봤자 듣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짜증이 많이 줄어서 이 정도에서 그친 거다.
‘그래도 말할 때는 잠깐 업무를 멈춰 주면 좋으련만.’
경호원은 불평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비록 인간적으로는 대우가 썩 좋지 못하다고는 하나.
경호원은 나름대로 자신의 직장에 만족하고 있었으니까.
하이람의 진짜 성격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하이람은 자신의 아래에 있는 사람을 챙겨 주려는 경향이 있었다.
‘저번에도.’
퇴근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정시에 시켜 준다.
무엇보다 보너스가 정말 두둑하게 나온다.
하이람이 따로 챙겨 주는 거라고 하는데, 그 보너스가 월급에 비견될 수준이었다.
이러니 경호원이 순순히 하이람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내키지 않는 일이라도, 하이람은 자기가 한 말을 지킨다.
책임진다고 했으면, 정말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그럼 지우고 오겠습니다.”
“가는 김에 아예 좀 쉬다 와. 30분이면 일 다 끝나니까.”
“커피라도 사 올까요?”
“싸구려 커피? 자극적이어서 좋지. 늘 먹던 걸로.”
사무실 문을 나서려던 경호원은 한 청년과 마주쳤다.
일찍이 하이람의 목숨을 한번 구해 줬던 사냥꾼, 이서준이었다.
병문안을 오기도 했고, 하이테크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어 면식이 있었다.
이서준이 먼저 묵례를 하자, 경호원도 바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노크하려고 했는데, 하이람 씨 안에 있나요?”
“계십니다. 팀장님? 이서준 씨가 오셨습니다.”
“어. 들어오라고 해.”
경호원은 한발 물러나 길을 내줬다.
이서준은 감사의 의미로 한 번 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사무실로 들어갔다.
여러모로 예의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었다.
인상이 좋다고 해야 할까, 싫은 느낌이 안 들었다.
문이 닫힐 때, 경호원은 하이람이 노트북을 닫는 걸 볼 수 있었다.
‘저 둘은 도대체 무슨 관계지?’
이서준의 프로필은 대충 확인한 적 있다.
경호원으로서 하이람이 만나는 사람은 알아 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필에 따르면, 이서준에게는 친딸이 있었다.
언뜻 반지도 보였으니 기혼자라는 건 확실했다.
문득 하이람의 말 한마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자극적이어서 좋지.
하이람은 자극적인 걸 좋아한다.
이서준은 하이람의 생명의 은인이다.
그리고 그는 정기적으로 하이람을 찾아오는 것 같았다.
경호원의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들이 얽혔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설마, 불륜?’
물론, 말도 안 되는 오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