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57)
57화
“앉아.”
“왜 부른 겁니까?”
“일 얘기.”
“그런 거면 전화로 해도 괜찮잖습니까.”
“어차피 바로 왔잖아. 한가했던 거 아니야?”
“무진장 바빴거든요. 설아 테라피 중이었거든요.”
왕의 반지가 갉아먹은 인간성을 회복해야 했다.
반나절 정도를 설아와 보내긴 했지만, 아직 전부 회복하진 못했다.
알림음이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걸로 보아 착실히 회복되고 있긴 했지만.
미량은 정말 미량인지, 몇 번을 회복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는 자제해야지.’
왕의 반지로 얻을 수 있는 힘은 상당하다.
하지만 그만큼 무서운 반동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인간성을 이 이상 잃어버린다면, 정말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반지에 의존하기보다 내 힘을 키우는 게 우선이었다.
“설아는 네 딸 이름이잖아.”
“맞습니다. 사진 보실래요?”
“아니. 나는…….”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핸드폰에 저장된 설아의 사진을 보여 줬다.
동물을 보며 해맑게 웃는 설아, 곰 아빠를 품에 안은 채 잠든 설아.
영 내키지 않아 하던 하이람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픽 웃으며 핸드폰을 밀었다.
“애가 귀엽긴 하네.”
“그렇죠? 동영상도 보실래요?”
“말 좀 들어.”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하이람은 한숨을 내쉬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할게.”
“시원해서 좋네요.”
“너, 목표가 어디야?”
“목표라니요?”
“사냥꾼으로서 목표.”
하이람은 다리를 꼰 채 나를 응시했다.
조금 막연한 질문이었다.
“어렵네요.”
“뭐든 좋아. 유명해지고 싶다든지. 떵떵거리면서 사는 대부호가 되고 싶다든지.”
회귀 전에는 분명 저것들이 중요했다.
강한 사냥꾼이 돼서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고 싶었다.
물론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사기 계약을 맺고, 빚을 갚기 위해서 사냥꾼 일을 했다.
어떻게든 빚을 다 갚은 뒤에는 생활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랐다.
나중에 가서는 살아남는 게 목표였던 것 같다.
“둘 다 아닌데요.”
“그럼 뭔데?”
“음.”
지금 내 목표는 변했다.
은혜를 구하고, 설아를 구한다.
어떻게 해서든 그 끔찍한 미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돈도, 명예도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수단에 불과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설아를 지킬 수 있는 힘.
설아의 적과 싸울 수 있는 힘.
즉.
“세계 최강이요.”
“오.”
주제넘은 소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일이 틀어져 설아가 또다시 최종 보스가 된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냥꾼이 적이 될 수도 있다.
언젠가 검성을, 사냥꾼들을 적으로 마주한다면.
또 무력하게 쓰러지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설아를 말릴 것이다.
“진심으로?”
“네.”
하이람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내가 진심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 게 제일 좋긴 했지만.
일단 최전선에서 두각을 드러낼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다.
세계 최강을 목표에 두고는 있지만, 비현실적이라는 건 인지하고 있으니까.
“내가 생각했던 거랑 스케일이 다르네.”
“뭘 생각하셨는데요?”
“면접 질의응답에서 할 법한 빤한 대답들.”
“저 지금 면접 보고 있는 거였습니까?”
“어떤 의미로는 그렇지.”
의외로 하이람은 나를 비웃지 않았다.
솔직히 농담이라고 여기고 비웃거나, 화낼 법도 했는데.
진지하게 받아들여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말이야. 너무 욕심이 지나친 거 아니야?”
“목표는 크게 잡으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좀 지나치게 크잖아. 라이선스 취득한 지 얼마나 됐다고.”
사냥꾼이 되고 이제 한 달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내 주변에 은혜나 하이람, 강대호 같은 예외가 많아서 그렇지.
원래대로라면 사냥꾼 한 명분의 역할도 하기 어려운 시기다.
“지금도 충분히 강한 편이고. 안 그래?”
“부족합니다. 하이람 씨 말마따나 욕심이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나는 설아가 어떤 불행을 겪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 설아의 기억을 흡수하면서 부분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그런 미래는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복되어선 안 된다.
하이람은 양손으로 턱을 괸 채 나를 빤히 바라봤다.
입가에는 어째 은은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웃긴가요?”
“아니. 존나 마음에 들어.”
“저는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닥쳐. 그 뜻 아니니까.”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했는데.
바로 차단당해 버렸다.
하이람은 잠깐 생각하더니, 제안했다.
“야. 너. 내가 밀어줄까?”
* * *
“잘 생각해 봐.”
하이람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무기 제조 회사 하이테크가 아니라, 하이람 개인이 해 주는 후원.
재벌 2세라곤 하나 한낱 개인이 해 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겠냐고 생각했던 건 사실이다.
기업의 후원을 받은 길드가 얼마나 큰 금액을 받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하이람이 내건 조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좋았다.
“일정한 주기로 원하는 미공략 던전의 소유권을 취득해, 양도한다?”
“그래. 원하는 던전이 없으면 이쪽에서 골라 줄 수도 있어.”
이것만 해도 온갖 다른 조건들을 무시하고 받아들일 만큼 강한 이점이었다.
나는 던전의 공략 정보뿐만 아니라 그 보상도 알고 있는 게 더러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던전의 보상은 대부분 성장에 큰 보탬이 되는 것들.
흔히 말하는 꽝을 거르고, 당첨만 쏙쏙 빼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보험요? 이건 평범한 길드에서도 내걸 수 있는 조건이네요.”
“그런 양아치 사기꾼들이랑 비교하면 섭섭한데.”
사냥꾼 보험은 보험료가 상당히 비싼 특수보험에 속한다.
그래서 길드에서는 기초적인 생명보험만 들어 주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하이람은 아예 전문가를 고용해 온갖 케어를 약속했다.
“장비도 마찬가지야.”
대부분 길드에서 지원하는 물자는 거의 보급품이다.
물론 주문 제작받는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체로 실력이 형편없는 장인에게 싼값을 주고 맡긴다.
회귀 전,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던 은혜의 검이 부러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반면 하이람이 약속한 장비 및 물자는 전부 하이테크제 최고급품.
‘너무 조건이 좋은데?’
하이람이 지극히 실리적인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단순히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나를 도와준다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 질문해도 됩니까?”
“뭔데?”
“왜 저를 밀어주려는 겁니까?”
“몇 번이나 말했잖아. 너 마음에 든다니까?”
“하이람 씨는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 돈을 퍼 줍니까?”
“못 퍼 줄 것도 없지.”
가볍게 응수한 하이람은, 역시 수상했다.
말로는 장비의 홍보를 비롯한 온갖 구실들을 붙였지만.
솔직히 그것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싫어?”
“솔직히 말하면 너무 조건이 좋아서 사기 같네요.”
“그냥 그러려니 하면 좋을 텐데. 야망은 크면서, 속은 은근히 좀생이란 말이지.”
“의심이 많은 건 좋은 겁니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거든요.”
“틀린 말이 아니라 반박할 수가 없네.”
하이람을 등에 업으면, 확실히 내 성장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질 거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내가 왕의 반지에게 힘을 빌리는 대신, 인간성을 일부 잃어버렸듯이.
하이람도 분명 내게 어떤 걸 요구할 것이었다.
지금 걸리는 건, 하이람이 무엇을 요구할지 얘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맞아. 네 생각대로, 조건이 있어.”
“뭡니까?”
“그리 어려운 건 아니야.”
“들어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길드 하나 만들어.”
길드.
본래는 중세의 상인 조합을 일컫는 말이다.
그 의미는 비슷하지만, 상인이 아닌 사냥꾼의 단체라는 게 차이점이다.
사냥꾼이라면 대부분 필수적으로 길드에 들어가게 된다.
‘나도 전에는 길드에 들어갔었으니까.’
길드에 들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너무 많다.
보험이나 장비 지원은 물론.
신출내기 때는 알기 힘든 여러 정보도 제공해 준다.
지위가 올라가면 미공략 던전 같은 기회를 알선해 주기도 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 때문에 들어가기도 한다.
‘지금은 조금 개판이지만.’
사기 계약이 만연한 현 사냥꾼 업계에서, 좋은 길드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고려검가처럼 조건이 좋은 길드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기사단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에게 불리한 조건을 들이미는 길드도 있다.
“제가 길드를 만들라고요?”
“응.”
“왜요?”
“들어가게.”
“예?”
이건 생각지도 못한 발언이었다.
하이람은 다른 사람에게 숙이고 들어가는 걸 죽도록 싫어한다.
과거에도 분명 다른 길드에 소속되는 대신, 직접 길드를 창설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내게 길드를 만들어 달라니.
“나 말이야. 사실 지금 사냥꾼 활동을 하면 안 되거든?”
“엊그제 잊힌 자의 고분에 다녀왔지 않습니까.”
“그건 몰래 간 거지. 몰래.”
의문점이 풀렸다.
잊힌 자의 고분을 공략하기 전, 팀을 구성하는 단계에서.
하이람은 나를 제외한 사냥꾼을 스스로 찾지 않았다.
대신 내게 사냥꾼을 모아 팀을 구성하라고 했다.
‘왜 나한테 그런 걸 맡기나 싶었는데.’
자신이 직접 해도 되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그쪽이 편하고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냥꾼 활동을 금지당했다면 이해가 됐다.
아마 법적인 문제는 아닐 테고, 하정수 회장이겠지.
“그 사건 때문이군요.”
“맞아. 칼빵 맞은 후로 못 하게 한단 말이지.”
“저번에는 아프다고 말하지 말라더니.”
“다 나았거든. 이제 멀쩡해. 볼래?”
“됐습니다. 그보다.”
하이람에게 사냥꾼 활동을 금지할 만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하이테크의 회장이자, 하이람의 아버지, 하정수.
그런데 여기서 내가 길드를 만든다고 한들.
“엄청 압박을 받을 것 같은데요.”
“굴하지 않을 만한 남자가 필요하다, 이거야. 세계 최강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나이라든지.”
“애초에 길드에 가입한다고 하이람 씨가 사냥꾼 활동을 할 수 있는 겁니까?”
“계약을 그런 식으로 하면 돼. 약간 강제력을 넣어서 나를 던전에 보내는 거지.”
“그거 완전 악덕 계약이네요.”
“명목상 그렇게 하라는 거야.”
요컨대 자신이 사냥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령 길드를 만들어 달라는 거였다.
다른 길드에 들어가려고 해 봤자 길드 쪽이 하정수 회장의 압박을 받을 게 뻔했다.
하이테크가 사냥꾼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 압박을 견딜 길드는 없을 테고.
분명 하이람은 길드에서 퇴출당하거나 그런 권고를 받게 되겠지.
“하이테크랑 척지게 되긴 싫은데요.”
“너한테 불이익이 가는 일은 없을 거야.”
“서면으로 약속할 수 있습니까?”
“응. 그런 경우에는 깔끔하게 길드 해체. 합당한 보상도 해 줄게.”
“저 길드 운영 같은 건 자신 없습니다.”
“전문가를 고용할 거야. 너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바지 사장이네요?”
“그런 거지.”
질문하자마자 대답이 나오는 걸 보면.
꽤 오랫동안 준비해 둔 계획인 것 같았다.
“계약서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
“좋아. 길드 이름은 세계 최강 어때?”
“저 그냥 안 할래요.”
“농담이야. 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