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58)
58화
“길드?”
“응. 어떻게 생각하나 해서.”
“그야 뭐, 조건이 좋다면 안 들어갈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은혜는 설아를 품에 안은 채 반쯤 녹아내려 있었다.
설아와 함께 씻고 나오더니, 충전이라는 명목으로 저러고 있다.
저녁까지 먹은 탓에 노곤한지, 설아도 은혜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은혜는 설아의 정수리에 턱을 올려놓고 의문을 표했다.
“굳이?”
“처음에는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그런데, 네가 다 해 주잖아.”
“내가 못해 주는 것도 많아.”
“희연이 말 들어 보니까 아닌 것 같던데.”
은혜는 습관적으로 설아의 말랑한 볼을 만지작거렸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거지만, 설아는 정말 얌전한 편이었다.
이따금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긴 하지만, 또래 아이들처럼 힘이 넘치지는 않았다.
품에 안으면 얌전히 있고, 저렇게 볼을 만지작거려도 거부감을 표시하지 않는다.
찹쌀떡 같은 볼이 은혜의 손을 따라 쭈욱 늘어났다.
“브에에에.”
“굳이 들어갈 거 있나 싶어.”
“실은 내가 만들 생각인데.”
“길드를?”
“응.”
은혜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내가 길드를 만들 만한 이유는 없었다.
사냥꾼으로서 입지가 탄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길드를 만들 만큼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왜?”
“하이람 씨가 만들어 보래서.”
“이람 언니가? 언제?”
“오늘.”
“오늘? 만났어?”
“응. 아까 갑자기 연락 왔거든.”
설아의 볼을 조몰락거리던 손이 멈췄다.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다시 손을 움직였다.
“네 생각은 어떤데?”
“조건이 너무 좋아서 해 볼까 해.”
“조건?”
“길드를 만들고, 거기에 소속되는 조건으로 후원을 약속했거든.”
대충 사정을 설명했다.
하이람의 개인사긴 했지만.
필요하면 은혜에게 설명해도 좋다고 했으니까.
상관없을 거다.
“그런 거면, 둘이서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그건 안 되지.”
“……왜?”
“최소 인원이 있거든.”
길드를 창설하는 데에는 여러 조건이 있다.
일단 집단이나 단체로 구분되는 만큼 일정한 인원수가 필요했다.
“길드 마스터를 포함해서 적어도 활동할 수 있는 사냥꾼이 다섯 명은 필요해.”
“뭐야. 나는 인원수 채우기야?”
“나도 인원수 채우기거든.”
은혜는 짐짓 기분이 상했다는 듯 말했지만.
내 처지도 똑같았다.
거기에, 만들더라도 사실상 유령 길드나 다름없다.
일단 명목상 길드를 표방하고 있긴 했어도.
길드원을 강압하거나, 억지로 일을 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럴 여유도 없었고.
“일단 들어오면 활동 지원은 해 준다던데.”
“길드 마스터, 네가 하는 거잖아.”
“난 바지 사장이라…….”
“그런데 길드원은 네가 구해?”
“그쪽은 못 구한다더라고.”
하이람이 길드원을 구해 버리면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리 명목용 유령 길드더라도, 그 의도가 너무 빤히 보이는 꼴이다.
하이람은 단순한 길드원 중 하나로, 자원해서 길드 운영을 돕게 될 것이다.
설정 놀이지만 말이다.
“으음. 지원은 어떤 거 해 주는데?”
“길드원 것까지는 못 들었어. 물어볼까?”
“아니야. 내가 따로 연락해 볼게.”
솔로로 활동하는 데에는 큰 이점이 없다.
여러 길드에서 영입 제안이 온다는 개방감 정도.
물론 정말 좋은 길드에서 제안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도 있었지만.
별다른 의무 없이 지원만 받을 수 있다면, 이쪽도 결코 나쁜 판단이 아니다.
“전화번호 있어?”
“아니. 없어.”
“불러 줄게.”
* * *
“까짓거 하지! 뭐!”
“대답이 무진장 빠르시네요.”
“그야 동생 설명 들어 보면 안 할 이유가 없잖아.”
“그래도 좀 더 고민해 보시지.”
“귀찮게 뭘. 됐어. 한다면 하는 거야.”
신중한 은혜와 달리, 강대호는 너무 시원하게 승낙해 버렸다.
이 사람, 이러다가 사기당하는 거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시원했다.
물론 앞서 상세한 조건을 설명해 주긴 했지만.
강대호가 이렇게 순순히 길드에 들어오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저는 형님이 안 들어오실 줄 알았어요.”
“응? 내가 왜?”
“난 나보다 약한 사람의 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러면서.”
“그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동생은 나보다 세잖아.”
“제가 발릴 것 같은데요.”
“내가 질걸.”
“설마요.”
강대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동생은 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과대평가가 아니라, 꽤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본인은 너무 낮춰. 전교 1등은 죄다 이런가?”
“전교 1등이요?”
“시험 성적 1등이라며.”
라이선스 시험 성적에 대해서 말한 적은 없는데.
아마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그야 15년 차 사냥꾼이니까.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한들, 진짜 초보자보다는 조금 더 나았을 뿐이다.
“리더는 겸손한 것보다 당당한 편이 좋다고.”
“이름만 길드 마스터겠지만요. 노력해 볼게요.”
“길드원은 누구누구야? 내가 아는 사람들?”
“네. 일단 하이람 씨는 확정이에요.”
은혜는 아직 보류다.
방금 하이람을 만나러 갔으니, 곧 답을 내놓을 것이다.
하이람이 조건을 나쁘게 걸지는 않을 테니, 승낙할 것 같았지만.
솔로를 고집할 게 아니라면 하는 쪽이 이득이긴 했다.
이왕이면 나도 협력해서 은혜를 설득해 볼 생각이었다.
강대호의 승낙도 받았으니까, 남은 건 마지막 한 명인데.
“희연이는?”
“희연이는 고려검가라서요.”
“아. 그 검성 있는?”
“그 검성 손녀딸인데요.”
강대호의 입이 벌어졌다.
하이람이 하이테크의 재벌 2세라는 걸 듣고도 이런 반응이었다.
강대호가 둘과 함께한 건 잊힌 고분에서 한 번뿐이다.
둘 다 그냥 사냥꾼으로 참가했으니 몰랐을 법도 하다.
특히 강대호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검성처럼 강하기에 유명한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몰랐어.”
“그래요? 일단 고 씨잖아요.”
“한국에 고 씨가 얼마나 많은데.”
“그건 그렇죠.”
신출내기 사냥꾼들로만 구성되어 있어도 이상하다.
조언자라는 명목으로 한 명쯤 영입해도 되겠지만.
고려검가의 손녀딸인 고희연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일단 인원수를 채워야 하는 거잖아.”
“네. 그건 그런데요.”
“달리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아는 사람이요. 없을 것 같은데요.”
“없으면 없는 거지. 없을 것 같은 건 뭐야?”
아무리 밑바닥에서 기어 다녔어도, 15년이라는 세월을 기어 다니다 보면 안면을 튼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모를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지금으로서는 고희연이 아니면 제안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없어요. 없어.”
“그래서 내가 지금 물어봤다.”
“아니. 무슨 추진력이 이래요. 실례일 수도 있잖아요.”
“몰랐다고 하지 뭐.”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뒤풀이하자고 했잖아.”
“아. 그때구나.”
머지않아, 강대호에게 전화가 왔다.
강대호는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대호 오빠, 지금 서준 오빠랑 같이 있으신가요?
“희연아. 미안해. 대호 형이 몰랐대.”
내 목소리를 듣자, 고희연은 잠깐 침묵했다.
이미 길드에 소속된 길드원에게 이적을 제안하는 꼴이었다.
심지어 그 길드가 자신의 가족이 운영하는 길드였으니.
기분이 상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뭐가 미안해요?
“응?”
-그보다 저 길드에 들어가고 싶은데, 얘기 들어 봐도 돼요?
“아니. 너 고려검가 소속이잖아. 괜찮아?”
-네? 아닌데요?
나와 강대호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아니야?”
-네.
“할아버지가 검성이신데?”
-아. 할아버지 때문에 못 들어가요.
“왜?”
-큼, 큼. 아아.
헛기침한 고희연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영 어색하긴 하지만, 검성을 성대모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고로 난놈이라면 혼자 나는 법을 익혀야지. 안에서 싸고돌면 약해진다.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네. 그래서 솔로로 활동하거나, 다른 길드에 혼자 들어가라고 하시던데요.
이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사자는 자기 새끼를 벼랑에서 민다더니.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 될 것 같았다.
참 검성다운 교육 방식이었다.
* * *
기사단의 길드 하우스, 길드 마스터의 방.
허만덕과 마주한 성수현은 생각지도 못했던 보고를 듣고 얼이 빠졌다.
기사단은 고려검가와 같이 검을 쓰는 사냥꾼으로 이루어진 길드다.
대규모 공략에서는 후위에 설 만한 인력이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의 충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성수현은 허만덕을 통해 영국의 마탑 지부로 연락했다.
“정말 약속한 것 맞습니까?”
“구두로지만 분명히. 그 정도 지위에 있으면 마법사 한두 명 정도는 찾을 수 있을 텐데.”
마탑은 길드가 아니다.
그 덕에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 중 일부는 솔로로 활동하기도 한다.
이번에 윌리엄을 통해 유능한 마법사를 영입하려고 했는데.
“기억상실?”
“그렇다고 하는군요.”
“지금 설마 없었던 일이라고 장난치는 건 아니겠지?”
“병원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장난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성수현으로서는 기가 찰 지경이었다.
최근 들어 방송 쪽 일이 많아지면서, 성수현은 부쩍 바빠졌다.
없는 시간을 쪼개 가며 윌리엄 테일러에게 협조한 건 이를 위해서였는데.
모두 말짱 도루묵이 된 꼴 아닌가.
울컥 올라온 짜증에, 성수현은 미간을 찡그렸다.
“사고라도 난 건가?”
“정확한 경위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 정도 마법사가?”
윌리엄 테일러는 상당히 강한 마법사다.
여차하면 교통사고에도 마법으로 대처할 수 있을 정도다.
무언가에 정신이 팔렸다면 또 모르겠지만.
성수현이 본 윌리엄은 상당히 여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은 어지간한 충격이 아니고서야 쉽게 방심하지 않는다.
“언제 기억을 잃어버린 거지?”
“그건 한국에서 그랬다고 하는군요.”
“한국에서 그랬단 말이지.”
윌리엄 테일러는 고려검산의 암석 지대에서 발생한 대량의 마나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성수현을 만날 때만 해도 멀쩡했으니, 출국 전에 뭔가 일이 터졌다는 얘기다.
그리고 성수현이 유추할 수 있는 윌리엄 테일러의 동선은 하나뿐이었다.
‘이서준과 유은혜?’
성수현은 윌리엄 테일러에게 이서준의 딸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성수현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정말 쓸데없는 정보였지만.
윌리엄 테일러는 둘을 다시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물론 형식상 한 말일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 윌리엄 테일러가 정말 이서준과 유은혜를 만나러 갔다면.
‘그때 기억상실이 일어난 건가.’
기억상실은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서준과 유은혜가 보는 앞에서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면.
분명 둘은 조사를 받거나, 협회 쪽에 호출됐어야 할 텐데.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성수현은 영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뭔가 이상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