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62)
62화
“이람이가 만드려고 하는 유령 길드. 스펙터라고 했던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정수 회장은 이미 스펙터가 유령 길드라는 것까지 간파하고 있었다.
떠보는 거라기에는 너무 확신에 차 있었다.
하이람이 실수로 들킬 성격은 아닐 텐데.
‘아니지. 내가 하이람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걸 수도 있어.’
내가 하이람과 처음 만난 건 원래대로라면 몇 년 후다.
그때의 하이람과 지금의 하이람은 당연하지만 다를 수밖에 없다.
권왕, 강대호도 엉성한 모습을 종종 보여 주는 마당에 하이람도 그러지 않으라는 법 없다.
“어려운 조건이 아니니 그리 긴장할 것 없네.”
“일단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길드 활동을 제대로 해 줬으면 하네.”
“……네. 그래서요?”
“그게 전부라네. 쉽지?”
나는 귀를 의심했다.
하정수 회장과 하이람은 닮은 구석이 많다고 생각했다.
물론 하정수 회장은 자리나 연식 덕분인지 조금 둥그런 부분이 있었으나.
치밀한 면모나 계산적으로 교섭을 시도하는 건 역시 부녀가 똑 닮았다.
“반응이 왜 그런가?”
“하이람 씨를 감시하라거나, 뭐 그런 걸 시킬 줄 알았습니다.”
“내가 이람이를 아끼긴 한다만. 과보호는 독이 되는 법이거든.”
하정수 회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부모로서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말이었다.
물론 나는 지금 설아를 보호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설아가 아직 어리고, 그 신변이 너무 위태롭기에 그런 거다.
자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된다면 스스로 몸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하겠지.
“해서, 어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균열에서는 강한 괴물이 하나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에 대항하는 가장 적합한 방법은 수적 우위를 점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개인의 역량이 뛰어나더라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예로부터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다굴에는 장사 없는 법이라고.
‘어쨌든 단체의 구성은 필요하다.’
당장 급한 대로 주변인만 모았으나, 계약한 사냥꾼들의 잠재력은 어마어마했다.
은혜만 해도 최전선에서 활동할 만한 여력이 있는 사냥꾼이고.
권왕 강대호는 말할 것도 없다.
고희연과 하이람도 훗날 명성을 떨치는 사냥꾼들이다.
솔직히 나만 빼면 드림 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차피 혼자서 공략할 수 있는 건 중소형까지가 한계고.’
중형 던전부터는 아예 다른 세계라고 봐도 무방했다.
내가 압도적인 무력을 지니고 있다면 모를까.
중형 던전을 혼자 공략하는 건 어려웠다.
“저희 쪽 계약 내용을 수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합의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좋네. 이람이를 통해서 연락해도 좋지만, 그러면 혼날 것 같으니 개인 전화로 부탁하네.”
“회장님께서 하이람 씨한테 혼나기도 합니까?”
“자네는 아직 딸한테 혼나 본 적이 없나 보군. 아내보다 무섭다네.”
* * *
“다녀왔습니다.”
“왔어? 수고했어.”
집에 돌아오자 은혜가 반겨 줬다.
매일 던전이나 필드에 따로 사냥을 나가는 은혜지만, 오늘은 쉬는 날이었다.
일을 했으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쉬는 것도 필수였다.
너무 일만 하면 피로만 쌓이게 되고, 정신 건강에도 해로운 법이다.
즉 휴식은 능률의 상승으로 이어지기에, 내가 은혜에게 적극 권장한 바 있다.
“설아는?”
뭔가 허전하다 싶었는데.
매일 강아지처럼 쪼르르 나오던 설아가 없었다.
집에 은혜도 있으니 아버지 댁에 간 것도 아닐 텐데.
집 안을 살펴보니, 소파에 앉아 있는 설아가 보였다.
‘뭐지?’
설아는 이따금 동화책이나 만화영화를 볼 때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한다.
때때로 주변 상황을 아예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도 그런 건가 싶었다.
하지만 TV는 켜져 있지도 않았고, 설아의 손에는 책도 들려 있지 않았다.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설아 왜 그래?”
“왜 그러겠어?”
은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발을 벗고 곧장 설아에게 다가갔다.
복어처럼 양 볼을 부풀린 설아가 있었다.
완고함을 표시하듯 앙증맞은 팔로 팔짱까지 끼고 있었다.
“설아야? 아빠 왔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대놓고 심통이 났다고 광고하는 부루퉁한 표정.
솔직히 귀여웠다.
잠깐 나를 본 척도 안 하던 설아가 입을 열었다.
“아빠. 설아랑 약속했잖아요.”
“약속?”
“오늘은 일찍 와서 같이 밥 먹기로 했는데.”
“아.”
최근 나는 길드 창설의 최소 조건을 맞추느라 바빴다.
4일간 일곱 개의 던전을 공략했으니, 쉴 시간이 거의 없었다.
장비 점검을 비롯해 훈련도 빼먹지 않고 하다 보니, 집에만 오면 곯아떨어지기 일쑤.
자연스럽게도 설아와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오늘만큼은 던전 공략을 마치고 쉬겠노라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분명 설아와 약속했다.
-오늘은 일찍 올 테니까 아빠랑 점심에 맛있는 거 먹자.
-정말요? 약속!
-그래. 약속!
-도장! 복사!
심지어 도장에 복사까지 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1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설아는 매일 12시에 점심을 먹는다.
은혜는 사용한 식기를 곧바로 설거지하는 타입.
그러나 이제야 설거지 중인 걸로 볼 때, 밥을 먹은 지 얼마 안 됐다.
아마 나랑 먹겠다고 버티다가 결국 늦게 먹은 모양이다.
‘전화라도 좀 해 주지.’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휴대 기기는 반납했었다.
나라고 사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하정수 회장의 호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절하려고 했으면 거절할 수도 있었던 일이다.
조금 분위기에 휩쓸린 감이 있었다.
즉, 내 잘못이 맞았다.
“엄마가 그랬어요. 약속은 꼭꼭 지키는 거라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기억하고 있었다면 지킬 수 있었던 약속이다.
워낙 정신이 없어서 잠깐 잊어버린 건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잘못했어요? 안 했어요?”
“잘못했어. 아빠가 미안해.”
이거 완전히 은혜가 설아를 혼낼 때 쓰는 말투랑 똑같다.
그게 너무 귀여웠던 나머지,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포커페이스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어쩐지 설아 앞에만 서면 무장해제가 된다.
입가가 씰룩거리는 걸 봤는지, 설아는 짐짓 화난 듯 양손으로 허리를 짚었다.
“아빠.”
“응.”
“미워요.”
“커헉.”
청천벽력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심각한 내상을 입은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니, 무릎이 꺾였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눈을 마주치려 했으나, 설아는 고개를 틀어 시선을 피했다.
“은혜야…….”
상황을 무마시킬 방법이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은혜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사이 설거지를 마친 은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다가왔다.
“설아야. 아빠가 일이 많이 바빴대요.”
“그래도, 약속했는데. 약속 안 지키면 나쁜 건데.”
설아의 의견은 지극히 정론이었다.
나를 도와 설아의 기분을 풀어 주려던 은혜는 묘하게 설득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아빠가 잘못했네.”
“아니. 갑자기 설아 편에 붙는다고?”
“잘못한 거 맞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럼 아이스크림.”
“……흥.”
“더해서 하루 종일 놀아 주기.”
최근 바빴던 탓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힐링 목적으로 하루 종일 놀아 줄 생각이 있었다.
그제야 설아는 기분을 풀고 나를 봤다.
“이번엔 약속 지켜야 해요.”
“알았어. 미안해요.”
흐뭇하게 우리 둘을 바라보던 은혜가 끼어들었다.
“자, 둘이 화해의 포옹.”
“유치원이냐?”
“안 할 거야?”
“할 거야.”
은혜를 닮아서 그런가.
설아는 영 모진 성격이 못됐다.
내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용서하는 모습이었다.
화해의 포옹을 할 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이제 아빠 안 미워?”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설아는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중대한 비밀이라는 듯 내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사실은요. 처음부터 안 미웠어요.”
“근데 왜 밉다고 했어?”
“거짓말이에요.”
“이, 이 녀석.”
* * *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뒤에 있는 설아 얘기는 상관없는 거 아니야?”
“자랑한 건데요.”
다음 날.
나는 하이람을 찾아가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다.
아무래도 계약에 관련된 문제다 보니까 상담할 필요가 있었다.
하이람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엄지로 꾹꾹 눌렀다.
“휴. 망했네.”
“잘된 거 아닙니까?”
“뭐가 잘돼? 다 걸렸는데.”
“길드 활동만 잘하면 사냥꾼 활동도 허락받는 거 아닙니까?”
“길드 활동을 안 한다는 게 계약 조건 중에 하나잖아.”
사실이었다.
본디 스펙터는 유령 길드를 표방했다.
하이람이 사냥꾼 활동을 이어 나가기 위한 구실.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고, 길드원을 강제로 동원하지 않는다.
이는 계약서에도 제대로 명시되어 있는 사항이었다.
그런 계약이었으니까 개인의 성장이 우선인 나도 수락한 것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바쁜 척하더니. 인제 와서?”
“안 바쁜 건 아닙니다. 목표가 세계 최강이라서요.”
“그러면?”
“정기적인 활동 정도라면 괜찮다는 겁니다.”
길드 마스터의 업무를 다하라고 하면 솔직히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귀찮은 업무는 하이람이 고용한 전문가가 처리해 준다고 했으니.
바지 사장이라는 포지션은 유지하되, 중형 이상의 던전 공략 때만 길드 단위로 움직인다면.
충분히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건 기회일지도 몰라.’
스펙터의 길드원이 가진 잠재력은 실로 어마무시한 수준이다.
하이람을 포함해, 고희연과 강대호 둘과도 완만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아예 이렇게 공식적으로 같은 길드에 소속된다면 따라오는 이점이 너무 많았다.
‘원래는 솔로로 활동하려고 했지만.’
개인으로 활동하며 필요할 때마다 팀을 구성하는 사냥꾼도 있다.
이들을 흔히 솔로라고 하며, 생각보다 희귀한 것도 아니다.
계약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길드에 소속되는 순간 수익을 나눠야 하니까.
게다가 전문가가 아닌 사냥꾼이 운영하는 길드의 특성상, 조건이 막 좋은 것도 드물었다.
이름도 없는 길드에 들어갈 바에야, 좋은 계약 조건을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괜히 길드가 있는 게 아니야.’
필요할 때마다 같은 던전을 공략하고자 하는 솔로를 모아 팀을 구성한다.
이는 당연히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힘들게 모았다고 해서 일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분배 문제로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더하여 합이 잘 맞지 않을 때도 있고, 던전 범죄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길드에 들어가면 귀찮은 일이 없으니까.’
같은 사냥꾼과 여러 번 팀을 구성하다 보면 합이 좋아지는 건 당연하다.
같은 소속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접할 기회도 있을 거고, 신뢰도 쌓이기 마련이다.
공략할 때마다 고정된 인원과 함께 가는 건 이점이 상당했다.
계약에서 사기만 안 당한다면 길드는 권장 사항이었다.
“……다른 둘은?”
“제가 이미 설득했습니다. 어느 정도 자유를 보장하긴 해야겠지만요.”
“너 뭐야. 왜 이리 협조적으로 굴어?”
“사소한 부탁 하나 들어줬으면 해서요.”
“그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