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63)
63화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미전조 균열이 무려 여덟 번이나 관측됐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낼 수도 있는 게 균열이다.
특히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등장하는 미전조 균열의 경우 그 위험성이 더했다.
그러나 아테네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위험합니다. 다들 물러나 주세요.”
“실제 상황입니다.”
사냥꾼들의 통제에도, 사람들은 좀처럼 도망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던 소년이 걸음을 멈췄다.
“엄마, 저기 괴물이 있대.”
“얘. 위험하니까 너무 가까이 가면 안 돼.”
소년은 흥미가 동했는지 인파를 뚫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소년의 엄마는 소년을 만류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안쪽에 다다른 소년은 괴물을 목도할 수 있었다.
“우와! 진짜 괴물이다.”
돌을 온몸에 두른 듯한 괴물이 웅크려 있었다.
거대한 박쥐의 것처럼 생긴 날개는 이미 잘려 떨어져 나간 지 오래다.
2미터는 넘을 듯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몸을 한껏 움츠린 상태였다.
흔히 석상의 모습으로 자주 볼 수 있는 괴물인, 가고일이었다.
“어?”
그리고 소년은 가고일과 눈이 마주쳤다.
다친 듯 절뚝거리던 가고일이 돌연 땅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키에에에엑!
이 중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소년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놀란 소년은 순간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날카로운 손톱이 소년의 얼굴을 잡아뜯을 듯 가까워졌다.
그 사이로, 돌연 누군가 난입했다.
서걱! 쿵!
가고일의 머리가 떨어졌다.
사냥꾼들이 팀을 구성해도 공략하기 까다롭다는, 중형 던전에서나 나올 괴물.
그런 가고일의 목을 단숨에 잘라 내, 저지한 것이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우와아!”
“지금 봤어? 미쳤다!”
“휘익! 소드 마스터! 최고다!”
소년은 눈을 떴다.
그 앞에 있는 건 갑옷 차림의 기사였다.
괴물이 눈앞에 있음에도, 사람들이 마음 놓고 구경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여덟 번의 미전조 균열 사태에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막아 낸 사냥꾼.
소드 마스터라는 칭호로 불리는 최고의 검사.
“소피아! 소피아!”
그녀의 이름은 소피아 람비두였다.
검을 내린 소피아는 소년을 빤히 바라봤다.
비록 투구의 눈가리개 때문에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년은 소피아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얘. 위험하잖니.”
“괜찮아요! 소피아가 도와줬는걸요!”
소년은 이윽고 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소피아는 그런 소년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자세를 똑바로 했다.
그녀가 이끄는 길드, 나이츠의 길드원들이 통제를 풀고 소피아에게 다가왔다.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소피아는 가까운 길드원에게 검을 맡기고, 답답한 투구를 벗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백발의 할머니였다.
“나 늙었다고 걱정하는 거니?”
“그런 게 아닌 거 아시지 않습니까.”
“괜찮단다. 갑옷이 조금 답답한 게 전부니까.”
소피아는 지난 10년간 사냥꾼 일을 해 왔다.
그러나 아무래도 전신 갑옷은 불편한 감이 있었다.
선물로 받았기에 성의를 봐서라도 사용해 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동작이 둔해지는 것 같았다.
“얼른 돌아가자꾸나. 이걸 벗고 싶거든.”
“알겠습니다. 가고일 사체 루팅해.”
소피아는 목을 꺾으며 자동차로 이동했다.
옆에 있는 길드원이 줄줄이 이야기를 읊었다.
“참. 길드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 어디서?”
“하이테크입니다.”
“하이테크? 한국의 무기 제조 회사?”
“맞습니다.”
소피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한국에는 좋은 기억이 많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 검성이었다.
검을 사용하는 늙은 사냥꾼이라는 특이한 공통분모를 지닌 둘이다.
한국에 갔을 당시 운 좋게 만나 좋은 친구가 되긴 했지만.
서로 바쁜지라 만날 시간이 너무 없었다.
“마스터와 전화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런 할머니를 찾는다니. 무슨 일일까.”
“일단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나이츠에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길드기도 했고, 그만큼 선망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다.
원래 이런 전화에 하나하나 응답하진 않는 편이지만.
하이테크와는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다.
“일단 돌아가서.”
* * *
“연락됐어.”
“정말입니까?”
-너, 내가 소피아 님이랑 만난 적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언제 만난 적 있습니까?”
-옛날에 한 번.
“몰랐는데요.”
-그럼 그냥 우연이야?
“높은 사람이면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요.”
사실 하이람보다 고려검가 쪽에 문의를 하는 게 빨랐을 거다.
하지만 고희연에게는 일방적으로 빚을 진 적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검성과는 가급적이면 연루되는 걸 피하고 싶었다.
-그보다, 연락해서 뭐 하려고? 검이라도 배우게?
“그런 게 있습니다.”
-그런 게 뭔데.
“궁금합니까?”
-응.
“그러면 알려 주기 싫어지는데.”
-개악질이네.
“그럼요.”
차분하게 욕을 먹었다.
하이람한테 욕을 먹는 거야 자주 있던 일이다.
역시 15년 전이라서 그런가, 지금은 많이 순한 편이었다.
원래는 화날 때마다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참신한 욕을 했는데.
-네 맘대로 해. 5분 후에 전화 올 거야.
“하이람 씨. 혹시 삐졌습니까?”
하이람의 전화가 끊어졌다.
아무래도 너무 놀린 것 같았다.
지금의 하이람은 멘탈이 그리 강하진 않구나.
조금 주의해서 살살 놀려야 할 것 같았다.
머지않아 전화가 왔다.
국제전화였다.
‘좀 떨리네.’
소피아 람비두.
검성과 검으로 호각을 다퉜다는, 그리스의 소드 마스터.
회귀 전에는 만나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성격을 모른다.
존경받는 인물이니만큼 까다로운 성격은 아니겠지만.
적으로 돌리면 무조건 손해 볼 수밖에 없었다.
예민한 사항이니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서준 씨 되시나요?
“네. 이서준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소피아 람비두라고 합니다.
그리스어를 쓰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세계 공용어라고 할 수 있는 영어를 사용했다.
말투나 목소리로 볼 때, 인자한 할머니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무지 검성과 동등한 수준의 사냥꾼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들어 보니,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길드에 들어오고 싶은 건가요?
“아닙니다. 저는 따로 길드를 운영하고 있어서.”
-그래요? 실례했습니다. 그럼 다른 용건이 있나요?
“네. 나이츠에서 숨기고 있는 던전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나긋나긋하게 질문하던 소피아가 말을 멈췄다.
전화기 너머로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목소리가 이어졌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군요.
“아크로폴리스 지하에 위치한 던전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곳에 던전이 있다는 건 처음 들었는데요.
“튜토리얼 타워. 맞죠?”
정곡을 찔린 걸까.
소피아는 잠깐 말을 멈췄다.
-당신.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던전 보상으로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거짓말이다.
지난 일곱 개의 던전을 공략하고 받은 보상은 대단치 못했다.
기껏해야 가치가 떨어지는 영약 몇 개 받은 게 전부.
튜토리얼 타워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진 못했다.
“튜토리얼 타워는 나이츠 측에서 관리하는 것 같더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이유를 묻고 싶군요.
“소피아 님이 그리스, 그것도 아테네에서만 활동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 아닙니까?”
-……흥미로운 가설이네요.
소피아는 꽤 동요하고 있었다.
그야 숨기고 숨겨 왔던 사실일 테니까.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는 건 미래의 일이다.
그만큼 나이츠의 보안은 철통과 같았다.
“전 소피아 님을 적으로 둘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방금까지는 협박처럼 들렸거든요.
“설마요. 저는 오래 살 생각이라서, 감히 그런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습니다.”
고려검가와 나이츠는 공통점이 많다.
그 주축이 상당히 단단함에도 불구하고 소수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럼에도 한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막강한 전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
물론 전력의 8할 이상이 검성, 혹은 소드 마스터 둘 중 하나겠지만.
그만큼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큰 단체인 것도 맞다.
게다가, 나이츠는 고려검가와 달리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거의 그리스 대표 길드라고 할 수 있으니까.’
한 국가를 적으로 돌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안 그래도 잠재적 적이 많아서 골머리가 아픈데.
“제안하겠습니다. 튜토리얼 타워에 입장하고 싶습니다. 인원은 다섯 명입니다.”
-협박이 아니라고 했는데, 제게 돌아오는 게 있나요?
“네. 있습니다.”
-들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여기서부터가 관건이다.
나는 튜토리얼 타워를 알고 있다는 정보를 토대로 소피아를 협박하지 않았다.
소피아에게 다섯 명의 입장을 요구함으로, 이것은 협박이 아닌 거래가 됐다.
이 거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다.
내가 제시할 대가는.
“튜토리얼 타워의 공략입니다.”
-그게 저한테 어떤 득이 된다는 건지 잘 모르겠군요.
“당신의 몸을 좀먹고 있는 저주를 풀어 주겠다는 얘기입니다.”
소피아는 침묵했다.
그 어떤 사람도 모르고 있는 사실 하나.
소피아 람비두는 튜토리얼 타워 마지막 층에서 저주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저주에 의해 사망한다.
“어차피 튜토리얼 타워에 재입장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한 번 자의로 튜토리얼 타워에서 나온 사람은, 재입장할 수 없다.
이건 튜토리얼 타워만 가지고 있는 특이한 규칙이었다.
물론 나이츠의 길드원을 마지막 층으로 보낸다면 공략을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아마 소피아 람비두는 마지막 층에 나이츠의 길드원이 접근하는 걸 금지했을 터.’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시도 자체를 막았을 것이다.
튜토리얼 타워의 마지막 층은 불합리할 정도로 난도가 높았으니까.
소피아 람비두 본인을 포함한 간부진은 모두 튜토리얼 타워에 재입장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
‘공개했다간 전쟁이 일어날 테니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튜토리얼 타워가 어떤 던전인지 밝혀진다면.
정말 전쟁을 불사할 길드나 국가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소피아는 이 사실을 철저하게 숨겨 온 것이다.
‘소피아 람비두는 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사실을 폭로하기만 해도, 소피아는 상당히 난처해질 것이다.
아니, 나아가서 소피아의 길드 나이츠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
소피아는 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언제까지 끌어안고 계실 겁니까?”
분명 튜토리얼 타워를 관리하는 것으로 얻는 이득은 막대하다.
이 던전 덕분에 나이츠는 그리스 최고의 길드가 된 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튜토리얼 타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기도 했다.
공략하지 않는 이상 소피아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공략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더불어, 이 던전이 공개된다면 정말 큰일이 난다.
고민하듯 한동안 말이 없던 소피아는, 결국 미끼를 물었다.
-만나서 얘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