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8)
8화
아이스크림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 뒤.
우리는 집 근처 산지로 향했다.
무기를 제작하는 동안, 강철이에게 받은 시험용 무기를 써 볼 생각이었다.
제대로 된 창을 잡은 건 꽤 오랜만이라, 손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달리 맡길 만한 곳도 없었기에, 설아도 견학할 겸 동참하기로 했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몰랐어.”
“내가 기억하던 거랑 조금 다르긴 하네.”
산 안쪽에 있는 작은 길로 들어가면, 숨겨진 공터가 있다.
회귀 전 마땅히 훈련할 만한 공간이 없던 내가 사용하던 장소였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과 함께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설아는 여기에 얌전히 앉아 있으세요.”
“네!”
“오구, 착해.”
“히히!”
설아는 다행히 말을 잘 들었다.
혹시 심심하진 않을까, 어린이 만화를 저장해 둔 스마트폰도 쥐여 줬다.
공터 구석 돗자리에 앉은 설아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어린이 만화에 집중했다.
나는 설아를 보다가, 공터 한가운데에서 몸을 풀고 있는 은혜에게 다가갔다.
“그동안 운동은 좀 했어?”
“아니. 몸 다 굳은 것 같아.”
운동복 차림의 은혜는 옆구리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머리를 한데 모아 질끈 묶었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은혜는 깍지를 낀 손이 바닥에 닿을 만큼 허리를 숙이기도 했다.
몸이 굳었다더니, 상당히 유연한 모습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 운동을 좀 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의 나는 저런 게 안 됐다.
더불어 현재는 체력도 말도 안 되게 약했다.
설아도 안 지치고 올라온 산을 오를 때 숨을 헐떡일 정도였다.
군대에 다녀온 뒤로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처음부터 다시 하면 그만이지.’
회귀 전에 비하면, 몇 년은 일찍 시작한 거다.
아마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조금 상쾌해졌다.
몸을 풀고, 창을 잡았다.
‘2미터 20센티미터 정도. 조금 긴가?’
내가 쓰던 것보다 창이 조금 길었다.
하지만 무게도 적당했고, 균형도 딱 맞았다.
솔직히 시험용 무기로 선뜻 내주기에는 잘 만든 무기였다.
소재가 평범한 나무와 철이라 그렇지, 꽤 가격이 나갈 것 같았다.
‘좋아. 해 보자.’
비록 힘과 체력을 비롯한 신체 능력은 많이 떨어지지만.
머리 안에 남은 창술에 대한 지식은 그대로였다.
사선으로 몸을 틀고, 왼쪽 다리를 앞으로.
마찬가지로 왼쪽 손이 자루 앞쪽을 잡는다.
자루 끝을 잡은 오른손은 허리 가까이에 둔다.
‘창날이 흔들린다.’
자세는 그대로 나왔지만, 창날 부분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힘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기본적인 자세에서 끝내지 않고, 발을 움직이며 자세를 바꿨다.
은혜는 스트레칭을 하다 말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준이 너, 폼이 제법 나오는 것 같다?”
“그럴싸하지?”
“응. 어디서 배운 거야?”
“인터넷에서.”
나는 인터넷을 보고 창술을 연마할 만한 재능을 지니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둔재 쪽에 가까웠고, 이렇게 창술이 안정되는 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그마저도 몸이 따라가 주지 않아, 다시 불안정하게 바뀌었지만.
사냥꾼 지망생인 은혜의 눈에는 조금 그럴싸해 보인 모양이었다.
“나도 한번 해 볼게. 옆에서 봐줘.”
“그래. 알았어.”
은혜는 활을 잡아 들었다.
주문 제작한 컴파운드 보우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 형식의 활이었다.
활시위를 거는 끄트머리가 사수의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리커브 보우.
“어…….”
“옆으로.”
“아. 응.”
어쩔 줄 모르던 은혜는 내 말에 따라 몸을 옆으로 틀었다.
시위에 화살을 메기는 폼도 영 어색했다.
은혜는 뭐든지 척척 해내는 줄 알았는데, 그 모습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하지만 활을 당기는 자세는 예사롭지 않았다.
‘저게 처음이라고?’
활을 잡은 손을 앞으로 쭉 뻗는다.
활을 정확히 어깨높이에 오게 하는 동시에 시위를 당긴다.
심지어 당긴 손을 턱에 고정해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까지 보였다.
표적은 5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나무인 것 같았다.
표적에 시선을 고정한 은혜는 신중하게 겨냥하더니, 시위를 놓았다.
팍!
그대로 쏘아져 나간 화살은, 나무 밑동 부분에 꽂혔다.
처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한 솜씨였다.
“넌 왜 자세가 나오냐?”
“어렸을 때 양궁 좀 봤어.”
“그걸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인터넷.”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 경우 인터넷을 보고 따라 했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수년에 걸친 수련의 결과로 나온 안정적인 자세였다.
그런데 얘는 아마 진짜로 인터넷을 본 결과일 것이다.
‘이게 진짜 천재구나.’
은혜가 천재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와닿았다.
설아도 그렇고, 내 주변에는 왜 이리 천재가 많은지 모르겠다.
은혜는 진지한 얼굴로 화살을 메기지 않고 활을 당겼다.
그렇게 몇 번 시위를 튕기더니, 끄덕거리며 화살을 뽑아 왔다.
“어렵네.”
고개를 살짝 기울인 은혜는 똑같은 위치에 섰다.
한번 쏴 봤다고, 전보다 자세 잡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이번에는 활이 살짝 위로 올라갔다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고정되더니, 시위를 놓았다.
팍!
이번에는 살짝 위를 겨냥한 것 같았다.
나무 정중앙에 화살이 박혔다.
나는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너무 잘 쏘는데?”
“거리가 짧잖아.”
은혜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하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
은혜의 입꼬리는 기분 좋게 위로 올라간 상태였다.
“안 봐줘도 될 것 같은데.”
“아까도 자세 고쳐 줬으면서. 팁 같은 거 더 없어?”
“음, 쏘고 나서 시위 잡고 있던 팔을 계속 당겨 봐.”
“골프 칠 때 공 치고도 쭉 스윙 하는 거랑 비슷한 건가? 알았어.”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별로 없었다.
나는 활을 잡아 본 적도 없는 사냥꾼이었다.
활을 쓰는 사냥꾼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그런 조언을 씹어 먹을 만한 재능을 지닌 은혜에게 얼마나 유효할지 모르겠다.
“자세도 바꿔 봐. 아마 실전에서는 정자세만 유지하긴 어려울 거야.”
“좋아. 해 볼게.”
은혜는 선선히 내 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곧장 실행에 옮겼다.
앉아서 쏘고, 손을 바꿔 쏘고, 활을 가로로 잡고 쏜다.
문제는 쏘는 족족 화살이 나무에 적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설령 정확도에 약간 차이가 있을지언정, 목표를 무조건 맞혔다.
‘미친.’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재능을 정면으로 마주한 기분이었다.
심지어 은혜는 꽤 재밌다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에 어쩐지 내가 자극받는 기분이었다.
다시 창을 잡았다.
‘나도 빨리 감각을 찾자.’
* * *
손가락에서 통증을 느낀 유은혜는 잠깐 연습을 멈췄다.
연습할수록 적중률도 높아졌고, 더 먼 거리의 표적에도 화살을 적중시킬 수 있게 됐다.
훈련이라기에 마냥 힘들기만 할 줄 알았더니, 재밌는 운동을 한 기분이었다.
한편 설아는 스마트폰을 두고 뭔가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설아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이서준이 있었다.
부웅.
창대가 허공을 가르며 크게 돌아간다.
자루의 끝부분으로 보이지 않는 상대를 밀어내 거리를 벌린다.
창대 중간 부분을 잡고 있던 손으로 자루의 뒤쪽을 고쳐 잡는다.
사정거리 차이를 이용해 적을 깊게 찌르고, 창을 뽑아낸다.
“후욱.”
이서준이 거친 호흡을 뱉었다.
머리카락이 땀에 의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힘들 법도 한데, 멈출 기색은 없었다.
다리와 창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가상의 상대와 싸운다.
“엄마.”
“응?”
멍하니 이서준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설아가 은혜 옆으로 온 상태였다.
설아는 빤히 은혜를 바라보다가, 서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빠, 멋있어요. 그쵸?”
은혜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서준은 창을 쓰는 데 열중하는 것 같았다.
원래 이서준은 노력이랑은 거리가 영 먼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좀 해 보다가 집에 가자고 징징거릴 줄 알았더니.
‘정말 세월이 무섭긴 하네.’
설아의 아빠긴 하지만,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인식은 최근 며칠간 완전히 뒤집혔다.
이서준만큼 책임감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설아를 위해서 목숨을 걸지를 않나, 아주 당연하다는 듯 자신을 믿어 준다.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렇지, 고마운 감정이 컸다.
“엄마, 고개 끄덕했어요!”
“응? 엄마가요?”
“네. 아까요!”
은혜는 실제로 무심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부정했다.
“그런 적 없어요.”
“히잉. 진짠데.”
“무슨 얘기 중이야?”
어느새 이서준이 앞으로 다가왔다.
화들짝 놀란 은혜는 애써 표정을 감추고 대답했다.
“아니, 아무 얘기도 안 했는데?”
“뭐야. 비밀 얘기야? 설아야. 아빠한테 몰래 가르쳐 줘.”
“응. 뭐냐면요…….”
설아는 순진하게 서준의 귀에 입을 가까이했다.
위기를 직감한 은혜가 다급히 설아를 말렸다.
“서, 설아야. 아이스크림 한 개.”
“아슈크림? 조아요!”
“애를 매수하다니. 은혜, 너.”
“시끄러워.”
이서준은 투덜거렸지만, 설아는 아이스크림에 넘어왔다.
은혜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활은 좀 어때?”
“잘 맞는 것 같아.”
서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은혜는 활을 몇 번 쏴 본 뒤, ‘이거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손에 착 감긴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뭐를?”
“마나 감응 훈련.”
* * *
붕괴 이후, 대기 중에 균열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섞여 들었다.
사냥꾼이란 그 마나를 받아들이고 적응해,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사냥꾼이라면 최소한 무기에 마나를 부여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마나로 둘러싸인 괴물의 가죽을 뚫을 수 없었다.
“사냥꾼이 평범한 사람보다 강하고, 다쳐도 금방 회복하는 것도 마나 덕분이야.”
“그렇구나.”
나는 은혜에게 마나에 대한 개인 강의를 펼쳤다.
오랫동안 마나를 느끼지 못했던 나인 만큼, 이론 면에서는 빠삭했다.
그 지식은 미래의 것이었기에, 현재의 어설픈 이론보다 정확할 것이다.
알아듣는지 모르겠지만, 은혜의 무릎에 앉은 설아도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일단 마나를 느껴야 다루든 말든 하겠지?”
“응. 그렇겠지.”
“그래서 필요한 게 감응 훈련이야. 눈 감아 봐.”
“알았어.”
은혜는 가부좌를 틀고 순순히 눈을 감았다.
어째선지 설아도 은혜를 따라 눈을 감았다.
“몸에 힘을 빼고, 집중해.”
“으음.”
“마나는 어디에나 있어. 그걸 인지하는 건 의식의 차이인데…….”
내가 마나를 느꼈던 요령을 그대로 말해 줬다.
의외로 은혜는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다.
잘 모르겠다는 듯 인상을 찡그린다.
“안 느껴져?”
“응. 잘 모르겠네.”
“괜찮아. 원래 좀 오래 걸려.”
마나를 느끼는 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었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 동안 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내 경우에는 거의 반년 동안 마나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은혜를 따라 하듯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설아가 번쩍 눈을 떴다.
“아빠. 설아는 느껴져요.”
“……뭐가?”
“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