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80)
80화
나이는 설아보다 네다섯 살 많을까.
잘 만든 인형처럼 보일 만큼 예쁜 아이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머리카락 색깔이었다.
처음에는 노인처럼 머리가 하얗게 센 것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은색에 가깝다.
‘뭐야. 저 비현실적인 머리카락.’
염색한 것 같지도 않았다.
어린아이는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냈다.
뒤로 주춤 물러서며 나를 노려본다.
한동안 대치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이 열렸다.
“알버트. 이리 와.”
한국말은 아니었지만, 어째선지 뜻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알버트라니, 나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걸까.
주위를 살피는데, 스켈레톤이 딱딱거리며 아이 곁으로 갔다.
‘누군가 했더니. 스켈레톤 이름이었냐.’
뭔 놈의 스켈레톤이 이름까지 있는 건지 모르겠다.
보통 해골밖에 안 남은 모습을 보면 무서워할 법도 한데.
아이는 스켈레톤 옆으로 붙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안녕.”
일단 말을 걸어 봤다.
아이는 겁먹은 고양이처럼 뒤로 한 발자국 더 물러섰다.
그러다가, 발을 헛디딘 듯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통증이 있는지 인상을 찡그린다.
“아으.”
“괜찮아?”
“오지 마!”
주저앉은 아이의 외침에, 걸음을 멈췄다.
스켈레톤 알버트는 어쩔 줄 모르고 손을 마구 휘저었다.
이빨이 딱딱 부딪치는 걸 보면 뭔가 전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알버트를 살피는가 싶더니, 믿기 힘들다는 듯 물었다.
“아니라고? 정말?”
스켈레톤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왕의 반지를 끼고 있지만, 나는 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괴물의 말이라고 전부 번역해 주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이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물었다.
“너, 뭐야?”
“어, 글쎄? 지나가던 사람?”
굉장히 경계하는 태도다.
아이는 인상을 찡그렸다.
“말도 안 돼.”
“그럼, 너는 누군데?”
“나는…….”
아이는 쉽사리 말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뭔가 생각하듯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지나가던 사람…….”
“뭐야. 똑같네.”
“시끄러워. 볼일 없으면 가.”
“다친 거 아니야?”
“아니야. 그냥 접질린 거거든.”
“봐 봐.”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그 즉시 땅을 짚고 뒤로 물러섰다.
다리에 통증이 있는지, 표정을 찡그린다.
‘겁먹은 건가?’
센 척을 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겁을 집어먹은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천천히 창을 내려놓았다.
알버트가 했던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두 손을 보인다.
“괜찮아. 다치게 하려는 거 아니야. 도와주려는 거야.”
“됐으니까, 그냥 가.”
“기다려 봐.”
나는 아이가 볼 수 있도록 천천히 파우치를 열었다.
아이는 경계하는 눈으로 파우치를 주시했다.
내가 파우치에서 꺼낸 것은, 약재로 쓰이는 파란 식물이었다.
“루크람. 알아? 찬 기운이 있어서 찜질에 쓰이는 약재야.”
“몰라.”
“발목 접질렸을 때 효과적인 거야.”
“……독초 아니야?”
“아니야. 봐.”
나는 루크람을 조금 뜯어 입에 넣고 씹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찬 기운이 있는 식물이었다.
박하사탕을 먹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 삼켰어. 멀쩡하지? 독초면 내가 먹었겠어?”
“……그러네.”
“치료만 해 주고 뒤로 물러날게. 어때?”
“허튼짓하면 알버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안 한다니까.”
결국 어떻게든 아이와 가까워질 수 있게 됐다.
로브를 살짝 걷으니, 발목이 보였다.
약하게 눌러 봤다.
“아야!”
“접질린 거 맞네. 기다려 봐.”
루크람은 굳이 가공해서 쓸 필요가 없다.
긴 이파리를 가지고 있어, 그대로 감기만 하면 된다.
꽤 질기기까지 해 붕대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었다.
천연 냉찜질 붕대라고 보면 된다.
“됐다.”
나는 루크람을 감자마자 약속대로 물러났다.
알버트는 나를 공격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세상 무해한 괴물처럼 멀뚱히 나를 보고만 있다.
아이는 루크람이 감긴 발목을 매만지더니, 인상을 썼다.
“차가운데.”
“원래 그래.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왜 도와준 거야?”
아이는 여전히 경계하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길고양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이런 곳에 스켈레톤과 함께 있는 것부터 정상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일단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너만 한 딸이 하나 있거든.”
“딸?”
“응. 너보다는 좀 어려. 다섯 살 됐나?”
“……그래. 알았어. 이제 가.”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던 걸 알버트가 부축해 준다.
여전히 발목이 시큰거리는지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
“발목 접질렸을 때 걸으면 안 돼.”
“상관할 거 아니잖아.”
“그 상태로 걸으면 회복이 더뎌질 거야.”
“그건…… 곤란해.”
주변을 둘러봤다.
적어도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해골은 하나 있었지만 말이다.
아이는 숲을 보더니, 고민했다.
“가야 하는데.”
“알버트한테 업혀서 가는 건 어때? 친구지?”
“친구라니. 하수인이야. 알버트? 이리 와 봐.”
알버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이가 인상을 썼다.
“너, 설마 내가 무겁다는 거야?”
알버트는 억울하다는 듯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스켈레톤은 힘이 약한 편에 속하는 괴물이다.
그래도 아이를 업을 정도는 되겠지만.
알버트는 이상하리만치 약했다.
고개를 젓는 것만으로도 두개골이 빠졌으니까.
달그락.
또 빠졌다.
알버트는 더듬거리며 제 머리를 찾았다.
아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냥 내 발로 걸어가고 말지.”
“그러면 내가 업어 줄게.”
“뭐? 무슨 꿍꿍이야?”
“보통 애가 곤란해하고 있으면 어른이 도와주지 않나?”
“……몰라. 그런 거.”
아이는 도움받는 걸 주저하는 기색이었다.
하긴 낯선 사람은 따라가면 안 되긴 한다.
이 경우 내가 낯선 사람이 되는 건가.
‘보호자가 없으니까, 내가 도와줘야 할 것 같긴 한데.’
돌연 숲에서 소리가 났다.
새가 날아가는 듯한 소리였다.
아이는 소리의 근원지 쪽을 봤다.
조금 고민하는가 싶더니 마지못해 말했다.
“알았어. 그럼 이 숲을 나갈 때까지만이야.”
* * *
“뭐 하다가 이런 숲까지 들어온 거야?”
“들어오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그건 없는데, 넌 애가 말도 잘한다?”
“시끄러워. 친한 척하지 마.”
나는 아이를 업고, 아이가 지시한 방향대로 움직이게 됐다.
그동안 여러 생각이 들었다.
23의 말대로라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건 환상이다.
현실감이 너무도 생생했지만, 환상이 맞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던전 안에 어린애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
환상일지라도, 애를 안 도와줄 수는 없었다.
회귀 전 설아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 아이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넌 이름이 뭐야?”
“이름? 왜?”
“그냥 궁금해서.”
“……엘리제.”
“엘리제? 이름 예쁘네.”
“너는 뭔데?”
“이름? 이서준.”
“이상해. 뭔 이름이 그래?”
엘리제는 내게 업혀 있음에도 영 불만으로 가득해 보였다.
아니, 불만이라기보다는 불안에 가까웠다.
처음 업었을 때만 해도 몸의 떨림이 느껴졌으니까.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지, 편하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설아처럼 완전히 늘어진 건 아니고, 쉬는 것 같았다.
“아까 알버트가 하수인이라고 했지?”
“그래. 맞아.”
“그럼 괴물을 길들인 거야?”
“그런 거라고 보면 돼.”
“스켈레톤을 길들일 수 있다니. 신기하네.”
뒤따라오던 알버트가 항의하든 딱딱거렸다.
시나리오 퀘스트라면, 어떤 이야기가 있다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엘리제는 이 시나리오 퀘스트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시스템이 딱 지정해 주지 않는 이상,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엘리제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혹시 마법사나 그런 거야?”
업혀 있던 엘리제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더니, 내 목에 작은 손이 닿았다.
피부에 직접 닿으니 느낄 수 있었다.
‘마나.’
마법이다.
엘리제는 분명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나의 양 또한 심상치 않았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수준.
“움직이지 마. 죽여 버릴 거야.”
“워, 알았어.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는데.”
“역시 나를 노리고 접근한 거였구나, 알버트를 꼬드겨서.”
살기등등하다.
어린애였지만, 이거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한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것.
즉, 여차하면 엘리제는 나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엘리제가 씹어뱉듯이 말했다.
“너도 다른 놈들처럼…….”
말을 끝내기 직전.
머리 옆으로 무언가 지나갔다.
팅!
나무에 화살이 박혔다.
엘리제는 뿌리치듯 내 등에서 떨어졌다.
“역시! 함정이었구나!”
엘리제가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팔을 돌렸다.
무언가를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한다.
수풀 속에 있던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 하나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손에는 석궁이 들려 있었다.
콰앙!
엘리제는 팔을 내리는 것으로, 남자를 지면에 처박아 버렸다.
소리를 보아 최소 기절, 잘못하면 죽었을 것 같기도 했다.
‘강하다.’
최소 윌리엄 테일러와 동급.
그 말인즉슨, 열 살쯤 먹은 애가 마탑 지부장과 동격의 마법사라는 소리다.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컹! 컹!
이쪽으로 무언가 맹렬히 달려온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건, 커다란 사냥개였다.
늑대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큼직했다.
엘리제가 소리쳤다.
“알버트!”
알버트의 몸 위로, 무장이 생겨났다.
마나로 이루어진 갑옷과 검, 그리고 방패.
몸도 마나로 강화한 듯, 어렴풋이 빛나고 있었다.
알버트는 방패를 앞세워 달려든 사냥개를 막아섰다.
콰득!
하지만, 사냥개는 상당히 컸다.
알버트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목을 노리고 검을 찌르는 모습이었다.
엘리제는 넘어진 그대로 내게 팔을 들었다.
“네가 불러들인 거지!”
“뭐?”
“나를 함정으로 유인한 거잖아!”
“뭔 소리야! 아니거든!”
엘리제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공중에서 돌연 멈춘 나뭇잎이 날카로운 모양새로 변했다.
무슨 바늘 같은 느낌이다.
나뭇잎이라고 할지라도 찔리면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파바바박!
나뭇잎이 땅에 꽂혔다.
재빠르게 뒤로 물러난 덕택에 고슴도치 신세는 면했다.
엘리제는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손을 펼쳤다.
또다시 나뭇잎이 떨어졌다.
“억울한데!”
“시끄러워! 죽어!”
나뭇잎 화살이 날아온다.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마법.
사방에서 꽂히는 터라,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밖에 없었다.
‘한 점을 노리는 것보다 광역으로 공격하는 게 유효할 텐데.’
그 와중에 미숙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저 나이에 이 정도 마법이라면, 엄청난 재능이지만.
실력 있는 마법사에게 가르침을 받거나 하진 못한 모양이다.
공격을 피하고 있는데, 엘리제의 등 뒤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저건 또 뭐야!’
근육질의 여자였는데, 두 손으로 무식할 정도로 큰 도끼를 들고 있었다.
엘리제는 내게 집중한 터라 눈치채지 못한 상황.
알버트도 아직 사냥개를 처리하지 못했다.
여자는 그대로 도끼를 내려찍었다.
‘애 잡겠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다리에 마나를 부여하고, 앞으로 뛰었다.
엘리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창을 가로로 잡는다.
쩌억!
도끼와 창대가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