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81)
81화
‘뭔 힘이 이렇게 세!’
단순히 무기만 큰 게 아니었다.
힘이 상당해, 팔에 충격이 그대로 전해졌다.
도끼에 들어간 힘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그대로 내 머리를 찍었을 거다.
이런 걸로 애를 공격하다니, 상식 밖인 데에도 정도가 있다.
“넌 뭐냐! 비켜라!”
“애 잡을 일 있냐!”
여자는 힘으로 몰아붙일 생각인 것 같았다.
그대로 도끼를 찍어 누른다.
마나로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창대에서 불길한 소리가 났다.
이대로 버티는 건 무리다.
“알버트!”
내 부름에, 사냥개를 마무리한 알버트가 움직였다.
뒤에 넘어져 있던 엘리제를 잡고 뒤로 물러난 것이다.
업지 못한다더니, 저 상태에서는 옮길 수 있는 건가.
나는 그대로 창대를 잡고 있던 한 손을 놓았다.
콰앙!
아래로 내려간 도끼가 바닥을 찍었다.
나는 창과 함께 몸을 틀어, 옆으로 피했다.
창을 한 바퀴 돌려, 자루 끝으로 여자의 관자놀이를 찍었다.
뻐억!
눈이 뒤집힌 여자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제압에는 익숙하지 않았는데, 어떻게든 성공한 모양이었다.
엘리제는 기절한 여자에게 손을 뻗었다.
‘저건 또 뭐야?’
마나가 아니었다.
검은색의 무언가 보였다가 사라졌다.
딱히 뭔가 바뀐 것 같진 않았는데.
엘리제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 왜……!”
“뭐?”
“왜 나를 돕는 거야!”
“어? 도와주면 안 되는 거야?”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엘리제는 혼란스러운 기색이었다.
알버트가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일단 움직이자. 더 온다.”
알버트는 동의하듯 딱딱거리며 내게 엘리제를 넘겼다.
마나로 이루어졌던 무장이 풀어지는 게 보였다.
아마 엘리제의 마법을 통해 일시적으로 강화되는 것 같았다.
옮기는 내내 마나를 소모하는 건 너무 낭비였으니까.
엘리제를 고쳐 업었다.
“너는…….”
“꽉 잡아. 떨어져.”
“어? 어? 꺄악!”
나는 적당히 마나를 사용하며, 앞으로 내달렸다.
일단 소란이 있었던 곳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였다.
* * *
그렇게 숲을 한참 내달렸다.
인기척과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다.
제대로 따돌린 것 같았다.
“멈춰!”
“왜?”
“알버트가 못 따라온단 말이야!”
뒤를 보니, 저만치 멀리서 허겁지겁 따라오는 알버트가 보였다.
뼈 빠지게 달리고 있었지만, 강화하지 않으면 운동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알버트도 기다릴 겸, 나는 잠깐 멈춰 섰다.
“내려 줘.”
엘리제는 내 등에서 내리자마자 풀썩 주저앉았다.
“무슨 달리기가 그렇게 빨라?”
“도망에는 내가 또 자신 있지.”
“도망칠 정도로 약하진 않던데.”
엘리제는 인상을 찡그렸다.
칭찬 같은 말을 해 놓고 어색했는지, 알버트에게 성을 냈다.
“알버트! 빨리 와!”
알버트는 억울하다는 듯 딱딱거리며 속도를 높였다.
한숨을 내쉰 엘리제가 나를 올려다봤다.
“그래서 너, 무슨 생각으로 날 도와준 거야?”
“애를 잡으려고 달려들면 보통 도와주지 않나?”
“그건…… 내가 평범한 애일 때 이야기고.”
확실히 엘리제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이 나이대에 마법을 사용하는 건, 설아 이외에 보지 못했다.
그래도 저렇게까지 호전적으로 죽이려 들 정도인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왜 저러는 거야?”
“나는 잘못한 적 없어, 단 한 번도.”
눈이 마주쳤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동자.
목소리에 일말의 떨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진실일 것이다.
“예언이 있었어.”
“예언?”
“그래. 어떤 미친 예언자가 나에 대해서 예언했거든.”
“뭐라고 했는데?”
“내가 이 세계를 멸망시킬 거래.”
이 세계라.
적어도 지구는 아닌 것 같다.
지구에는 예언자 같은 건 없으니까.
환상 속 설정 같은 걸까.
“……그 정도 힘은 없어 보이던데.”
“그러니까.”
엘리제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알버트가 딱딱거리며 합류했다.
“그걸 믿고 사람들이 저렇게 덤벼든 거야?”
“왕이 내 목에 현상금을 걸었거든.”
엘리제는 엉덩이를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버트가 엘리제를 부축했다.
“이제 가.”
“어? 어디로?”
“뭐, 집도 없어?”
“……여긴 없는데.”
“떠돌이 같은 거야?”
“그런 거라고 치자.”
“그럼 아무 데나 가면 되잖아.”
엘리제는 절뚝거리며 움직였다.
자립심이 강한 데에도 정도가 있다.
나는 엘리제를 따라갔다.
“도와준다니까 그러네.”
“오지랖 넓네. 죽고 싶은 거야?”
“아니, 왜 죽여. 도와준다는 사람을.”
“내가 죽이는 게 아니야. 현상금 사냥꾼들한테 죽겠지.”
“아까 그 사람들?”
엘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은 다 지워 놨으니까 걱정하지 마. 여기서 헤어지면 문제없어.”
“기억을 지웠다고? 그런 마법은…… 없을 텐데.”
“마법이 아니거든.”
“그 검은 거. 뭔데?”
“저주야.”
나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묘하게 상황이 겹쳐 보이더라니.
엘리제를 바라보았다.
“너…… 설마 마녀야?”
“그걸 이제 알았어?”
엘리제는 황당하다는 듯 대답했다.
나야말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설아 혼자가 아니었던 건가.
아니, 환상이긴 하지만.
엘리제는 미심쩍다는 듯 나를 살폈다.
“예언 얘기도 처음 듣는 것 같았고. 너 정체가 뭐야?”
“……좀 먼 곳에서 와서, 세상 물정에 어두워.”
“아무튼, 나랑 더 엮이면 죽을 거라는 얘기야.”
엘리제는 경고하듯 나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깔았다.
그래 봤자 애라서 깜찍해 보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너, 죽고 싶은 거야?”
“그건 아닌데…….”
나도 내가 왜 얘를 도와주고 싶은지 모르겠다.
곤경에 처한 애를 도와주는 건 어른의 책무라지만.
‘……현실이 아니라고 했지.’
분명 23은 시나리오 퀘스트가 현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냥 퀘스트 내부에 존재하는 인물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퀘스트를 깨는 것.
관여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아 같아.’
회귀 전, 설아의 상황과 너무 유사했다.
의지할 곳 한 군데 없이 사냥꾼에게 쫓기는 마녀.
엘리제는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내 자기만족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도와줄게.”
“그러니까! 이 바보야!”
엘리제는 도리어 성을 냈다.
떨쳐 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말귀를 못 알아듣나 본데, 나를 도와주면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거라니까?”
“괜찮네. 예행연습도 되고.”
“뭐?”
“도와줄게.”
엘리제는 내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정말 부아가 난 듯한 얼굴이었다.
알버트를 뿌리치고,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검은 기운이 손 위로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잘 들어. 지금 너한테 저주를 걸었어.”
“어? 갑자기? 무슨 저주?”
“거짓말을 하면 목이 날아가 죽는 저주야. 그러니까, 진실만 대답해.”
“알버트 꼴이 되는 건가. 여태까지 거짓말한 적 없는데. 억울하네.”
알버트는 ‘내가 뭐 어때서!’라고 말하듯 딱딱거렸다.
엘리제는 내 앞에 서서 추궁하듯 캐물었다.
“무슨 꿍꿍이야.”
“꿍꿍이 같은 거 없어.”
“그럼 왜 나를 돕는 거야?”
“그야, 내 마음이지.”
“다른 의도는 없어?”
“없어.”
“너는…… 누구 편이야?”
누구 편이라니.
딱히 세력은 없다.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네 편이야.”
이게 맞는 대답일까.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저주가 잘못 발동해서 목이 날아가는 건 아니겠지.
눈을 감았다가, 슬며시 떴다.
다행히 목은 무사했다.
엘리제는 더 질문하는 대신,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이상해.”
“그래서, 안 돼?”
“죽어도 몰라.”
“살아남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편이라 괜찮아.”
“……마음대로 해.”
* * *
엘리제는 결국 내게 다시 업히기로 했다.
한참 걷던 엘리제가 침묵을 깨고 질문했다.
“근데 너 이름이 뭐였지?”
“이서준이라니까. 그새 잊어버렸어?”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이잖아! 보통 기억 못 한다고.”
“세 글자밖에 안 되는데. 난 너 이름 기억했잖아. 엘리제.”
“그거 내 이름 아니야.”
이건 몰랐다.
하긴 쫓기는 신세니까.
정체를 모르는 것 같은 상대에게 쉽게 이름을 가르쳐 주진 않았겠지.
“그럼 진짜 이름은 뭔데?”
“에르제베트.”
“에르제베트? 보석 이름 같네.”
“자꾸 칭찬하지 마. 기분 나빠.”
“그냥 감상인데. 거참, 너무하는구만.”
그 순간.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나리오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에르제베트가 숲을 빠져나가도록 도우십시오.]역시 에르제베트는 퀘스트와 연관이 있었다.
이름을 듣는 게 퀘스트의 시작 조건이었던 걸까.
하마터면 시작도 못 할 뻔했다.
포인트를 죄다 쏟아부었는데, 그건 곤란했다.
‘숲 밖으로 가기만 하면 성공인가?’
평범한 퀘스트는 아닌 만큼, 갱신될 수도 있었다.
나는 넌지시 에르제베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갈 거야?”
“일단 숲을 빠져나가야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들킨 것 같으니까.”
다행히 퀘스트와 에르제베트의 목표는 같았다.
길을 알려 주고 있는 것도 에르제베트였으니.
지금 가는 길로 쭉 가면 숲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세계에는 마녀가 흔한가?”
“뭐? 세계?”
“아니. 어, 대륙? 섬? 반도?”
“너 설마, 여기가 어딘지도 몰라?”
“모르는데.”
아무리 회귀했다고는 하지만.
퀘스트 안에 있는 가상의 대륙 이름까지 알 턱이 없었다.
에르제베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미드하임 중심부, 르만 왕국 외곽에 있는 숲이야.”
“미드하임이 대륙 이름이구나.”
“너는 어디서 왔길래 대륙 이름을 몰라? 그건 알버트도 알 텐데.”
“스켈레톤이랑 비교되는 내 신세가 너무 슬프다.”
옆에 있던 알버트가 웃긴다는 듯 딱딱거렸다.
괜히 울컥해서 실수한 척 창을 휘둘렀다.
창대에 맞은 두개골이 날아갔다.
“어이쿠. 조심하지 그랬어. 알버트.”
“너 일부러 그랬지.”
“설마.”
몸만 남은 알버트는 항의하듯 딱딱거렸지만.
뭐 나는 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너 말이야. 마녀라고 했지?”
“응. 그런데?”
“그건 뭐, 일족 같은 거야? 종족?”
“난 인간이거든.”
“그럼?”
“그 미친 예언자가 마녀라고 불렀을 뿐이야.”
“네가 세계를 멸망시킬 거라고 했던? 그 사람은 누구야?”
“있어. 자기가 신의 사자라고 떠드는 녀석.”
에르제베트는 예언자를 미치광이 취급하고 있긴 하지만.
그 예언자의 말을 듣고 전 세계가 움직이고 있는 거다.
어느 정도 예언의 적중률이 높거나, 하다못해 지위가 있는 사람이라는 얘긴데.
“그래서, 어떻게 하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따지러 가야지.”
상황은 솔직히 절망적이다.
이 세계 사람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알 수 없다.
에르제베트의 말대로 정말 모든 사람이 마녀를 적대하고 있다면.
어린애가 감당하기는 어려운 중압감일 것이다.
그런데 얘는 그 근원을 찾아 따져 묻겠단다.
마냥 센 척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여긴 빨리 빠져나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왜? 별거 아니던데.”
일단 수적 열세 때문에 물러나긴 했지만, 현상금 사냥꾼들은 꽤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
에르제베트의 다리가 멀쩡했고, 나와 협동했다면 더 짧은 시간에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에르제베트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현상금 사냥꾼들은 그냥 어중이떠중이가 많으니까.”
“그럼 큰 문제는 없는 거 아니야? 막 우르르 몰려들지만 않는 이상.”
“안 돼. 내가 여기 있는 게 저런 어중이떠중이들 귀에도 들어갔다면…… 그것들이 올 테니까.”
“그것들? 뭔데?”
에르제베트는 생각하기도 싫은지 진저리를 치곤, 대답했다.
“성기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