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82)
82화
몇 시간 동안 숲을 걷기만 했다.
잘 뒤따라오던 알버트도 슬슬 지치는지 숨을 헐떡였다.
쟤는 숨도 안 쉬면서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쉬었다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여긴 너무 트여 있어서 안 돼.”
“그래. 적당한 곳이 나오면 쉬는 거다.”
“알았어.”
돌연 멈춰 선 알버트는 자신의 관절을 뽑았다 끼웠다.
뼈 몇 개를 뽑으니, 에르제베트의 키 정도로 작아졌다.
기괴한 광경에 나지막이 물었다.
“저건 뭐 하는 거야?”
“정찰 준비. 저러면 몸을 숨기기 편하거든.”
“……저게 되는 거야?”
“몰라. 하던데?”
알버트는 제 몸의 뼈를 몇 개나 더 뽑은 끝에, 미니 알버트가 됐다.
에르제베트에게 뭐라 딱딱거린 미니 알버트가 앞으로 슝 뛰어나갔다.
저번에 나를 따라잡은 것도 그렇고, 몸은 허약하지만 뛰긴 잘 뛴다.
뼈밖에 없으니까 몸이 가벼워서 그런 걸까.
“작아져도 잘 뛰네.”
“금방 올 거야. 좀만 기다리라고 하더라.”
아무래도 쉴 만한 장소가 있나 정찰하러 간 것 같았다.
나랑 마주쳤던 것도 정찰 중에 만난 걸까.
하긴, 에르제베트는 영 걷기 힘든 상태다.
저렇게 척후 역할을 해 주면 한층 안전하다.
스켈레톤이니까 지치지도 않을 테고, 그 틈을 이용해 쉬면 된다.
꽤 체계적인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 진짜 금방 오네.”
알버트는 에르제베트의 말대로 금방 돌아왔다.
손을 마구 휘저으며 뭐라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에르제베트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귀찮아졌네. 돌아서 가야겠어.”
“왜? 직진하는 게 빠르지 않아?”
“앞에 마을이 있대.”
마을이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
오래는 아니더라도, 잠깐 쉴 공간 정도는 있을 테니까.
안 그래도 슬슬 배가 고팠는데.
“잘됐네. 들르자.”
“미쳤어? 내가 거기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아. 그러네……. 에이, 잘 숨기면 괜찮을 거야.”
“안 괜찮아! 들킬 거야.”
에르제베트는 질색했다.
알버트도 딱딱거리며 동의했다.
“옛날에 한번 들어가 보려고 한 적 있어.”
“어떻게?”
“알버트한테 옷을 입히고 부모 행세를 하게 해서.”
“그건 실패하지…….”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알버트는 움직임도 자연스럽고 지능도 높은 편 같았지만.
얼굴을 숨기더라도 말을 못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알버트는 조금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일단 가 보자.”
“안 될 건데. 들키면 귀찮아지기만 할걸.”
“괜찮아. 밥도 먹어야 하잖아.”
“밥이야 저기 있는걸.”
뭔가 했더니, 내가 튜토리얼 타워 2층에서 먹었던 그거다.
“맛없잖아, 저거.”
“……아니야. 씹다 보면 단맛도 나.”
* * *
결국 마을에 가는 걸로 결론이 났다.
대신 들키면 전력으로 도망친다는 조건이 붙었다.
사실 에르제베트의 말대로 돌아가도 괜찮았겠지만.
내심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현실이 아닌데도, 현실감 장난 아니네.’
도착한 마을에는 목책이 세워져 있었다.
나무로 된 건물들이 여럿 보였다.
오가는 사람들은 꽤 거칠어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에르제베트는 조금 불안한 눈으로 마을을 살폈다.
“정말 괜찮을까?”
“경비병 같은 것도 없구먼.”
“그야 그 정도로 큰 마을은 아니니까.”
“그래도 식사할 만한 곳 정도는 있겠지.”
“휴, 난 몰라. 걸리면 네가 알아서 도망쳐.”
“내가 또 달리기는 빠르잖아.”
의외로 에르제베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풀 속에서 일어났다.
“작전명은 아임 유어 파더다.”
“아임…… 뭐? 주문이야?”
“내가 네 아빠라는 뜻이지.”
“네가 왜 내 아빠야!”
“아니, 설정이 그렇다고.”
내 설명을 들은 에르제베트는 인상을 썼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눈치다.
“뭐야. 작전이랄 것도 없네.”
“넌 최대한 아픈 척해.”
“알았어.”
알버트는 잠시 이 근처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에르제베트의 위치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알버트에겐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어차피 스켈레톤은 먹지도 쉬지도 못하잖아?’
생각해 보니 미안해할 것도 아니었다.
언데드인 만큼 죽어도 다시 소환할 수 있다고 하니까.
나는 에르제베트를 업고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입구에서 분주히 무언가를 옮기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실례지만, 여기 쉴 만한 곳이 있습니까?”
“누구요?”
“약초꾼입니다.”
나는 약초를 캐기 위해 숲에 들어온 약초꾼이다.
뒤에 업혀 있는 에르제베트는 견학 겸 함께 온 딸이다.
그러던 도중 괴물을 만나 도망쳤고, 그때 딸이 다쳤다.
급한 대로 근처의 마을로 왔다는 설정이었다.
설명을 들은 아저씨는 걱정스레 다가왔다.
“허. 그거 큰일이었겠구먼. 근데 뭔 약초꾼이 창이 있소?”
“아, 이거 말입니까? 주운 겁니다. 지팡이 대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렇구먼. 그래도 그 덕에 산 거 아니요?”
“맞습니다. 휴. 이게 아니었으면 죽었을 겁니다.”
“딸은 어떻소? 많이 아픈가?”
에르제베트는 검은 로브를 푹 뒤집어쓰고 아픈 척을 했다.
그때, 나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으, 악. 너, 무, 아, 파, 요.”
에르제베트는 연기를 더럽게 못했다.
누가 듣기에도 작위적이다.
나는 큰 소리로 기침하는 걸로 에르제베트의 목소리를 묻었다.
“쿨럭! 쿨럭! 켁! 커헉!”
“아니! 괜찮소? 그쪽도 어디 다친 거 아니요?”
“아, 사레가 들리는 바람에.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저 안쪽에 간판 달린 건물에 가 보쇼. 좀 작긴 해도 여관이니.”
“고맙습니다.”
우리는 무사히 마을 내부로 진입했다.
아저씨한테서 멀어지자, 에르제베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꽤 자랑스러운 투였다.
“어때. 자연스러웠지?”
“……너 왜 들켰는지 알겠더라.”
“그건 알버트 때문이라니까.”
알버트가 억울해하던 것도 이해가 됐다.
“넌 앞으로 연기하지 마라…….”
“뭐? 왜?”
“못하니까.”
“이익! 아니거든!”
에르제베트가 등을 때렸다.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말이다.
투닥거리며 여관에 도착했다.
이쯤부터 에르제베트는 긴장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끼익.
나무 문을 열었다.
목재로 이루어진 여관 1층이었다.
솔직히 조금 감탄했다.
잘 만들어진 세트장 같았다.
“어서 오십쇼! 못 보던 얼굴인데! 뭐로 드릴까?”
되게 전형적인 주인장이 나왔다.
뭔가 은퇴한 용병 같은 사람이었다.
곰 같은 덩치에, 수염을 길렀다.
그리고, 대머리다.
‘……여기도 탈모는 있는 걸까.’
참 안타까운 일이다.
주인장에게 다가갔다.
“저, 쉴 수 있는 방과 식사 2인분 괜찮을까요?”
“그 정도야 문제없지. 다 해서 7룽겐이요.”
룽겐이라.
생전 처음 들어 보는 화폐 단위다.
그러고 보니, 돈이 없었다.
에르제베트도 없을 것 같았고.
“저, 돈은 없고 약초가 조금 있습니다.”
“약초? 물물교환은 좀 그런데.”
“어떻게 잘 좀 안 되겠습니까?”
“어디 보자. 숲 깊은 곳까지 갔나 보구먼.”
“네. 죽을 뻔했습니다. 딸아이도 다치는 바람에.”
“……끙. 다 해도 그 가격은 안 나오는데.”
결국 방 하나에 식사 1인분으로 타협을 봤다.
에르제베트는 굳이 방이 없어도 된다고 속삭였지만.
1층은 너무 트여 있어 맘 편히 식사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음식을 들고 밖에 나갈 수도 없었고.
“애가 아프다고 했지? 갖다줄 테니 쉬고 있으쇼.”
“감사합니다.”
나는 주인장이 말한 방으로 갔다.
방도 좁은 1인실이었다.
침대도 영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내 등에서 내린 에르제베트가 침대로 뛰어들었다.
그대로 얼굴을 묻은 채 녹아내린다.
“흐아아. 이게 얼마 만의 침대야.”
“좀 쉬고 있어.”
“그러는 중이야.”
에르제베트는 침대와 물아일체의 경지에 다다랐다.
밖에서는 제대로 쉬지 못했는지,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았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자 금방 정신을 차렸다.
주인장이 가져다준 음식은 스튜였는데, 솔직히 뭐가 들어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값이 그리 비싸진 않았던 만큼 고기는 없었다.
“좋은 냄새.”
“식기 전에 먹어.”
“제대로 된 음식은 백만 년 만인 것 같아!”
에르제베트는 신난 얼굴로 스푼을 들었다.
이런 걸 보면 영락없이 애였다.
스튜를 뜨려다가, 동작을 멈춘다.
“왜?”
“……아니야. 이서준, 네가 먹어.”
“내가 먹으라고? 왜?”
“돈도 네가 냈잖아.”
“난 괜찮은데.”
에르제베트는 영 먹기를 주저했다.
아무래도 1인분만 있다 보니 영 마음에 걸리는 눈치다.
애가 착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스튜 그릇을 들었다.
꼬르륵.
에르제베트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스튜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사양하긴 했어도 역시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긴 쫓기면서 마을에도 못 들어갔다면,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기회가 적었을 거다.
에르제베트는 침을 꿀꺽 삼키고 괜찮은 척을 했다.
“얼른 먹어 버려.”
“휴, 알았어.”
나는 스튜를 크게 한술 떴다.
그야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인 만큼 맛이 궁금하긴 했지만.
에르제베트의 눈에서는 아주 미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애를 두고 이걸 먹어 치울 정도로 나쁜 어른이 아니었다.
스푼을 든 채 에르제베트에게 다가갔다.
“자, 비행기 들어갑니다.”
“비, 비행기가 뭔데?”
“슈우웅. 아, 하세요.”
에르제베트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내가 애인 줄 알아?”
“애지. 그럼 어른이냐?”
“으으…….”
“어어, 팔 떨어진다.”
“알았어! 먹으면 되잖아!”
자존심 상한다는 듯 고민하던 에르제베트는 결국 입을 벌렸다.
스튜를 쏙 넣어 주니, 입술이 닫힌다.
수저를 빼자 곧바로 우물거린다.
“어때?”
“마시써.”
“다 먹고 말해라.”
“맛있어! 씨이. 내놔.”
“그래. 다 먹어라.”
에르제베트는 내게서 스푼과 그릇을 뺏었다.
다 먹어 치울 기세더니, 또 멈칫한다.
“정말 괜찮아?”
“괜찮다니까 그러네. 난 밖에 나가면 맛있는 거 많이 먹을 수 있어.”
“밖……?”
“어, 내가 원래 살던 데에선 돈 좀 벌었어.”
“뭐래. 빈털터리 주제에.”
“아니거든. 얼른 먹기나 해.”
“이제 달라고 해도 안 줄 거야!”
“참 나. 누가 달라고 한대?”
* * *
에르제베트는 야무지게 스튜를 먹었다.
먹는 와중에도 죄책감이 드는지, 가끔 멈칫하는 기색이 있었다.
내가 신경 쓰이는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저렇게 먹다간 체할 거다.
“잠깐 나갔다 올게. 다 먹으면 잠깐 쉬고 있어.”
“어, 어디 가는데?”
“숲 나가는 길 좀 물어보려고.”
“그건 왜?”
“쫓기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빠르게 나가는 편이 좋은 거잖아.”
“……알았어. 빨리 와.”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는 에르제베트를 두고 방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현실이 아니라지만, 뭔가 설정이 독특했다.
‘애가 사춘기 온 것처럼 굴긴 해도, 착하네.’
배고픈 와중에 눈앞에 음식이 있다.
어른이라도 선뜻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그걸 자기 돈으로 산 게 아니라고 사양한다.
어린아이라기에는 너무 사려 깊은 행동 아닌가.
아래로 내려가 보니, 한적했던 1층에 누군가 있었다.
‘……기사들?’
백색의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들이었다.
주인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그들을 극진히 대하고 있었다.
대장 격으로 보이는 기사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쿵.
갑옷이 무거워서 그런지 바닥이 꺼질 것 같았다.
덩치도 꽤 컸는데, 족히 2미터는 넘어 보였다.
기사가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이를 데려왔다는 약초꾼이 네놈이냐?”
“……그렇습니다만.”
기사는 영 수상하다는 듯 내 복장을 살폈다.
놈들의 정체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에르제베트의 목소리가 불현듯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성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