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91)
91화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에르제베트는 없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지만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이렇게 예고도 없이 사라진단 말인가.
‘아직 물어볼 게 많은데.’
시나리오 퀘스트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왕의 반지는 무엇이고, 왜 이것을 내게 줬는지.
튜토리얼 타워의 보스였던 해골은 정말 알버트였는지.
궁금한 건 산더미처럼 많았는데, 질문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들킬 수도 있다. 그래서 갑자기 사라진 건가?’
분명 에르제베트는 그렇게 말했다.
전부 설명을 못 하는 것도 그렇고.
뭔가 제약이 있는 것 같다.
곧, 방에 있던 물건들이 물에 풀어놓은 물감처럼 흩어졌다.
현실에서 꿈으로 천천히 넘어가는 듯한, 기이한 감각이었다.
[알파 테스터 : 이서준의 개인 시스템에 특전이 적용되었습니다.] [개인 시스템을 오픈하십시오.]고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전이라고 한다면, 생각나는 건 하나뿐이었다.
튜토리얼 타워의 공략 특전, 직업 바꾸기.
문제는.
“나는 내 직업 말고 다른 사람의 직업을 바꾸고 싶은데.”
허공을 향해, 시스템을 향해 말했다.
내 직업은 창병.
썩 마음에 드는 직업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설아를 불행 속에서 꺼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시스템은 응답하지 않았다.
[개인 시스템을 오픈하십시오.]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일단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름 : 이서준
직업 : 창병(변경 가능)
직업 스킬 : 찌르기(극한)
고유 스킬 : –
창병 옆에 새로운 문구가 생겼다.
변경 가능.
분명 튜토리얼 타워의 특전은 이걸 말하는 거겠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특전의 소유권을 양도하고 싶다.”
또다시 허공에 대고 말했다.
침묵 끝에, 대답이 돌아왔다.
[특전은 튜토리얼 타워를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공략한 사냥꾼에게 제공됩니다.]지극히 기계적인 답변이었다.
제공되는 것뿐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시스템은 말을 이어 나갔다.
[직업 변경 특전은 제공된 순간 사냥꾼에게 귀속됩니다.]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솔직히 어느 정도는 이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설아에게는 아직 개인 시스템이 업데이트되지 않았으니까.
‘괜찮아. 예상했던 일이니까.’
설아가 또다시 그런 지독한 일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여 나는 설아의 다섯 가지 불행을 아예 차단하고자 했다.
모든 불행은 설아가 마녀였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직업을 바꾼다면, 설아는 그 불행들과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플랜 B.’
내 직업을 바꾼다.
설아를 지킬 수 있도록.
더 강한 직업으로.
“직업을 바꾸면, 직업 스킬도 바뀌는 건가?”
여기서 나는 조금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 직업의 보정은 다른 직업보다 확실히 약하다.
내가 아무리 기를 쓰고 스킬 훈련을 해도 밑바닥에 한없이 가까웠던 이유가 이거다.
스킬을 통한 한 방은 있었지만, 기초 전투 능력 자체가 너무 부족했다.
그렇다면 직업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찌르기(극한)의 효율이 너무 좋아.’
15년 후에는 그 정도 위력을 내는 스킬이 더러 있었지만.
지금이라면, 완전히 오버 밸런스다.
이미 완성된 스킬을 그대로 가져온 셈이니까.
‘마나를 전부 잡아먹긴 하지만, 포기하기 아까운데.’
지금은 일격필살 같은 느낌에 가깝긴 하나.
마나량만 어떻게 늘린다면 여러 번 사용할 수도 있을 터.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큰 힘을 포기하긴 조금 아까웠다.
머지않아 답변이 돌아왔다.
[이서준의 직업 스킬 : 찌르기(극한)은 직업을 바꿀 때 사라집니다.]예상대로였다.
15년간 훈련한 스킬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니.
물론 회귀하면서 모든 힘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너무 허무했다.
‘직업의 보정치와 새로운 직업 스킬에 거느냐, 지금 상태를 유지하느냐. 이건가.’
내가 이런 스킬을 가지지 않은 평범한 창병이었다면 이런 고민은 안 했을 텐데.
선뜻 선택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였다.
고민하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스킬을 유지하면서 직업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나는 눈을 깜빡였다.
시스템이 내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이서준의 현재 직업 : 창병에 성장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성장성.
직업 중에는 때때로 그런 것들이 있다.
사냥꾼이 성장함에 따라, 함께 성장하는 직업.
성장하기 전까지는 일반 직업과 큰 차이가 없어, 알아보기 힘든 케이스다.
‘성장 직업. 메리트는 있어.’
내가 창병에 불만을 가진 이유는 뚜렷한 한계 때문이다.
이렇다 할 강한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장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 성장성을 부여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차피 창 말고 다른 무기랑은 상성이 안 맞아.’
직업은 사람의 적성에 따라 정해진다.
정확한 기준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랬다.
마법사라는 직업을 받는 사냥꾼은 애초에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뜻이다.
맨주먹으로 싸우는 강대호가 투사라는 직업을.
여러 무기를 다루는 하이람이 무기 수집가라는 직업을 받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법사 같은 걸로 바꾼다고 해도, 그다지 잘할 것 같진 않고.’
검이나 활 같은 무기를 다뤄 보지 않은 건 아니다.
조금이라도 강해지기 위해 어떤 짓이든 마다하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강대호처럼 맨손 전투를 해 보려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내게 제일 잘 맞는 무기는 창이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할게.”
시스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자, 곧 알림음이 들려왔다.
[개인 시스템을 갱신합니다.] [직업 : 창병이 성장 직업으로 변경되었습니다.]* * *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보였다.
어째 요즘 들어 툭하면 기절하는 것 같다.
찌르기(극한)이 상당한 양의 마나를 잡아먹는 탓이었다.
‘집이 아니네.’
그야, 처음부터 이상했다.
튜토리얼 타워에 있었는데, 갑자기 이동될 리도 없고.
설령 이동됐다 해도 에르제베트가 내 집을 어떻게 알고 찾아온단 말인가.
아마 그때 흐려졌던 감각을 생각하면, 타워 내의 가상공간이겠지.
내 집을 정확하게 재현한 건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에르제베트의 소행일 수도 있었다.
“끄으…….”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수의 효과가 상당히 좋았던 걸 생각하면, 스킬까지 쓸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확실히 공략하는 편이 나았으니, 사용하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그게 알버트일지도 모른다는 점이 찝찝하긴 했지만 말이다.
‘나이츠의 길드 하우스?’
눈에 익은 가구가 몇 개 보였다.
아무래도 기절한 사이 여기까지 옮겨진 모양이었다.
개인 시스템을 확인해 봤지만, 저번과 달라진 건 아예 없었다.
원래 성장 직업은 일반 직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랬다.
똑똑.
누군가 노크를 했다.
은혜려나.
문이 열리고, 알렉시스 조르바가 들어왔다.
“지금쯤이면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야 나이츠의 길드 하우스니까.
나이츠의 길드원이 들어오는 건 당연하겠다마는.
“뭐냐. 그 노골적으로 실망한 듯한 얼굴은.”
“……아닙니다. 얼굴을 보게 돼서 기쁘군요.”
“전혀 기쁜 듯한 얼굴이 아닌데?”
“그. 남자의 로망이 짓밟힌 기분이라서요.”
“무슨 로망?”
“일어나자마자 나를 반겨 주는 참한 아내의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은혜는 내 아내가 아니긴 하지만.
일단 알렉시스는 나와 은혜가 결혼한 사이라고 알고 있었다.
알렉시스는 영 찜찜하다는 듯 뒤통수를 긁었다.
“불러 주랴?”
“됐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사람을 엎질러진 물 취급하다니. 좀 그런데.”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뭐어. 그건 확실히 좋군.”
알렉시스는 조금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죽다 살아났는데, 보이는 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라면 그나마 안심이 될 것이다.
적어도 이 아저씨의 얼굴은 좀 그랬다.
“어떻게 됐습니까?”
“튜토리얼 타워?”
“네.”
“네가 공략했잖냐.”
“그렇습니까?”
“반응이 영 싱거운데.”
조금 찜찜한 구석이 있긴 했다.
튜토리얼 타워의 보스는 왕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알버트일지도 모르는 해골이 튀어나온 걸까.
그렇다면, 또 왕은 어디로 간 걸까.
“마스터께서도 공략하지 못했던 던전이다. 말도 안 되는 위업이라고.”
“저는 꼼수로 깼거든요. 떳떳하지는 않네요.”
“꼼수가 어디 있어. 실력이지.”
틀린 말은 아니다.
똑똑한 사냥꾼은 던전 안에 있는 기믹을 이용한다.
이번에 나는 포인트 상점이라는 걸 활용한 거다.
‘이번이 특수한 상황이긴 했지만.’
기믹이라고 해도 대부분 단순한 함정이 전부다.
평범한 던전에 포인트 상점 같은 건 없다.
튜토리얼 타워는 그런 면에서 독보적인 던전이다.
나는 이 던전을 이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기에, 공략할 수 있었다.
“다른 길드원들은요?”
“전부 무사해.”
“다행입니다.”
드라우그도 문제없이 처리하는 사냥꾼들이지만.
나와 강대호가 빠진 데다가, 저주 때문에 조금 불안했는데.
다행히 어떻게든 버틴 모양이었다.
역시 재능 있는 사냥꾼들은 달랐다.
알렉시스는 나를 가만히 보다가 중얼거렸다.
“이럴 때 보면 길드 마스터 같기도 하네.”
“저요? 저는 그냥 바지 사장입니다.”
“실세는 누군데? 유은혜?”
“어, 글쎄요.”
굳이 따지자면 하이람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하이람은 적극적으로 길드를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원래 유령 길드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니까.
지금 길드를 움직이고 있는 건.
‘난가?’
물론 창설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번 일을 주도한 건 내가 맞았다.
“뭐야. 역시 네가 길드 마스터잖아.”
“……이게 아닌데.”
“아무튼, 스펙터의 길드원들이라면 전부 휴식 중이야.”
“그렇군요.”
“네 아내는 네 옆을 지키겠다고 했는데, 우리 쪽 주치의가 내보냈거든.”
역시 은혜밖에 없다.
애가 워낙 착해서 그런 거라지만.
조금 감동받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단순히 마나 부족으로 쓰러진 거라고 해도 말이다.
“마나를 죄다 끌어다 썼던데. 뭘 한 거야?”
“필살기 좀 썼습니다.”
“스킬? 꽤 좋은 걸 받았나 보지?”
“……글쎄요.”
찌르기가 좋은 스킬이냐고 묻는다면,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효과는 그냥 찌르는 공격에 약간의 힘을 더해 줄 뿐이니까.
이런 괴랄한 위력이 나오는 건 오로지 숙련도의 영향이었다.
“지금 당장 움직이긴 힘든가?”
“아니요.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럼 잠깐만 동행해 줄 수 있겠나?”
“어디로요?”
“마스터께서 꼭 좀 보자고 하시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