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알렉시스를 따라간 곳은 병원이었다.
개인실 앞에 선 알렉시스가 정중히 노크했다.
병실 내로 들어가자, 침대에 기대고 앉은 소피아 람비두가 있었다.
“어서 와요. 이서준.”
“아프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요.”
“그런 게 아니랍니다. 저주 때문에 그래요.”
“저주요?”
소피아 람비두는 튜토리얼 타워의 마지막 층에서 저주에 걸렸다.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는데, 설마 너무 늦은 걸까.
소피아는 선선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호전됐답니다.”
“그런데 왜 병원에……?”
“저도 오기 싫었는데, 아이들이 유난을 떨어서 말이에요.”
뒤를 돌아보니 알렉시스가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일찍 알려 주셨으면 좋았을 겁니다.”
“그러면 괜한 사상자만 낳았을 겁니다.”
“마스터의 안위가 우선입니다.”
“괜찮아요. 정말 다 나았으니까. 이런 검사 같은 거 안 받아도 괜찮았는데.”
“이참에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 여기 계셔 주십시오.”
아무래도 길드원들이 소피아를 병원에 보낸 것 같았다.
알렉시스는 감정을 내보이는 것을 최대한 절제하고 있었지만, 소피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게 눈에 보였다.
기사를 표방하는 길드인 만큼 딱딱한 계급제로 운영되진 않을까 생각했는데.
적어도 길드 마스터만큼은 상당히 존경을 받는 것 같았다.
“사실 제가 찾아갔어야 했는데,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해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소피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사가 끝나고 수액을 맞고 있을 뿐.
거동에 큰 불편함은 없는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거래를 했을 뿐인데요.”
“계산이 맞지 않는 거래였죠.”
“원래 튜토리얼 타워는 공략하려고 했습니다. 생색낸 거예요.”
나는 소피아 람비두를 구하고자 튜토리얼 타워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나와 길드원들의 전력을 보강하고, 설아의 직업을 바꾸고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감사 인사를 하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설령 그렇다고 한들, 이서준 당신이 제 목숨을 살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타워에 입장하게 해 주신 것으로 갚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걸 요구해도 괜찮았을 텐데요.”
“바라는 게 딱히 없는지라.”
“……정말 없나요?”
소피아 람비두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옆에 있는 알렉시스도 비슷한 얼굴이었다.
나는 조금 고민했다.
‘그러고 보면 하이람도 어떻게든 보상을 주고 싶어 했지.’
남에게 빚을 지고는 못 사는 부류가 있다.
소피아 람비두도 그런 쪽인 걸까.
“그러면, 나중에 밥 한 끼 사시죠.”
* * *
“정말 괜찮은 거지?”
“멀쩡하다니까 그러네.”
공항.
은혜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다친 곳이 없는지 직접 확인까지 해 놓고는 이런다.
하이람은 혀를 쯧쯧 찼다.
“네가 자꾸 픽픽 쓰러지니까 그렇지.”
“아니, 억울한데요. 스킬이 그런 걸 어떡합니까.”
“그 위력이면 쓰러질 만도 해. 뭐야, 그게. 사기 스킬이잖아.”
하이람은 투덜거렸지만,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튜토리얼 타워에 들어가면서 알파 테스터 자격을 획득했다.
임시로 개인 시스템이 업데이트된 것인 만큼, 아직 직업 스킬만 열린 상태.
‘고유 스킬까지 업데이트되면, 진짜 날아다닐 사람인데.’
하이람의 직업 스킬은 확실히 전투 쪽에서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추후 업데이트되는 직업 스킬과의 연계를 생각하면.
스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사냥꾼은 하이람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은혜 스킬을 모르네.’
다른 사람의 스킬은 모두 알고 있다.
회귀 전 어느 정도 나와 관계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은혜의 경우, 업데이트 전에 죽는 바람에 스킬은커녕 직업도 알지 못했다.
‘나중에 물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뒤를 돌아보고 있는 강대호가 보였다.
“좀 더 머물고 가는 게 어땠을까?”
“왜요?”
“아니, 대접도 잘해 주고. 관광도 하고…….”
강대호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고 보니 해외에 나오는 게 처음이라고 그랬지.
“그럼 좀 더 계시면 되잖아요.”
“너희는 어떡할 건데?”
“가야죠.”
소피아는 조금 더 머물다 가길 권했지만.
나와 은혜는 곧바로 귀국하는 걸 선택했다.
설아가 걱정되기도 했고, 너무 보고 싶었다.
아버지께서 종종 설아 사진을 보내 주긴 했지만.
실제로 못 보니 보고 싶은 마음만 커질 뿐이었다.
“대호 형은 좀 계시다가 오세요.”
“서준이랑 은혜는 설아 때문에 그렇다고 치고…… 다른 사람은?”
“전 일이 있어서 들어가 봐야 해요.”
“어, 저도 훈련이 있어서 힘들 것 같아요.”
“나만 백수냐?”
강대호도 결국 돌아가기로 했다.
어차피 혼자 있어 봐야 재밌지도 않고, 말도 안 통한다는 이유였다.
슬쩍 뒤를 확인한 고희연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근데, 알렉스 씨는 왜 따라오는 거예요?”
“배웅하겠다고 했다던데.”
“그래요?”
알렉시스 조르바는 그림자처럼 우리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시선이 느껴질 정도로 내 뒤통수를 뚫어져라 보는 중이었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걸까.
설마 설욕전을 신청하려는 건 아니겠지.
라운지에서 잠깐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알렉시스는 나를 따로 불러냈다.
“이서준.”
“네.”
“고맙다.”
알렉시스 조르바는 허리를 숙여 내게 감사를 표했다.
어쨌거나 지금의 나한테는 연장자였기 때문에, 곤란할 따름이었다.
“나는 마스터께서 저주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몰랐어.”
“그야, 드러내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려운 거니까요.”
“……저런 분이다.”
알렉시스는 시름에 잠긴 한숨을 내쉬었다.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고 있다.
나이츠는 언뜻 보면 여태껏 튜토리얼 타워를 독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상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몸으로 막고 있던 것이었다.
‘저게 알려졌다면 진짜 전쟁이 났을 테니까.’
회귀 전에는 정말로 길드 간의 전투가 벌어졌었다.
그나마 나이츠의 전력이 강해 쉽게 무마되긴 했지만 말이다.
길드원들이 무리한 도전을 할까 염려해, 자신이 죽어 가는 걸 숨겼다.
그것만으로도 소피아 람비두의 성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네가 아니었다면 정말 돌아가셨을지도 몰라.”
“아마 다른 누군가 공략했을 거예요.”
“그 누가 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나이츠 전체를 대표해서 하는 말이야.”
알렉시스는 내게 명함을 건넸다.
멋들어진 필기체로 쓰여 있었다.
나중에 꽤 영향력이 생기는 사냥꾼이다.
챙겨 둬서 나쁠 건 없었다.
“그리스에 조금만 더 있었다면, 이것저것 챙겨 줬을 텐데 말이야.”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었다.
“딸이 보고 싶어서요. 현기증 나요.”
* * *
겪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오래 비행기를 타는 건 고역이 따로 없다.
앞에 있는 의자는 무릎에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깝고, 뒤로 의자를 마음대로 젖히지도 못한다.
불편하고 비좁은 의자에 장시간 앉아 있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고된 일이었다.
그래도 이번 비행은 불편하지 않았다.
“서준아, 이것 봐.”
“뭔데?”
“화장대 같아. 귀엽지.”
우리는 방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넓은 좌석에 앉아 있었다.
앞에는 TV와 테이블이, 측면에는 음료수가 구비된 미니바가 있다.
의자는 편하게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젖혀진다.
퍼스트 클래스, 일명 일등석이라고 불리는 좌석이었다.
원래는 비즈니스석에 탈 예정이었는데, 소피아의 배려로 변경됐다.
“흐아아. 편하다.”
“비행기는 원래 이런 건가?”
고희연과 강대호도 상당히 만족한 눈치였다.
하이람은 일등석에 타 본 경험이 있는지, 편하게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푹신한 의자가 영 적응이 안 됐다.
‘아까워!’
일등석의 가격을 확인했다.
한 사람당 약 800만 원.
즉, 다섯 명이 비행기 한 번 타는 데 4천만 원이 드는 셈이다.
물론 사냥꾼이 돈을 잘 번다고는 하지만.
나는 거의 영약과 무기에 돈을 투자했기 때문에, 이런 호사를 누리진 못했다.
비행기 두 번 타면 거의 1억 아닌가.
“적응 안 되지?”
“어? 어. 좀.”
“나도 그래.”
은혜는 쓴웃음을 지었다.
앞쪽에 있는 하이람이 말을 받았다.
“타다 보면 익숙해져.”
“그렇습니까?”
“그냥 편하게 있어. 편하게 가려고 그 돈 쓴 건데. 불편하게 있으면 아깝잖아.”
확실히 하이람의 말대로였다.
나는 어색하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신기하게도 그 말을 듣고 나니, 전력으로 이 호사를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영화도 보고, 코스 요리로 나오는 기내식까지 즐겼다.
한 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잠도 푹 자고 나니, 대한민국에 도착해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전화가 왔다.
-잘 도착했냐?
“네. 아버지. 설아는요?”
-이놈아. 네 아버지보다 설아가 먼저냐?
“아버지, 혹시 통장 잔고 보셨나요?”
-……지금 봤다.
그동안 던전 공략으로 받은 돈의 절반가량을 아버지 용돈으로 드렸다.
어차피 사냥에 필요한 물건은 하이람 쪽에서 지원해 주기로 했고.
이 시절의 나는 아버지께 제대로 용돈을 드려 본 적도 없었다.
“저는 말로 안 합니다. 아버지. 제 사랑이 느껴지시나요?”
-쯧. 오냐. 아주 절절하게 와닿는구나.
꽤 기분이 좋으신지, 말에 웃음이 배어 있었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아직 집에 계세요?”
-뭐?
“아니, 뭐 이렇게 시끄러워요? 집 아니세요?”
-아, TV 소리다. TV 소리.
“TV를 왜 이렇게 크게 틀어 놓으셨어. 그래서 설아는요?”
-앞이나 똑바로 봐라.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게이트를 빠져나오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핸드폰을 귀 가까이 댄 아버지가 거기에 계셨다.
마중 나온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그 아래로, 작은 무언가 보인다.
“설아야!”
“아빠!”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애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넘어지진 않을까 무릎을 굽히고 설아를 받아 줬다.
품속에 쏙 들어온 설아를 안아 들었다.
설아는 강아지처럼 내 목에 볼을 문댔다.
“아빠다!”
“잘 있었어?”
“네! 할아부지랑 잘 있었어요!”
“어이구, 잘했어. 저기 엄마 있다.”
“엄마아!”
조금 더 설아 테라피를 받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은혜에게 양보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았다.
은혜는 거의 매일 설아와 붙어 있었고, 오래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
그래서 그런지 그리스에서 가끔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설아야!”
은혜는 설아를 부둥켜안고 말랑한 볼에 뽀뽀를 해 댔다.
그 모습을 흡족한 듯 보고 있던 강대호가 중얼거렸다.
“동생이 딸에 죽고 못 사는 이유가 있구먼?”
“대호 형은 설아 직접 보는 거 처음이었죠?”
“그렇지. 영상통화랑 사진으로 몇 번 봤는데.”
강대호는 제법 심각한 투로 중얼거렸다.
“실물이 백배 낫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