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집!”
“집이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께선 가족끼리 단란한 시간을 보내라며 댁으로 돌아가셨다.
묘하게 나와 은혜를 밀어주시는 것 같기도 해서 내심 고마웠다.
은혜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침대에 엎어졌다.
“피곤해애…….”
“비행기에서 잘 쉬어 놓고는.”
“그래도 집이 아니잖아. 비행기는.”
은혜는 이불에 얼굴을 묻은 채 웅얼거리듯 대답했다.
똑 부러지는 은혜라고 해도 피곤하긴 할 것이다.
확실히 이번 공략은 내가 욕심을 부린 감이 있었다.
‘그냥 나만 조용히 다녀올 걸 그랬나?’
튜토리얼 타워 공략은 위태로웠다.
스펙터의 길드원들이 아직 초보들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이미지가 너무 강한 걸지도 모른다.
‘혼자서는 공략하지 못했겠지만, 무리한 공략이긴 했어.’
가만 생각해 보면 오지랖 같기도 했다.
알아서 성장할 사람들인데 말이다.
나는 설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공항에서 은혜와 설아가 진한 포옹을 나누는 동안, 아버지는 나를 조용히 불러냈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일 때문이라고 해도, 애를 두고 너무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진 마라.
-……혹시 설아한테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죠?
-그건 아닌데. 애를 보고 있으면 일찍 철이 든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설아는 또래 애보다 차분하고 조숙한 감이 있었다.
그만큼 아이 같은 구석도 많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은혜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으니, 확실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할아버지야. 부모 대신이 될 수는 있겠지만, 부모가 되어 주진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벌충해야지.
-벌충이요?
-그래. 평일에 일이 있으면 주말에 놀아 주고, 출장 갔다 왔으면 여행도 가고 하는 거다.
회귀 전에, 나는 아빠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사실상 제대로 설아의 아빠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초보 아빠로서, 베테랑 아빠인 아버지의 조언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었다.
‘힐링도 겸해서.’
비록 일주일뿐이었지만, 열심히 달려오지 않았는가.
한 번쯤 휴식해 주는 것도 필요했다.
검성도 일찍이 휴식도 훈련의 일환이라고 강조한 적 있고.
‘에르제베트가 했던 말이 신경 쓰이긴 하는데.’
꼭 미래를 알기라도 하는 듯한 어투였다.
그렇다고 에르제베트를 따로 찾을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튜토리얼 타워는 한 번 공략하면 완전히 폐쇄되는 일회성 던전이다.
설령 폐쇄가 안 되었다고 해도, 재입장은 불가능했을 거고.
“으아…….”
모르겠다.
생각해야 할 게 너무 많아 뇌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다.
그대로 은혜의 옆에 엎어졌다.
일단 일등석을 타고 오긴 했지만, 비행기는 비행기.
은혜의 말대로 피곤하긴 했다.
‘아, 잠 온다.’
침대에 엎어지기 무섭게 잠이 왔다.
그다지 편한 자세도 아니었는데.
집에 있다는 묘한 안심감 때문인 것 같았다.
던전에서 외박하는 건 영 개운치 못하니까.
슬며시 뒤쪽을 보니, 침대 앞에 선 설아가 데굴데굴 눈을 굴리고 있었다.
“얍!”
설아는 그대로 나와 은혜 사이에 엎어졌다.
은혜는 엄마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설아는 고개를 들고 마주 웃었다.
“으히히. 똑같죠?”
“엄마 따라 한 거예요?”
“네! 엄마랑 아빠랑 설아랑 똑같아요.”
“아으. 심장이야. 귀여워 죽는다.”
“죽으면 안 돼요!”
* * *
낯선 문이 있었다.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한없이 낯설게 느껴지는 문이었다.
유은혜는 설아의 손을 꼭 잡은 채 심호흡했다.
솔직히 유은혜로서도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자존심이 아니라 설아였다.
문 앞에서 한참 고민하던 유은혜는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집 안에서 초인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돌아오는 건 정적뿐.
설마 집에 없는 걸까.
초인종을 다시 눌러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목소리였다.
유은혜는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태연을 가장했다.
“문 좀 열어 봐.”
“누구신데요?”
“나야. 유은혜.”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윽고 문이 열렸고, 이서준이 나왔다.
대학 시절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안녕. 서준아.”
“……무슨 일이야?”
이서준은 상당히 당황한 것 같았다.
하긴 연락도 없이 찾아왔으니 당황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만나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설아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 섞인 눈으로 이서준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설아야, 아빠한테 인사해야죠.”
“안녕하세요. 아빠.”
설아가 꾸벅 이서준에게 인사했다.
이서준은 설아를 내려다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아, 아빠?”
“알아. 당황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
“잠깐만. 잠깐만.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이 아이, 정말로 서준이 네 딸이야.”
유은혜는 준비해 왔던 말을 쏟아 냈다.
차분하게 설명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며칠만 머무르겠다.
그래도 네 딸이니 사정 좀 봐 달라.
유은혜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어이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래도 딸인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그 가능성은 아주 적지만.
이서준이 설아를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주 조그마한 기대를 품고, 이서준을 바라봤다.
“내 애라고……?”
이서준은 설아를 찬찬히 살폈다.
일그러진 입술 밖으로 차가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른 남자 애 아니야?”
유은혜는 번쩍 눈을 떴다.
앞에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설아가 있었다.
긴장이 풀린 데다가, 피곤했던 나머지 그대로 잠든 모양이었다.
몸을 일으켜 보니, 땀으로 온몸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이게 뭐야.’
악몽이었다.
처음 이서준을 찾아갈 때, 유은혜는 정말 오래 갈등했다.
이서준을 찾아가는 게 맞을까, 찾아간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지만 이건 정말 유은혜가 상상했던 최악의 반응이었다.
‘무슨 이런 꿈을.’
유은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던전 공략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걸까.
침대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서준은 설아 옆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잠들어 있는 모습이 설아와 똑 닮았다.
‘서준이가 그럴 리 없는데.’
이서준을 만나기 전이야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원래 이런 애였나 싶을 정도로, 이서준은 유은혜와 설아에게 잘해 줬다.
혼자서 설아를 키우던 유은혜는 알게 모르게 이서준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 이서준이 꿈에서처럼 변하진 않을까, 덜컥 무서워지기도 했다.
문득 비어 있는 왼손 약지가 눈에 들어왔다.
‘끙.’
이서준에게 호감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게 이성적인 호감이냐고 묻는다면, 좀 애매했다.
이성보다는 사람으로서 좋다는 느낌이 강한 것 같았다.
보고 있으면 두근거리기보다는 편하고 따뜻해졌다.
가족이 있다면 아마 이런 느낌일 것이다.
‘모르겠다.’
자신의 감정도 그렇지만.
이서준의 감정도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서준은 종종 유은혜에게 장난식으로 호의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게 사랑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유은혜는 이서준이 자신에게 다른 감정을 가진 것 같다고 느꼈다.
정확하진 않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애틋함?’
유은혜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안 좋게 헤어졌다고는 하지만, 이서준이 유은혜에게 그런 감정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 * *
마탑, 영국 지부.
인상을 잔뜩 구긴 윌리엄 테일러는 이마를 손끝으로 꾹꾹 눌렀다.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두통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기억상실이 온 후로, 이따금 이랬다.
기억이 돌아올 징조인가 싶었지만, 여전히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었다.
‘Lee에게 감사 인사도 해야 하는데.’
윌리엄은 이서준에게 전화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일이 너무 바쁜 나머지 그럴 만한 여유가 도통 생기지 않았다.
문제가 되는 건, 미전조 균열이었다.
윌리엄은 맞은편에 있는 비서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 동태는 어떻습니까?”
“그리스에서 급증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는 원래 유독 미전조 균열이 많은 국가일 텐데요.”
“이번에 확인된 수가 평소의 두 배를 넘는다고 합니다.”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군요.”
윌리엄 테일러는 몇 없는 미전조 균열의 전문가였다.
현재, 전 세계에서 미전조 균열의 발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윌리엄 테일러는 그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밤낮없이 조사에 몰두하고 있었다.
‘기점은 대한민국이 확실하다.’
그 시작은 대한민국이었다.
이서준이 대처했던, 크리튼 불의 미전조 균열.
그것을 시작으로 미전조 균열이 급증한 것 같았다.
‘뭐가 문제지? 대기 중 마나가 불안정해진 건가?’
밤을 새워 가며 조사에 몰두해도, 도저히 패턴이라는 게 보이지 않았다.
어떤 국가에서 갑자기 미전조 균열의 등장 횟수가 급증하는가 하면.
어떤 때에는 미전조 균열이 아예 뚝 끊긴 듯 나오지 않기도 했다.
근 일주일간 조금 잠잠하더니, 또 시작된 것이다.
“하아, 그리스 지부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나이츠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소드 마스터의 길드라면 안심이지만, 그래도 지원은 보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전달하겠습니다.”
마법사가 집무실을 나갔다.
윌리엄 테일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늘어난 미전조 균열은 아직 대처할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 추세로 늘어난다면, 정말 사냥꾼들이 대대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협회 측에서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마탑에 해결을 떠넘긴 상태.
‘그리스, 산토리니에서 두 건, 아테네에서 한 건…….’
윌리엄은 세계지도를 펼쳤다.
마법사가 전달해 준 서류에 따라 새롭게 점을 찍었다.
“하아…… 뭔가 있을 텐데.”
이유도 없이 미전조 균열이 급증하진 않았을 것이다.
자연재해에도 무릇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적어도 균열이 나타나는 패턴을 알 수 있다면.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을 텐데, 미전조 균열은 정말 랜덤한 곳에 생기고 있었다.
시간도 제각각이고, 위치 또한 그랬다.
“윽.”
그때 또다시 찾아온 두통에, 윌리엄은 인상을 구겼다.
이번에는 꽤 셌는데, 시야가 살짝 흔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윌리엄 테일러는 지도에서 어떤 모양을 봤다.
‘……잠깐만.’
두통이 잦아들자, 윌리엄 테일러는 곧바로 펜을 들었다.
미심쩍은 마음으로, 점과 점을 이었다.
일정한 패턴 없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 미전조 균열들.
바깥쪽에 있는 것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어 나간다.
펜은 끊임없이 매끄럽게 움직였다.
이윽고 윌리엄 테일러는 모든 미전조 균열을 이었다.
“이건…….”
바깥쪽에 가장 큰 원을 중심으로, 조금씩 원이 작아지고 있었다.
흔히 회오리라 불리는, 빙글빙글 도는 형태의 모양.
언뜻 보기에는 거대한 폭풍 같기도 했다.
미전조 균열로 이루어진 폭풍의 중심에는, 익숙한 모양의 나라가 있었다.
대한민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