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96)
96화
한국 민속촌 입구.
자유이용권을 끊으니, 주황색 종이 팔찌를 채워 준다.
“무슨 클럽 팔찌 같네.”
“많이 가 봤나 보다. 그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갑작스레 다가온 위기.
얼른 설아의 손을 잡고 민속촌 내부로 들어갔다.
한복 대여점에서 어느 정도 알아차리긴 했지만, 사람이 꽤 많았다.
앞쪽을 보니 무슨 드라마가 촬영됐는지 열거되어 있었다.
“아, 저것 때문에 사람이 많나 봐. .”
“그게 뭔데? 드라마?”
“사극이야. 이번에 히트 쳤잖아.”
“누구 나오는데?”
“아마도 성수현 주연일걸.”
성수현은 배우도 하는구나.
성수현 이야기를 들으니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고려검가 이후로는 엮인 적이 없긴 했지만 말이다.
설아가 잡고 있던 손을 잡아당겼다.
“아빠, 아빠. 초가집이에요!”
“설아, 초가집도 알아?”
“동화책에서 봤어요!”
설아는 자랑스럽다는 듯 가슴을 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나와 은혜 둘 다 민속촌에 와 본 경험이 없었다.
지루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볼거리가 많았다.
“저기 음머!”
“음머가 아니라 소예요.”
“음머소!”
소나 망아지도 볼 수 있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설아는 상당히 신난 것 같았다.
하긴 동물원에서는 체험보다 관람 위주로 했다.
소 같은 동물이 이렇게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은혜가 안아 들어 주자, 설아는 짧은 손을 뻗어 소를 쓰다듬었다.
‘느긋해 보이네.’
소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냈다.
셔터 찬스.
타이밍이 생명이다.
찰칵.
한복 차림의 다정한 모녀가 소를 쓰다듬고 있는 사진이 찍혔다.
배우 캐스팅이 환상적으로 된 사극의 한 컷 같았다.
아마추어의 사진 실력이었지만, 모델이 너무 사기다.
소를 쓰다듬다 돌아온 설아가 혀를 삐죽 내밀었다.
“설아, 뭐 해요?”
“아까요. 소 혀가 코에 닿았어요. 근데 설아 혀는 안 닿아요.”
다행히 설아의 혀는 짧았다.
안간힘을 써도 코에 닿기는커녕 인중에도 안 닿았다.
그래도 혀를 삐죽 내밀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또 사진을 찍었다.
“그건 지지예요…….”
은혜의 만류로 설아의 소 따라잡기는 실패로 끝났다.
애초에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겠지만 말이다.
“저기 가 보자.”
좀 돌아다니다 보니 달고나 만드는 곳이 있었다.
설아가 다칠까 염려되어 불을 쓸 땐 내가 대신하긴 했지만.
어쨌든 단걸 좋아하는 설아는 아주 호평이었다.
“음냠냠.”
“하나만 먹는 거예요.”
달고나는 어쨌든 설탕 덩어리나 다름없어,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고 한다.
은혜가 이런 부분은 참 잘 챙겨 주는 것 같았다.
음식을 만들 때도 영양소 같은 걸 신경 쓰는 편이니까.
금방 달고나를 먹은 설아는 내가 들고 있는 가방 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은혜의 에코백이었는데, 체험하는 곳에서 사 온 달고나 몇 개가 더 들어 있었다.
“설아, 달고나 하늘로 띄우면 안 돼요.”
“하나만 더 먹으면 안 돼요?”
“밥 먹어야죠.”
은혜는 부드러우면서 단호했다.
설아는 목표를 바꿔 내게 고개를 돌렸다.
“아빠.”
“응.”
“설아는 달고나가 먹고 싶어요.”
“엄마가 안 된다고 했잖아.”
“정말 안 돼요?”
“……안 돼.”
“흐잉.”
아.
이건 좀.
“설아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정말요?”
“야! 좀 주라!”
“이서준.”
은혜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순간 뭐에 홀린 것 같았다.
내 손에는 포장된 달고나가 들려 있었다.
은혜의 눈치를 보니, 안 될 것 같았다.
“미안. 아빠가 힘이 없다.”
“괜찮아요. 설아도 알아요.”
“왜 알아…….”
설아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째 서열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씁쓸한 현실이다.
“저기 가 보자. 뭐 한다.”
“줄타기 같은데?”
“사람이 날아다녀요!”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줄타기도 구경했다.
중간중간에 옛날 옷을 입은 사람이 보였다.
명찰을 보면 민속촌 직원인 것 같았다.
각자 거지나 사또 같은 콘셉트가 있었다.
직원들은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그때, 중년의 외국인 아저씨가 서툰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뒤쪽에는 아내로 보이는 온화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부부끼리 놀러 온 관광객인 것 같았다.
“아내와 사진 찍어 줄 수 있습니까?”
“아, 그럼요.”
“고맙습니다. 허니. 이쪽으로 와.”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은혜는 조용히 내게 속삭였다.
“들었어? 허니래. 너무 스윗 하시다.”
“그런 게 부러우면 진즉 말했어야지. 마드모아젤.”
목소리와 눈빛에 버터를 발라 봤다.
은혜는 몸서리를 쳤다.
“아으. 느끼해.”
“이거 아니야?”
“아니거든.”
나는 사진을 찍어 주기 위해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목에 건 카메라를 받으려는데, 아저씨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있었다.
“어, 카메라 주시면, 사진 찍어 드릴게요.”
“오, 아니요. 사진은 제가 찍겠습니다.”
“네?”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어 달라는 게 아니었나.
아주머니를 보니, 설아와 은혜 옆에 자연스레 서 있었다.
심지어 영어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헬로! 아이 앰 설아!”
“어머, 똑똑한 아이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우리를 민속촌 직원으로 오해한 것 같았다.
그야 은혜와 설아, 심지어 나까지 완벽하게 한복을 차려입었으니.
헷갈리는 것도 이해가 갔다.
“거기 담벼락 앞에 서 주세요.”
일단 은혜의 의견을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은혜와 설아가 있는 담벼락 쪽으로 갔다.
“서준아, 왜 다시 왔어?”
“우리랑 같이 찍어 달라는 것 같아.”
“뭐? 아, 직원인 줄 아셨나 보다.”
“어떻게 할까?”
“그냥 찍어 드리자. 큰일도 아니고.”
우리는 아주머니를 중심에 두고 섰다.
아저씨는 카메라를 돌려 가며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러더니 옆을 지나가던 여고생 무리를 잡아 세웠다.
“실례합니다.”
“아, 어? 네.”
“사진 찍어 줄 수 있습니까?”
“사진이요? 그럼요.”
“고맙습니다.”
아저씨는 이쪽에 합류했다.
결국 몇 장을 더 찍은 뒤에야 만족한 듯 외국인 부부가 떠났다.
그새 설아와 친해졌는지 아주머니는 뒤를 돌아보시고 손을 흔들었다.
친화력 참 좋다.
“저기요! 예쁜 언니!”
그런데, 이번에는 사진을 찍어 줬던 여고생이 다가왔다.
이번엔 내가 아니라 은혜한테 말을 건다.
객관적으로 예쁜 언니가 맞긴 하지만.
넉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아도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같이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은혜는 조금 곤란하다는 듯 내 쪽을 봤다.
도와 달라는 것 같았다.
“미안해요. 저희가 직원이 아니라.”
“헉, 정말요? 그럼 모델이세요?”
“어, 그냥 가족인데요.”
“유전자 개사기네요.”
“네?”
“아니, 애 앞에서 얘가 무슨 소리야. 아기가 너무 귀여워서.”
은혜는 자기 칭찬에는 평정을 유지하는 모습이었으나.
설아 칭찬을 하자 조금씩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낯을 가리는 탓에, 적극적으로 대화에 어울리진 못했지만.
“서준아, 그냥 찍어 주자.”
이미 마음이 기운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단체 사진까지 찍어 줬다.
거기에 더하여 설아를 귀여워하는 시간까지 가졌다.
“애가 어떻게 이렇게 귀엽지.”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 같다.”
“와, 난 독신주의 깨졌어. 딸 낳을래.”
“네가 언제부터 독신주의였냐. 그냥 못 사귀는 거지.”
아무리 설아라도, 현역 여고생들의 텐션에는 따라가지 못했다.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여고생들은 웃으며 떠나갔다.
기가 빨린 느낌이었다.
“별일도 다 있네.”
“그러게.”
“아빠!”
“응?”
“설아 저거 해 보고 싶어요!”
설아가 관심을 보인 것은 국궁 체험이었다.
웬 사또 복장을 한 직원들이 활을 들고 개별지도를 해 주고 있었다.
전통 활을 제법 멋있게 당기며 시범을 보인다.
“설아, 활 쏴 보고 싶어요?”
“네! 엄마 활은 위험하다고 못 만지게 해요.”
설아에게서 꼭 도전해 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결국 체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7세 이하의 아동은 죄송하지만 어려우세요.”
“앗.”
아니나 다를까, 나이 제한이 있었다.
설아는 눈에 띄게 실망한 눈치였다.
은혜가 눈을 굴렸다.
“설아, 다른 데로 갈까요?”
“보호자분들이라도 쏴 보시는 게 어떠세요?”
“네? 저희요?”
“네. 열 발 다 중앙에 적중시키면 인형 드리는 이벤트를 하고 있거든요.”
“인형?”
고개를 돌려 보니, 정말 이벤트 중인지 인형이 한가득 있었다.
설아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인형들을 바라봤다.
집에 곰 인형들이 있는데, 부족한 걸까.
“설아, 가지고 싶은 인형 있어요?”
“저거요!”
설아가 지목한 것은 토끼 인형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칼을 차고 있었다.
검사 토끼 같은 건가.
“저거 혹시 파나요?”
“죄송합니다. 손님. 저건 이벤트 상품이라서요.”
열 발에 2,000원.
가격은 그다지 비싸지 않다.
나와 은혜의 눈이 마주쳤다.
“열 발씩 두 명 할게요.”
“강사님, 여기 두 분이요.”
* * *
김동연은 복작이는 국궁 체험장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영 인기가 없자 이벤트를 열어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하지만, 도통 상품을 타 가는 사람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건 못 맞히지.’
표적이 평소보다 두 배가량 멀리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잘 맞힐 수 있도록 가깝게 놓는데, 이번에는 멀어도 너무 멀다.
화살이 맞기는커녕 닿지도 않고 땅에 곤두박질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열 발을 모두 표적 중앙에 명중시키라니.
체험하러 온 일반인에게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강사님, 여기 두 분이요.”
“네. 지금 갑니다.”
또 한 커플이 상술에 넘어간 모양이었다.
한복 차림의 남녀였는데, 여자 쪽 미모가 압도적이었다.
순간적으로 넋을 놓았다가 애가 있는 걸 보고 정신을 차렸다.
커플이 아니라 부부였던 모양이다.
“여기 그림에 맞춰 서시고, 활은 살짝 돌려 잡으시면 돼요. 네. 그렇죠.”
남자, 이서준은 김동연의 지시를 쉽게 따랐다.
화살을 당기는 걸 보니 아주 처음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서준이 화살을 쐈다.
팍!
날아간 화살이 표적 아래쪽에 꽂혔다.
이서준은 감을 잡은 듯 연달아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일곱 발은 표적에 맞았다.
그중 한 발만이 정중앙에 꽂혔다.
‘잘하네.’
이 정도만 해도 초보자는 선방한 편이다.
거리가 평소였다면 아마 전부 맞혔을 거다.
“아깝다!”
“아빠 멋지다!”
아내와 딸로 추정되는 둘이 아쉽다는 듯한 탄성을 흘렸다.
이윽고 유은혜가 이서준과 교대하듯 앞으로 나섰다.
‘예쁘다.’
김동연은 잠깐 멍하니 유은혜를 바라봤다.
머리 장식과 한복이 어우러져, 사극의 여주인공이 TV에서 나온 것 같기도 했다.
이서준의 시선을 느낀 김동연은 이윽고 정신을 차렸다.
“커험. 큼. 이렇게 어깨 끝까지 당기시면 됩니다.”
“네.”
유은혜는 주의 깊게 김동연의 지시를 들었다.
컴파운드 보우와 국궁은 조금 다른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령 전달이 끝나자, 유은혜는 화살 없이 활을 당겼다.
“……와.”
무심코 탄성이 흘러나올 정도의 자세였다.
결단코 초보자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양궁 선수라면 김동연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아리송한 마음 반으로, 유은혜에게 화살을 넘겼다.
“엄마 파이팅!”
설아의 응원이 이어졌다.
유은혜는 활에 화살을 메겼다.
좀 헤맬 법도 한데,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역시, 경험잔가?’
유은혜는 진지한 눈으로 화살을 당겼다.
시선은 표적에 고정됐고, 활대가 조금 휘어졌다.
활시위는 어깨 끝까지 제대로 당겨졌다.
‘아무리 그래도, 한 번에 저 거리에 있는 표적의 정중앙을 쏘는 건…….’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시위가 유은혜의 손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