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
1화. 최후 인류의 회귀
우거진 초목, 풀을 뜯어 먹는 사슴, 걸어 다니는 곰.
오스트레일리아 산림의 풍경이냐고?
아니. 이곳은 대한민국, 그것도 서울시 세종대로에 있는 광화문 광장이다.
정확히는 ‘인류가 멸망한 이후의 대한민국’이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몬스터와 던전, 그리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나타난 헌터와 시스템.
인류는 멸망을 저지하기 위해 싸웠지만 끝내 패배하고 말았다.
나는 광화문 광장에서 보이는 세계수를 바라보며 인류 최후의 전투를 떠올렸다.
바로 이곳, 세계수 앞에서 전 세계 헌터들이 Ex급 몬스터에게 맞선 것이다.
사람의 모습을 한 그것은, Ex급답게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내보였다. 자체적인 능력만으로도 수많은 헌터들을 압살했건만, 거기에 더해 헌터들의 스킬까지 빼앗는 사기적인 힘까지 갖추고 있었다. 스킬을 빼앗긴 헌터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오류’라고 불렀다.
그 상상을 초월하는 강함은 감히 예측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 탓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최후의 전투에 참여했던 헌터들을 몰살한 오류는 지구 전체에 재해를 일으켰다.
바다는 육지를 삼킬 듯이 요동쳤으며, 휘몰아치는 폭풍은 온 대지를 휩쓸었다. 곳곳에서 폭발한 화산은 피아식별 없이 모든 것을 녹였으며, 하늘에서 떨어진 낙뢰는 남은 곳을 모조리 부수었다.
찬란했던 인류의 문명도 대규모의 자연재해 앞에서는 그저 무력할 뿐이었다.
이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
힐러였던 탓에, 꾸역꾸역 재생해가며 혼자 생존한 헌터.
거창하게 말하면 ‘최후의 인류’.
그게 바로 나, 이유영이다.
인류가 멸망한 후, 오류는 소명을 다한 것처럼 세계수 앞에 동상처럼 굳어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인 오류를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굳어 있던 오류는 내가 아는 그 어떤 것보다도 단단했다.
결국 나는 굳어 있는 오류조차 없앨 수 없었다.
처음엔 절망했으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혹시라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비록 발견한 생존자는 없었지만, 얻은 것이 있었다. 어쩌면 오류를 물리치고 멸망한 인류를 되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이었다.
나는 지금, 그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것이 바로 그 마지막 가능성이다.
[[B] 리리의 비밀 일기장을 소환합니다.]「이 아이템은 일정한 조건 달성 시 개화할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개화 시: B → SSS)
(개화 조건: 십만 장의 일기를 기록한다.)
(아이템 개화 조건을 모두 만족시켰을 경우, 기록자의 염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리리의 비밀 일기장. 이런 아이템으로 인류를 되살리려 한다니,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른다.
다소 우스워 보일 수 있어도 이 아이템에는 말도 안 되는 가치가 있었다.
주목해야 할 건 ‘리리의 비밀 일기장’ 부분이 아니라, 랭크 상승 부분이다.
무려 SSS 랭크로 상승할 수 있는 사기템.
SS급 아이템만 해도 밸런스 붕괴를 일으킬 만큼 사기적인 능력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이건 그것보다도 한 등급 위인 SSS급 아이템이다.
상태창은 절대 거짓된 정보를 적지 않는다. 즉, 기록자의 염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은 진짜일 거란 얘기다.
다른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상황.
어차피 잃을 것도 없다. 이 일기장을 SSS급으로 개화시키는 건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십만 장은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일상 얘기로 십만 장이나 채웠다간 쓰다간 포기할 게 뻔했다. 멸망한 세상에서 적을 만한 게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일기장에 던전 공략법을 적어 넣기로 했다.
이 일기장을 얻기 전부터도 일기에는 던전 공략에 관한 얘기를 주로 적었다. 십만 장의 글을 써야 한다면 기왕이면 의미 있는 내용을 적는 게 나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각국에 보관된 던전과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캐냈다. 인류의 문명이 반파된 상황에서도 다행히 기록 보관고는 꽤 많이 남아 있었다.
확인 가능한 나라의 던전 정보는 모두 공략법으로 요약해 일기장에 적었다.
공략되지 않은 채로 세상에 남아 있던 던전 역시 공략하며 공략법을 기록했다.
그렇게 일기를 채우기 위해 몇 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9만 9,999장의 일기를 쓴 나는 10만 장까지 딱 한 장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장을 채우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 있었다.
“던전이 이렇게 코앞에 있었는데 놓치고 있었네.”
경복궁 앞을 지키고 있는 해치상. 여기에는 숨겨진 던전이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성냥에 불을 켜 해치상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게이트를 여는 조건이었다.
그러자 심상치 않은 불온한 바람이 일대를 지나쳐 갔다. 게이트가 열리는 전조 증상이었다.
곧 눈앞이 깜빡이는가 싶더니, 일렁이는 검은 블랙홀이 공간을 찢고 나타났다.
게이트, 던전에 들어가는 입구.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
[ 상태창 ]이름: 이유영
종합 능력치: S-
공격력: A
방어력: S
민첩: S
보유 스킬 목록
메인 스킬:
서브 스킬: 보유한 스킬이 많아 자동으로 스킵됩니다. (더보기)
메인 스킬은 각성자가 되자마자 얻는 스킬이다.
나는 각성할 때 라는 스킬을 얻었다.
처음에는 자동으로 스킬 소유자를 치유하는 능력이었지만, 숙련도가 100%가 되자 남도 치료할 수 있는 소위 ‘힐러’가 되었다.
쉽게 말해, 안 죽는 힐러. 인류가 멸망해도 혼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이런 스킬이 있었기 때문이다.
[ C급 던전, 심판대 – 공략 성공 ] [ 공략 공헌도에 따라 보상을 정산합니다. ]해치를 물리치는 건 순식간이었다.
고작해야 C급 몬스터. 아무리 내가 공격용 메인 스킬이 없는 헌터라 해도 그간 쌓아온 종합 능력치와 경험이 있다. 놈은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쓰러졌다.
나는 서둘러 일기장을 소환해 해치의 공략법을 적어 넣었다.
‘이걸로….’
십만 장.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기어코 십만 장을 모두 채우는 데 성공했다.
이제 곧 적막하던 세상이 사람들의 활기찬 소리로 채워지겠지. 더 이상 홀로 남았다는 생각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때였다.
일기장에서 반짝이는 빛이 터져 나오며 주변을 환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 [B] 리리의 비밀 일기장이 개화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 [ 아이템을 개화하시겠습니까? ]나는 속으로 ‘예’라고 답했다.
그러자 일기장이 더 큰 빛을 내기 시작했다.
[ 개화 성공! ] [ [B] 리리의 비밀 일기장이 [SSS] 최후 인류의 기록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리리의 비밀 일기장은 그 요란한 빛 속에서 새로운 이름을 달고 나타났다.
최후 인류의 기록.
정말로 지구에 남은 인류가 나밖에 없다는 확인 사살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하지만 이 일기장의 능력이 진짜라면, 어차피 곧 의미 없어질 사실이다.
[ 최후 인류의 기록이 당신의 염원을 분석합니다. ] [ 이 작업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드디어…!’
오랜 시간 끝에 맞이한 보상을 만끽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빛 속에서 무언가 툭 튀어나왔다.
『됐다!』
그것은 내게 있어 무척이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성인 남성의 주먹만한 크기. 복슬복슬한 하얀 털과 쫑긋 세운 두 귀. 탐스런 꼬리와 등에 달린 작은 날개. 날 바라보는 순진한 눈망울까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저 흰 여우는 내가 매일같이 봤던 ‘리리의 비밀 일기장’ 표지에 그려진 여우 요정 리리였으니까.
마치 신이라도 난 듯, 그것은 내 앞에서 방방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축하해요! 당신이라면 일기장 십만 장을 모두 채울 줄 알았어요!』
“뭐…?”
사람은 너무 황당한 걸 마주쳤을 때 아무 반응을 할 수 없다. 지금 알게 된 사실이다.
녀석은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깔깔대고 웃으며 말했다.
『제 소개부터 해야겠죠? 저는 ‘시스템’의 의지를 대변하는 화신(化身)이에요. 당신에게 주어질 새로운 기회를 돕기 위해 나타난 거고요! 인류가 멸망하고 나서야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건 좀 아쉽지만요.』
새로운 기회라고? 그 말에 반응하려던 순간, 일기장으로부터 알림창이 떠 올랐다.
[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서 떠오른 것은 절망적인 내용이었다.
[ 현재, 당신의 염원을 이룰 수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염원을 이룰 수 없다는 말에 무언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 기분에 휩싸이기 전에 새로운 알림이 떠올랐다.
[ 새로운 스킬이 발현됩니다. ] [ 새로운 스킬이 당신의 염원을 이룰 수 있는 순간을 분석합니다. ] [ 분석 완료. 스킬을 사용해 8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갑니다. ] [ 이 작업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새로운 스킬, 8년 전의 시간, 돌아간다.
알림창에 있던 단어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이 말은 즉, 내가 8년 전으로 ‘회귀’ 한다는 건가?
그야말로 새로운 기회다.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온전히 받아들일 새도 없이 요정이 말했다.
『…이런. 이유영, 지금 싸울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나요?』
“그게 무슨 말이야.”
『잠깐 시간을 벌어주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 ‘회귀’를 앞당길게요.』
“회귀? 정말로 회귀를 한다는 뜻이야?”
『네! 서둘러요. 지금, 침입해 올 거예요!』
되물을 새도 없이, 요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소리가 방안 가득 울렸다.
콰과광!
던전의 벽이 무너져내리는 소리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나를 향해 날아오는 무언가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팅!
“크억…!”
막아내는 것만으로 팔이 저릿하다.
방어하지 않았다면 머리가 뚫렸을 것이다.
나는 공격이 날아온 곳을 바라봤다.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떨려왔다. 호흡이 어려울 만큼의 압박감이 일순간에 주변을 감쌌다.
『이유영! 정신 차려요! 조금만 더 버텨줘요!』
요정의 목소리에 비로소 시야가 트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시야를 빼곡히 메운 빛의 창이 나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빛의 창…!’
멸망 전 부산을 대표하던 김신욱 헌터. 그가 자랑하던 스킬이 바로 ‘빛의 창’ 수십 개를 적에게 날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신욱 헌터도 오류와의 싸움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 스킬을 사용할 인류는, 아니, 나 외의 다른 인류는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연신 검을 휘둘렀으나 몇 개의 창이 내 몸을 뚫고 지나갔다.
창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으나,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몸에 뚫린 구멍은 치유를 반복하며 스스로 메워졌다.
그러나 그 고통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녀석을 향해 소리쳤다.
“너, ‘오류’ 이 새끼……!”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굳어 있었으면서, 하필이면 지금 내 목숨을 노린다는 게 어처구니없었다.
차오르는 분노가 그것을, 오류를 향했다.
나는 비처럼 쏟아지는 창 아래를 내달렸다.
뒤에서 요정이 무어라 소리치는 게 들렸지만, 눈앞에 있는 저것을 두고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오류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순간, 발아래서부터 푹 꺼지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휩싸였다.
동시에 무언가가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커헉…!”
가슴에 난 구멍에서 서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비상식적으로 날아간 신체 조직을 보자 순간적으로 사고가 멈춰서는 기분이었다.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스스로 죽기 위해 달려들 줄이야.』
오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직접적으로 울렸다.
그 침착한 태도에 울화가 치밀었다.
덕분에 잠시 멈췄던 생각이 다시 이어졌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생명의 의지가 빠른 속도로 내 몸에 생긴 거대한 구멍을 메워갔다.
모든 인류가 죽는 와중에도 살아남은 나다.
겨우 새로운 기회를 잡았는데 이제 와서 죽을 리가.
『그 알량한 스킬을 믿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그 말과 동시에 눈앞에서 상태창이 제멋대로 알림을 띄우기 시작했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 [ 오류 발생 ] [ 메인 스킬을 탐색할 수 없습니다. ] [ 스킬 시전을 취소합니다. ]“뭐……?!”
당황스러운 상황에 눈이 한껏 치켜 뜨였다.
몸이 더 이상 회복되지 않았다.
회복이 덜 된 몸에는 여전히 큰 구멍이 남아 있었다. 특히 가슴의 중앙에.
메워지지 않는 구멍을 보자 죽음이란 단어가 머리를 한가득 채워갔다.
여기서 죽는다고? 내가?
놈은 더 시간을 끌 생각이 없는지, 또 다른 창이 눈앞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창에서 터져 나오는 빛에 눈을 뜰 수 없었다.
푸욱―
‘정말로… 죽는 건가…….’
온 감각이 빛 속에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다리에서부터 시작된 부유감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기껏 일기를 모두 적었는데, 겨우 기회를 얻었는데, 이딴 식으로 죽다니.
드디어 인류 멸망을 막을 희망을 찾았는데.
그러나 현실은 잔혹했다.
죽을 때가 되니 환각마저 보이는 것 같았다.
빛 속에서 오류의 그림자가 흐릿하게 보였다.
그림자는 앙상한 나뭇잎이 떨어져 가듯 부서졌다.
『…조금 늦었나.』
놈이 중얼거린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