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0
10화. 던전 브레이크 (1)
과거 강릉에서 발생한 A급 던전, ‘추락한 용’에는 공략대가 세 차례 들어갔었다.
그러나 결과는 세 공략대 모두 무참히 실패.
특히나 2, 3차 공략대는 거의 하루 정도밖에 버티지 못하고 모두 전멸하고 만다.
터진 던전에서 쏟아져나온 잡몹만 거의 천 마리에 가까웠던데다가, 대처하기 까다로운 상태 이상을 거는 능력까지 있어 대규모의 피해가 생겼다.
이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 일주일간 잠도 안 자고 능력치도 C급으로 만들어 뒀으니, 도착하는 대로 2차 공략대에 지원할 생각이다.
‘근데… 이래도 되는 건가?’
고주연은 과거에 이 던전 브레이크를 계기로 헌터가 됐다.
내가 던전 브레이크를 막으면 미래가 바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될놈될’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고주연을 생각한다면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분명 언젠가 헌터가 될 게 분명하다.
어째서인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느낌이 들지만, 지금은 고주연의 가족을 몰살하고 고향을 쳐부수는 던전을 막는 게 우선이었다.
***
버스에서 내려 곧장 던전 게이트가 열린 송정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어둠이 깔린 모래사장 주변으로 헌터 협회가 설치해놓은 바리케이드가 보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헌터 협회 직원 하나가 나를 막아섰다.
“여기서부턴 출입 불가능합니다. 던전 발생 위험 지역이라 통제 중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잠깐 확인하러 온 겁니다. 여기가 아직 1차 공략대가 공략 중인 A급 던전 맞습니까?”
“맞긴 한데 누구십니까? 취재는 받지 않고 있습니다.”
대답이 빠릿빠릿하면서도 딱딱한 게 신입인 것 같았다.
나는 협회원에게 내 헌터증을 보여줬다.
협회원은 헌터증을 확인하고서 고개를 갸웃했다.
“C급 헌터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직접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미 공략대가 들어간 상황입니다.”
노련한 협회원이면 이 시점에서 헌터가 온 이유를 알 텐데, 이 녀석은 모르는 모양이다.
공략대가 들어간 지 며칠이 지났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는 건, 공략대 중 누군가가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거나 몬스터의 놀잇감으로 목숨만 붙어 있다는 뜻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1차 공략은 실패라고 봐야 한다.
실제로 내일이면 1차 공략대의 실패가 기정사실이 되고 2차 공략대 소집이 시작될 것이다.
연차 좀 찬 협회원이면 내가 2차 공략대에 미리 지원하러 왔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날 지원 명단에 넣을 텐데 이 녀석은 멀뚱히 날 보고만 있었다.
“여기 관리 중인 협회원분들 중 가장 직급 높으신 분이 누구십니까?”
“무슨 이유로 찾으시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과장님께선 새로운 인력을 데리러 가셨습니다. 지금은 저와 저쪽에 있는 직원 두 명이 전부입니다.”
녀석은 참고로 전부 동기라고 덧붙였다.
교대로 감시를 서고 있었던 건지, 뒤에 있는 협회원 둘은 간이 의자에 앉은 채로 선잠을 자고 있었다.
그 과장이라는 사람은 아마 2차 공략대에 들어갈 헌터를 소집하기 위해 부리나케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하는 수 없었다. 이 녀석한테라도 적당히 말해두는 수밖에.
“일단 제 연락처 드리겠습니다. 무슨 일 생기거나 2차 공략대 모집되면 연락 주세요. 이 근처에 머물 예정입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명함이 없어서 주머니에 있던 영수증 뒷면에 핸드폰 번호와 이름을 적어 협회원에게 건넸다.
협회원은 떨떠름하게 그것을 받았다.
나는 철저하게 FM대로 움직이는 녀석을 보며 물었다.
“혹시, 현장 파견 처음이십니까?”
“아, 예. 맞습니다. 제가 뭔가 실수라도 했습니까?”
“…아닙니다.”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게이트 현장 앞에 고지식한 신입뿐이라니.
조금 불안해도 전화번호도 줬으니 2차 공략대 모집이 시작되면 연락하긴 하겠지.
나는 수고하라는 짤막한 인사와 함께 그곳에서 벗어났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10시.
회귀 후 고등급 몬스터와의 첫 전투다. 방심해선 안 된다. 연락이 올 때까진 잠이라도 자면서 체력을 비축해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해변에서 나와 근처에 보이는 펜션에 들어갔다.
사실 적당한 모텔이나 호텔에 들어가려 했지만, 불 켜진 곳이 여기밖에 없었다.
규모도 제법 크고 깔끔한데다, 관리실 벽에 연예인 사인 같은 게 하나 크게 걸려 있는 걸 보면 나름대로 유명한 곳인 모양이다.
내가 들어오자 불 켜진 관리실에서 혼자 졸고 있던 펜션 주인이 화들짝 놀라며 반겼다.
“어머, 깜빡 졸았네… 내 정신 좀 봐. 손님이세요?”
“네, 한 이틀 정도 묵고 싶은데 방 있습니까?”
“이틀이요?”
주인은 내게 짐이 하나도 없는 걸 보고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차림새도 그렇고 여행객으로 보이진 않을 테니 적당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댔다.
“헌터입니다. 근처에 아직 공략되지 않은 A급 던전이 있다는 걸 듣고 혹시 몰라서 왔습니다.”
“어머, 그러시구나.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봤나? 미안하네. 안 그래도 그 던전 때문에 요즘 손님이 없거든요. 여기 숙박 시설 주인이나 가게 주인들도 싹 빠져나갔어요. 나만 남았잖아, 나만.”
확실히 인기척 나는 곳이 여기밖에 없긴 했다.
내가 왜 아주머니는 안 가셨냐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더니, 주인이 머쓱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나는 곧 딸이 오기로 해서 못 가고 있었네요. 지금 해외에 있는데 곧 있으면 귀국하거든. 던전이이야 뭐, 헌터분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해주시겠지 싶기도 하구요. 아무튼, 방은 1인실이면 될까요?”
“방은… 제일 큰 방으로 주시죠.”
“큰 방? 혹시 일행 있어요? 혼자 지낼 건데 제일 큰 방이 필요한가 해서요.”
관광지 근처에 던전이 생기면 한동안 여행객이 오지 않는다.
몇 달 장사가 안될 테니 그냥 제일 큰 방을 달라고 한 건데, 이런 생각을 구구절절 밝히기엔 말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았다.
나는 적당히 아무 말이나 떠들었다.
“큰 게 좋아서요. 돈은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요? 특이한 손님이네. 알겠어요. 바로 안내해 줄게요.”
결제를 마친 뒤, 주인은 3층에 있는 5인실로 나를 안내했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 흉흉하게 쳐진 바리케이트만 아니었다면 제법 뷰가 괜찮았을 것이다.
주인은 원래 수다스러운 성격이었는지, 안내해주는 중에도 사담을 섞었다.
“원래 우리 딸내미 오면 주려고 했던 방인데, 손님이 올 줄은 몰랐네요. 그래도 돈 준 사람 줘야지. 안 그래요?”
“그러고 보니 요즘 출국이 쉽지 않다고 하던데. 따님께선 어쩌다 외국에 가셨습니까?”
솔직히 남의 딸이 외국에 있든 우주에 있든 그다지 관심 없다.
그런데 이분이 말하는 딸에 대해서는 더 알아야만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펜션 주인은 자랑할 기회를 얻은 사람처럼 신나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휴, 우리 딸은 중국에 초청받아서 갔어요. 합숙 훈련이라고 했던가? 그런 걸 한대요. 우리 딸이 선수거든요, 선수. 저번에 올림픽 보셨어요? 거기서 우리 애가 금메달 땄는데 봤나 모르겠네.”
“선수요?”
“네, 국가 대표 선수. 내 딸이지만 얼굴도 아주 예쁜 국가 대표 선수에요.”
이 시기에 강릉을 고향으로 두고, 중국으로 훈련 나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두 명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는 복잡한 확률 계산을 하는 대신 주인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
“혹시… 따님분이 양궁 선수입니까?”
“어머! 어떻게 알았대?”
“이름은… 고주연이고요?”
“어머, 어머. 아까 걸려 있는 사인 봤어요? 아휴, 이름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이게 또 이렇게 되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아무 숙박 시설이나 들어왔는데 하필 고주연의 어머니가 하는 펜션이라는 게 기가 막힐 따름이다.
나는 최대한 덜 어색하게 웃었다.
“아, 예. 제가 고주연 선수 팬이라서요. 이전에 경기 감명 깊게 봤습니다.”
“웬일이니, 웬일이니. 팬이었구나! 잘 찾아왔네요. 내가 주연이 엄마예요.”
“하하, 네. 제가 기막히게 찾아왔네요.”
“이럴 게 아니지. 쉬고 있어요, 과일이라도 좀 깎아다 줄게.”
괜찮다고 말하기도 전에 주인이 방을 나갔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조용해졌다.
저렇게 딸을 아끼는 분이었으니, 과거의 고주연이 어두웠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회귀 전, 던전 브레이크로 가족과 고향을 통째로 잃은 고주연은 텅 빈 고향에 지박령처럼 남아 강원도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어떤 길드에도 들어가지 않고, 협회 허가도 없이 강원도에 발생하는 던전을 홀로 깨부수고 다니는 광기 어린 짓을 했을 정도다.
고주연과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긴 후, 그 실력이 아까웠던 나는 강원도를 벗어날 것을 몇 번 권유했었다.
그러나 EX급 몬스터가 나타날 때까지, 고주연은 끝끝내 강원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내가 왔으니까.
나는 잠시 정비라도 해둘 겸 소파에 앉아 스킬창을 열었다.
– 분류: 메인 스킬
– 숙련도: 20%
「시전자의 염원을 이룰 가능성이 발견되면 발동합니다.」
– 목록
지난 일주일 동안 가능성 스킬에도 변화가 있었다.
우선 스킬의 숙련도가 꽤 쌓였다.
덕분에 쿨타임이 10분 정도로 줄어서, 한 던전에서 가능성 스킬을 여러 번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아쉬운 건 내가 공략한 던전이 열 개는 되는데 막상 얻은 스킬은 두 개뿐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독두꺼비가 갖고 있던 스킬은 일기장을 얻어도 가능성 스킬로 나타나지 않았다.
솔직히 나도 별로 갖고 싶지 않은 스킬이긴 했다. 있어 봤자 쓸데가 없으니까.
얻은 스킬은 흑견을 물리치고 얻은 ‘탐색’과 삼두매를 물리치고 얻은 ‘위압감’이었다.
탐색은 몬스터를 찾아내는 스킬로, 던전 안에서 꽤 유용했다. 보스 몬스터를 먼저 처치해 높은 공헌도를 가져가야 하는 내겐 쓸모가 많았다.
위압감은 맹수들이 갖는 특유의 기세를 뿜어내는 스킬로, 잡몹들을 일시적으로 행동 불능으로 만들 수 있는 스킬이었다. 혼자서 던전을 공략하던 시절에는 잡몹 처리가 귀찮아서 꽤 유용하게 여겼던 스킬이다.
십만 장의 일기장을 모아야 하니, 스킬도 십만 개가 생길 줄 알고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가능성 스킬이 알아서 쓸모 있는 스킬만 걸러내는 모양이었다.
나는 스킬창을 살펴보며, 앞으로 있을 추락한 용 던전 공략을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웠다.
그러다가 설핏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우우웅
갑자기 울린 진동 소리에 잠이 깼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를 받으니, 핸드폰 너머에서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울렸다.
『이유영 헌터님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저, 아까 번호를 받은 헌터 협회 직원입니다!』
벌써 2차 공략대 소집이 시작된 건가. 너무 갑작스러운 것 같은데.
내 생각과 동시에 급박한 목소리로 다음 문장이 이어졌다.
『큰일 났습니다. 갑작스럽게 게이트가 생겨나더니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던전 브레이크입니다!! 저희 헌터 협회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급히 도움 요청합니다!!!』
“뭐라고요?”
『지금 저희 실력만으로는 도, 도저히 아, 안 돼…! 으아아아악!!』
핸드폰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통화가 강제로 종료됐다.
나는 곧바로 방을 뛰쳐나왔다. 무언가 생각할 틈도 없었다.
과일 접시를 들고 계단을 올라오던 펜션 주인은 나를 보고 놀란 눈을 끔뻑였다.
“무슨 일 있어요? 지금 과일 들고 올라가려던 참인데.”
“당장 대피하셔야 합니다!”
“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근처에 남아있는 민간인은 이 펜션 주인 한 명뿐이다.
나는 당장 한 손에는 아주머니를, 다른 손에는 과일 접시를 들고 펜션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