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악마의 미궁 (9)
떨어진 김신욱은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피아노 천재 김신욱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데 필요한 부위는 단 한 번도 다친 적 없었다.
앞으로도 그래야 했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굽혀보던 김신욱은 다행히 몸에 부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니 위에 있던 거랑 비슷하게 생긴 조각상 하나랑 기민철이 보였다.
김신욱은 기민철을 툭툭 차며 말했다.
“야, 일어나라. 저기 몬스터 있다.”
그 말에 기민철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일어난 기민철과 김신욱은 착잡하게 눈앞에 있는 몬스터를 바라봤다.
몬스터에게 별다른 무기는 없었지만, 코뿔소의 뿔처럼 위협적인 뿔이 달린 방패를 들고 있었다.
몬스터는 아직 두 사람을 눈치채지 못한 듯,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김신욱은 스킬을 발동해 창 하나를 만들어냈다. 이럴 땐 기습을 해줘야 했다.
그런데 기민철이 김신욱의 창을 보며 말했다.
“기습하게요?”
“해야지.”
“저도 해요?”
김신욱이 무슨 당연한 소릴 하냐는 듯이 쳐다봤지만, 눈치 없는 기민철은 그 시선의 의미를 눈치채지 못했다.
기민철은 몬스터를 힐끗 보고 말했다.
“딱 봐도 선빵 유도하는 것 같은데….”
“그게 뭔 소리야?”
“먼저 치면 세 배로 갚아줄 것 같은데….”
김신욱은 기민철의 말을 믿기 어려웠지만, 무시할 수도 없었다. 김신욱은 이번 던전이 처음이었고, 기민철은 천혜 길드장이 보낸 녀석인 만큼 좀 싸우는 놈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너 작전 같은 거 짤 줄 아냐? 이유영이 하는 거.”
“엥? 제가 그걸 어떻게 해요.”
“그럼 할 줄 아는 게 뭐야?”
기민철은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뒤를 힐끔 보면서 말했다.
“도망치는 거?”
도망, 그건 김신욱도 꽤 잘한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김신욱과 기민철은 잠시 눈앞의 몬스터를 바라봤다.
생각해보면, 굳이 둘이서 저 몬스터를 잡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유영이랑 합류한 뒤에 잡아도 될 것 같았다.
김신욱은 솔직히 싸우고 싶지 않았다.
남들이 욕하든 말든, 안전을 확보한 뒤에 싸우고 싶었다.
김신욱은 기민철과 뒤를 보며 말했다.
“…그냥 튈래? 이유영 만나면 그때 해치워도 되잖아.”
“튀죠. 저희 둘만으로는 무리인 듯.”
기민철은 말이 끝나자마자 몬스터가 있는 곳의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김신욱도 기민철을 따라가려던 때, 몬스터가 있는 쪽에서 소리가 났다.
『돌격.』
몬스터가 말을 하더니, 들고 있던 방패가 짐승의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방패는 족히 2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코뿔소의 모습이 되더니, 김신욱과 기민철을 향해 달려왔다.
아무래도 도망가려던 게 들켜버린 모양이다.
엄청난 속도로 도망가는 기민철은 코뿔소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김신욱은 저 코뿔소보다 빠르게 튈 자신이 없었다.
결국 김신욱은 들고 있던 빛의 창을 휘둘러 코뿔소를 막으며, 기민철에게 소리쳤다.
“너 나만 두고 가면 죽는다!!”
기민철은 의리를 내다 버린 건지 못 들은 척 뛰어갔다. 김신욱은 우선 몬스터를 해치운 뒤, 저 자식을 해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몬스터의 뿔은 김신욱의 창을 부수지는 못했지만, 무게가 상당해서 김신욱이 밀리고 있었다. 김신욱의 방어력이 B+인데도 말이다.
김신욱은 몬스터와의 전투도 직접적으로 해보는 건 처음이라서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부산 길드의 이인자는 김신욱이었다.
이인자가 된 건 단순히 부산 길드장과 얽혀 있어서는 아니었다. 부산 길드장은 고지식한 사람이라, 김신욱이 약한 헌터였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신욱이 이인자인 이유는 김신욱을 순식간에 전투 천재로 만들어주는 스킬이 있었기 때문이다.
‘써야 하나? 쓰기 싫은데, 안 쓰면 뒤지겠지?’
김신욱의 서브 스킬, ‘독주(獨奏)’.
천재 피아니스트 김신욱을 천재 헌터로도 만들어주는 스킬이었다.
스킬을 발동하면 김신욱 혼자 다른 세상에 떨어진 것처럼 주위가 무대로 바뀌었다.
그 중앙에는 피아노가 있었고, 김신욱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었다.
독주가 시작되면, 실제 김신욱은 꼭두각시처럼 전투를 한다.
현란한 연주를 할수록 더 잘 싸우게 되고, 음정이나 박자가 틀리면 전투 중에 삐끗한다.
천재 피아니스트인 김신욱만을 위한 서브 스킬이었다.
김신욱이 천재 헌터 소리를 듣는 이유는 전부 이 스킬 덕분이었다.
다만 그는 이 스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안 쓸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김신욱은 덜덜 떨리는 창으로 코뿔소의 뿔을 막아내다가, 뿔로 창을 쳐내는 순간에 그 서브 스킬을 발동했다.
[ 서브 스킬, 를 발동합니다. ] [ 당신의 의식이 무대로 이동합니다. ]김신욱은 이 공간에 들어올 때마다 왠지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딱히 부끄럽거나 죄책감이 들진 않았지만, 불쾌한 건 별개의 이야기였다.
그는 자길 위해 준비되어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이번에도 악보가 있네.’
스킬을 발동하면 김신욱이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음계가 그려진 악보가 피아노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악보를 보면서 쉽게 연주할 수 있었다.
김신욱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악보를 천천히 훑어봤다. 악보는 이 음악으로 저 몬스터를 물리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악보를 전부 읽은 김신욱은 잠시 관객석을 바라봤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고, 김신욱은 지금부터 아무도 듣지 않을 연주를 해야 했다.
여러모로 최악인 스킬이었다.
***
기민철은 잠시 고민하고 있었다.
이대로 도망간다면 김신욱 군이 죽을 것 같아서 고민이었다.
‘신욱 군, 신욱 씨? 신욱스. 그래, 신욱스.’
기민철은 김신욱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하며 달렸다.
이래 보여도 낯을 가리는 기민철은 사람을 부르는 호칭도 고민하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 동상처럼 있던 몬스터가 날개를 펄럭이며 기민철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속도가 상당히 빨라, 기민철을 따라온다기보단 들이받으려고 날아오는 듯했다.
『돌격. 돌격. 돌격.』
같은 말을 반복하며 미사일처럼 날아가는 게, 솔직히 좀 섬찟했다.
기민철도 꽤 ‘컨셉질’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저 몬스터는 ‘찐’이었다.
기민철은 몬스터한테 지지 않기 위해 중얼거렸다.
“도망, 도망, 도망.”
그 말을 몬스터가 알아들은 걸까? 몬스터는 아까보다 더 격렬한 스피드로 날아오더니, 기민철을 들이받았다.
기민철이 옆으로 피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처맞고 등짝이 부서졌을 것이다.
기민철은 민첩과 공격력은 A+지만, 방어력은 허접이었기 때문에 한 대만 맞아도 죽을 수 있었다.
기민철은 식은땀을 흘리며 김신욱을 흘끔 바라봤다.
“신욱스 결국 각성한 건가… 나도 질 수 없지.”
김신욱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기세로 짐승형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다.
지금껏 기민철이 지켜본 김신욱은 싸울 줄도 모르는 허세 덩어리였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노련한 움직임으로 표정 하나 없이 싸우고 있었다. 숨겨둔 비장의 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보스한테 말해드려야겠다.’
천혜 길드장은 기민철에게 던전과 공략대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라는 임무를 줬다.
김신욱에게 비장의 수가 있다는 것은 천혜 길드장이 좋아할 희귀한 정보였다.
기민철은 히죽 웃으며 스킬을 발동했다.
도망치는 걸 제일 잘하는 기민철이었지만, 그다음으로 잘하는 건 싸우는 것이었다.
몬스터가 도망치게 해준다면 끝까지 도망갈 생각이었지만, 기민철 만큼의 속도를 낼 수 있다면 그냥 싸우는 게 낫다.
기민철은 빠르게 스킬을 발동했다. 기민철의 메인 스킬, ‘무기 변형’은 신체를 무기로 바꿔주는 스킬이다. 기민철의 팔과 다리는 어느새 날카로운 날로 변해 있었다.
기민철을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뛰어오르며, 승리의 주문을 외쳤다.
“선빵 필승!”
몬스터는 기민철을 피해 날개를 펄럭였지만, 기민철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몬스터가 공중에 뜨는 속도보다 기민철이 더 빨랐다.
기민철은 서브 스킬, ‘가속’을 발동하며 몬스터의 날개를 크게 베었다.
서걱!
몬스터의 검은 날개가 기민철의 발길질에 그대로 잘려 나갔다. 다리 자체를 날카로운 검날로 바꾼 기민철의 내려차기는 암석도 종잇장처럼 자를 만큼 날카로웠다.
기민철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몬스터의 반대편 날개를 잘라냈다. 팔뚝에도 예리한 검날이 달려 있었기 때문에 몬스터의 날개는 종이처럼 찢겨나갔다.
날개를 잃은 몬스터는 추락했다.
기민철은 떨어지는 몬스터의 목을 팔꿈치로 찍어 내렸다. 팔꿈치에 달린 송곳이 몬스터의 목을 꿰뚫었다. 이어서 팔을 도려냈고, 몸통을 박살 냈다.
가속을 발동하면 기민철의 움직임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빨라진다.
공격할수록 기민철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공격을 이어나가야 했다.
기민철이 몬스터를 산산조각 낼 때까지 몬스터는 여전히 떨어지는 중이었다.
기민철은 바닥에 다리가 닿은 다음에서야 스킬을 멈췄다.
그리고 헛구역질을 했다.
“우웩.”
가속의 단점은 기민철도 감당 못 할 만큼 빨라져서 멀미가 난다는 것이었다.
기민철은 멀미하면서 조각난 몬스터를 바라봤다.
저렇게 사지를 다 잘라놓았는데도 재가 되어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쪽이 본체가 아닐 것이다. 신욱스가 상대하고 있는 쪽을 없애야 했다.
하지만 김신욱이 너무 섬뜩하게 싸우고 있어서 차마 합류할 수 없었다.
김신욱의 무기인 ‘창’은 돌격형 몬스터에게 있어서 상당히 유리한 무기였다. 신욱스는 그걸 잘 이해하고 있었던 건지 몬스터를 농락하듯 거리를 유지하며 빈틈이 보일 때마다 창끝을 박아넣었다.
봉술인지, 창술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평생 창으로 싸우기만 했던 창병(槍兵)의 움직임이었다.
김신욱도 다치는 걸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저렇게 잘 싸우면서 왜 그런 걸 걱정하는지 알 수 없었다.
김신욱이 몬스터를 잔인하게 도륙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던 기민철은 멀미가 심해지는 것 같았다.
다행히 기민철이 토하기 전에 김신욱은 몬스터를 끝장냈다.
짐승형 몬스터는 재가 되어 사라졌고, 기민철이 난도질해놓은 천사 동상 역시 함께 사라졌다.
김신욱은 전투가 끝나자마자 건전지가 다된 인형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기민철은 멈춰선 김신욱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XX… X같게….”
그 싸늘한 목소리에 김신욱은 소름이 끼쳤다. 신욱스라고 부르려고 했는데 관둬야 할 것 같았다.
기민철은 슬금슬금 움직이며 자리에서 도망가려 했다. 그런데 김신욱이 눈을 부릅뜨고 기민철을 쳐다봤다.
기민철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꺄악!”
“야, 나 좀 부축해봐.”
김신욱은 발 한쪽을 질질 끌며 기민철 쪽으로 다가왔다. 발목이 부은 걸 보니, 전투 중 삐끗한 것 같았다.
하지만 기민철은 김신욱이 무서워서 뒤로 물러났다.
김신욱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기민철에게 화를 냈다.
“아, 부축해달라고! 다쳤다고!”
기민철은 하는 수 없이 김신욱에게 찔끔찔끔 다가갔다.
김신욱은 우악스러운 손길로 기민철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기댔다.
이렇게 뻔뻔한 사람을 태어나서 처음 본 기민철은 식은땀이 났다.
“이유영 이 자식은 어디 있는 거야? 너 사람 찾는 스킬 같은 거 없냐?”
“없습니다만….”
“도움 안 되는 새끼….”
김신욱은 기민철에게 기대고 있는 주제에 면전에 욕을 하더니, 큰 소리로 이유영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유영!! 어딨냐!!”
기민철은 흉폭한 김신욱이 무서웠지만, 어쨌든 부축해주며 이유영을 찾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