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악마의 미궁 (13)
베이스캠프에서 밤을 보낸 뒤, 공략대는 악마의 성으로 향했다.
악마의 성으로 가는 길에는 그다지 큰 난관은 없었다.
중간에 독으로 뒤덮인 붉은 늪을 지나야 하긴 했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방어계 헌터들이 실드를 세워 길을 만들었고, 상태 이상에 빠진 사람들은 해독 포션을 마시거나 내게 힐을 받아 무사히 지났다.
한참을 걸어 성 앞까지 도착하자, 긴 흔들다리가 우리를 반겼다.
사람 한 명이 지날 좁은 폭의 다리 밑에는 까마득한 절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폐신전으로 향하던 다리보다는 튼튼해 보였다는 점이었다.
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다리를 건널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리 앞에 서서 공략대를 향해 말했다.
“10명씩 나뉘어서 다리를 건너겠습니다. 제일 먼저 제가 출발합니다.”
이제는 조가 나뉘는 속도도 빨랐다.
게다가 어제 수제 카레의 효과 덕분인지 분위기도 이전보다 화기애애했다.
나를 선두로 한 조를 포함해, 다섯 개의 조가 차례로 다리를 건너왔다.
흔들다리를 건너는 도중 기민철이 비명을 질러서 휘청거렸던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문제 없이 건너올 수 있었다.
모두가 다리를 건넌 후, 나는 성을 바라보았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첫 번째 단계는 무사히 통과했다.
하지만 성안에는 더 악독한 트릭과 강한 몬스터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무난히 넘기긴 어려울 것이다.
내가 가만히 서서 성을 바라보고 있자, 뒤에 있던 정하나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뭘 멍하니 보고 있어? 다 도착했어. 움직여!”
“그러네요.”
“근데 성문이 왜 안 보이냐? 이거 어디로 들어가야 해?”
성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들어갈 곳이 없었다. 문은 물론, 창문조차 없어서 들어갈 방법이 없어 보였다.
보이는 거라곤 성 앞에 세워진 수상한 제단뿐이었다.
다른 공략대원들 역시 정하나처럼 입구를 찾으며 웅성거렸다.
“성벽을 부수고 가야 하나?”
“저거 부서지긴 하는 거야? 엄청 단단해 보이는데.”
성벽을 부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무언가 특수한 물질로 만들어진 건지, 이 성의 모든 벽은 어떤 수를 써도 부서지지 않았다.
성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나는 크라켄을 처리하고 찾아낸 항아리를 꺼내서 제단 위에 올려두었다.
그 후 정하나와 다른 공략대원들에게 설명했다.
“이 성에 들어가려면 문을 소환해야 합니다.”
“문을 소환해? 그게 뭔 소리야?”
정하나가 황당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설명보다는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빨랐다. 나는 제단 위에 올려둔 항아리를 쓱쓱 문질렀다.
그러자 항아리에서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정하나와 공략대원들은 항아리를 경계하며 노려보았다.
항아리에서 피어난 붉은 연기는 점차 형태를 갖추어가더니, 마치 알라딘의 요술 램프 속 정령인 지니와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 몸을 부른 자가 그대인가?』
꽤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는 정령을 본 헌터들은 상당히 놀란 듯했다. 원래 몬스터는 이 정도의 언어는 구사하지 못하니 말이다.
나는 공격 태세를 취하려는 헌터들을 잠시 제지했다.
성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 녀석을 이용해야 한다. 오직 이 녀석만이 이 성의 입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녀석은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 몸을 소환한 인간들이여, 이 항아리의 악마가 소원을 하나 들어주마.』
그 말에 공략대원들이 놀라며 수군거렸다. 딱 봐도 몬스터인 것 같은 놈이 우리한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정하나 역시 저놈의 정체가 궁금했는지 나한테 귓속말로 물었다.
“뭐야, 저거? 막, 알라딘? 그런 거 흉내 낸 건가?”
“비슷합니다.”
“무슨 소원 빌 거야? 진짜 들어주긴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이 녀석은 웬만한 소원은 진짜로 들어줄 수 있는 놈이었다.
녀석은 수군대는 공략대를 자극하듯이 떠들기 시작했다.
『이 몸은 너희들에게 금은보화를 안겨줄 수도 있고, 산해진미를 선사해줄 수도 있다. 너희 인간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줄 수 있지.』
녀석이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기자, 제단 위로 호화스러운 음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봐라, 아주 맛있어 보이지 않나?』
임금님 밥상이라고 해도 무색할 정도로 다양한 음식이 제단 위에 끝없이 펼쳐졌다.
누군가 치킨을 생각하면 치킨이 올라왔고, 누군가 떡볶이를 생각하면 떡볶이가 올라왔다.
늪과 흔들다리를 건너면서 시간이 상당히 소요된 탓에, 다들 체력 소모도 컸던 데다가 꽤 굶주린 상황이었다. 충분히 자극적일 만한 냄새였다.
그러나 이 정도의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봤자 함정일 게 뻔하지.”
“몬스터의 헛짓거리 따위 들어줄까 보냐!”
녀석은 그런 헌터들을 보고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자신의 턱을 쓸어내렸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이 몸의 힘을 의심하는구나.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그 말과 함께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기더니, 우리 앞에 검게 일렁거리는 게이트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던전 공략이 끝난 후 생성되는 탈출 게이트와 똑같았다.
『이 몸은 너희가 원한다면 이 던전에서 탈출시켜줄 수도 있다.』
아무리 굳건한 공략대원들이라 해도, 눈앞에서 저런 걸 직접 보면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저거 게이트잖아!”
“진짜로 나가는 게 가능한 거야?”
실제로 저 게이트를 통과하면 이 던전에서 나갈 수 있다. 정말로 탈출 게이트인 것이다.
분위기가 좋지 않게 흘러가자, 정하나가 손뼉을 짝 치며 공략대를 주목시켰다.
“이 녀석들아, 정신 차려! 지금 탈출하면 이 던전이 공략되겠냐!”
정하나의 말에 홀린 듯이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던 헌터들이 정신을 차렸다.
나는 녀석이 공략대원들을 더 자극시키기 전에, 키득거리며 웃고 있는 녀석에게 말했다.
“내 소원은 다른 거야.”
『흐음?』
“성으로 들어갈 문을 만들어.”
내 말에 녀석의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잠시 내려앉은 적막 속에서 녀석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싸한 공기가 휘돌며 공략대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녀석은 짐승처럼 차가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하지만 내가 소원을 빌면, 녀석은 그걸 이뤄줄 수밖에 없다.
“뭐 해? 만들어.”
『네놈이 이유영이구나.』
녀석이 내 이름을 부른 탓에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나를 쳐다봤으나,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외면했다.
마왕이 내 존재를 알고 있는 이상, 이 던전에 있는 몬스터들도 나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최후의 인류라서 몬스터들이 날 알 수도 있다는 헛소리를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더니 정하나가 내게 귓속말로 물었다.
“뭐야? 저게 네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공략대의 리더라서 아는 거 아닐까요.”
내가 태연하게 말하자, 정하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해서 다행이었다.
『인간들이여! 내가 이뤄줄 수 있는 소원은 단 한 가지뿐이다. 정녕 탈출을 포기하고 성문을 만들기를 원하나? 이 자의 말대로 따를 셈인가?』
“시끄럽고, 빨리 만들어. 우리가 등신 머저리 새끼들로 보이냐?”
나는 일부러 강하게 말했다. 이 녀석이 만들어낸 게이트로 탈출하고 싶어질 사람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내 말에 공략대원들도 어서 성문을 만들라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인간들이로군.』
녀석은 혀를 차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바닥에서부터 커다란 진동이 울리며 땅이 흔들렸다.
쿠구구구구구궁!
심상치 않은 진동에 거대한 성도 흔들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땅이 가라앉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정하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이거 괜찮은 거야?!”
“괜찮습니다. 지하에 있던 성의 입구가 위로 올라오는 것뿐입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이 위로 솟아올랐고, 지하에 묻혀있던 성의 입구가 위로 드러나며 큰 소리가 났다.
쾅!!!!!
공략대는 당장이라도 스킬을 펼칠 준비를 하던 중에, 솟아오른 성을 보고 놀라고 있었다.
성의 입구를 만들어낸 녀석은 키득거리며 웃어댔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기어이 목숨을 내다 버리는구나!』
녀석은 다시 한번 손을 튕기더니 몸 전체에서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점점 늘어나는 붉은 연기가 녀석을 감싸더니, 녀석의 몸집이 거인처럼 커져 나갔다.
“뭐, 뭐야!”
공략대원들 모두가 놀라며 녀석을 쳐다봤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고 무기를 들었고, 누군가는 당장 스킬을 펼칠 준비를 했다.
항아리에 몸을 걸치고 있던 녀석은 완전히 빠져나온 채, 하반신까지 달고 있었다.
몸집을 불린 녀석은 성문을 모두 가릴 만큼 커져 있었다.
몸이 완성된 녀석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고, 성문 앞으로 순간이동 하며 문을 가로막고 섰다.
이 녀석의 정체는 단순히 소원을 들어주는 악마가 아니라, 이 성의 문지기였다.
녀석은 헌터들이 찾아낼 수 없도록 입구를 숨기고, 만약 제대로 소원을 빌어 입구를 찾아낸다면 그 문을 지키는 놈이었다.
나는 완전히 몸을 갖춘 녀석을 보곤 화왕검을 소환했다. 그 모습을 본 정하나가 물었다.
“싸워야 하는 거지?”
“그 전에 이것부터 부숴야 합니다.”
나는 화왕검에 열풍 스킬을 담아 붉은색 검날을 뽑아냈다. 그대로 검을 휘둘러, 제단 위에 올라간 항아리에 검기를 날렸다.
항아리는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반으로 깨졌다.
『네놈!! 감히 내 항아리를…!』
녀석은 분개한 듯이 몸집을 더 키웠고 붉으락푸르락 핏줄이 솟아올랐다.
녀석을 자극하는 꼴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항아리를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
이 항아리는 헌터들의 생명력을 흡수해 저 녀석의 상처를 계속해서 치유하기 때문이다.
이 항아리부터 깨버리지 않으면, 약점을 노린다고 해도 녀석을 해치울 수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항아리만 없으면 저 녀석은 지금껏 이 던전에서 만난 어떤 몬스터보다도 약한 놈이었다.
나는 뒤에 있던 공략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저 몬스터가 우릴 농락한 것 같습니다. 가서 손 좀 봐주죠.”
“맞습니다! 손 봐줍시다!”
“가자!!”
공략대원들은 다들 무기를 치켜들며 신나게 소리쳤다.
몬스터는 몸집을 더욱 부풀리며 날 선 기백을 뿜어냈으나, 녀석의 행동은 허세나 마찬가지였다.
『크윽!! 용서하지 않겠다…!』
그러나 녀석에겐 50명이 넘는 헌터들의 공격을 혼자 막아낼 재주 따윈 없었다.
공략대는 개운하게 녀석이 재가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드디어, 악마의 성의 문이 열렸다.
***
우리는 천천히 성안으로 들어갔다.
고딕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성은 어딘가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은은한 촛불만이 안을 밝히고 있었고, 깔끔하게 관리된 내부가 우리를 반겼다.
생긴 것만 보면 뭐 대단한 게 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겉보기에는 고급스럽지만, 여기는 악마의 미궁에서도 보스 몬스터인 마왕이 살고 있는 중심지다.
미궁이라는 던전의 이름답게, 이 성의 미로는 던전의 난이도를 극악으로 만들 만큼 복잡했다.
사람들이 모두 성안으로 입장하자 문이 쿵 소리를 내며 저절로 닫혔다.
드디어 본편이라는 생각에 공략대원들 모두 한껏 긴장한 게 보였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턴 제 말을 잘 따라주셔야 합니다. 이곳의 미로는 여태 지나온 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복잡하고 난해합니다. 자칫하면 낙오될 수 있으니 서로 잘 챙깁시다.”
“알겠습니다!”
나는 들어오자마자 천리안을 발동했다.
지금부터 긴장하지 않으면 공략대가 뿔뿔이 흩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