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악마의 미궁 (14)
성으로 들어오기 직전, 우리는 방어계, 근거리와 원거리 공격계 헌터들을 골고루 나누어 조를 나눴다.
이 성의 특징상, 낙오라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최대한 막을 예정이지만, 적어도 대비는 해둬야만 했다.
“팀원분들은 서로를 잘 챙기셔야 합니다. 협력이 곧 목숨을 살리는 일이 됩니다.”
“알겠습니다!”
내 뒤로는 기민철과 강삼, 방어계 수호 길드원을 배치했다.
맨 뒤에는 정하나와 김신욱, 고주연이 자리를 잡았다.
전방이나 후방에서 몬스터가 습격했을 때, 가장 대응이 빠를 조합이었다.
정하나는 조별로 정렬하기 전, 내가 이전에 부탁했던 것을 넘겨줬다.
“자! 귀에 끼면 돼.”
정하나가 내게 준 것은 무선 이어폰처럼 생긴 통신기였다.
수호 길드에서 개발해낸 던전용 통신 기구인데, 개발을 끝낸 지 얼마 안 된 귀한 물건이었다.
던전에서는 어지간한 전자기기들이 전부 먹통이 되기 때문에 대규모 공략대를 이끌게 되면 소통에 문제가 생기곤 했었다.
수호 길드 연구팀에서는 이 점을 해결할 수 있는 던전용 통신 기구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마침내 만드는 데 성공해냈다.
덕분에 회귀 전에는 대부분의 헌터들이 필수품처럼 수호 길드가 개발해낸 이 통신 기구를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 시기에는 아직 시장에 유통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하나에게 물어봤는데, 이제 막 개발을 끝내 테스트 단계에 있어서 준비해주겠다고 말했다.
“근데 다시 생각해도 수상하단 말이야. 우리가 이걸 개발하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정하나는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지만, 나는 못 들은 척 통신기를 귀에 꼈다.
귀에 낀 채로 두 번 터치하자, 약간의 잡음이 울리다가 곧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어때, 전원 들어와? 나도 아직 안 써봤거든.”
“잘 작동하네요. 정하나 길드장도 착용해 주세요.”
정하나가 통신기를 귀에 끼우고 작동시키자, 통신기에서 페어링 상대를 찾았다는 단조로운 음성이 들리며 연결되었다.
정하나는 시험 삼아 말해보았다.
“들리냐, 이유영, 오버.”
통신기에서 정하나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려왔다.
“잘 들립니다.”
“오버를 붙여라, 오버.”
“…잘 들립니다, 오버.”
정하나는 내 말을 듣고선 깔깔대고 웃었다. 하여튼 유치한 걸 좋아하는 녀석이었다.
이 통신기가 있다면 정하나를 공략대의 꼬리로 보낼 수 있다.
후방의 정하나와 전방의 내가 통신을 주고받으며 공략대를 이끌어가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다.
내가 맨 앞에서 천리안으로 길을 찾다 보면, 후방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진다.
혹시라도 후방에서 습격이 온다면 대처가 늦어진다. 그러니 정하나 정도 되는 실력자가 후방을 책임져줘야 했다.
제일 먼저 통과해야 할 곳은 1층이었다.
단조로운 복도가 이어져 있어서, 정말 이곳이 미로가 맞는지조차 헷갈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걷다 보면 이상함을 감지할 수밖에 없다. 이 성은 상당한 높이였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계단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층에서의 첫 번째 목표는 숨겨진 계단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천리안 스킬로 미로를 전체적으로 훑어봤다.
이곳의 미로는 일정한 시간이 되면 벽이 움직인다. 벽은 아무리 내리쳐도 부서지지 않아서, 자칫하면 미로 안에 갇힐 수도 있었다.
회귀 전에는 메인 스킬로 던전의 맵을 볼 수 있는 진준성이 길을 찾아냈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라 굉장히 빠르게 탈출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 녀석만큼 머리가 좋진 않다.
천리안으로 쉴 틈 없이 집중해야 간신히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공략대를 이끌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홀을 지나 왼쪽으로 꺾어서자, 끝이 보이지 않는 직진 통로가 펼쳐졌다.
통로는 두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았다.
나는 옆에 수호 길드원을 둔 채로, 한껏 집중하며 나아갔다.
그런데 수호 길드원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우, 유영 씨! 어깨에 힘 좀 푸셔요!”
그는 내 어깨를 꽉꽉 누르더니, 등짝을 팡팡 때렸다.
내가 그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나?
떨떠름하게 쳐다봤더니 그는 시원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실수하면 우리 길드장님이랑 리더 바꾸면 되니까 걱정 말라고요!”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에이, 화끈하게 실수하고 우리 길드장님이랑 바꿉시다!”
장난 덕분인지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긴 했다. 아무래도 수호 길드에는 안수연이랑 정하나 같은 사람만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여기서 실수는 죽음을 의미한다. 화끈하게 실수하는 일 따윈 없어야 했다.
다시 앞을 보며 나아가려는데, 통신기에서 정하나의 발랄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긴 이상 없다. 앞에는 뭐가 보이냐 오버.』
“계속 좁은 통로가 이어집니다. 끝이 막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벽이 움직이면서 길을 터줄 겁니다.”
『알았다, 오버.』
통신을 끝내고 계속해서 나아가 가로막힌 벽 앞까지 도달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 앞을 막고 있던 벽이 소음 하나 없이 옆으로 밀려나며 길을 열었다.
내 옆에 있던 수호 길드원은 그 모습을 보며 기함했다.
“이거 탈출 가능한 거 맞죠? 유영 씨 길 다 아는 거 맞죠?”
“가능하게 해야죠. 그보다, 여기에 스킬 사용 부탁드립니다.”
나는 벽이 이동한 길목을 가리켰다.
빡빡 민 머리의 수호 길드원은 단단한 철벽을 만드는 스킬을 갖고 있었다.
그의 스킬을 사용한다면 움직이는 벽이 다시 닫히지 않게 막아둘 수 있었다.
수호 길드원은 자기한테 맡겨만 두라며, 성큼성큼 걸어가 스킬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중간에 벽이 닫혀서, 공략대 일부가 지나오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우리는 벽이 닫히지 못하게 해두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 정도 걸어가자, 벽 곳곳에 둥그런 홈이 팬 곳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홈을 보고는 바닥에 있는 돌조각을 주워 그쪽을 향해 던졌다.
피잉!
그러자 홈에서 붉은 레이저가 나와 돌조각을 정확하게 박살 냈다.
레이저가 나오는 홈은 벽 전체에 붙어 있었다. 이 정도 위력이라면 다들 부상을 각오하고 가야 할 정도였다.
“어우, 살벌해. 저건 우리 길드장님이 나서주셔야겠는데요.”
그러나 우리에겐 이런 레이저쯤은 막아줄 수 있는 최강의 방어계 헌터가 있었다.
나는 수호 길드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나는 정하나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이전 작전 회의 때, 이 구간에 대해선 이미 설명을 해뒀었다. 정하나의 스킬이 필요하다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정하나도 분명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곧 정하나가 통신을 받았다. 후방에 있던 녀석들과 투닥대고 있었는지, 잠깐 잡음이 들려왔다.
『어! 왜?』
“곧 레이저 구간이 나올 겁니다.”
『오! 벌써 그만큼이나 왔어? 반은 온 거지?』
“네. 사전에 얘기했던 대로 암흑 스킬 부탁드립니다.”
『알았다, 오버.』
통신이 종료되자마자, 뒤에서부터 뻗어온 ‘암흑’이 벽을 새까맣게 가렸다.
정하나가 자기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나는 암흑이 벽을 완전히 막은 것을 확인한 후 다시 한번 돌조각을 던졌다.
피잉!
레이저가 발사되는 소리가 났지만, 레이저를 흡수한 암흑이 일렁일 뿐, 돌조각은 무사했다.
역시 방어 스킬로는 정하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수호 길드원은 뿌듯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우리 길드장님이라니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쳐준 뒤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긴장했던 것과 달리, 이대로라면 별일 없이 1층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골칫덩이였던 움직이는 벽도 자세히 관찰해보니, 움직이는 데 일정한 패턴이 있어서 그것만 파악하면 계단까지 가는 길을 확보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문제없이 나아가나 싶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조용히 있던 기민철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어왔다.
“저기, 죄, 죄송한데 여기 화장실은 없어요?”
던전에서 화장실을 찾는 놈은 또 처음이었다. 기민철은 안색이 완전히 파래진 채로 내게 묻고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수호 길드원은 기민철의 말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좀 웃겼다! 근데 농담이죠? 진짜 마려운 건 아니죠?”
“제가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토하는 버릇이 있어서….”
기민철은 수호 길드원을 붙잡은 채로 헛구역질을 했다.
수호 길드원은 금방이라도 내뱉을 것 같은 기민철을 보고는 기겁하며 말했다.
“하지 마!! 삼켜!!”
나는 그런 기민철을 수호 길드원에게서 떼어내며 말했다.
“기민철 씨, 잠깐 앉아서 쉬세요. 물이라도 드리겠습니다.”
기민철을 앉힌 후, 나는 물통을 건넸다.
흔들다리 건널 때 보니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 같은데, 폐소공포증까지 있는 모양이었다. 이건 내가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었다.
기민철은 입을 틀어막았다가 잠시 자리에 앉아, 내가 건넨 물을 받아먹었다.
그러자 좀 진정이 됐는지, 내게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물통을 돌려줬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많지만, 기민철은 정말 알 수 없는 놈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기민철뿐만 아니라 지친 사람들이 꽤나 많아 보였다.
잠시 쉬었다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곧바로 정하나에게 연락했다.
“정하나 길드장, 여기서 한 5분만 쉬었다 가죠. 앞에서 멈췄습니다.”
『다들 벌써 힘들대? 알았다, 오버!』
나도 한숨 돌릴 겸, 물을 들이켰다.
물을 마시면서 천리안으로 앞을 살펴보니, 10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층부터는 공략대 간의 신뢰가 한층 더 중요해지는 구간이었다. 전투해야 할 몬스터도 많았고, 공략대의 분열을 유도하는 기믹도 꽤 있었다.
그래도 1층을 무난하게 통과할 정도면, 2층도 분명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통신기에서 정하나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유영! 아, 이런, 씨.』
순간 정하나의 욕설과 함께 뒤에서부터 암흑이 밀려왔다.
파도처럼 몰아쳐 온 암흑에 휩쓸려 공략대원들은 그대로 앞으로 떠밀려왔다.
사람들을 앞으로 밀쳐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스킬 운용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나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암흑에 떠밀려 순식간에 코너길 앞까지 도달했다.
“으악! 무슨 일이야, 이거!”
“정하나 길드장님?!’
서둘러 천리안으로 정하나를 살펴보니, 정하나가 있는 곳 주위로 거대한 철창이 떨어진 채였다.
다행히 정하나의 암흑에 밀려난 헌터들은 그 철창 안에 갇히지 않았다.
그러나 정하나 본인이 그 철장 안에 갇혀버린 상황이었다.
“길드장님!”
“정하나 길드장님!!”
후방에 있던 헌터들이 정하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정하나 역시 손을 뻗었지만, 미로의 벽이 움직여 그들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단 두 명.
벽이 길목을 차단하기 전, 정하나가 있는 곳으로 몸을 날린 사람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뛰고 있는 심장을 가라앉히고자 주먹을 꽉 쥐었다.
아직 통신은 살아 있다. 게다가 정하나만 고립된 게 아니다. 철장을 박살 내고 다른 통로를 찾아낸다면, 분명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힌 채로 통신기를 연결해 말했다.
“정하나 길드장, 무사합니까?”
『야!!! 어떡해, 나 갇혔어!!!』
“예, 압니다. 봤습니다.”
『미치겠다. 기껏 구해놨더니 전구남이랑 고주연 씨가 나 구하러 왔어. 이 둘은 또 어떡해?』
정하나를 구하기 위해서 고주연이 먼저 벽 틈새로 몸을 던졌고, 김신욱도 거의 동시에 뛰어들었다.
공격기가 강하지 않은 정하나는 혼자 힘으로는 그 철장을 부술 수 없을 것이다.
그 두 사람이 따라 들어간 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앞을 바라보다, 다시 정하나가 있을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세 사람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정하나를 가둔 철창이 무슨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또 어떤 변수가 벌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이상, 이쪽에서 정하나를 구해줄 방법이 없었다.
정하나를 구하러 간 두 신입 헌터에게 모든 걸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