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악마의 미궁 (18)
제단에 오르기로 선발된 다섯 명은 공략대와 헤어진 뒤로 순조롭게 제단에 올라갔다.
위험한 역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리더인 이유영을 포함한 공략대 전원이 이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애쓰는 것을 지켜봤던 덕분이었다.
안수연의 실을 타고 익숙하게 제단에 올라간 그들은 각자 정해진 자리에 섰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계단이 있는 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라, 왜 안 열리지?”
한 명이 의문을 표하던 그때, 다섯에게 갑작스러운 총격이 쏟아져 내렸다.
탕탕탕탕탕탕!!!
안수연은 소리가 들리는 즉시 바로 옆에 있던 기민철의 머리를 잡고 함께 납작 엎드려 피했다.
하지만 다른 헌터들은 기습에 대응하지 못했고 세 명이 총을 맞아 쓰러졌다.
기민철의 시선이 총상을 입고 쓰러진 헌터들에게 향했다. 안수연이 자신을 잡고 엎드리지 않았다면, 지금 쓰러져 있는 건 자신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기민철은 침을 크게 삼켰다. 어쩐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았다.
탕탕탕!!
다시 총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기민철은 이대로 도망가고 싶었다. 혼자라면 도망칠 자신도 있었다. 그때, 안수연이 기민철에게 물었다.
“기민철 씨, 혹시 잠깐이라도 좋으니 총알을 막아줄 수 있어요? 이 사람들에게 응급처치를 끝낼 정도만 시간을 벌어주면 돼요.”
기민철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도망갔다간 이 사람들은 이대로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은 용기를 내야만 할 때였다.
“제가 잠시 막아보겠습니다.”
“부탁할게요.”
기민철은 어떻게든 날아오는 총알을 받아치고 있었다. 기민철의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이 원체 뛰어난 덕분이었다.
그 사이, 안수연은 사람들의 응급처치를 끝낸 모양이었다.
세간에서는 안수연을 반쪽짜리 힐러라고 부르지만, 안수연 정도로 깔끔하게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헌터는 거의 없을 게 분명했다.
“기민철 씨, 덕분에 응급처치는 끝났어요. 이제 도망을….”
그러나 상대는 얌전히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제단 뒤에서 걸어 나온 이는 들고 있던 우산을 바주카포로 변형시키더니, 안수연과 기민철을 향해 거대한 탄두를 날렸다.
이 좁은 곳에서 그런 폭탄을 맞았다간 모두가 죽고 만다.
안수연은 치료하던 셋을 안아 들었고, 기민철은 가속을 써서 안수연과 다른 세 명을 바닥으로 밀친 후, 자신도 그대로 뛰어내렸다.
다섯 명은 제단에서 먼 곳으로 빠르게 떨어졌다. 안수연이 바닥에 그물을 펼쳐, 무사히 착지할 수 있었다.
펑!!
탄두가 폭발하며 제단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 속에서 한 남자가 가뿐히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우산을 펼쳐 천천히 공중에서 내려와 착지하더니, 안수연 쪽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기민철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던전의 적은 몬스터가 아니었나? 대체 왜 사람이 걸어오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안수연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침착한 목소리로 당황한 기민철을 향해 말했다.
“기민철 씨, 정신 차리세요. 저 사람이 우리의 적입니다.”
“네? 하, 하지만….”
“적은 몬스터가 아니라, 강삼 헌터입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죽을 거예요.”
안수연은 우선 쓰러진 세 명을 눕히며, 그들을 보호하듯이 앞에 섰다.
기민철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왜 헌터가 헌터를….”
“헌터 중에는 살인 청부업을 받는 살인자들이 있거든요.”
수호 길드나 되는 길드의 이인자 자리에 있다 보면, 별의별 정보를 다 알게 된다.
가령 헌터들 중에는 살인 청부를 받는 이들이 있고, 그들의 뒤를 봐주는 것이 대형 길드이기 때문에 쉽게 건드리기 어렵다는 정보 같은 것 말이다.
“아마 강삼 헌터도 그런 부류겠죠. 절 죽여달라는 청부를 받고 이 공략대에 참여했을 거고요.”
강삼은 검은색 장우산을 어깨에 걸치고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
그는 기민철을 물끄러미 보다가, 검은 우산을 장검으로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근접전 격투에 뛰어난 기민철을 상대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려둘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검을 선택한 건, 그의 판단력이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모두의 허를 찌른 기습, 순간적인 전투 판단력.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데 거리낌 없어 보이는 저 눈.
이대로 맞붙는다면 그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강삼이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용해야 했다.
판단을 마친 안수연은 강삼이 검을 만들어내는 찰나의 틈을 타서 기습했다.
촤아악!
안수연의 손에서 뻗어나간 실이 정확히 강삼의 목에 휘감겼다.
안수연은 실을 단단히 쥐며 그의 목을 졸랐다. 강삼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응하지 못하고 목이 졸리고 있었다.
안수연은 실을 세게 당기며, 그를 협박했다.
“당장 무기를 내려놔.”
“….”
분명 목이 졸려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상황인데도, 강삼에게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죽음의 공포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그 사람 같지 않은 모습에 되레 당황한 건 안수연이었다.
강삼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스각!
강삼의 검날이 목을 조르고 있던 안수연의 실을 갈랐다.
포박에서 벗어나자마자, 강삼은 안수연이 눕힌 세 헌터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안수연은 급히 셋을 업어 들며 기민철을 향해 외쳤다.
“기민철 씨, 도망쳐요!”
안수연은 외치자마자 업어든 세 사람을 데리고 공략대가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기민철은 급하게 안수연을 따라왔다. 하지만 강삼은 이대로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강삼의 검날이 매섭게 빛나더니, 날 선 검기가 안수연 쪽을 향해 뻗어나갔다.
챙!
그 검기를 받아낸 건 기민철이었다.
기민철은 팔을 검날로 바꿔 받아쳤지만, 기민철의 낮은 방어력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공격이었다.
기민철의 팔을 타고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강삼은 주춤한 기민철을 향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챙!
기민철은 이번엔 다리를 검날로 변형시켜 받아쳤다.
‘거리를 벌려야…!’
그러나 강삼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강삼은 기민철이 검을 쳐내는 순간, 검을 손에서 놓고 기민철의 목을 손으로 붙잡았다.
우악스러운 손길에 기민철의 목이 졸렸고, 강삼은 소매에서 단검을 꺼내 그대로 기민철의 복부를 찔렀다.
“윽!”
태어나 처음으로 느끼는 고통이었다.
목이 졸리며 숨을 쉴 수 없었고, 배를 찌르고 들어온 칼은 마치 기민철의 내부를 헤집는 것만 같았다.
옷이 축축이 젖을 만큼 피가 흘렀다. 괴로움이 일정치를 넘어서자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어지럽고 눈앞이 하얘졌다.
“민철 씨!!”
안수연이 급히 강삼의 팔을 차며 기민철을 구해냈지만, 기민철은 그대로 자리에서 쓰러졌다.
이대로 잠들고 싶었다. 너무 추웠고, 괴로웠다. 쓰라리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큰 상처에선 계속 울컥울컥 피가 빠져나갔다. 기민철이 손으로 막아봤지만, 소용없다는 듯 손 틈새로 핏물이 흘렀다.
‘차라리 도망칠걸….’
도망치는 건 기민철이 가장 잘하는 것이었다.
불리하거나 귀찮은 상황을 맞닥뜨리면 기민철은 맞서 싸우는 대신 도망을 택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기민철은 그렇게 살았다.
본인도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 말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용감하게 살 순 없는 법이다. 세상에는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기민철에게 도망쳐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보스….’
기민철은 손을 움직여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주머니에서는 이 던전에 들어올 때, 천혜 길드장이 쥐어준 ‘게이트석’이 있었다. 던전에 갇혔을 때, 던전을 빠져나올 수 있는 게이트를 일시적으로 만들어내는 귀한 아이템이었다.
기민철은 천혜 길드장이 게이트석을 쥐여주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는 내 오른팔이란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와야 해. 모두를 버리고 도망쳐도 되니, 반드시 살아서 돌아와.’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준 보스를 위해서라도 이 자리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보스는 분명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지금이라도, 이걸 쓰면….’
그때, 흐릿한 눈앞에 안수연의 모습이 보였다.
안수연은 강삼과 싸우고 있었다. 안수연의 몸놀림은 능숙했지만, 체급이 맞지 않아 공격이 들어가질 않았다.
누가 봐도 결과가 뻔했다. 안수연은 강삼에게 이길 수 없었다.
‘도망….’
여기서 기민철이 도망쳐도 천혜 길드장은 기민철을 평소와 다름없이 맞이해줄 것이다.
하지만, 기민철이 도망치면 안수연은 죽는다.
남은 세 헌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까도 강삼은 일부러 쓰러진 세 사람을 노렸다. 안수연이 그들을 지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사실을 이용할 것이다.
즉, 기민철이 도망가면 네 명이 살인마에게 살해당한다.
하지만 기민철이 도망가지 않는다면?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한 번 공포를 느낀 대상을 이길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심지어 기민철은 부상까지 입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기민철은 강삼이 떨어트린 장검을 쳐다봤다.
‘저것만 없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아까 검은 우산이었던 장검을 변형시키는 것을 보아하니, 강삼의 스킬은 무기를 만들어내는 스킬이 틀림없었다. 저 무기가 다시 강삼의 손에 들어간다면 기민철이 곤란해할 무기만 만들어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저 무기가 강삼의 손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지금 강삼의 무기는 기민철의 배를 찌른 단도뿐이다. 기민철은 지금까지 적어도 공격 거리가 같은 상대로는 한 번도 진 적 없었다.
‘단도 정도는 이길 수 있어…!’
안수연도 기민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강삼이 무기를 잡지 못하도록 무리해서 격투하고 있었다.
기민철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강삼이 떨어트린 무기를 잡아 쥐었다. 들고 도망갈 생각이었다.
강삼은 기민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무기를 줍는 기민철을 보고서 단도를 날렸다.
챙!
기민철은 무기로 변형한 손날로 단도를 쳐냈다.
그리고 서브 스킬, 가속을 발동해 최대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단도까지 던져버렸으니, 강삼에게 남은 무기는 기민철이 들고 있는 장검밖에 없다. 강삼은 기민철을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민철은 강삼을 도발하기 위해 한마디 했다.
“고작 인간의 힘으로 사바나의 치타보다 빠른 이 기민왕을 붙잡을… 쿨럭!”
말하던 도중에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배에서도, 입에서도 나오는 피를 보니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삼의 무기만큼은 빼앗기지 않기 위해 꽉 붙잡았다.
기민철의 예상대로 강삼은 기민철을 쫓아왔다.
공포영화에 나오는 살인범 같은 얼굴을 하고서 기민철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봐.”
강삼이 기민철을 불렀지만, 기민철은 무서워져서 더 빨리 달렸다.
가속을 쓴 기민철을 붙잡을 수 있는 헌터는 대한민국에 없다. 강삼도 기민철을 따라잡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태연한 목소리로 기민철에게 말했다.
“내가 널 죽이지 않는 건 귀찮아서다. 넌 천혜니까.”
“예?”
“방해하지 마라.”
강삼은 알 수 없는 말을 하다가 스킬을 사용했다. 기민철이 들고 있던 장검이 갑자기 굉장히 무거운 바주카포로 바뀌었다.
순식간에 달라진 무게에 중심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강삼은 기민철이 넘어진 틈을 타, 기민철에게서 무기를 회수해갔다.
바주카포는 다시 검은 우산으로 변하며 강삼의 손에 가뿐히 들렸다.
기민철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숨을 몰아쉬었다. 여전히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고, 강삼은 기민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곧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휘릭!
강삼의 발목이 당겨지며, 강삼 역시 넘어졌다.
안수연이 강삼이 달려나가던 때 실을 감아놓은 듯했다.
기민철은 지금이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는 걸 알았다.
지금 공격해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강삼을 무너트릴 방법은 없다.
기민철은 검날로 바꾼 손으로, 강삼이 넘어지자마자 아킬레스건을 베어서 끊어버렸다.
스각!
기민철은 곧바로 서브스킬 ‘가속’을 발동했다.
일어나다가 비틀거리는 강삼의 허벅지와 어깨, 팔꿈치를 크게 베었다.
몬스터였다면 당장 목숨을 노렸겠지만, 차마 사람에게 그럴 수 없었다.
기민철의 검날이 스칠 때마다 강삼의 몸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기민철은 자신이 벌인 일이었음에도 그 광경이 끔찍했다.
하지만 강삼은 고통도 없는 듯했다. 표정도 없이 기민철의 공격을 받아내던 그는 순간의 타이밍을 노려 너덜거리는 발로 기민철의 배를 차서 날렸다.
“컥!”
강삼은 기민철이 날아간 것을 확인하고는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아이템을 소환했다. 기민철도 하나 갖고 있는 아이템, ‘게이트석’이었다.
“….”
강삼은 기민철을 무섭게 쳐다보다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검은 회오리와 함께 강삼의 앞에 게이트가 만들어지자, 강삼은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게이트 역시 그대로 사라졌다.
기민철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고, 무엇보다 너무 추웠다.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추위가 기민철을 졸리게 만들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추워진다던데 사실인 걸까.
기민철은 죽고 싶지 않았지만, 추위는 멈추지 않았다.
“기민철 씨.”
그때, 누군가 기민철에게 다가와 옷을 덮어주었다.
지금 옷을 덮어줄 만한 사람은 안수연밖에 없을 텐데, 안수연의 옷이라기엔 좀 큰 사이즈의 옷이었다.
“고맙습니다.”
기민철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무언가 따뜻하고 포근한 연녹색 빛이 기민철을 감싸주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