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수호의 어둠 (1)
던전 밖, 천혜 길드.
기민철이 던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안, 천혜 길드장은 길드의 로비에 앉아 여유롭게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 나오고 있는 방송은 취재 탐사 저널리즘 프로그램, ‘그것을 알아야겠다’로, 천혜 길드장은 그의 왼팔이자 기민철의 형인 ‘기민재’와 함께 방송을 보고 있었다.
이번 방송의 주제는 ‘수호자의 불편한 진실’이었다.
『여러분들은 한국의 위대한 길드이자, 대한의 수호자라 불리는 어떤 길드에 대해 알고 계실 겁니다.』
『대한의 방패, 완전 방어. 그들을 수식하는 단어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만큼 큰 신뢰를 얻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방송의 진행자는 중요한 대목에서 한 템포 말을 쉬었지만, 천혜 길드장은 여유롭게 웃으면서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뒷말을 예측하는 듯한 미소였다.
『그 길드의 길드원들이 ‘깡패’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가 사실은 범죄 이력이 있는 자들이었다면, 우리는 마음 놓고 그들에게 목숨을 맡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들이 숨기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파헤쳐 보려 합니다.』
천혜 길드장은 옆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방송을 보고 있는 기민재를 바라보았다.
기민재는 그 방송을 보며 중얼거렸다.
“수호 길드원들은 깡패라서 다들 머리를 빡빡 밀었나 보네….”
처음 나온 감상이 고작 저것뿐이라는 게, 천혜 길드장이 기민재를 옆에 두는 이유였다. 기민재는 천혜 길드장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보스는 빡빡머리 취향이에요? 전 그래도 머리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 중.”
“너희가 머리를 밀면 귀엽기야 하겠지. 상상해보렴. 민철이는 머리가 없어도 귀여울 거야.”
“빡빡머리 기민왕이라… 좀 역겹긴 하지만, 절 닮았으니 좀 귀엽긴 하겠네요.”
말은 저렇게 해도 기민재는 자기 동생을 끔찍이도 아끼는 형이었다. 그 탓에 기민철만 SS급 던전에 보낸다고 했을 때는 크게 반대했었다.
천혜 길드장에게 설득당해 결국 보내주긴 했지만, 아직도 기민철을 걱정하는 게 보였다.
“철이가 잘 해내고 있을까요.”
말하다 보니 동생이 떠올랐는지, 기민재는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 기민재를 위로해주려는 듯 천혜 길드장의 마수가 기민재의 얼굴을 핥았다.
천혜 길드장은 그런 기민재에게 태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민재야. 네 동생은 네 생각보다 강한 아이란다.”
“철이가 저보다 강한 건 저도 아는 사실인걸요.”
천혜 길드장이 보기엔 기민철과 기민재의 전투 능력은 비슷했다.
그런데 재밌게도, 기민철 역시 종종 천혜 길드장에게 형만큼 강해지고 싶다고 말하곤 했었다.
둘은 서로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천혜 길드장은 그런 둘이 재밌었다.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는 천혜 길드장에게 이 형제만큼은 특별한 존재였다.
“민철이는 보기보다 똑똑하지. 상황을 읽어내는 눈이 빠르고, 적절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아. 스킬을 제외하고서도 강한 아이야.”
“그런가요? 전 잘 모르겠는데.”
보통은 천혜 길드장쯤 되는 사람에게 저런 식으로 대꾸하진 않는다. 특히 눈치 빠른 기민철이라면 곧바로 맞장구를 쳤을 것이다.
그러나 기민재는 가만 보면 겁이라는 걸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물론 그래서 재밌는 거긴 하지만.
눈치가 빠르지만, 겁이 많은 기민철.
눈치는 없지만, 겁도 없는 기민재.
이 정반대 성향의 형제는 천혜 길드장을 즐겁게 만들어줬다.
최근에는 흥미로운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지금 기민철과 함께 던전을 공략하고 있을 이유영.
천혜 길드장은 이유영이라는 보석을 뒤늦게 발견했다는 게 참 아쉬웠다.
원석일 때 발견한 두 형제와 달리, 이유영은 이미 완성된 보석이라 천혜 길드장이 직접 손에 쥐고 굴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슬슬 일어나야겠구나.”
“맞다, 부산 가신다고 했죠? 근데 전 안 데려가세요? 심심한데.”
“길드에 손님이 오면 맞이해줄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니.”
천혜 길드에는 손님이 오지 않는다. 길드의 위치를 아는 사람도 극히 소수고, 온다고 해도 맞이해주는 건 마수와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그러나 단순한 기민재는 천혜 길드장의 말에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은 꼼장어가 맛있대요. 올 때 기념품으로 부탁드릴게요!”
기민재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며 천혜 길드장을 향해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남들이 보면 기겁할만한 광경이지만, 천혜 길드장은 생각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것을 꽤 좋아했다.
“그래.”
천혜 길드장은 그 말과 함께 곧바로 드레이크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부산 길드였다.
***
한편, 부산 길드.
부산 길드의 헌터들은 심각한 얼굴로 TV를 보고 있었다. 이들이 보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수호 길드의 실체에 대해 다룬 방송이었다.
길드장인 노진수는 자리에 없었지만, 부산 길드의 삼인자와 주요 간부들은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렇다면 길드장은 어떻게 이들과 연을 맺게 될 수 있던 걸까요?』
『그건 바로 길드장의 아버지가 비리 경찰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소위 ‘깡패’들에게 돈을 상납받고 범죄를 눈감아주는 일이 빈번해, 징계까지 받았었다고 합니다.』
『그런 아버지를 둔 길드장이 그 깡패들과 함께 세운 길드가 바로 우리들의 수호자인 길드인 겁니다.』
수호 길드에 밀려 3위 자리를 유지하던 탓에, 수호 길드에게 사감이 많은 부산 길드 간부들은 잘난 체하더니 꼴좋다고 비웃었으나, 점점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방송의 수위가 생각보다 심각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는 대놓고 수호 길드의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한국 사람 중 저 방송에서 다루고 있는 길드가 수호 길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게 분명했다.
방송을 가만히 듣고 있던 길드원 중 하나가 못 참겠다는 듯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젠 하다 하다 남의 아버지까지 들먹이고 앉았네! 방송 기획한 놈 대체 누구야?”
“그 꼬맹이가 던전 들어간 사이에 신나게 까대는구만? 야, 이거 우리까지 자존심 상하네?”
심기가 불편한 건 부산 길드의 삼인자, ‘우병삼’도 마찬가지였다.
우병삼은 리모컨을 들어 TV 전원을 팍 꺼버렸다. 갑자기 꺼진 TV에 간부 하나가 당황하며 한마디 했다.
“형님, 갑자기 TV를 끄면 어떡합니까? 잘 보고 있었는데.”
“길드장님 뵈러 가야겠다.”
“갑자기 길드장님을요?”
그 말에 간부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최근, 간부들 사이에선 길드장 접근 금지령이 떨어져 있었다.
부산의 이인자인 김신욱이 멋대로 노진수의 뜻을 어기고 부산 길드를 벗어나, 아예 이유영을 따라 던전까지 들어간 탓이었다. 덕분에 노진수가 있는 대로 화가 난 상황이었다.
그러나 요새 부산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고, 수호 길드도 저런 꼴이 된 것을 보아하니 상황이 기묘하게 돌아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가자. 다들 각오 단단히 해라.”
우병삼의 말에 간부들은 잔뜩 긴장하며 길드장실로 찾아갔다.
우병삼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조심스럽게 길드장실 문을 노크했다.
“길드장님, 저 병삼입니다.”
“…들어와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 노진수의 등이 보였다.
보이는 건 그저 등뿐인데도 엄청난 기백을 뿜어내고 있어 간부들을 더욱 긴장하게 했다.
우병삼은 속으로 신에게 간절히 기도한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 큰일 났습니다.”
“뭔가.”
“지금 어떤 놈들이 수호 길드를 땅바닥에 내리꽂으려고 난리를 피우는 것 같습니다. 방송에서 정하나 아버지까지 들먹이면서 욕하고 난립니다.”
그 말에 노진수는 우병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우병삼을 바라보는 노진수의 표정은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표정만으로 겨우 그깟 일로 날 찾아왔냐고 꾸짖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노진수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해야 할 말은 해야 했다.
“길드장님, 신욱이 그놈 때문에 언제까지 이러실 겁니까.”
“뭐야?”
“이번 기회에 그냥 말해야겠습니다. 대체 왜 그 젊은 애 하나 못 잡아서 안달입니까? 신욱이 걔는 헌터 될 마음이 없는 애입니다.”
우병삼은 마음속으로 신이 자길 지켜주길 간절히 기도하며 속에 담아 두고 있던 말을 꺼냈다.
노진수는 김신욱이 각성했을 때부터 비정상적으로 김신욱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그 탓에 김신욱은 자기 아버지를 더 싫어했고, 간부들은 두 사람의 싸움에 껴서 눈치를 봐야 했다.
김신욱 때문에 길드장이 할 일도 하지 않는다면, 삼인자인 우병삼이 나서야 하는 게 맞았다.
“요즘 대가리 커진 길드들이 협회에 반항적으로 구는 탓에 괜히 우리까지 눈치 보이고 있습니다. 왜 부협회장이 길드장님을 선발대에서 뺐겠습니까? 그나마 신욱이 그놈이 끼어 들어가서 다행이었죠.”
“너 인마, 내가 그 자식 이름 내 앞에서 꺼내지도 말라고 했어, 안 했어!”
“길드장님. 신욱이는 애초에 우리 부산 길드랑 안 맞는 놈입니다. 신욱이는 신경 그만 쓰시고, 길드 일에도 신경 좀 써 주세요. 지금은 부산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길드장님 지시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김신욱의 말을 잠시 빌려보자면, 노진수는 지금 노망난 영감탱이처럼 굴고 있었다.
그러나 부산 길드가 한국을 대표하는 3위 길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노진수의 덕분이었다.
부산 길드는 오로지 노진수의 카리스마에 의해 굴러가고 있었고, 그의 지시가 없다면 움직일 수 없었다.
우병삼은 무섭긴 했지만, 꿋꿋하게 노진수를 설득했다. 지금은 김신욱에게 신경을 끄고 부산에서 일어난 혼란과 수호 길드를 추락시키려 드는 게 누구인지 알아내야 했다.
그러나 노진수는 우병삼의 직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망난 영감탱이처럼 책상을 쾅 내리치며 소리쳤다.
“나가.”
“길드장님!”
“나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
노진수는 옆에 있던 골프채를 휘두르며 간부들을 전부 내쫓았다.
우병삼은 반항했지만, 결국 골프채에 몇 대 맞고서 길드장실에서 내쫓겼다.
간부들은 길드장실 앞에 주저앉아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형님, 시도는 좋았습니다.”
“덕분에 속은 시원했습니다.”
간부들이 우병삼을 위로해줬지만, 우병삼은 심란했다.
길드장을 설득하지 못했으니, 남은 간부들이 어떻게든 이 사태를 해결해야만 했다.
수호 길드가 이대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다면, 이번에 열린 던전을 해결하고 나오더라도 2위 자리를 유지하긴 힘들 것이다. 앞서 달려 나가고 있는 경쟁자의 추락은 반가워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마냥 기뻐만 하기엔 과정이 지나치게 찜찜했다.
하필 수호 길드의 중진들이 전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저런 방송이라니, 타이밍이 너무 교묘하지 않은가.
게다가 부산의 중형 길드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 협회에 불만을 갖는 길드들은 늘 있었지만, 대놓고 표출하는 길드는 강남 길드 말고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지난번부터 묘하게 부산의 중형 길드들을 중심으로 협회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목소리를 조금씩 내기 시작하더니, SS급 던전이 열린 이후로 거슬릴 정도로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간부들은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추측해내지 못했다. 이렇게 머리를 쓰는 건 늘 노진수의 몫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무의미한 회의가 이어지던 중, 길드원 한 명이 곤란한 얼굴로 간부 회의실을 찾아왔다.
“저, 우병삼 헌터님. 길드 앞으로 손님이 찾아왔는데요.”
“당분간 손님은 안 받는다고 말했을 텐데? 얘기하고 돌려보내.”
“그, 그게…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분이 아니어서….”
대체 누구길래 저러나 싶어 우병삼이 나가보려 했으나, 그 손님이 간부 회의실로 들어오는 게 더 빨랐다.
얼굴과 체격을 대부분 가리는 복장, 성별조차 긴가민가하게 만드는 중성적인 목소리, 그리고 상징과도 같은 검은 드레이크.
“다들 고민이 많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계시네요.”
바로 천혜 길드장이었다.
천혜 길드장은 남의 길드에 멋대로 들어와 놓고서도, 비어 있는 의자가 마치 자기 자리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앉았다. 참으로 뻔뻔한 행동이었지만 제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워낙 알려진 게 없는 사람이다 보니 다른 5대 길드의 길드장이나 간판 헌터들에 비해 평가 절하되는 면이 있었지만, 노진수는 종종 천혜 길드장이 제일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말하곤 했었다.
‘속내를 도통 모르겠다고 하셨지.’
확실히 마주하고 나니 노진수의 말이 이해가 갔다. 우병삼 정도 나이를 먹고 나면, 마주하는 사람에게서 여러 가지를 읽어내곤 한다. 그러나 천혜 길드장에게선 그 무엇도 읽어낼 순 없었다.
대체 이런 시기에 왜 찾아온 걸까. 하필이면 지금 노진수를 만나게 해줄 수 없어서 더 심란했다.
“지금 우리는 손님 받을 상황이 아니니 오늘은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우병삼의 말에도 천혜 길드장은 오히려 여유로운 태도로 다리를 꼰 채로 말했다.
“힌트를 드리러 왔어요. 누가 수호 길드를 추락시키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계셨을 것 같아서.”
“뭐야, 어떻게 안 겁니까?”
천혜 길드장은 그저 수상하게 웃을 뿐이었다.
우병삼은 일단 동요하는 간부들을 진정시켰다. 노진수 없이 상대하긴 부담스럽긴 하지만, 일단 지금은 그 힌트라는 걸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우리 부산이 꼭 알아야 하는 겁니까?”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강남과 구원이 손을 잡았는데.”
“뭐라고요?”
“보아하니 두 길드가 작정하고 수호 길드를 무너뜨리려는 것 같은데, 이대로 무너지면… 다음은 부산이 되려나?”
천혜 길드장이 간부들을 쭉 훑으며 도발하는 듯이 말하는 탓에, 간부들은 모두 발끈했다.
“이게 뭔 소리야, 갑자기 찾아와서 뭔 헛소리냐고!”
“강남이랑 구원이 손을 잡았다는 게 진짜야?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우병삼은 제멋대로 떠드는 간부들을 노려보며 책상을 내리쳤다.
쾅!!
“조용히들 안 하냐? 손님 앞에서 무슨 추태냐!!”
아무리 부산 길드 간부라고 해도 천혜 길드장에게 덤빌 짬밥은 아니었다.
천혜 길드장은 여유롭게 그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옆에 있던 드레이크는 섬뜩한 눈빛으로 간부들을 보고 있었다.
간부들이 혀를 차며 자리에 앉자, 우병삼은 천혜 길드장에게 적당히 사과를 건네며 말했다.
“그것 말고도 더 해줄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최근 부산 쪽에서 중소 길드들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 같던데요.”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우병삼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천혜 길드장을 바라보자, 천혜 길드장은 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우선은 중소 길드의 단합부터 경계해야 할 거예요. 그들이 협회에 반항하고 있는 것도 강남 길드의 사주한 일이거든요.”
“강남 길드가 대체 왜 그런 일을 꾸미는 겁니까?”
“그야, 강남 길드는 본인들이 우두머리에 서고 싶어 하니까요. 현 체제를 붕괴시키고 말이죠.”
그 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해서는 부산 길드의 몰락도 필요하다는 말은 천혜 길드장이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우병삼도 충분히 짐작해낼 수 있었다.
지금 천혜 길드장이 준 정보는 부산 길드에게 있어 귀중한 정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왜 우리한테 이런 말을 해주러 온 겁니까? 댁들은 강남 길드랑 사이가 좋지 않았나?”
“남이 깔아둔 판 위에서 춤추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죠.”
천혜 길드장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작 이 말을 해주기 위해 부산까지 찾아온 걸까?
우병삼은 아직 해결되지 않는 의문을 풀기 위해 천혜 길드장을 쫓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문을 열다가 밖에 청승맞게 벽에 문을 대고 앉아있던 노진수와 마주쳤다. 누가 봐도 엿듣다가 걸린 사람의 모양새였다.
“길드장님? 여기서 청승맞게 뭐하고 계세요?”
“시끄러워!!”
노진수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는 천혜 길드장과 잠시 눈을 마주치고는 혀를 차며 밖으로 나오려던 간부들을 다시 회의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우병삼은 어리둥절하게 앉아서 노진수를 바라보았다.
노진수는 방금까지 천혜 길드장이 앉아있던 자리에 앉아,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번에 우리한테 협회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장문의 편지 보낸 놈들 뒤부터 파봐.”
“갑자기요?”
“병삼이 네놈은 수호 길드에 연락해서 안부 인사라도 건네라. 그 고얀 놈들 놀려주기라도 해. 필요하다는 거 있으면 들어나 보고.”
방금까지만 해도 노망난 영감탱이 같았던 노진수는 지금은 정말로 부산 길드장의 이름에 걸맞은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노진수의 지시 아래 상황이 착착 정리되기 시작했다.
상황이 노진수의 생각보다 심각했던 걸까? 아니면 아까 우병삼의 설득이 통했던 건지도 모른다.
우병삼은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대한민국 길드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