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2
12화. 던전 브레이크 (3)
거대한 몸을 일으킨 검은 이무기가 입을 열었다.
『하찮은 인간 주제에 감히… 내 단잠을 깨우는구나….』
놈의 귀를 찢는 듯한 목소리가 거슬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굳이 저런 목소리까지 견뎌주며 몬스터와 대화하는 취미는 없었다. 나는 곧장 녀석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팅!
시험 삼아 해봤는데 역시 C급 무기 정도로는 이놈의 단단한 비늘을 뚫기 어려워 보였다.
이무기는 내 행동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나를 향해 가볍게 꼬리를 휘둘렀다.
놈의 거대한 몸을 감싸고 있는 붉은 아지랑이가 그 가벼운 움직임에도 거대한 열풍을 만들어냈다.
쉬이익!
나는 놈의 꼬리를 피하며 그대로 반동을 이용해 뛰어올랐다.
다시 한번 비늘 사이로 칼을 박아 넣었지만, 어찌나 단단한지 시멘트벽에 나무젓가락을 억지로 꽂는 느낌이었다.
간신히 들어간 칼날조차 밀어내겠다는 듯, 붉은 아지랑이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츠아아악!
엄청난 열기에 몸속에 있는 수분이 단숨에 증발하는 기분이었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생명의 의지가 발동되는 타이밍이 맞춰 곧바로 뒤로 물러섰다.
뒤로 물러나고 보니, 칼끝이 녹아내렸는지 낫처럼 휘어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고 자세를 다시 잡았다.
이런 칼질로는 놈에게 상처 하나 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원하는 건 저 오만한 놈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놈의 ‘약점’을 공략하기 위해선 녀석을 열받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용이 되지 못했다는 백스토리를 갖고 있어서 그런지 속이 좁은 놈이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깟, 장난감으로… 내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놈은 코에서 바람을 뿜어내며 나를 비웃었다.
그러다 돌연, 놈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놈이 환각을 걸겠다는 징조였다.
『그, 건방진 입부터… 닥치게 해주마.』
먼저 말을 걸어놓고 닥치라니, 역시 몬스터라 그런지 상식적인 대화가 안 통한다.
이무기의 눈에서 흉흉하게 뿜어져 나온 붉은 빛이 내 시야를 뒤덮듯이 장악했다.
잡몹이었던 뱀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생생하고 강력한 환각이다.
아마 1차 공략대도 그렇고, 과거의 2, 3차 공략대도 모두 이 스킬에 크게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잔재주는 내게 통하지 않는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 [ 상태 이상, ‘환각’에 저항합니다. ]생명의 의지가 발동되자, 시야가 맑게 트였다.
나는 녀석을 따라 코웃음을 쳐주며, 곧장 땅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라 이무기의 미간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퍽!
C급 헌터의 주먹이라 이놈한텐 간지러운 수준이겠지만, 중요한 건 유효한 데미지를 주는 게 아니고 놈을 열받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피식 웃었다.
뱀들의 왕이라 불리는 이무기께서 감히 하찮은 인간의 주먹이 용안, 아니 뱀안에 꽂혀 화가 제대로 난 것 같았다.
『감히 인간 놈이… 감히 네까짓 것이…!!』
녀석은 나를 먹어 치우겠다는 듯이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아마 나를 한 방에 끝내버리겠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타이밍을 맞춰 입속에 뛰어들었다.
외피가 단단한 놈이라 해서 속살까지 단단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이 녀석의 ‘약점’은 바로 이 안에 있었다.
***
철퍽!
뱀의 입속에 굴러 들어오자, 축축한 뱀의 혀가 기분 나쁘게 움찔거려 속을 뒤집히게 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단검을 단단히 쥐었다.
축축하고 기분 나쁜 것만을 제외하면, 사람을 태워 죽일 것 같은 열기도 없고 공격하기도 좋은 공간이었다.
『하찮은 인간아…. 얌전히 나의 양분이 되거라.』
겨우 뱃속에 넣었다고 나를 이겼다고 생각하는 건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열이 올라있던 목소리가 여유로워져 있었다.
나는 놈의 처지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뱀의 혀끝까지 올라갔다.
인간도 혀를 자르면 과다 출혈로 죽는다. 뱀도 자르면 아프긴 하겠지.
나는 혀뿌리를 잘라낼 심산으로 칼을 움직였다.
『큭, 크아악! 캬아아아악! 무슨 짓이냐…! 당장, 당장 멈추어라…!!』
몬스터의 고통에 찬 비명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그러게 누가 겁도 없이 삼키랬나.
하도 몸부림을 치는 탓에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이대로 있다간 위장으로 굴러떨어져 버릴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혀에서 단도를 빼고 식도에 깊게 찔러 넣었다.
그 상태로 칼을 단단히 잡은 채, 온 힘을 다해 쭉 내리그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하찮은 인간 주제에, 감히, 감히…! 얌전히 내 양분이 되라 하였거늘!!!』
안 됐지만,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다.
놈이 거칠게 움직이는 탓에 내가 낸 상처 부위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나는 칼이 빠지지 않도록 더 깊숙하게 박아 넣으며 뱀의 몸부림을 버텼다.
『캬아아아아아악!!!』
잠시 뒤, 지쳐서 몸부림을 멈춘 건지 정적이 찾아왔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어디선가 무겁게 울려 퍼지는 뱀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나는 소리로 위치를 가늠하며 신중하게 심장이 있을 위치를 찾아 움직였다.
그렇게 속살을 헤집으며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코앞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일반적인 뱀의 심장이라면 붉은색이어야 할 테지만, 놈의 심장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놈의 심장이 품고 있는 여의주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여의주가 놈의 진정한 약점이었다.
아무리 치명적인 일격을 먹여도, 여의주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으면 이 녀석을 쓰러뜨릴 수 없다.
내가 놈의 심장을 향해 단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뱀이 다시 움직이려는 건지 울부짖으며 말했다.
『건방진… 건방진 인간 놈이…!』
동시에 심상치 않은 열기가 느껴졌다.
놈은 열기 능력을 한계까지 올려 내부까지 열을 전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오른 열기는 온몸을 푹 익혀버릴 기세로 공기를 뜨겁고 습하게 데웠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일반인이라면 의식을 잃을 만큼 강력한 열기였지만, 생명의 의지는 내가 쉽게 쓰러지게 두지 않는다.
나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놈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었다.
푹!
쏟아지는 피에서 여의주가 뿜어내는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뜨거운 열기와 피비린내에 모든 감각이 마비될 것 같았지만, 칼질을 멈추진 않았다.
어느새 심장 속에 있던 여의주가 겉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여의주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깡!
‘역시, 생채기도 안 생기는군.’
여의주는 놈의 비늘만큼이나 단단해 조금의 타격도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미 재활성화가 끝난 가능성 스킬을 아껴두고 있었다.
스킬이 발동되자 동시에 몸속에서 상식을 넘어서는 힘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있는 힘껏 주먹을 쥔 주먹을 여의주를 향해 내질렀다.
꽝!!
살짝 금이 가는 정도에서 그쳤길래 다시 한번 주먹을 날렸다.
이어서 발길질을, 그다음엔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꽝!! 꽝!! 꽝!!
곧 여의주의 겉면에 실금이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눈앞에 있는 거대한 구슬을 있는 대로 두들겼다.
그러자 이무기가 미친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캬아아아악!! 하찮은 인간 놈이…!! 감히, 감히!! 이 몸에게 잔재주 따위를…!!』
그와 동시에 나를 토해내려는 건지 꿀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위장에 섞여 있던 분비물이 식도를 타고 오르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단검을 곡괭이처럼 쥐고는 여의주를 향해 마구 내리쳤다.
꽝!! 꽝!! 꽈앙!!
충격이 퍼질 때마다 진동하던 여의주가 드디어 경쾌한 소리와 함께 제대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쩌저적!
조각난 여의주는 형체를 잃고 검은 연기로 변해갔다.
마치 힘을 잃은 여의주가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 검은 연기 자체가 여의주가 변한 모습이었다.
연기에서는 온갖 사악한 것을 압축시켜놓은 듯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연기에 닿은 오른손은 시커멓게 물들었으며, 소매 끝부분이 바스러지며 가루가 되고 있었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시간을 들인다면 연기가 된 여의주를 어떻게든 처리하겠지만, 문제는 나한테 지금 여벌의 옷이 없다.
생명의 의지로 저 독성을 어떻게든 버틴다 해도 전라가 된 채 뱀의 뱃속에서 나오는 결말은 싫었다.
차라리 놈이 나를 토해내려고 하는 지금, 놈의 몸 밖으로 나와 해결하는 쪽이 옷도 지키고 시간도 덜 든다.
나는 서둘러 혈관을 타고 내려와 숨을 크게 들이킨 채, 뱀의 토사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 메인 스킬, 를 발동합니다. ]연기를 피하니까 위액이 날 반겼지만, 다행히 옷은 멀쩡했다.
그래도 배설 기관이 아니라 입으로 다시 나가는 걸 다행이라 여기며 눈을 감았다.
『케헥!』
눈을 뜨니 상쾌한 공기가 나를 반겼다.
놈의 뱃속으로 들어갈 때만 해도 아직 어두웠는데,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지 벌써 해가 뜨고 있었다.
나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처럼 감동적으로 숨을 들이마시다가 바로 옆에 있는 이무기를 확인했다.
괴롭게 토악질하는 이무기를 보니, 열기를 내뿜던 붉은 아지랑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감히, 감히…!! 건방진 인간에게… 천벌을 내리리라…!!!』
나는 조금 물러서서 이무기가 하는 짓을 지켜봤다.
이무기가 발악하며 몸을 뒤틀자, 놈의 여의주가 있던 자리에서 흑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까 여의주가 변하면서 생긴 연기와 똑같은 연기였다.
흑색 연기는 그대로 회오리처럼 이무기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거대한 이무기의 그림자가 무너져 내리며 흑색 연기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아악!!』
시야가 트이자마자 백색의 뱀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방금까지 있던 이무기의 반도 안 되는 크기지만, 내 키의 두 배는 될 법한 크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공격을 피하면서 녀석의 턱 밑에 칼을 박아 넣었다.
푹!
아까와 달리 휘어진 칼도 제대로 박혀 들어갈 만큼 외피가 연약했다.
나는 칼을 직선으로 그어서 빼내며, 녀석의 몸통을 그대로 걷어찼다.
털썩!
나는 쓰러진 놈의 머리를 밟으며 물었다.
“본체는 어디 있지?”
『어떻게…! 인간 주제에… 그 사실을…!』
여의주가 공격당하면 녀석은 허물을 벗어 분신을 만들어낸다.
당연히, 분신인 만큼 녀석은 본체보다 훨씬 약하다. 여의주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몸체도 하얗다.
과거에 쪼개진 여의주가 검은 연기가 되는 것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대로 여의주가 파괴되었다고 착각했었다. 그 때문에, 본체보다 약한 분신이 나타나더라도 사람들은 방심하고 말았다.
본체가 몸을 숨기고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결국 본체의 습격에 당한 사람들은 그대로 양분이 되어 여의주의 회복을 도왔고, 놈은 이 과정을 반복하며 과거 강릉 던전 브레이크의 피해를 대규모로 키웠다.
하지만 허물을 벗는 이 능력은 놈의 여의주가 완전한 상태일 때만 쓸 수 있다.
놈이 사람을 먹어 여의주를 회복하기 전에 처치해야 했다.
나는 머리에 올린 발에 그대로 힘을 주어 놈의 머리를 터뜨렸다.
***
분신이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놈의 흔적을 찾아 따라나섰다.
덩치가 큰 놈이라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는 움푹 팬 자국이 있어서 탐색 스킬을 쓸 것도 없었다.
한참 이어지던 자국은 아스팔트로 된 도로 앞에서 끊겼다.
‘누구지?’
길게 이어지던 도로 한복판에서 전봇대만 한 뱀이 누군가와 대치하는 게 보였다.
운 나쁘게 도로로 빠져나오자마자 곧장 헌터한테 걸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다 잡은 놈을 남이 막타를 치게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나는 기척을 지운 채, 천천히 녀석의 뒤를 노리며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뱀과 대치하고 있던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
아무리 약해졌다지만, A급 몬스터랑 1대 1로 싸울 만큼 용감한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아는 얼굴이었다.
나는 녀석의 뒤를 노리려던 것도 잊은 채 무심코 그 사람을 불렀다.
“고주연 씨?”
활시위에 백색 빛의 화살을 걸고 있던 옛 동료가, 마지막 기억보다 앳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