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침입자
온몸이 무거웠다.
마왕의 자폭에 휩쓸린 탓에 생명의 의지가 무리한 건지,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힘겹게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또다시 던전이었다.
“뭐야?”
분명 소리 내어 말했다고 생각했으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끼며 내 꼴을 살펴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고도 할 수 있고, 볼 수도 있으나, 내 몸은 존재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내가 죽었나 싶었지만, 멍청한 생각이었다. 생명의 의지는 이것보다 더 심한 부상을 입었을 때도 멀쩡하게 잘 살려냈었다.
나는 이전에도 이런 경험을 한 적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마지막 7대죄인 교만을 무찌르고 심연의 천리안을 얻었을 때, 나는 이런 식으로 ‘시선’으로만 존재한 채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을 들여다보았었다.
이번에는 무엇을 보여줄 건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자, 던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이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검기만 한 하늘. 나무 한 그루 없이 검은 바위만 가득한 바위산 속.
이 정도의 특수한 환경이라면, 짐작 가는 던전이 있었다.
바로 ‘블랙 드래곤’이라는 SS급 몬스터가 보스 몬스터로 있는 던전이었다.
‘왜 블랙 드래곤의 던전이지?’
블랙 드래곤은 지금 시기에 등장하는 몬스터가 아니다.
SS급 몬스터인 만큼, 몇 년 뒤에나 나오는 녀석이었다.
나는 기이함을 느끼면서도 시선을 옮겼다.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찬 곳에서 빛이 보이는 곳이 있었다. 그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영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왜 우리와 같이 싸우려고 하지 않는 거야? 우리를 이렇게 막아두는 건 멍청한 일이라고!”
“나도 동의해. 그가 혼자서 SS급 몬스터를 쓰러트린다는 건 자만이라고!”
외국인 두 명이서 누군가에게 따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100명은 되어 보이는 헌터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블랙 드래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저 녀석들의 대화로 미루어 봤을 때, 공략대 중 한 명이 혼자서 블랙 드래곤과 싸우러 간 것 같았다.
그 한 명이 누구인지 추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 둘의 불만을 듣고 있는 헌터가 ‘에덴 길드’의 헌터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블랙 드래곤과 단신으로 싸우는 미친놈이 누군지는 안 봐도 뻔했다.
에덴 길드장, 미카엘.
그 녀석이라면 충분히 SS급 몬스터와 혼자서 싸운다고 해도 남을 놈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에덴이 여기 있는 거지?’
회귀 전, 블랙 드래곤이 나오는 던전은 분명 일본에서 열렸었다.
일본에서 에덴에 공략 지원을 요청한 적은 없었으니, 적어도 회귀 전의 일을 보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게 확실했다.
나는 일단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헌터들은 계속해서 에덴 길드원에게 따지고 들었지만, 그는 헌터들의 불평에 대꾸하지 않았다.
에덴 길드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흰 양복을 입고 있는 녀석은 각 잡힌 자세로 뒷짐을 진 채, 껌을 씹고 있었다.
녀석은 지루해 보이는 표정으로, 공략대의 앞을 가로 막고 서 있었다.
나는 저 녀석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칼단발과 삐뚤어진 갈매기 눈썹은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인상이었다.
이름은 ‘사빈’. 미카엘의 오른팔 역할을 수행하는 녀석이었다.
녀석의 능력은 순간이동으로, 미카엘의 택시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택시라고 하니 하찮아 보이지만, 저래 봬도 녀석의 전투 능력은 나보다도 한 수 위였다.
쭉 훑어봐도 이곳에 있는 100명의 헌터들 중 사빈을 이길 수 있는 녀석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건지, 방금까지 따지고 들던 헌터가 사빈의 멱살을 쥐려 했다.
“내 말을 들어!”
사빈은 녀석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무심하게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꼴사납게 넘어진 헌터는 여전히 껌이나 씹고 있는 사빈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녀석은 씩씩거리며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지만, 사빈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 망할 자식!”
녀석은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벌떡 일어나며 사빈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사빈은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녀석의 주먹을 붙잡았다.
그는 붙잡힌 손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자력으로 빼내지 못했다.
그만큼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결국 다른 공략대원이 그를 말리고 나서야 사빈은 그의 손을 놓아줬다.
이후 공략대는 누구도 사빈에게 불평하거나 따지고 들지 않았다.
전투라고 부를 만한 것도 아니었지만, 모두가 깨달은 것이다.
이곳에서 사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불평해봤자 말을 들어주지도 않을 거란 사실을.
사빈을 넘고 보스 몬스터에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물론 나는 갈 수 있다.
몸도 없는 상황에서 간다는 표현이 적절한가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어쨌든 녀석을 지나쳐 시선을 안쪽으로 옮기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사빈의 눈이 허공을 향했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돌았다. 사빈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정확히 내가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각도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내 시선이 있는 쪽을 쳐다보더니, 곧 기분 탓이라 생각했는지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에덴 녀석치고 평범한 녀석이 없다는 생각이 들던 순간이었다.
나는 녀석이 다시 고개를 돌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시선을 안쪽으로 옮겼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격렬한 전투 소리가 들려왔고, 그 근원지에는 어김없이 녀석이 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전혀 반가운 얼굴이 아니다 보니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내 기분과는 별개로 심연의 천리안이 왜 이 광경을 보여주려 했는지는 짐작이 갔다.
‘악마의 미궁과 동시에 발생했던 던전인 건가.’
미카엘 녀석의 얼굴을 확인하니, 회귀 전보다는 확실히 몇 년 정도 젊어 보였다.
악마의 미궁에 들어오기 전까지 미국에 SS급 던전이 나타났다는 소식은 없었으니, 내가 미궁에 들어간 후 비슷한 시기에 열린 게 틀림없었다.
노린 건 미카엘일 게 분명했다.
오류의 목적은 결국 인류 멸망이다. 지금까진 7대죄와 마왕을 이용해 회귀자인 나를 없애는 데 집중해왔지만, 따지고 보면 이제 겨우 조그만 길드 하나 만든 나보다는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헌터이자, 가장 거대한 헌터 세력의 수장인 미카엘을 죽이는 게 훨씬 더 이득이었다.
무엇보다도 미카엘은 회귀 전, 모든 인간을 통틀어 유일하게 오류를 죽일 뻔한 녀석이니 말이다. 오류가 수를 쓰고 있는 거라면, 저 녀석을 죽일 이유는 차고 넘쳤다.
그러나 블랙 드래곤으로도 녀석을 죽이기는 어려워 보였다.
미카엘은 자신에게 스킬을 걸어 몸을 한도까지 몰아붙인 상태였다. 육체가 한계를 초과해버린 탓인가, 녀석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녀석은 무기 하나 들지 않은 채 블랙 드래곤과 맨손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미카엘의 주먹이 한번 오갈 때마다 단단하기로 유명했던 블랙 드래곤의 비늘이 뜯겨 나갔다.
블랙 드래곤도 SS급의 등급이 허명이 아닌지라, 순순히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공격 하나하나마다 잘못 맞으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먼저 틈을 보이는 쪽이 죽는 게 분명한, 격렬하고도 위태로운 전투였다.
그런 전투를 하면서 미카엘은 광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녀석은 진심으로 전투가 즐거워 보였다. 그런 녀석을 보고 있자니 혐오감이 들 지경이었다.
한참 동안 이어진 광기 어린 전투에서, 먼저 틈을 보인 건 블랙 드래곤이었다.
미카엘은 끝내 드래곤의 심장을 맨손으로 뜯어냈다.
심장을 쥐어서 터트리자, 블랙 드래곤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전투가 끝난 미카엘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머리를 쓸어 넘기고 복장을 정돈하는 것이었다.
이런 곳에서까지 깔끔을 떨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싶었다.
‘어련하시겠어.’
남들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녀석이었다. 최강자에게 걸맞지 않은 모습이라나 뭐라나.
외관을 정돈한 녀석은 공략대에게 돌아가던 중, 문득 자리에 멈춰 서며 중얼거렸다.
“누군가 있군.”
소름이 끼쳤다.
대체 이 녀석들은 몸도 없는 나를 어떻게 감지하는 거지?
그러나 미카엘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공략대를 향해 걸어갔다.
‘보상템은 저 녀석이 독식하겠군.’
블랙 드래곤을 혼자 물리쳤으니, 이 던전에서 나오는 SS급의 방어구가 저 녀석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방어구 아이템이 몇 개 없는 시점에서, 무려 블랙 드래곤의 비늘이 깃든 SS급의 방어구를 얻게 되었으니 에덴의 위상은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저 녀석이라면 그것까지 계산에 넣고 혼자 싸웠을 게 틀림없다.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심연의 천리안이 발동되는 걸 보면 나는 살아있다. 살아있다면 마왕을 물리친 보상으로 진짜 떨어진 샛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화왕검을 마왕이 반으로 부숴버린 탓에 새 무기가 필요했던 참이었다.
회귀 전에도 사용했던 무기를 다시 얻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미카엘의 전투가 종료되자, 시야가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멋대로 발동된 천리안이 종료되는 모양이었다.
곧 깨어날 거라고 생각하며 얻게 될 보상템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시야 속에서 블랙 드래곤의 던전은 이윽고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암흑만이 펼쳐졌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도, 바닥도, 전부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드디어 단둘이 되었네. 안녕?』
“뭐?”
목소리는 분명 나한테 말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 기분 나쁜 음성은 분명히 몬스터의 목소리였기에,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류의 짓인가? 아냐, 그 녀석의 목소리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어.’
그 순간,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녀석이 다시 말을 걸었다.
『아쉽지만 난 네가 생각하는 ‘그’가 아니야.』
“…너도 오류의 부하냐?”
『만나면 알 수 있을 거야. 곧 만나자. 네 애완동물이 생각보다 질기게 쫓아와서, 아쉽지만 이대로 헤어져야겠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오류 말고도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녀석이 존재한다는 건가?
‘그런 게 가능한 녀석이 있나? 시스템 정도 말고는….’
설마 녀석이 말한 애완동물이 화신을 말하는 건가.
의문은 쌓여만 갔지만, 더 이상 녀석은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 대신, 내 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 이유영, 어서 일어나요! ] [ 누군가 이유영이 정신을 잃은 사이에 정신세계에 침입하려 하고 있어요! ] [ 시스템이 막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요! ]이 말투는 분명 화신이었다.
나는 녀석에 침입자가 누구인지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 보이질 않으니 대화가 불가능했다.
깨어나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심연의 천리안이 종료되지 않았다.
나는 출구가 없는지 둘러보다가 생각을 바꿨다.
만약 내가 아직도 잠을 자고 있는 상황이라면 깨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짝!
***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어김없이 병원의 흰 천장이었다.
내 뺨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고통이 이곳이 현실임을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