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이유 길드의 바람 (1)
어떻게 여론을 뒤집어야 할지 방법은 그려지긴 했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찾진 못했다.
업계 1위인 구원 길드와 막대한 자산을 가진 강남 길드가 손을 잡은 만큼, 상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선은 우리 편을 늘려야 한다는 게 그나마 내린 결론이었다.
“우선은 회복에 집중해요. 퇴원해야 기자회견이라도 열죠.”
“…기자회견은 안 엽니다.”
“농담이에요.”
안수연은 웃으면서 내게 명함 하나를 건네줬다. 천혜 길드장의 명함이었다.
이름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흰색 종이에 천혜 길드의 마크가 은박으로 새겨져 있었고, 작게 번호가 하나 적혀 있었다.
안수연은 다시 후드를 눌러쓰며 말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우린 이만 가볼게요.”
“틈나면 또 올게!”
두 사람은 다시 얼굴을 꽁꽁 싸맨 후, 병실에서 나갔다.
나는 두 사람을 병실 문 앞까지 배웅해준 뒤, 침대 위에 앉았다.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나니 병실은 조용했다.
‘우리 편이라….’
남아 있는 5대 길드는 부산과 천혜 둘이다.
부산 길드는 거리도 멀고, 이번 던전 건으로 나나 수호 길드에 유감이 있을 게 분명하니, 힘을 빌리기 어려울 것이다. 애초에 마땅한 연줄도 없고 말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연줄이 있는 김신욱도 부산 길드장한테 대차게 혼나고 있을 테니, 뭔가 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역시 천혜 길드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천혜 길드장을 설득하려면 우선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명함에 적힌 천혜 길드장의 번호를 눌러, 곧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이유영입니다. 한번 만났으면 합니다.」
천혜 길드장 역시 우리 편에 서서 보는 손해는 없다. 수호 길드의 이미지가 실추되긴 했지만, 이번 던전에서 큰 명성을 얻은 내가 수호의 편이다.
충분히 얘기해볼 만한 상황이니, 아마 늦지 않게 답을 줄 것이다.
.
.
.
그러나 내 확신이 무색하게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지만, 천혜 길드에선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내가 퇴원할 때까지 천혜 길드장에게서 온 연락은 아무것도 없었다.
천혜 길드장은 내 문자를, 씹었다.
***
‘왜지?’
분명 내가 아직 잠들어 있을 때 천혜 길드장은 기민철과 함께 날 보러 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간 기민철에 대해서도, 천혜 길드장에 대해서도 아무런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천혜 길드가 워낙 신비주의인 탓에 그 명함 말고는 연락해볼 방법도 없다.
나는 윤지석이 태워주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계속해서 왜 천혜 길드장이 답을 주지 않는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윤지석은 능숙하게 운전하며 내게 물었다. 윤지석이 몰고 있는 차는 구지상의 붉은 스포츠카였다.
그 차의 주인은 뒤에 앉아서 진준성이 가르쳐줬다던 핸드폰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내 퇴원 수속을 도와준 후, 함께 차를 타고 길드로 돌아가고 있었다.
“뭐, 차가 멋지다… 이런 생각 했습니다.”
“말에 영혼이 없구만. 이제 산더미처럼 쌓인 일 처리해야 해서 심란한가 보죠?”
“네.”
내 솔직한 대답에 윤지석이 웃었다.
남이 심란하다는데 웃다니. 나는 차 창문을 열며 천혜의 도움을 얻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기로 했다.
차 안에선 구지상이 하는 게임의 BGM만이 울렸다.
윤지석은 조용한 차 안이 심심했는지, 구지상에게 말을 걸었다.
“구지상 씨는 뭔 게임을 그렇게 열심히 해요?”
“빈칸에 알맞은 영어 단어를 찾지 않으면, 제 캐릭터가 목이 잘리는 무서운 게임이에요.”
“그거 진준성이 알려준 거죠? 걔가 추천하는 게임 다 이상하다니까요.”
말만 들으면 고3이 현실도피용으로 하기 좋아 보이는 게임이긴 했다.
20대인 전직 아이돌, 현직 대한민국 1위 헌터가 할 만한 게임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구지상은 윤지석의 말을 웃어넘기며 핸드폰을 껐다. 백미러 너머로 나를 슬쩍 확인하고 있는 게, 녀석이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게 보였다.
아까부터 구지상이 내 눈치를 보고 있던 건 알고 있었지만, 일단 모른 척하고 있었다.
뭔진 모르지만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넓은 아량으로 기다려 줄 생각이었다.
마침 구지상은 지금이 딱 말을 꺼낼 타이밍이라 생각한 건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이유영 씨. 저도 이유 길드에서 지내고 있는 거 아시죠?”
“압니다.”
“괜찮으세요?”
나는 고개를 돌려 구지상을 바라봤다.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혼자 지내던 곳에 얹혀사는 게 걸리는 듯했다.
고작 이것 때문에 그렇게 눈치를 본 건가?
솔직히 자기는 던전에 못 가서 어쩌고 할 줄 알고 모른 척하고 있었던 거라, 좀 어이없었다.
생각해보니 구지상은 아직 나이도 어린 20대 청춘이다.
영웅이니 뭐니 떠받들어지느라 애늙은이처럼 굴 때가 있지만, 이런 걸 보면 영락없는 어린놈이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며 말했다.
“대학교 때 기숙사에서 지내던 거 생각나고 좋겠네요.”
나는 누가 있든 말든 신경 안 쓰는 편이라서 딱히 상관없었다.
이대로 구지상이 구원 길드를 나와 이유 길드에 완전히 정착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이득이다.
정 붙어서 길드원이 되어주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었다.
지금 내 명성이 길드에 비해 커진 것에 반해, 이유 길드는 길드원이 적다는 이유로 까이고 있다.
만약 구지상이 우리 길드원이 된다면, 더는 길드원이 적다고 욕하지 못할 것이다.
구지상 한 명만으로 몇백 명의 헌터의 전투력을 보유한 길드가 될 테니 말이다.
“구지상 씨, 전에 우리 길드 오라고 말했던 거 진심입니다. 그냥 눌러앉아도 되니까 있고 싶을 때까지 있으세요.”
“구원 버리고 이유 길드 오기? 벤x 버리고 똥차 타는 거 아니에요?”
“똥차도 아니고 자전거입니다. 친환경적이고 좋죠.”
윤지석과 내가 나누는 대화에 구지상이 웃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저 녀석 나름대로 생각이 복잡할 것이다.
구지상은 한참 뒤에야 한마디를 꺼냈다.
“고맙습니다.”
아직은 그 이상의 말을 하긴 어려운 듯했다.
어쨌든 아까보단 쓸데없는 고민이 하나 줄어든 것 같았다.
이후 우리는 침묵을 유지하며 길드에 도착했다.
윤지석은 능숙하게 차를 주차했고, 구지상은 내가 입원하며 생긴 짐을 들었다.
환자는 아직 쉬어야 한다며 멋대로 들고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 덕에 나는 빈손이었다.
오랜만에 길드에 돌아온 김에 길드 건물을 찬찬히 보고 있었더니, 주차를 마치고 온 윤지석이 내 어깨를 툭 쳤다.
“오랜만이죠?”
“그렇네요.”
“지금은 사람이 없는데, 이유영 씨 던전 깨고 온 다음부터 기자들 엄청 많이 몰려왔어요. 주민한테 민원 신고 들어오고, 난리도 아니었다니까. 내가 그거 다 내쫓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나는 잠시 윤지석을 쳐다봤다.
내가 입원해 있던 내내 간호하며 옆을 지켜준 게 윤지석이라고 들었다.
게다가 내 탓에 발생한 자질구레한 문제들도 전부 해결해준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어우, 그런 말 하지 마요. 징그럽게.”
나도 이 이상 하는 건 징그럽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윤지석에게 건넸다. 이쪽이 더 와닿는 감사 인사일 것 같았다.
“한도 없습니다. 쇼핑이라도 다녀오세요.”
“이 사람 좀 봐, 내가 뭘 살 줄 알고 한도 없는 걸 줘요?”
“뭘 사도 피아노보단 충격이 덜할 것 같습니다.”
피식 웃은 윤지석이 내 어깨를 시원스럽게 툭툭 쳤다.
윤지석은 카드를 내 주머니에 도로 넣으며 말했다.
“사실, 이유영 씨 보호자 노릇 하면서 서류 떼다가 가족 사정을 알아버렸어요. 여태 난 이유영 씨가 어디 부잣집 아들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이제야 이유영이라는 사람을 쬐끔 알았구나 싶더라고요. 솔직히 반성도 했고.”
병원에 입원 수속을 하다가 내 가족 사정에 관해 알게 된 듯했다. 뭐, 세상엔 나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회귀자가 아니었다면 부잣집 아들이라고 오해될 만큼의 돈은커녕, 한 푼도 없던 게 내 인생이었다.
나는 어쩐지 답하기가 어려워서 윤지석이 돌려준 카드나 꺼내 봤다.
“앞으로는 이런 방식으로 말고, 대화로 알아가자고요. 너무 바쁘게 살지만 말고!”
“…알겠습니다.”
“들어가 보세요. 난 산책 좀 하다가 들어가야겠다.”
윤지석은 나를 가볍게 밀고서 걸어갔다.
나는 윤지석의 뒷모습을 한참 보다가 길드 안으로 향했다.
솔직히 윤지석이 쇼핑을 즐기고 올 거라고 생각했다. 윤지석만큼이나 나도 저 사람에 대해 모른다. 우리는 우연히 만나 고작 몇 달 알고 지냈을 뿐이다.
아직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대화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만큼 내 인생이 녹록지 않았다.
문득 안수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 지금 가장 대화가 필요한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 고주연일 것이다.
나는 길드 안으로 들어가, 고주연을 찾았다.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위층에서 훈련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고주연은 훈련장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곧장 훈련장으로 가서 안을 들여다봤다.
내 마지막 기억과 다르게 새로운 장비들이 많이 구비되어 있었다.
고주연은 한쪽에 있는 양궁 훈련장에서 화살을 쏘는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나는 훈련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 잠시 고주연이 화살을 쏘는 모습을 지켜봤다.
장비는 대체로 신식이었는데, 고주연이 화살을 쏘는 과녁만 어딘가 낡아 보일 정도로 사용감이 있었다.
고주연의 활 역시 교체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낡아 보였다.
탕!
고주연의 손에서 떠나간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을 뚫고 들어갔다.
고주연은 내가 온 걸 알아챘는지, 활을 천천히 내리며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퇴원 축하해. 고생했네.”
“고주연 씨야말로 길드장 없는 길드 지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응.”
나는 고주연의 근처로 가서 바닥에 앉았고, 고주연 역시 활을 내려놓고서 자리에 앉았다.
나는 잠시 낡아 있는 고주연의 활과 보호대를 바라봤다. 지난 던전에서 고주연이 얼마나 많은 활을 쐈는지 그 장비들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이번 던전은 어떠셨습니까?”
“좋은 경험이었어.”
고주연은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안수연이 우려했던 것처럼 나 때문에 걱정을 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고주연이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고주연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지나치게 닳아있는 저 과녁뿐이다.
나는 던전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 천천히 말했다.
“마지막에… 무리한 부탁을 떠맡겨서 미안합니다.”
고주연은 평범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아까처럼 고저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넌 해야 할 일을 한 거야.”
“고주연 씨는 제가 죽을까 봐 무섭진 않으셨습니까?”
잠시 고주연의 표정에서 ‘그걸 아는 놈이 그러냐’는 무서운 얼굴이 스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난 네가 죽을 각오로 싸운 거 알아. 그 각오를 고작 내 기분 때문에 무시하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사과하지 마.”
“혼날 줄 알았는데 쿨하시네요.”
“혼날 걸 알면 이런 말 하지 마.”
고주연은 얕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활을 들고 과녁을 향해 서서,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다.
“약한 사람은 쉽게 무서움에 빠지는데, 난 약하고 싶지 않아. 너도 내가 약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무리한 부탁도 하잖아.”
“고주연 씨는 약하지 않습니다.”
“그거면 돼. 앞으로도 그렇게 날 믿어.”
순간, 고주연에게서 회귀 전 고주연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신념의 화살의 주인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견고한 사람이다. 안수연의 우려는 타당했지만, 고주연은 그런 걱정이 필요한 사람은 아니었다. 고주연에게 필요한 건 사과가 아닌, 신뢰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나보다 준성이한테 신경 써. 너 때문에 계속 울더라.”
어른들은 알아서 이겨낼 힘이 있다. 하지만 진준성은 다르다.
시계를 보니 슬슬 청소년이 하교할 시간이었다.
“저녁은 준성이랑 둘이 먹고 오겠습니다.”
“그래.”
나는 고주연에게 짧게 인사하고 진준성에게 연락했다.
오랜만에 바깥 공기도 마실 겸, 진준성의 학교까지 산책이라도 해보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던전을 공략한 이후 처음 하는 외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