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3
13화. 던전 브레이크 (4)
해외 훈련이 이틀 정도 남은 새벽.
원래대로라면 컨디션 관리를 위해 잠들 시간이었지만, 고주연은 그날따라 어쩐지 불안한 느낌이 들어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던 중, 갑자기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
액정에 뜬 번호는 모르는 사람의 번호였으나, 고주연은 이 전화를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여보세요?”
『응, 주연아, 엄마야.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연락해서 놀랐지?』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익숙한 엄마의 목소리에 고주연은 조금 당황했다.
훈련 중에는 방해가 된다며 절대로 연락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새벽에 연락하다니? 그것도 모르는 번호로.
“엄마? 무슨 일이야?”
『새벽에 연락해서 미안해. 그런데 지금 연락 못 하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왜? 무슨 일인데 그래?”
『엄마는 무사한 곳에 있으니까, 뉴스 보고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훈련 무사히 끝마치고 와. 알았지?』
“무슨, 소리야, 엄마? 뉴스라니? 무사한 곳이라니?”
『마무리될 때까지 이쪽으로 오면 안 돼. 알았지? 빌린 핸드폰이라 빨리 돌려줘야 해서 엄마는 이만 끊을게. 사랑한다, 우리 딸.』
“…여보세요? 엄마? 엄마!”
고주연이 뭐라 더 캐묻기도 전에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
고주연은 곧바로 전화를 다시 걸었으나,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안내 음성만 들려올 뿐이었다.
단순히 핸드폰 주인이었던 이유영이 충전을 깜빡한 탓에 전원이 나간 것뿐이었지만, 상황을 모르는 고주연한테는 그저 더없이 불길한 징조로만 느껴졌다.
얼마 안 있어 고주연의 불안한 예감이 실현이라도 된 것처럼, 코치가 고주연의 고향에 A급 규모의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당장, 당장 비행기를….”
“진정해, 주연아. 이제 막 기사가 떴을 뿐이야. 아직 사망자도 없어.”
“아직 없는 것뿐이잖아요! 그러다 늦기라도 하면….”
“지금 네가 간다고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 헌터들이 잘 해결해 줄 거야. 그러니까….”
그 말에 고주연은 3년 전, 최초의 던전 브레이크를 떠올렸다.
죽을 뻔했던 그 날, 아무것도 못 하고 있던 자신.
그런 무력한 경험을 다시 겪고 싶진 않았다.
만약 이대로 엄마를 잃기라도 한다면, 그땐 정말 지독한 자기혐오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전 갈 거에요.”
고주연의 두 눈에서 굳은 결심을 읽어낸 코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내가 설득한다고 천하의 고주연이가 고집을 꺾을 리 없지. 너 인마, 내가 코치여서 고마운 줄 알어. 내일 아침에 비행기 뜨는 대로 예매해줄 테니까 그거 타고 가.”
그렇게, 고주연은 그날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와 곧장 강릉으로 향했다.
***
도착한 마을은 입구부터 조용했다.
붉고 기분 나쁜 열풍이 불어오는 데다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지역을 봉쇄하는 바리케이드만 처져 있을 뿐, 지키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꼭 아포칼립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분위기였다. 누가 보더라도 더 이상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러나 고주연은 심호흡을 한 번 내뱉은 후, 등에 메고 있던 활과 화살을 꺼냈다.
자신이 헌터는 아니었지만, 몬스터가 달려들면 화살로 대가리를 꿰뚫어 줄 자신은 있었다.
고주연이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기던 중,
“끄아아아악!!”
어디선가 고통에 찬 비명이 들려왔다.
고주연은 곧바로 그곳을 향해 뛰어갔다.
어머니를 찾는 것도 급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험에 처한 누군가를 외면할 수도 없었다.
“……!”
도착한 곳에서 고주연이 목격한 것은 거대한 흑색의 뱀이었다.
배만 기묘하게 부푼 전봇대만 한 뱀이, 검은 비늘을 섬뜩하게 빛내며 입을 쩍 벌린 채로 사람을 삼키고 있었다.
검은 양복과 선글라스를 쓴 사람은 상반신만 간신히 뱀의 입 밖으로 내민 채로 버티고 있었다.
그는 들고 있던 긴 검으로 입천장을 찔러 미끄러져 들어가는 걸 버티고 있었지만, 이 이상 버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의 팔 한 짝이 뜯어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고주연은 뱀과 싸우고 있는 사람의 복장을 보고, 그가 헌터 협회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가 헌터라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
“도망치세요!!”
고주연을 본 헌터 협회원은 거의 외치듯이 말했다.
그의 말과 동시에, 협회원을 삼키는 데 집중하던 뱀도 고주연을 인식했다.
『인간이, 또… 제 발로 먹이가 되러… 찾아왔구나.』
흉흉하게 빛나는 뱀의 두 붉은 눈이 고주연에게 향했다. 그러자, 고주연은 자신의 시야가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헌터 협회원이 발악하듯이 칼을 치켜올렸다.
팔 하나를 잃고, 까딱하면 뱀의 먹이가 될 상황이었음에도 그는 고주연을 살리려 들었다.
“절대로 뱀의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도망치세요!!”
뱀에게 반쯤 먹힌 협회원의 모습과 뱀의 기묘하게 부푼 배를 봤을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저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상식적으로라면 당장 도망치는 게 옳았다.
헌터도 이기지 못한 몬스터를 어떻게 민간인이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고주연은 그대로 발을 옮기는 대신,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뭘 도망쳐요? 당신은 살아남을 생각이나 하세요.”
탕!!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쏘아낸 화살은 정확히 뱀의 머리를 맞추고 들어갔다.
『캬아아악!』
뱀은 입을 크게 벌리며 괴성을 쏟아냈다.
그 덕에 뱀에게 반쯤 삼켜졌던 협회원은 무사히 입속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협회원은 몸 곳곳에 상처를 입고 떨어져 나간 팔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으면서도, 그 꼴로 고주연을 지키겠다며 비틀거리고 다가와 고주연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그의 무기로 보이는 긴 칼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헌터 협회는, 신입한테, 너무 많은 일을 시키는 것, 같습니다….”
볼품없지만 용기 있는 모습이었으나, 때로는 용기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었다.
기력이 다한 헌터 협회원은 그대로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구경하던 검은 뱀은 고막을 신경질적으로 긁는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학! 한심하구나… 인간은 한심해…. 그래, 이렇게 한심한 것이… 바로 인간이지.』
뱀은 붉은 두 눈을 번뜩이며 고주연을 응시했다.
그 붉은 눈 너머로 고주연은 자신의 죽음을 엿보았다.
그러나 고주연은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민간인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자신이 이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한 사람의 목숨을 더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부정하는 것은, 고주연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다.
그것이 바로 고주연의 신념이었다.
그렇기에 고주연은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도 다시 한번 화살을 꺼내 활시위에 걸었다.
“죽는 건 내가 아니라 너다, 뱀 새끼.”
고주연이 화살을 쏘아 올리자, 뱀은 가소롭다는 듯이 꼬리를 휘두르며, 화살을 막고 그대로 고주연을 날려버렸다.
퍽!!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커헉……!”
고주연의 입가로 핏물이 흘렀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활을 당길 두 팔은 멀쩡했다. 고주연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다시 활을 겨눴다.
뱀은 그런 고주연의 행동에 코웃음을 치고는 두 눈을 붉게 빛내며 말했다.
『한심하구나, 한심해…! 그 한심한 삶… 내가 직접 끊어주마…!!』
고주연의 시야에 다시 붉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소음이 고주연의 귓가를 어지럽혔다.
눈앞에 있는 뱀이 점차 흐릿하게 형체가 흐드러져 갔다.
그러나 고주연은 피식 웃었다. 이런 방해쯤은 가소로웠다.
“멍청하긴…. 이런 훈련을 내가… 몇 번이나 했는 줄 알아?”
고주연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정확하게 자신의 목표를 겨누고 있었다.
고주연이 대한민국 국가대표 양궁 선수로서 극한의 훈련을 해온 탓도 있었지만, 이대로 놈에게 당할 수 없다는 고주연의 굳건한 의지가 뱀의 환각에 저항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분명 말했다… 죽는 건 내가 아니라 너라고, 이 뱀… 새끼야…!”
고주연의 화살이 뱀의 붉은 눈을 정확하게 맞추어 들어갔다.
『캬아악…! 감히 이 내게……!』
그러나 화살을 급소에 두 발이나 맞았는데도 뱀은 전혀 쓰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주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렇다면 이 뱀의 약점은 다른 곳일지도 몰랐다.
『이 어리석은 것이… 감히…!!』
화가 뻗친 뱀은 쏜살같이 움직여 고주연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러나 고주연에게는 놈의 공격을 피해낼 만한 힘이 더 이상 없었다.
고주연은 그대로 뱀의 꼬리에 머리를 맞고 날아갔다.
“크윽!”
고주연이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사람이 너무 아프면 순간적으로 감각이 사라진다고 했던가.
온몸에 감각이 없었다. 그러나 고주연은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한번, 비틀거리는 팔을 들어 활을 잡고 화살을 걸어, 뱀에게 겨눴다.
“딱 기다려, 이 새끼야…. 내가 뱀술로 담가버릴 테니까…!”
『얌전히 내 양분이나 되어라!!』
뱀은 고주연을 그대로 삼킬 기세로 아가리를 벌리며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오는 뱀을 보며 고주연은 생각했다.
‘나도 헌터였다면, 저놈을 죽일 수 있었을 텐데.’
3년 전 그날, 최초의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날.
무력했던 고주연은 간절히 바랐었다. 헌터가 되어 놈들을 해치울 힘을 얻고 싶다고.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이 각성했던 날이었지만, 자신은 끝끝내 각성하지 못했다.
어쩌면 자신은 헌터의 자질이 없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3년 전 그날처럼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사절이다. 헌터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조금이라도 발버둥 칠 힘이 남아있는 한, 고주연은 끝까지 맞서 싸울 생각이었다.
“난 우리 엄마를 만나러 온 거지… 죽으러 온 게 아니야…!”
그 순간, 시린 달빛처럼 차갑게 타오르는 불꽃이 고주연의 화살을 뒤덮었다.
고주연이 잡은 활은 마치 초승달처럼 은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앞에 푸른 창이 하나 떠오른다.
[ 당신의 신념에 시스템이 응답합니다. ] [ 당신의 신념은 결코 길을 잃지 않는 화살이 되어 재탄생합니다. ] [ 메인 스킬, 이 생성되었습니다. ]“…!”
고주연이 놀랄 새도 없이, 헌터만이 갖는다는 헌터의 상징, ‘상태창’이 연이어 떠올랐다.
[ 상태창 ]이름: 고주연
종합 능력치: B
– 공격력: A
– 방어력: C
– 민첩: B
보유 스킬 목록
– 메인 스킬:
– 서브 스킬:
드디어 자신도 각성했다는 긍정적인 감정. 왜 이제서야 각성했냐는 부정적인 감정.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감정에 매몰되어 있을 틈은 없었다.
눈앞의 뱀은 여전히 위협적이었으니까.
고주연은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놓았다.
손끝을 떠난 은빛의 화살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뱀의 머리 한가운데에 정확히 박혔다.
뒤이어, 고주연의 화살로부터 퍼져나간 하얀 불길이 뱀의 대가리를 휘감았다.
그러나 뱀은 여전히 살아서 고주연을 향해 소리쳤다.
『이… 하찮은 인간이!!! 당장 씹어 먹어주마!!!』
그 순간,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뱀이 돌연 뒤를 돌았다.
동시에 누군가 고주연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주연 씨?”
녹색의 점퍼를 입고 있던 남자는 배가 부풀어 오른 뱀과 고주연을, 그리고 옆에 쓰러져 있던 헌터 협회 직원을 차례대로 바라봤다.
남자는 엉망진창인 꼴에 칼끝이 이상하게 휜 단검을 들고 있었지만, 상처는 하나도 없었다.
‘헌터…?’
남자는 고주연이 들고 있는 은빛의 활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하여간에, 역시 될놈될이라니까.”
그리고는 고주연의 옆에 쓰러져 있던 협회원에게 다가갔다.
남자의 손에 갑자기 녹색 빛이 떠올랐다. 그 손을 협회원에게 가까이 대자, 협회원의 몸 역시 녹색 빛으로 휘감겼다.
협회원의 팔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순식간에 멈추었다.
남자가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이, 방금까지만 해도 고주연을 향해 위압감을 뿜어내던 뱀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뭐야, 언제 튀었어?”
뒤늦게 도망가는 뱀을 본 남자는 여유롭게 뱀을 쫓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뱀을 순식간에 따라잡은 남자는 말 그대로 뱀을 후드려 팼다.
힘이 얼마나 센지, 한 대 칠 때마다 거대한 종을 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떵! 떵! 떵!
그것도 모자라 뱀의 입을 강제로 벌리더니, 스스로 그 안에 들어갔다.
그 미친 짓에 놀란 고주연이 달려가려던 순간, 뱀의 배 속에서 수상한 소리가 났다.
마치 거대한 구슬이 깨지는 듯한 소리였다.
쨍!!
『키아아아아악!!』
순식간이었다.
고주연을 죽음으로 몰아넣던 뱀이 무력하게 힘을 잃고 쓰러지며, 재가 되어 사라졌다.
남자는 흩날리는 재 속에서 사람을 몇 명 업고 걸어 나왔다.
“이 새끼, 그새 많이도 처먹었네. 아, 고주연 씨는 어디 다친 곳… 이 많으신 것 같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쓰러진 헌터 협회원 옆에 업고 온 사람들을 눕힌 남자는 다시 한번 손에서 녹색의 빛을 뿜어냈다.
연한 새싹 잎 같은 따뜻한 빛이 사람들을 감싸자, 쓰러진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남자는 일어서서 고주연에게 악수를 청하듯이 손을 내밀었다.
고주연은 그 손을 떨떠름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음, 일단 고주연 씨가 회복된 다음에 얘기할까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손을 내밀었다.
낯선 사람이긴 했지만, 일단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었다. 미심쩍긴 했지만 적어도 악수 한 번 한다고 해서 큰일 나진 않을 것이다.
고주연이 남자의 손을 붙잡자, 남자의 손에서부터 뻗어 나온 녹색 빛이 천천히 고주연의 몸을 감쌌다.
방금까지만 해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망가진 곳들이 하나씩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부러진 뼈가 하나하나 수복되었으며, 피가 터져 나온 곳은 자연스럽게 지혈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마비되었던 감각이 살아나면서 고통이 따랐지만, 그것마저도 찰나였다.
다 나았다는 기분이 들었을 때, 남자가 물었다.
“헌터가 되셨습니까?”
분명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남자는 고주연이 익숙해 보였다.
이상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