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꼭두각시 (1)
기민재의 너튜브 방송에 출연한 후.
강남 길드의 추악한 행위가 낱낱이 드러나게 되면서, 강남 길드는 대중들의 분노를 사고 말았다.
한이경은 1분대 분대장을 자수시켜 전부 그의 단독 범행인 것처럼 몰았지만, 국민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 배후에 한이경이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분노한 사람들은 강남 길드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강남 길드 내에서도 이런 길드에서 더 일할 수는 없다며 자발적으로 길드를 나오는 이들도 많았다.
이대로라면 한이경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한이경은 순순히 무너지지 않았다.
『이번 1분대 분대장이 일으킨 사건에 대해, 제 아랫사람이 일으킨 일인 만큼 저 역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TV에서는 한이경이 송구스럽다는 표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었다. 연기력도 상당히 수준급인지, 한이경의 말투나 표정 하나하나가 정말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녀석도 알고 있을 것이다. 고작 이 정도 쇼로 대중들의 성난 마음을 달랠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한이경이 과연 무슨 수를 쓸까 싶어 TV를 지켜봤다.
『말 뿐만으로는 제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부로 모든 일의 책임을 지고 강남 길드장의 자리를 사임할 예정입니다. 제가 가진 지분은 모두 길드원들에게 공평히 분배할 예정이며….』
처음 저 말을 들었을 땐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온갖 비열한 방법을 써서 경쟁자를 짓밟고, 심지어 협회까지 적으로 돌리면서 힘을 거머쥐려는 녀석 아니었던가.
그런 녀석이 잘못했다고 순순히 쥐고 있던 권력을 놓겠다니.
뭔가 꼼수를 부릴 거라 생각했으나, 녀석은 정말로 그다음 날 곧바로 강남 길드장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대중들의 지지를 잃고, 강남 길드에 실망한 헌터들도 하나둘씩 빠져나간 와중에, 길드 내 최강자인 한이경까지 사임하고 난 강남 길드는 사실상 쭉정이나 다름없었다.
사실상 대한민국 5대 길드 중 하나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런 한이경의 행보에 여론은 두 갈래로 갈렸다.
한쪽은 정말로 반성한 거 아니겠냐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은 자기 살길을 마련해서 저러는 거라 주장했다. 참고로 나는 후자에 동의하는 쪽이었다.
아무튼 한이경이 꿍꿍이가 있건 없건, 길드장 자리를 사임하는 모습이 대중들에게는 꽤나 통했는지, 당장이라도 한이경을 잡아다 죽일 것 같던 살벌한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았다.
한이경의 꿍꿍이에 대해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
한이경이 강남 길드장 자리에서 내려온 후 며칠 뒤.
가볍게 개인 훈련을 마친 후 잠깐 쉬려던 중에 의외의 인물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다.
「이용건」
내가 깨어난 후, 이용건이 문자를 주긴 했지만 그 이후로 따로 연락한 적은 없었다.
일단 내가 수호 길드 건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데다가, 해결이 된 후에는 구지상이 우리 길드로 오는 바람에 연락하기가 더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갑자기 연락을 준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마침 구원 길드 상황도 궁금했던 터라, 나는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이유영 씨. 이용건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제가 먼저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요새 정신이 없었군요.”
『하하, 괜찮습니다. 그래도 바쁜 일은 얼추 끝나셨을 것 같은데, 혹시 오늘 시간 있으십니까? 괜찮으시면 저랑 술 한잔하시죠.』
꽤나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자연스럽게 구원 길드 상황을 캐보기 좋은 기회였다.
이용건이 어떻게 지냈는지도 궁금하고 말이다. 마침 오늘은 시간도 널널했다.
“알겠습니다. 어디서 만날까요?”
이용건이 나를 부른 곳은 구원 길드 근처에 있는 맥주 전문점이었다.
술을 마시기엔 조금 이른 시간에 부른 터라, 가게 안은 텅 비어있었다.
“여깁니다, 이유영 씨!”
내가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자, 구석 쪽 파티션이 쳐져 있는 한적한 자리에서 이용건이 손을 흔들며 나를 불렀다.
나는 이용건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이용건 씨. 그나저나 5시부터 호프집이라니, 속 타는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일단 술부터 시키죠. 이유영 씨 말대로 제가 얘기하려면 속이 타서 말입니다.”
우리는 각각 맥주 한 잔과 안주로 모둠 소세지를 시켰다.
맥주는 곧바로 나왔다. 서리가 끼어 있는 얼음잔에 가득 담긴 맥주는 보기만 해도 6월의 이른 더위를 날려줄 것만 같았다.
“이유영 씨 퇴원 기념으로 건배나 한 번 할까요.”
“그러죠. 늦었지만 공략대 전원 무사 귀환도 겸해서 말입니다.”
아직 안주도 나오기 전이었지만, 우리는 곧바로 잔을 부딪쳤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유리잔이 맞부딪힌 후 곧바로 맥주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쌉쌀한 맛이 혀끝에 감돌다 목 너머로 내려가는 시원한 청량감 덕분인지, 오면서 흐른 땀도 전부 마르는 기분이었다.
잔을 내려놓자마자, 이용건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참, 이유영 씨가 나온 너튜브 영상 봤습니다. 이유영 씨 덕분에 수호 길드가 명예 회복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저도 마음이 편치 않았거든요.”
던전에서 며칠 동안이나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이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욕을 먹고 있었으니, 이용건도 심정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들 많이 도와준 덕분입니다. 정하나 길드장이 힘낸 것도 컸죠. 구지상 씨도 그렇고요.”
“구지상 씨는 역시 대단하더군요. 만약 저였다면, 길드장님의 비리를 알았어도 그렇게 행동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용기가 없어서요?”
“그것도 있지만… 그냥, 정든 곳을 떠나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니까요.”
“구지상 씨도 고민이 많았던 것 같더군요. 아니었으면 저희도 좀 더 쉽게 꼬셔냈을 겁니다.”
“하하, 구지상 씨는 잘 지냅니까?”
“네, 뭐. 아주 완전히 적응했습니다.”
나는 그간 구지상의 행보를 떠올렸다. 우리에게 이유 길드로 들어오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뒤, 구지상은 그날부로 완전히 이유 길드에 눌러앉았다.
이미 짐 싸 들고 와서 객식구로 지내던 시절부터 길드원들과 친해졌다 보니, 완전히 녹아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게다가 완전히 마음을 정리해서 그런지 묘하게 눈치 보던 것도 사라져서 이제는 거의 제집처럼 지내고 있었다.
“구지상 씨라면 그럴 것 같았습니다.”
이용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마침 타이밍 좋게 주문했던 모둠 소세지도 나온 덕분에, 이용건은 곧바로 하나 집어 먹었다. 나도 하나 집어 먹어보니 과연 수제 소세지라 그런지 맛이 훌륭했다. 나는 소세지 두 개를 해치운 뒤, 이용건에게 물었다.
“그래서 뭐 때문에 그리 속이 타셨습니까? 혹시 제가 구지상 씨 빼 와서 그런 겁니까?”
진짜로 그런 거라면 나를 불러서 술을 마시자고 하자고 하진 않았을 테니, 나는 반쯤 농담 삼아 이용건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용건은 부정하지 않고 다시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설마, 진짜입니까?”
“굳이 따지자면 시작점이기는 합니다.”
순간 내가 이용건에게 사과라도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용건이 황급히 정정하고 나섰다.
“아, 이유영 씨를 탓하려고 한 말이 아닙니다. 그냥 시작점이 거기라는 것뿐입니다.”
“그럼 뭐 때문에 그런 겁니까?”
“강남 길드가 해체된 소식은 이유영 씨도 들으셨죠?”
“요즘 TV만 틀면 그 얘기니까요. 제 손으로 묻어버리기도 했고.”
굳이 이 시점에서 강남 길드 얘기를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던 순간,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구원 길드에서 한이경을 받아줬습니까?”
내 질문에 이용건은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려 부길드장으로 삼겠다고 하더군요. 한이경뿐만 아니라 다른 강남 길드 헌터들도 전부 우리 쪽에서 받아주고 있습니다.”
한이경이 대체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강남 길드를 해체한 건가 했더니, 박이원과 미리 얘기를 해뒀던 건가. 하긴, 이미지가 나락에 처박힌 강남 길드를 끌어안고 가는 것보다야, 구원 길드의 부길드장 자리를 차지하는 게 훨씬 낫긴 했다.
“그래도 구원 길드 헌터들이 반발이 심할 것 같은데요.”
“왜 아니겠습니까. 길드에서도 난리가 났습니다. 당장 오늘도 분대장들끼리 모여서 항의하고 오는 길입니다.”
이용건이 속상한 표정으로 맥주를 들이켜는 걸 보면, 항의 결과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납득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박이원 길드장은 왜 한이경을 받아준 겁니까? 장기적으로 보면 이득이 될 리가 없는 판단일 텐데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누구보다 이미지 메이킹의 중요성을 아시는 분이 말입니다. 아니, 한이경이 구지상 씨 대신이라는 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살인 교사자가 대한민국 영웅을 대신한다는 겁니까?”
이용건은 답답하다는 듯, 남아있던 맥주를 순식간에 비워냈다. 아무래도 한 잔만으로는 이용건의 타는 속을 가라앉힐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맥주 한 잔을 추가로 주문했다.
이용건은 추가로 온 맥주 반 잔을 더 비워낸 후에야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덕분에 지금 소식 듣고 나가겠다는 헌터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저도 여기 오기 전까지 사직서 내겠다던 저희 분대원들을 말리고 오는 길입니다.”
“그 정도로 난리가 났으면 박이원 길드장도 마음을 돌릴 만할 텐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구지상 씨가 나가고 꼭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길드 전력이 부족해도 그렇지, 살인 교사자를 들일 분까진 아니었는데….”
나는 속상해 보이는 이용건을 위로해줄 겸, 맥주잔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이용건은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내 잔에 자신의 잔을 맞부딪혔다.
“그래도 이용건 씨는 구원 길드에 계속 남아계실 생각인가 보네요. 분대원들 설득까지 하시는 걸 보면.”
“그러게요. 차라리 저도 그냥 떠나버리면 마음이 편할 텐데, 아무래도 정이 많이 들었나 봅니다. 길드가 이 지경이 돼도 다른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질 않네요.”
아무래도 박이원은 인복이 많은 모양이었다.
제발 정신 차리라고 자기가 쌓아온 모든 걸 버리고 나온 구지상도 있고, 이 지경이 되도 나오질 못하겠다는 이용건도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상황이 바로 바뀌진 않을 것 같은데요.”
“일단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면, 한이경도 언젠가 틈을 드러내지 않겠습니까? 그때 기회를 잡아채서 길드에서 몰아내야죠.”
과연, 사냥꾼다운 말이었다.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이용건같이 노련한 헌터라면 분명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힘들어서 때려치우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말씀 하세요. 이용건 씨처럼 실력 있는 헌터라면 이유 길드에서도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하하, 아무리 그래도 구원 길드에서 그런 조그만 길드로 이적하기는 좀….”
“그거 무슨 뜻입니까? 구지상 씨의 선택을 무시하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구지상 씨는 언제나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늘 제가 못 하는 선택을 하시니까요.”
이용건은 겨우 이제야 표정을 피며 가볍게 웃고 있었다. 어쨌거나 기분은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이용건과 다시 한번 잔을 부딪친 뒤, 맥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나는 박이원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인복이 많은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구지상이나 이용건 같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마음을 쓰는 걸 보면, 박이원이 살인 교사자를 감쌀 정도로 인성에 문제 있는 사람은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박이원이 보여주는 행보는 한국 1위 길드를 손수 키워낸 길드장의 판단력이라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낼 수 있는 결론은 간단했다. 아무래도 한이경이 박이원에게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