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꼭두각시 (1)
구지상이 방송에 출연시켜달라고 부탁한 날.
구지상은 마지막으로 구원 길드장을 설득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그와 만났다.
그날, 구원 길드장 박이원의 인생은 돌이킬 수 없이 뒤바뀌게 된다.
***
박이원은 아침 일찍부터 차를 몰고 한강으로 향하고 있었다.
구지상이 할 말이 있다며 한강 근처로 불러냈기 때문이었다.
박이원은 불안했다.
구지상이 아이돌로 활동하던 시절, 박이원은 구지상을 데리고 한강 근처에 종종 갔었다. 인적도 드물고 CCTV도 없어서, 카메라 울렁증에 시달리던 구지상을 위로해주기 딱 좋은 장소였다.
둘만의 추억이 남은 장소에 박이원을 불러냈다는 건, 심각한 얘기를 할 게 분명했다.
벌써 6월인데도 아침이라 그런지 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비가 오려는지 구름이 껴있어서 날도 흐릿했고 바람은 차가웠으며, 강가에서 풍기는 물비린내가 훅 끼쳐왔다.
박이원이 도착했을 땐 이미 구지상이 와 있었다. 심란해서 30분이나 일찍 온 건데 구지상은 그보다도 더 일찍 온 듯했다.
“….”
구지상은 습관처럼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커피 한 잔을 박이원에게 건넸다.
박이원은 커피를 받아들며 물었다.
“이거 또 디카페인이지?”
“응.”
박이원은 샷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호했으나, 구지상은 항상 박이원에게 따뜻한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사다 줬다.
박이원은 그럴 때마다 투덜거리면서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이번에도 박이원은 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커피를 마셔야 했다.
“왜 불렀어? 이제 가출 관두고 돌아오려고?”
박이원이 빈정거렸지만, 구지상은 여느 때와 같이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초조한 박이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지상이 입을 열었다.
“형, 지금이라도 수호 길드에게 사과하고 그만두면 안 될까?”
“또 그 얘기야?”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돌아갈게.”
박이원은 웃었다. 웃을 얘기가 아니었지만, 웃음이 나왔다.
구지상이 길드를 나가겠다는 말이라도 할 줄 알고 긴장했는데 그게 아니어서 웃었던 것 같다.
구지상이 어린애라서 아직도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린 박이원은 구지상의 말을 그저 어린애의 고집으로 치부했다.
만약 이때 구지상의 얘기를 진지하게 듣고 사과하겠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박이원은 구지상에게 찬찬히 설명했다.
지상아, 이건 친구 놀음이 아니야. 지금 여기서 수호 길드를 밟아두지 않으면 안 돼.
생각해 봐. 이유영이 지휘를 맡았다고 해도 던전 공략을 주도한 건 수호야.
사람들은 무조건 수호가 SS급 던전을 해결했다고 생각할 거라고.
수호 길드가 단숨에 우리를 위협할 만큼 치고 들어올 거야.
네가 아니라 정하나가 영웅이 되는 건 순식간이야.
나도 길드는 지켜야 할 거 아냐. 안 그래?
이건 친구 놀음이 아니야. 형은 해야 할 일을 한 거다.
“….”
구지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초조해진 박이원은 계속 변명했다.
너 협회가 수호 애들 밀어주는 거 몰라?
부협회장은 이번 기회에 수호를 1위로 올리려는 거야. 그래야 협회의 힘도 커지니까.
우리 구원을 밀어내려는 거라고.
지상아, 나는 진짜 길드랑 너를 지키려고 이렇게 하는 거야.
“….”
구지상은 계속해서 말없이 듣기만 했다.
박이원은 변명을 계속했다. 구지상을 납득시키기 위해 숨이 찰 만큼 말했다.
더 이상 변명거리가 남아있지 않을 때쯤, 가만히 듣고만 있던 구지상이 물었다.
“형, 던전 들어간 지 얼마나 됐지?”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박이원의 말문이 막혔다.
길드 운영이 바빴던 박이원은 꽤 오랫동안 던전에 들어가지 않았다.
박이원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구지상이나 길드원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던전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이원이 놀고만 있던 건 결코 아니었다.
아무리 구지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구원 길드가 쉽게 1위 길드의 자리를 거머쥘 수 있었겠는가?
박이원이 길드 운영에 온 힘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갑자기 무슨 던전? 너 설마, 지금 나한테 던전 안 들어가고 놀고만 있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
박이원은 변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구지상이 던전에 있을 동안 자신이 어떻게 길드를 키워왔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이원의 말을 들은 구지상은 여전히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박이원의 눈에는 어쩐지 힘이 빠진 것처럼 보였다.
구지상은 준성이 말이 맞았다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 박이원에게 말했다.
“형, 다시 한번 말할게. 잘 들어줘.”
“지상아.”
“수호 길드에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면 나 구원 길드에서 나갈 거야. 이거 협박인데, 그래도 사과 안 할 거야?”
순간적으로 분노가 차올랐다.
협박. 협박이라고. 네가 지금 나한테 협박이라고 한 거야?
목 끝까지 말이 차올랐으나, 박이원은 인내심을 발휘해 튀어나오려던 말을 눌러 넣었다.
구지상을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만들어낸 건 박이원이다.
모든 구원 길드원이 인정하는 사실이었으며, 심지어 장본인인 구지상마저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 사실은 박이원의 자부심이었다.
다른 길드장들은 박이원의 마케팅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구지상이라는 존재를 부러워했다.
그래서 박이원은 오해하고 있었다.
구지상은 박이원이 만들어낸 존재이니, 구지상은 결국 자기 말을 들을 것이고 구원에서 떠날 수 없다.
영웅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낸 박이원은 자신이 프레임 속 인물까지 만들어냈다고 오해했다.
그 오해는 와해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상아, 네가 구원 길드 나가도 여전히 영웅일 것 같아? 너 이따위로 해놓고 나가면 배신자 되는 거 순식간이야.”
“날 배신자로 만들기 싫으면 형이 수호 길드에 제대로 사과해줘.”
“야, 구지상!”
박이원은 소리를 질렀다.
차오른 분노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성은 분노에 휘둘렸고, 박이원의 입에서는 구지상을 깎아내리는 말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아니었으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다양하게 포장해서 악담을 퍼부었다.
박이원은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이유영이 너한테 이렇게 말하라고 시키든? 아니면 정하나가 시켰냐? 그 치사한 새끼들이 방법이 없으니까 하다 하다 널 붙잡고 늘어졌나 보지? 여기서 더 바닥을 찍어봐야 관두려나?”
“형.”
“너 당장 그 말 취소 안 하면 내가 그 새끼들 다시는 헌터 생활 못 할 정도로 묻어버리는 수가 있어. 정하나는 이미 끝났지? 이유영도 똑같이 만들어줄까?”
박이원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터진 입이 계속해서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이유영 그 자식 캐보니까 과거 화려하더만. 대학 졸업식에 던전 브레이크 터져서 그 새끼 하나 살아남았다며. 어떻게 걔 혼자 살아남았을까? 그때도 치사하게 굴어서 살아남았나? 이거 언론에 풀어서 장난질 쳐주면 이유영 걔도 매장되는 거 순식간이야.”
박이원은 입을 다물었다.
이성이 천천히 돌아오며 이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했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차가워지다 못해 심장까지 싸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분노가 걷히자, 시야가 제대로 트이기 시작했다.
눈앞의 구지상이 무슨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이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박이원은 그냥, 수호 길드를 견제해서 구원을 1위로 견고히 남게 하려던 것뿐이었다.
이유 길드 같은 소형 길드까지 매장할 만큼 파렴치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트릴 만큼 박이원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 그럴까?
박이원은 구지상을 보며 알 수 있었다. 지금 내뱉은 말로 인해 구지상이 어떤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말이란, 본디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다.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
“형.”
구지상은 화를 내지 않았다. 차라리 화를 내고 싸웠다면 박이원이 이런 기분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구지은 쓸쓸해 보이는 얼굴로 박이원을 불렀고, 강가의 바람처럼 사무치는 웃음소리를 냈다.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박이원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명백한 실망이었다.
구지상은 박이원에게 뭐라 하는 대신, 딱 한 마디만 할 뿐이었다.
“내가 미안해.”
그 말을 끝으로 구지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
아무도 없는 강가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박이원에게 남은 건, 손에 들린 디카페인 커피뿐이었다.
***
박이원은 밤이 될 때까지 하루 종일 차에 앉아, 멍하니 한강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둘이 각성자가 된 후, 함께 길드를 세우자고 결심할 때까진 괜찮았다.
구지상의 능력이 범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박이원은 정말 잘 키워주고 싶었다.
아이돌 생활할 때처럼 힘들지 않게, 이번만큼은 스타가 되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둘이 세운 길들을 투자해줄 수 있는 외국 길드의 손을 빌렸다.
아시아에서 제일 큰 길드인 ‘만성 길드’. 만성은 구지상이라는 인재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박이원의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투자해줬다.
그러나 만성은 과도할 정도로 구지상한테 관심을 보였다.
어쩌면 구지상을 빼앗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박이원은 만성의 라이벌인 에덴과 친목을 쌓기 시작했다.
미카엘은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만성을 견제하기엔 좋은 인연이었다.
두 길드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박이원은 투자금을 많이 끌어내 구원을 국내 1위 길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고작 매니저나 할 때는 몰랐지만, 구원 길드를 운영하면서 경영에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뛰어난 경영 능력은 구지상을 스타로 만들 수 있었다.
문제는, 구지상은 단 한 번도 스타가 되고 싶어 한 적이 없었다는 걸 오늘에서야 깨달았다는 것이다.
여태 구지상을 위해서 해왔다고 생각한 일들은 전부 박이원 자신의 욕심일 뿐이었다.
과욕을 부린 결과, 박이원은 구지상을 잃었다.
이제 박이원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구지상이 없는 구원 따위,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박이원이 자책의 끝을 달리던 때, 전화가 울렸다.
혹시나 구지상일까 해서 서둘러 핸드폰을 확인한 박이원은 화면을 보자마자 환멸이 났다.
전화한 사람은 강남 길드장이었다.
박이원은 짜증스럽게 거절 버튼을 눌렀다.
하필이면 자기랑 손잡고 수호 길드를 끌어 내리자고 제안한 사람이 이 타이밍에 전화를 거는 게 열받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박이원이 탄 차의 차창을 두드렸다.
“구원 길드장님, 그렇게 대놓고 제 전화를 무시하시면 곤란합니다.”
박이원은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차창 밖에는 박이원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강남 길드장이 있었다.
강남 길드장의 뒤로는 강남 길드 1분대장과 3분대장, 그리고 10명 정도 되는 헌터들이 더 있었다.
차창을 두드리는 강남 길드장의 손에는 검은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꼭,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말이다.
박이원은 헛웃음이 나왔다.
하필 이곳은 CCTV가 없는 곳이다. 도로와도 떨어져 있어서 지나다니는 차나 행인을 발견하기도 어려웠다.
구지상을 위해서 골라냈던 이 장소가, 박이원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강남 길드장 한 명이라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저렇게 많은 헌터들 앞에선 승산이 없었다.
도망쳐야 했다.
박이원은 그대로 액셀을 밟아 군단을 차로 밀치고 탈출하려 했다.
하지만 한이경의 행동이 더 빨랐다.
한이경의 지시에 헌터들은 박이원의 차를 붙잡아 나가지 못하도록 완력으로 밀어냈다. 차가 나아가지 못하는 사이, 한이경은 차창을 주먹으로 깨부쉈다.
박이원의 머리채를 잡은 한이경이 말했다.
“멍청한 새끼가. 어딜 뛰려고.”
“너 미쳤냐?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글쎄. 구지상도 없는 구원 길드장이 뭘 할 수 있으려나.”
구지상도 없는 구원 길드장. 남들 눈에도 박이원에겐 구지상이 전부이긴 했나 보다. 순간적으로 무력감이 들었다.
그 때문에, 박이원은 한이경의 움직임에 대응하지 못했고, 한이경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메인 스킬인 ‘꼭두각시’를 발동했다.
한이경의 스킬이 제대로 먹혀들며, 박이원은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것이 박이원의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