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꼭두각시 (2)
구원 길드 부길드장실.
길드장실 옆에 급하게 마련된 공간이었으나, 처음부터 구원 길드에 부길드장이 존재했던 것처럼 한이경은 자연스럽게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짜증으로 가득했다.
한이경은 ‘한이경 부길드장’이라고 새겨진 명패를 보다가, 장식장을 향해 집어 던졌다.
와장창 소리가 나며 유리가 깨지고, 명패는 바닥에 떨어지며 볼썽사납게 구르고 있었다.
산산조각 난 유리를 보며 씩씩대던 한이경은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구지상을 잃은 구원 길드장을 ‘꼭두각시’로 만든 것까진 완벽했다.
친협회파인 수호 길드도 인망을 잃고 무너지고 있었고, 남부의 중소형 길드는 반협회를 외치며 시위하는 중이었다.
이제 강남과 꼭두각시가 된 구원이 들고 일어서면 협회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분명 그랬을 터였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이런 상황이다.
강남 길드는 통째로 무너졌고, 강남 길드의 1분대장까지 잃었다.
얻은 것에 비해 잃은 게 너무 컸다.
한이경은 부길드장실 한쪽에 놓인 알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 계획이 어그러진 건 전부 다 천혜 때문이다.’
한이경은 그 누구보다 천혜 길드장을 용서할 수 없었다.
한이경의 계획을 듣고서 배신을 한 탓에 한이경이 이렇게 무너진 것이다.
천혜만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무너지지 않았다.
이유처럼 작은 길드의 길드장이 장난질을 쳐봤자 한이경을 무너트릴 수 없었다.
수호 길드 역시 발악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였다.
구지상이 성정상 그쪽으로 붙을 건 이미 예상한 일이었고, 배신자 프레임을 씌워서 나락으로 빠트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천혜가 이유영과 구지상이 발언할 공간을 만들어줬고, 수호에게 무력을 빌려줬다.
무엇보다 큰 건, 그 영악한 천혜 길드장이 부산 길드를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부산 길드가 움직이면서 한이경의 계획이 모두 틀어졌다.
무시하고 있었던 부산 길드의 영향력은 한이경의 예상보다 훨씬 컸다. 부산 길드장은 반협회 사상이 중부까지 확산되는 걸 막았고, 반협회 세력은 국민들을 선동하지 못했다.
그 탓에 한이경이 협회를 무너트릴 기반이 사라졌다.
‘그 개 같은 새끼들 때문에…!’
그런 와중에 안수연이 청부 살인 헌터의 근거지를 잡아냈다.
진작에 태우라던 서류 하나 파기하지 못한 등신 때문에 일이 커졌다.
1분대장에게 ‘꼭두각시’ 스킬을 걸고 자수하게 만들어 어떻게든 해결했지만, 청부 살인 헌터들까지 모조리 협회에 잡혀 들어가고 말았다.
번거로운 뒤처리를 도맡아 하던 그들을 잃은 타격은 상당했다.
그러던 중, 이유영이 장난질을 쳐서 여론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 미친놈이 한이경을 저격한 것이다.
대중들에게 강남 길드는 천하의 개새끼라는 낙인이 찍혔고, 그 탓에 한이경은 강남을 버려야 했다.
결국 한이경은 신윤현과 강남 길드의 헌터들을 구원으로 이동시켰다.
구원 길드원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었지만, 구지상도 빠진 구원에 신윤현이 생긴 상황이라 찬성하는 세력도 있었다.
정 안 되면 그놈들을 이용해 정치질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긴 했지만, 그래도 천혜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다.
한이경은 부서진 장식장 사이에 있던 알을 집어 들어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런데 부서질 거라고 생각했던 알이 먼지가 되어 바스러졌다. 마치 처음부터 텅 빈 깡통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설마, 이유영이 준 알에는 마수가 있었고, 자신에게 준 알은 처음부터 먼짓덩어리였던 건가?
‘감히 날 농락해?’
분노에 찬 한이경은 먼지 더미를 발로 쾅쾅 짓밟았다.
죽여버리겠다. 그 개새끼들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고 죽여버릴 것이다.
한이경은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직도 그 정도의 힘이 남아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때, 한이경을 더욱 몰아세우는 문자가 도착했다.
발신인은 한이경이 그 누구보다도 증오하는 인간인 부협회장, 서정현이었다.
「한이경 씨, 증거를 너무 많이 남기진 마세요.」
‘이 새끼는 또 뭐라는 거야?’
이미 1분대장이 한이경 대신 모든 죄를 안고 잡혀 들어간 상황이다.
남아있는 증거 따윈 없었다.
그러나 저지른 죄가 많은 한이경은 문자를 보며 그간의 일을 곱씹어야 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부길드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길드장, 아니, 부길드장님!”
강남 길드의 2분대장인 유태오가 경우 없이 문을 열고 한이경을 불렀다.
안 그래도 짜증스러운데 유태오의 얼굴을 보니 화가 더욱 치밀었다.
뭐라고 윽박지르려던 때, 유태오가 다급히 말했다.
“지금 부산에 있는 중형 길드에서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뭐요?”
“서정현이 부산에 내려와서 시위 선동자를 찾고 있다고 도와달라고 하던데요. 하도 헛소리를 하길래 끊었는데, 혹시 아시는 거 있으세요?”
서정현이 부산에 있다고?
순간적으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뱀 새끼가 결국 선을 넘은 것이다.
한이경은 깨진 유리 조각을 더 짓밟아 깨부수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난장판이 된 부길드장실과 한이경의 웃는 모습을 본 유태오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려 했다.
그러나 한이경이 그를 불러 세웠다.
“유태오 분대장.”
“나, 나가려던 게 아니고요. 그, 바빠 보이셔서, 예.”
유태오가 필사적으로 변명했지만, 한이경은 광기 어린 얼굴을 하고서 그에게 다가갔다.
문을 걸어 잠근 한이경은 스킬을 발동하며 말했다.
“당신, 사람 죽이는 일 할 수 있죠?”
***
수호 길드가 물증을 잡아내고, 이유 길드가 명예를 실추시키고, 천혜 길드가 부산 길드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면, 협회는 강남 길드에 의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잘 짜인 판이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서정현은 김상엽에게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김상엽은 속으로 곤란해하며 얘기를 들었다.
서정현은 피곤한지, 지금 이 말만 세 번째 반복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김상엽은 서정현에게 눈이라도 붙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서정연이 다시 입을 열어서 관뒀다.
“부산의 상황이 그만큼 심상치 않았습니다. 제가 너무 뒤늦게 알아차린 탓입니다.”
저 말도 벌써 세 번째였다.
김상엽은 포기하고 서정현의 말을 들었다. 부협회장의 말을 일개 팀장이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정현은 왜 부산의 상황이 심상치 않았는지 또 설명했다.
반협회의 물결은 남부에서 그쳤다. 협회의 대응이 늦어지는 동안, 부산 길드가 움직인 덕이었다.
부산 길드는 반협회 시위 자체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위대가 스킬을 써서 주변에 피해를 입힐 정도로 시위를 벌일 경우엔 협회에 힘을 보태줬다. 덕분에 협회 부산 지부를 향하던 시위대의 공격도 큰 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중립을 유지하던 부산 길드의 움직임은 상당한 여파를 일으켰다.
부산 길드는 부산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
부산이 살짝만 협회를 도와주자마자 반협회파가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질 정도였다.
그 덕에 협회는 순조롭게 반협회 세력이 퍼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만약 부산 길드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협회가 상당히 힘들어졌을 것이다.
사태가 나아지긴 했으나, 뒤늦게 부산 쪽으로 파견 온 김상엽과 서정현은 며칠간 계속 야근했다.
오늘도 여전히 야근이었다.
이어지는 야근 탓인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서정현은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김상엽 팀장이 이걸 제대로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이제부턴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식구니까요.”
서정현이 말하는 프로젝트는 협회에서 극비로 진행하고 있는 ‘G-131544’라는 프로젝트였다.
서정현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목적은 한이경을 체포하는 것이었다.
김상엽은 처음에 당황했다.
서정현과 한이경의 사이가 나쁘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로젝트까지 진행하는 건 이상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내용을 들은 김상엽은 생각이 바뀌었다.
한이경은 헌터와 민간인 모두에게 스킬을 쓰며 위법을 저지르고 있었다.
한이경의 스킬, ‘꼭두각시’는 몬스터의 육체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강력한 능력이다.
그런데 이 스킬을 사람에게 사용할 경우, 육체가 아닌 정신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한이경은 여태 이 능력을 상류층 사람들에게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그 덕에 강남 길드는 한국 4위 길드까지 오를 수 있었고, 부자 길드라는 명성을 얻었다.
여기까지 알게 된 김상엽은 여태 한이경을 체포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서정현은 그 스킬은 외부인이 무리하게 풀면 스스로 목을 찔러 풀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킬을 풀어주려다가 자기 목을 찔러 성대를 잃은 이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모은 증거들로는 한이경을 완전히 잡아넣기엔 빠져나갈 구멍이 많았다. 그만큼 교활하고 치밀한 자였다.
그래서 이 반협회 세력을 파헤치는 게 중요하다고 서정현은 말했다.
이 세력의 중심인물이 한이경의 스킬에 걸려 있을 게 분명하다면서.
확고하게 말하는 서정현에게 김상엽은 물었다.
‘근거가 있습니까?’
‘아뇨, 감입니다.’
이때부터 김상엽은 존경하던 부협회장 서정현도 그냥,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협회장이 부협회장 얘기를 잘 안 들어주는 이유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서정현은 김상엽의 생각보다 과격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타입이었다.
지금도 서정현은 부산 길드장의 사진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반협회 세력의 중심인물을 알아내려면 노진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말이다.
부산 길드장은 이미 부협회장의 도움 요청을 몇 번이고 거절했다.
그런데도 서정현은 포기하지 않고, 노진수를 설득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한참 노진수의 사진을 쳐다보던 서정현은 다시 한번 말하기 시작했다.
“수호 길드가 물증을 잡아내고, 이유 길드가 명예를 실추시키고, 천혜 길드가….”
“부협회장님. 그 얘기가 벌써 네 번째입니다.”
세 번까진 어떻게든 견딜 수 있었지만, 네 번까진 무리였다.
김상엽이 사실을 말하자, 서정현은 꽤 벙찐 얼굴로 김상엽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자기도 네 번이나 같은 말을 한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찾아왔다.
서정현은 침묵을 유지한 채로 여러 관계도가 그려진 보드 중, 노진수의 사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김상엽도 강제로 그 보드를 보고 있어야 했다.
그 상태로 정적이 지속되자, 김상엽은 그냥 네 번을 듣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그때, 김상엽을 구원해주듯 서정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서정현은 여전히 보드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전화를 받았다.
“예, 서정현입니다.”
그런데 통화하던 서정현의 표정이 갑자기 눈에 띄게 밝아졌다. 뭔지는 몰라도 좋은 소식이라도 들은 것 같았다.
뭔지는 몰라도 김상엽은 일단 안도했다. 이 불편한 정적이 계속되진 않을 것 같았다.
전화를 끊은 서정현은 뿌듯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김 팀장님, 드디어 방법이 생길 것 같습니다.”
“무슨 방법 말입니까?”
“부산 길드장이 우리를 도와주게 할 방법 말입니다.”
아무래도 부산 길드를 염탐하던 협회원이 뭔가 정보를 알아낸 것 같았다.
부협회장은 급히 겉옷을 걸치면서 나갈 준비를 하며 말했다.
“부산 길드장이 김신욱 헌터를 길드에 가둬놓고 있었는데, 방금 길드에서 도망쳤답니다.”
“가둬놓고 있었다고요?”
“네. 창문 깨고 탈출했다고 하네요. 김신욱 헌터는 부산 길드보다 우리가 먼저 잡아야겠습니다.”
김상엽은 서정현을 따라 나갈 준비를 하면서도, 이게 맞는 방법인지 고민했다.
하지만 김상엽이 말린다고 해서 서정현이 말을 들을 것 같진 않았다.
결국 김상엽은 서정현과 함께 김신욱을 잡으러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