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부산 길드, 헌터 김신욱 (3)
웜홀을 통과해 도착한 곳은 협회 부산지부의 응접실이었다.
서정현은 곧바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대신, 김신욱의 몰골이 말이 아니라며 직원 샤워실을 쓰라고 했고 옷도 빌려준다고 했다.
신난 김신욱을 김상엽 팀장이 데리고 나간 터라 지금 부협회장과 단둘이 응접실에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서정현은 김신욱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이 나가자, 서정현은 소파에 앉아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나흘이나 밤을 새웠다고 했으니, 잠깐이라도 잠을 청하려는 듯했다.
단둘이 남은 지금이야말로 이용건의 이야기를 전해줄 최적의 상황이었다.
나는 졸고 있는 서정현에게 말했다.
“할 얘기가 있습니다.”
“뭔가요?”
서정현은 눈도 뜨지 않고 대꾸했다.
졸고 있어서 목소리가 반쯤 잠긴 상태였다.
“한이경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방금까지 졸고 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녀석은 곧바로 눈을 뜨고는 또렷한 눈과 청명해진 목소리로 재촉하듯 말했다.
“말해보시죠.”
녀석의 두 눈에는 어떤 광기가 돌고 있었다.
눈이 어쨌든 간에, 서정현은 한이경을 붙잡아줄 수 있는 녀석이다.
나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가 좀 깁니다. 구원 길드원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말을 서두로, 이용건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세히 전달했다.
구원 길드장이 한이경을 부길드장으로 세웠다는 것,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을 하며 한이경을 두둔한다는 것.
그리고 오랫동안 같이 일해온 구원 길드원이 그가 이상하다고 확신한다는 것.
아무래도 한이경이 구원 길드장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것 같다고 얘기했다.
서정현은 내 이야기를 심각하게 들었다.
전부 듣고 난 뒤, 녀석은 웃었다.
나는 부협회장이 이렇게 웃는 걸 오늘에서야 처음 봤다.
웃음을 멈춘 녀석은 자기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낸 뒤, 내게 물었다.
“이유영 헌터는 구원 길드장을 구하고 싶은 겁니까, 아니면 한이경을 붙잡고 싶은 겁니까?”
“그 두 개가 다릅니까?”
“구하고 싶다는 마음과 붙잡고 싶다는 마음은 질감이 다릅니다. 전 후자고요.”
부협회장은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이런 사소한 걸 왜 따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이경을 붙잡으면 구원 길드장을 구할 수 있다.’, ‘구원 길드장을 구하려면 한이경을 붙잡아야 한다.’
이 두 개가 다르다는 건 이해하지만, 어쨌든 한이경은 붙잡히고 구원 길드장은 구해진다. 따질 필요가 없었다.
내가 답하지 않자, 부협회장은 침묵도 대답이라고 여긴 듯했다.
고개를 끄덕인 녀석은 내게 말했다.
“이유영 헌터는 저랑 다른 부류의 사람이군요. 이유영 헌터, 제안 하나 합시다.”
“말씀하세요.”
“한이경을 확실히 체포해드릴 테니, 당신의 힐 능력을 써주실 수 있습니까? 승낙하신다면 당신이 원하는 걸 하나 들어드리겠습니다.”
부협회장은 내게 힐 능력을 써주면 무려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서정현에게 바라는 건 없지만, 우리 길드에 이 녀석의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녀석이 있어서 꽤 솔깃하게 들리는 제안이었다.
나는 서정현에게 물었다.
“부협회장님은 과외 해본 적 있으십니까?”
내 질문에 서정현은 자기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귀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누가 머리 좋은 놈 아니랄까 봐, 내가 왜 그 말을 했는지 금세 눈치를 챈 듯했다.
녀석은 호기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진준성 헌터를 키워달라는 뜻입니까? 유능한 헌터 하나 키워내는 걸 거절할 이유는 없죠.”
“육아가 아니라 과외를 해달라는 겁니다. 준성 학생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법을 가르쳐주셨으면 합니다.”
회귀 전 진준성의 스승은 서정현이었다.
부협회장이 죽고 진준성이 그 자리에 오르게 될 만큼, 둘은 긴밀하게 연결된 사이였다.
최근 진준성을 훈련시켜본 결과, 내가 훈련시키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내 스킬과 진준성의 스킬은 너무 다르고, 그 녀석과 내가 세상을 보는 법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구지상과 고주연 역시 진준성의 스승이 되기엔 무리가 있다. 그 둘은 나랑 비슷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진준성이 헌터가 되고 싶다고 결심한 이상, 녀석을 이끌어줄 스승이 필요했다.
좀 불쾌하지만, 서정현만큼 제격인 사람이 없었다.
서정현은 말했다.
“해드리겠습니다. 대신 제가 ‘과외’를 해서 진준성 헌터가 협회에 마음을 두게 되어도 후회하진 마세요.”
녀석이 뭔가 착각하나 본데, 진준성을 협회에 보낼 수 있었다면 내가 진작에 보냈다.
진준성은 서정현이 뭐라고 하든 간에 우리 길드에 남을 녀석이다.
“후회할 일은 없을 겁니다.”
서정현은 잠시 나를 쳐다봤다. 내가 왜 확신하는지 알아내려고 한참 보고만 있었다.
하도 부담스럽게 쳐다보길래 말했다.
“제안은 성립된 것 같은데, 슬슬 왜 저의 힐 능력이 필요한지 말해주시죠.”
“사실 말해드릴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진준성 헌터를 제게 맡길 정도로 협회를 신뢰하시는 것 같으니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자식이 날 놀리는 건가 싶었는데, 서정현은 이야기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을 알리듯이 손가락을 튕겨 서브 스킬을 발동했다.
반구체의 반투명한 막이 우리 주위로 생겨났다. 동시에 외부 소음이 전부 차단되어 고요함이 찾아왔다.
서정현은 말했다.
“이건 제 서브 스킬, ‘침묵의 공간’입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절대 외부로 새어 나가선 안 된다는 걸 알리기 위해, 이유영 헌터한테도 제 능력을 공개한 겁니다.”
대체 무슨 얘기이길래 협회 내부에서 스킬까지 써가며 방음막을 치는 걸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정현이 설명을 시작했다.
“이유영 헌터가 구해야 하는 사람은 한이경의 스킬에 걸려있는 사람입니다.”
“스킬에 걸려있는 사람이요?”
“아마도 구원 길드장, 그리고 지금 부산에서 일어나는 반협회 시위의 중심인물. 이 둘은 한이경의 스킬에 걸려있다고 봅니다.”
헌터가 사리사욕을 위해 타인에게 스킬을 거는 건 중범죄에 해당한다.
만약 서정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이경은 헌터 전용 특수 수감소에 갇혀 몇 년을 썩어야 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서정현은 말했다.
“저는 그 둘에게서 한이경의 스킬을 해제시켜, 한이경의 스킬에 조종당해 왔다는 증언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이유영 헌터의 힐 능력이 필요합니다.”
서정현은 이어서 내 힐 능력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한이경의 꼭두각시 스킬은 외부에서 강제로 해제하려 할 경우, 그 사람을 자살하게 만든다고 한다.
한이경이 스킬을 해제해주면 그 사람은 조종당한 기억이 사라지지만, 그게 아닐 경우 조종당한 기억이 남는다.
치밀한 한이경은 외부에서 강제로 해제할 경우를 대비해뒀다.
그 사실을 몰랐던 서정현은 꼭두각시 스킬을 제거해본 적이 있고, 스킬에 당한 사람은 저항하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뚫었다.
성대가 망가진 그는 현재 협회의 보호 아래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는 한이경에 대한 공포로 인해 아직까지 증언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정현은 반협회 시위의 중심인물, 그리고 구원 길드장을 확보한 뒤 다시 한번 꼭두각시 스킬을 제거할 거라고 말했다.
여기서 내 힐 능력이 필요했다.
내가 힐을 해주면, 무사히 스킬을 제거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진다.
“그 두 사람을 증인으로 확보한다면, 한이경을 반드시 감옥에 보낼 수 있습니다.”
서정현은 확고하게 말했다.
약 2년 정도 준비해왔고, 이제는 결실을 맺을 단계라고 한다.
“이유영 헌터가 그 둘을 구해서, 증인으로 세울 수 있게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이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멸망한 세상에서 봤던 협회의 극비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회귀 전에도 그 프로젝트는 성공했고 강남 길드는 파멸했다. 아마 이번에도 서정현의 계획은 성공할 것이다.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한이경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서정현은 손가락을 튕겨 서브 스킬을 해제했다.
방음막이 사라지며 외부 소음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서정현은 내게 악수를 청했고, 나는 녀석과 악수를 나눴다.
“협회장님께서 이유영 헌터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를 알 것 같군요.”
“부협회장님이 협회장님이랑 비슷하셔서 그런 겁니다.”
“과찬이십니다.”
서정현은 그 말을 칭찬으로 들은 듯했다.
예전부터 부협회장은 도나리를 마음 깊이 존경한다는 이상한 소문이 있었는데, 그게 진짜였던 모양이다.
어쨌든 부협회장의 도움을 얻어냈다.
이제 이용건이 고통받을 일은 적어질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를 끝날 때쯤, 김신욱과 김상엽이 돌아왔다.
김신욱은 세상 편해 보이는 얼굴이었고, 김상엽은 내가 본 모습 중에 제일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부협회장은 소파에서 일어나 손수 차를 타왔다.
나한테는 물 한 잔도 주지 않더니, 김신욱에게는 따뜻한 차를 한 잔 내줬다.
그리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신욱 헌터, 이제 이야기를 해봐도 되겠습니까?
“말만 해, 무슨 부탁인데?”
“어려운 부탁은 아닙니다. 그저 이 서류를 읽어보시고, 지장만 찍으면 됩니다.”
부협회장은 서류 하나를 김신욱에게 내밀었다. 친절히 인주까지 가져와 뚜껑을 열고 김신욱의 앞에 뒀다.
김신욱은 서류를 읽어보지도 않고 말했다.
“서울로 가는 웜홀 열어주는 건 확실하지?”
“물론입니다. 지장만 찍어주신다면 경찰 측에 연락해서 부산 길드장이 폭행을 했으니, 접근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도 확인해드리겠습니다.”
김상엽 팀장은 당황하며 부협회장을 바라봤지만, 부협회장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김신욱을 볼 뿐이었다.
김신욱은 솔깃해하는 것 같았다. 적당히 서류를 읽어보더니, 인주에 엄지손가락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눈앞에서 사람이 사기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김신욱이 지장을 찍기 전에 서류를 빼앗았다.
“뭐야? 야, 내놔!”
종이를 빼앗으려는 김신욱을 밀어내며 서류를 읽어봤다.
부산 길드가 협회를 도와 시위 진압에 인력을 차출해주는 것을 김신욱이 부산 길드 대표로서 허락한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쓰여있었다.
내가 서정현을 쳐다보자, 서정현은 아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나는 서정현에게 말했다.
“계약 사항에 대해 충분히 이해시켜주지 않고 사인을 유도하는 불공정한 계약으로 보이는데, 설명을 좀 해주시죠.”
“누가 들으면 오해할 발언은 삼가 주시길 바랍니다, 이유영 헌터.”
김신욱은 부정하겠지만, 부산 길드장이 사망했을 경우 부산 길드를 이을 제1 후계자는 김신욱이다.
이 녀석이 여기에 지장을 찍으면 부산 길드가 인력을 내주지 않는 게 어려워진다.
딱히 부산 길드장의 편을 들어주려는 건 아니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서정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설명했다.
“부산에서 부산 길드의 입지는 누구보다 월등합니다. 부산 길드의 도움이 있으면 숨어 있는 반협회 시위의 중심 세력을 잡는 건 금방이에요. 그런데 부산 길드장이 협회 도와주는 데 워낙 박한 사람이라서 말입니다. 부산 길드의 이인자인 김신욱 헌터의 의견을 들어보려던 겁니다.”
김신욱 헌터의 의견은 들어본 적도 없지만, 서정현은 뻔뻔하게 말했다.
하지만 김신욱은 오히려 얼토당토않은 계약이라서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녀석은 내게서 다시 종이를 가져가며 말했다.
“그러게 누가 마음대로 내 이름을 길드 대표로 올리래? 이런 짓을 해줘야 이름을 빼든가 하겠지.”
“너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야, 이유영.”
김신욱은 내 이름을 부르더니, 서류에 망설임 없이 지장을 찍어버렸다.
지장 찍힌 서류를 부협회장에게 건네주고 자리에서 일어난 김신욱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난, 내가 자기 아들인 줄 아는 미친 노인한테서 탈출하려고 발악 중이거든. 후회라는 말은 나랑 안 어울려.”
나는 확신하는 녀석을 보며, 회귀 전의 김신욱을 떠올렸다.
내가 지금 이 녀석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녀석이 지금 내게 해줄 수 없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