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부산 길드, 헌터 김신욱 (4)
때로는 내가 한 말이 살(煞)이 되어 내게 돌아오기도 한다.
나는 전날 김신욱에게 후회 안 하냐고 물었다. 그런 말을 해버린 탓일까, 지금 내가 후회하고 있었다.
그때 그 새끼를 말렸어야 했는데, 하고 말이다.
나는 어제 새벽 4시에 웜홀을 타고 길드로 돌아왔다. 김신욱은 어머니와 살고 있는 서울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길드로 왔다.
오자마자 잠이 들었고, 정신이 피곤해서 웬만하면 푹 자고 싶었다.
하지만 고작 2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리며 날 깨웠다.
“이유영 씨, 일어나 보셔야겠는데요…!”
무시할 수 없는 목소리라서 나는 눈을 떠야 했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구지상이 굉장히 난처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탓에, 나는 다 잠긴 목소리로 녀석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깨워서 죄송해요. 방금 길드에 전화가 왔는데, 부산 길드장님이 이유 길드를 찾아오시겠대요. 일방적으로 끊어버리셔서 안 된다는 말도 못 했어요. 어쩌죠?”
“하….”
그때 그 새끼를 말렸어야 했는데.
김신욱이 저지른 업보가 왜 내게로 돌아오는 걸까. 말리지 않은 것도 죄라면 죄인가.
내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자, 구지상은 안절부절못하며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인생을 저주하고 싶을 때마다 밥부터 먹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 구지상에게 물었다.
“구지상 씨, 아침은 드셨습니까?”
“이제 막 러닝하고 오는 길이라서요. 아직이요.”
“라면 끓일 건데 드실래요?”
“좋죠…!”
구지상은 갑자기 라면을 끓이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라면을 끓였다.
끓이는 도중 고주연도 길드에 출근했고, 밥을 안 먹었다길래 한 개를 더 끓였다.
나는 앞으로 찾아올 업보를 무시하고서 말없이 라면만 먹었다. 구지상과 고주연이 나를 흘끗대는 게 느껴졌지만, 일단은 배를 채우는 게 먼저였다.
위장에 음식이 들어가자 뇌가 제대로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두 사람에게 이 사태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제가 어제 부산을 다녀왔습니다.”
“부산이요? 잠깐 나간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김신욱 헌터가 급하게 불러서 갔습니다. 지금 왜 부산 길드장이 우리 길드에 오려고 하는지 두 분에게는 얘기를 해둬야 할 것 같아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구지상은 내가 동네 마실 나가듯이 부산을 다녀온 것에 놀란 것 같았으나, 어쨌든 내 말에 집중했다.
고주연은 잠자코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어젯밤 내가 김신욱과 무슨 난리를 치고 왔는지 설명해줬다.
부협회장을 만난 것과 김신욱이 부협회장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말했다. 부협회장이 비밀이라고 한 것 외에는 대부분을 설명해줬다.
“그런 일이 있었던 탓에 오늘 부산 길드장이 오면 꽤 소란스러울 겁니다. 미리 죄송합니다.”
“부산 길드장님 성격이면… 분명 김신욱 헌터부터 찾으려 하실 텐데. 이유영 씨, 김신욱 헌터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아세요?”
“김신욱 데려와. 걔가 혼날 짓 한 거잖아.”
고주연의 말대로였다. 이건 김신욱의 잘못이지, 내 잘못이 아니었다.
구지상은 차라리 이 기회에 두 사람이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나도 동의했지만, 문제는 김신욱이 어디에 사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녀석이 핸드폰이고 지갑이고 전부 부산에 버리고 온 탓에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김신욱 헌터가 지금 핸드폰이 없습니다. 어디 사는지는 저도 모르고요.”
“핸드폰이 없다니, 특이한 분이네요.”
무언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특이한 건 사실이라서 딱히 정정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고주연이 말했다.
“내가 알아. OO구 솔미안 아파트에 산다고 했어.”
“그걸 고주연 씨가 어떻게 아십니까?”
“걔가 던전에 있을 때 놀러 오라고 알려줬었어.”
김신욱이 고주연을 자기 집에 초대하려 했었다는 말이다.
던전 안에서 둘이 친해진 것 같더니, 많은 얘기를 나눈 모양이었다.
“그 자식이 고주연 씨한테 또 따로 연락했습니까?”
“안 했어. 이유영 네가 방송한 이후로 이상한 연락이 하도 와서 핸드폰 꺼놓고 산 지도 오래야.”
고주연의 말에 내가 머쓱해 하자, 구지상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상쾌하게 말했다.
“그럼 김신욱 헌터가 어딨는지도 알았으니, 저랑 고주연 씨가 김신욱 헌터를 잡아 올까요?”
두 사람이 김신욱을 잡아 오기만 한다면 부산 길드장과 대화가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다.
어쨌든 문제는 김신욱한테 있으니 말이다.
내가 고주연을 쳐다보자, 고주연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구지상에게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꼭 잡아 올게요. 그전까지 파이팅입니다!”
“대신 설거지는 네가 해.”
그렇게 두 사람은 내게 설거지를 떠맡기고, 김신욱을 잡으러 갔다.
나는 라면 그릇을 닦으며 김신욱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생각해야 하는데, 그 새끼를 떠올릴수록 열받아서 관뒀다.
어떻게든 오늘 안에 반드시 김신욱과 노진수가 타협점을 찾게 해야 한다.
그게 두 사람과 나를 위한 길이었다.
***
지금의 김신욱은 헌터가 될 마음이 없고, 노진수는 김신욱이 헌터로 성공하길 바란다.
노진수는 자기 말을 안 듣는 김신욱에게 강압적으로 굴고, 그럴수록 김신욱은 더 반항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 앞으로도 더 갈등만 깊어질 것이다.
‘이걸 왜 내가 고민해야 하지?’
정작 김신욱과 노진수는 고민하지 않는 문제를 말이다.
그런데 나만 이 고통을 겪는 게 아닌 듯했다.
노진수는 부산 길드의 삼인자자, 자기 오른팔인 ‘우병삼’을 데리고 이유 길드를 찾아왔다.
우병삼은 대체 왜 이 두 사람 때문에 내가 고통받아야 하냐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랑 똑같은 표정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유영 길드장님. 부산 길드의 우병삼입니다. 불쑥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 둘이 통상적인 인사를 나눌 동안, 노진수는 길드를 훑어봤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윤지석이 들여온 그랜드 피아노였다.
피아노는 윤지석이 얼마나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여전히 윤기가 번드르르하게 나서 제 고급스러움을 있는 대로 뽐내고 있었다.
그 누구도 치질 않아서 피아노 기능은 못 하고 있지만, 장식품으로는 최고의 기능을 하는 중이었다.
노진수는 그 피아노를 아니꼽게 쳐다보다가 안쪽으로 향했다.
피아노만 보고도 저런 반응이니, 노진수가 김신욱과 얼마나 안 맞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을 응접실로 안내하며 말했다.
“김신욱 헌터에게 하실 말씀은 저한테 먼저 하셨으면 합니다. 찾으러 가긴 했는데, 데려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신욱이 여기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부협회장은 이유영 길드장이 데리고 있을 거라고 했는데?”
우병삼이 ‘부협회장’을 언급한 덕분에 나는 왜 이 둘이 먼 곳까지 온 건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여우 같은 놈이 나한테 이 둘을 떠맡기고, 리더가 없는 부산 길드 사람들을 제멋대로 주무르고 있을 게 뻔했다.
나는 두 사람을 응접실 소파에 앉힌 뒤 서정현의 속내를 말해줬다.
“부협회장이 수를 쓴 겁니다. 두 분을 제게 보내고 나면, 부산 길드에는 부협회장을 저지할만한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내 말에 우병삼이 상황을 납득했는지 이마를 치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노진수는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는 듯, 근엄하게 앉아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김신욱이 우리 길드에 없다는 데 별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애초에 노진수의 관심사는 나한테 있었던 모양이다.
회귀 후 노진수를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지만, 노진수는 부산의 절대강자라는 위엄에 걸맞게 빈틈이 없었다.
그런 노진수에게 가려져서 드러나지 않았지만, 우병삼 역시 노진수의 오른팔답게 강자의 위세가 있었다.
김신욱 따위한테 휘둘리지 않으면 부산 길드를 더욱 강하게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김신욱 헌터는 자기가 이런 짓을 저지르는 게 싫으면, 자기를 길드 대표에서 빼달라고 했습니다. 진지하게 고려해보시죠. 김신욱한테 휘둘리기엔 부산 길드가 아깝습니다.”
“그놈은 내 아들이야. 빼고 말고는 내가 정할 문제일세.”
노진수는 부산 길드를 망치든 말든, 김신욱이 자기 아들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한 길드의 수장으로서 옳은 선택은 절대 아니었다. 그걸 옆에 있는 우병삼은 절절하게 느끼고 있는 듯했다.
우병삼은 노진수에게 말했다.
“길드장님, 역시 임원진 회의에서 나온 대로 가는 게 맞습니다. 이번에 그 녀석이 친 사고 때문에, 우리 부산이 친협회적이라고 오해받게 생겼습니다.”
“이 사람아, 우리가 협회에 도움을 주면 또 받게 되어 있는 거야.”
“언제는 협회에 죽어도 도움 못 주신다면서요. 지금 신욱이 편 드시는 겁니까?”
“내가 그 썩을 놈 편을 왜 들어?”
노진수가 화를 내기 시작하자, 덩달아 우병삼의 언성도 높아지고 있었다.
듣고 있는 내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나는 대화를 중재할 겸, 우병삼에게 물었다.
“부산 길드 분들은 김신욱 헌터를 내보내고 싶어 합니까?”
“신욱이가 길드를 나가고 싶어 하잖습니까. 부산에 헌터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피아노가 좋다는 애를 굳이 헌터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보아하니 부산 길드 사람들은 김신욱의 진로를 존중해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노진수 길드장 하나만 빼고 말이다.
노진수는 윽박지르듯이 말했다.
“내 앞에서 피아노 얘기 꺼내지도 말라 했나, 안 했나!”
노진수가 소파에 있던 쿠션을 거의 집어 던질 기세로 굴자, 나는 노진수를 말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로 싸우는 거면 몰라도, 내 길드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까지 참아줄 순 없었다. 같은 길드장의 위치에 있는 노진수 역시 내 심정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노진수는 씩씩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보고는 이건 좀 심했다는 자각은 있었는지, 슬그머니 쿠션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나 소리 지르는 것을 멈출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내가 그놈 버르장머리를 이번 기회에 싹 고칠 테니, 임원진 회의고 뭐고 집어치워!”
이 양반이 대화가 통할 인간이 아니라는 건 잘 알았지만, 정보가 심했다.
오른팔인 우병삼과도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누구랑도 대화가 안 될 것이다.
우병삼은 한숨을 쉬며 노진수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말려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결국 말을 돌렸다.
“신욱이는 오고 있답니까? 저희는 찾아갈 방법이 없어서요.”
“쓸데없는 소리 마라.”
“예, 부산 길드 사람들은 신욱이 어머님 못 찾아가는 게 쓸데없는 소리긴 하죠.”
우병삼은 아까 노진수가 제게 쿠션을 집어 던지려 하던 걸 잊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은 사소한 정보를 내게 알려줬다.
그 탓에 노진수는 우병삼의 멱살을 쥐려 했고, 나는 또 두 사람을 말려야 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구지상한테 연락하며 말했다.
“김신욱 헌터 잡았는지 물어보겠습니다. 제발 그만 싸우시죠.”
그러나 구지상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구지상이 전화를 받지 않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몰라도, 김신욱을 잡았다면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못 잡은 것 같네요. 먼 곳에서 오셨는데 죄송하지만, 김신욱 헌터한테 하실 말씀 있으면 제게 해주시죠. 전달해 두겠습니다.”
그때 그 새끼를 말렸어야 했다.
나는 후회를 접어두며, 가능한 한 정중하게 얘기했다.
어쨌건 간 길드장 대 길드장으로서, 최소한의 예는 갖추는 게 맞았다.
내 말에 두 사람은 싸움을 멈추고는 잠시간 신기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노진수가 내게 물었다.
“이봐, 이유영 길드장. 자네 아버지는 뭐 하시는 분인가?”
의도를 잘못 품으면 자칫 심기를 긁는 말이 될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노진수의 표정이나 말투를 보아하니 저열한 의도가 담긴 질문은 아닌 것 같았다.
살면서 누구나 들어볼 법한 질문이긴 하다. 하지만 회귀 전의 나라면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겐 그런 무게를 가진 질문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있어 유일한 가족이었고, 나는 그 유일함을 눈앞에서 잃었다. 아버지가 뭐 하는 사람이었는지 대답하려면, 적어도 인생을 다시 한번 살아보며 느껴볼 기회가 필요했다.
다행히 나는 회귀를 했고, 이젠 충분히 대답할 수 있었다.
“철물점 운영하셨고, 제가 살면서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남자다운 분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잘 모릅니다. 아버지 손에 커서.”
노진수는 왜인지는 몰라도 내 대답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우병삼 역시 노진수와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까까지 살벌했던 두 사람의 분위기가 내 대답 하나에 훈훈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