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부산 길드, 헌터 김신욱 (5)
살벌할 줄 알았던 부산 길드 두 사람과의 대화는 의외로 훈훈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김신욱을 잊고 이유 길드와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중이었다.
노진수는 이번에도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자네 목표는 뭔가?”
“몬스터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겁니다.”
몬스터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10만 장의 일기를 쓰고 회귀까지 했다. 나보다 더 간절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정을 모르는 두 사람은 단순하게 젊은 놈이 제대로 된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건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우리 부산 길드의 목표도 바로 그겁니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회귀 전에도 부산 길드는 던전 공략에 앞장섰고, 지금도 김신욱만 없으면 부산 길드장은 누구보다 몬스터 척살에 신경을 기울일 사람이다.
부산 길드 하나가 남부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노진수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강남 길드가 멸망했고, 구원 길드는 휘청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길드 체제가 뒤바뀌는 상황이다. 수호 길드와 부산 길드가 굳건하게 버텨, 또 다른 혼란이 생기는 걸 막아줘야 했다.
수호 길드는 정하나가 금주를 결심할 만큼 마음을 굳게 먹었으니,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다.
노진수 역시 김신욱 문제를 풀고 부산 길드를 더 크게 성장시켜줘야 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저는 부산 길드가 더 성장할 거라 믿고 있습니다. 부산 길드장님이라면 충분히 그러실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하고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두 사람의 호감을 사서 길드 간의 친분을 만드는 것도 좋을 듯했다.
부산 길드와 연결되어 있으면 남부에 생길 위험을 방지하기 쉬워진다.
미래 정보를 이들에게 알려 위험에 대비시킬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부산 길드장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유영 길드장. 젊은 사람이라 내가 좀 오해를 했었나 봅니다. 아주 괜찮은 사람이었네.”
“감사합니다.”
애초에 부산 길드에게 내 첫인상은 최악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대뜸 협회를 등에 업고 SS급 던전의 선발대 리더가 된 데다가, 김신욱이 서울로 탈출하는 걸 도와주고, 부협회장과 공모까지 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부산 길드와의 친목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호감을 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우병삼은 인자하게 웃고 있었고, 노진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러던 중, 희소식을 전해줄 것 같은 전화가 왔다. 구지상이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응접실을 나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구지상이 물었다.
『이유영 씨, 부산 길드장님한테 많이 혼났어요?』
“괜찮습니다. 김신욱 헌터는 잡았습니까?”
『무사히 잡았어요. 그런데 이유영 씨의 힐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김신욱을 붙잡으려고 난투극이라도 벌인 건가?
상대가 김신욱인 만큼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상대가 구지상이라면 김신욱은 반항도 제대로 못 하고 잡혔을 게 뻔했다.
“제압하다가 다친 겁니까?”
『음, 바로 아시네요! 다치진 않았어요. 주연 씨가 찾아간 덕에 차에 태우는 건 쉬웠는데, 제가 있는 걸 보고 많이 놀라시더라고요. 부산 길드장님이 오셔서 잠시 길드로 함께 가자 했더니, 차에서 탈출하려고 하셨어요. 운전 중에 위험할 것 같아서 잠깐 기절시켰는데 안 일어나시네요.』
말투가 나긋해서 오해하기 쉽지만, 탈출하려던 김신욱을 운전까지 하면서 한 번에 제압했다는 말이다. 심지어 기절할 정도로.
이 녀석이 나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스킬 써서 치유하면 되니까, 길드로 데려오는 걸 우선순위로 둬주세요.”
『네! …잠깐만요, 주연 씨가 할 말이 있으시다고 해서 바꿔드릴게요.』
구지상은 고주연한테 전화를 바꿔줬다.
김신욱이 고주연한테 수작이라도 부린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고주연은 상당히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유영, 너 김신욱한테 뭐 들은 거 없어? 얘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어디 아프기라도 합니까?”
『몸 상태 말고. 김신욱, 피아노 관둔 거야?』
순간, 김신욱이 던전 안에서 팔을 심하게 다쳤던 것이 떠올랐다.
어제 던전에 들어갔을 때도 김신욱은 팔 쓰는 게 어색해 보였다.
녀석이 말해주지 않아서 함부로 추측하진 않았으나, 상태가 이상해 보였던 건 사실이다.
『다음 달에 있던 미국 공연을 취소했다던데. 뭔가 이상해 보였어. 얘가 그럴 애는 아니잖아.』
“…저도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너희 친한 거 맞아?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아?』
김신욱은 자기 일을 떠벌리는 놈이 아니고, 나는 남의 일을 묻는 놈이 아니다.
친하고 안 친하고를 떠나서, 우리가 그런 놈들이라 모르는 게 많을 수밖에 없다.
고주연은 일단 알고 있으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나는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잠시 쳐다봤다.
짧게 생각해봤지만, 역시 그 녀석이 말하고 싶을 때 말하게 내버려 두는 게 낫다.
김신욱은 말하고 싶다 생각하면 얘기할 놈이었다.
나는 통화를 끝내고 응접실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내 통화 내용을 궁금해하는 눈치였고, 나는 다른 정보는 생략한 채 김신욱이 오고 있다고만 전달했다.
얼마 안 있어 김신욱이 도착했다.
***
김신욱은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자신에게 힐을 넣고 있는 이유영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노진수와 병삼 아저씨가 있었다.
김신욱은 이게 웬 악몽인가 싶어서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유영이 김신욱을 흔들어 깨웠다. 꿈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이게 대체 왜 꿈이 아닌 걸까.
그냥 꿈이라고 해라.
이 모든 게 꿈이라고 좀 해줘라.
김신욱은 현실을 부정하며 그대로 눈을 감은 채로, 머릿속으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했다.
3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연주가 시작됐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다른 세계에 온 기분이었다.
육체는 선율이 되고 영혼은 템포를 따라 흐른다. 음률 속에서 영혼이 스스로 음높이를 찾아간다.
그 환상적인 기분은 트로이메라이를 설명한다. 연주하는 것이다.
연주가 끝난 뒤, 김신욱은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화를 내는 노진수가 보였다.
김신욱이 계속 눈만 감고 있었던 탓에 화를 내는 듯했는데, 이유영은 그런 노진수를 진정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길드장님. 마냥 화만 내실 게 아니라, 김신욱 헌터와 대화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길드에서 무의미한 폭력이 일어나는 건 보고 싶지 않습니다.”
자기 길드에서 김신욱을 때리는 건 두고 볼 수 없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하여튼 희한한 놈이었다.
전화 한 번에 진짜 부산까지 달려오질 않나, 김신욱이 친 사고를 수습하고 있지 않나.
요즘 세상에선 다 죽어버린 ‘의리’라는 게 이유영에겐 있었다.
김신욱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던전 안에서 이유영이 자신에게 힐을 해주던 순간의 표정을 봤었다.
뭘 안다고 팔과 손부터 힐을 넣은 건지, 다 망가진 팔을 보던 녀석의 표정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마치 이젠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걸 이유영도 예감한 것 같았다.
이용건과 기민철 두 사람과 싸우면서 팔을 다쳤던 그때, 김신욱은 직감했다.
‘이 이상 팔을 움직이면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다.’
그렇지만 김신욱은 이용건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사람을 죽도록 내버려 두고 얻는 미래 따위는 가치가 없었다.
우습게도 그 생각이 든 순간, 김신욱은 왜 하필 자신이 헌터가 된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결과였고, 후회하진 않았다.
하지만 막상 깨어나고 달라진 손의 감각을 직접 마주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이유영의 치유는 완벽해서,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일상생활에 지장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꼭 제 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을 달아놓은 것 같았다.
김신욱은 허공에 대고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해봤다.
허공에 대고 상상 속의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연주를 이어갔다.
연주를 끝내고 나니,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까지 제 손으로 만들어왔던 연주의 세계가 보이지 않았다.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살해당한 것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제 선택을 후회하며 비참하게 여기는 건, 사나이가 할 일이 아니었다.
그날, 피아니스트 김신욱은 헌터가 됐다.
노진수가 그토록 바라던 진정한 헌터가 된 것이다.
노진수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줬다.
‘당신의 저주가 통해서 나는 마침내 헌터가 됐습니다.’
자신은 노진수에게 무슨 반응을 바라고 그 말을 했었던 걸까.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듣고 싶었던 말이 절대 ‘잘됐다’라는 말은 아닐 거라고.
제가 쌓아왔던 삶이 다 무너져버렸는데 대체 무엇이 잘됐다는 걸까.
아니꼬와서 개기다가 처맞았고, 발목이 나갔다. 발목이 낫는 동안 부산 길드에 갇혀 있으면서 생각했다. 왜 잘됐다는 걸까.
“내가 헌터가 됐다고 했지, 당신 개새끼가 된다고는 안 했는데.”
속으로만 중얼거렸다고 생각했는데, 입 밖으로 튀어나왔는지 눈앞의 세 사람이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중 유독 눈에 꽂히는 것은 자신을 노려보는 노진수의 시선이었다.
왜 노려보는 것일까.
김신욱은 노진수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싫다는 김신욱을 왜 자꾸 제 아래에 두지 못해 안달인 걸까. 이제 와서 애비 노릇이라도 해보고 싶다 이건가?
김신욱은 그 심정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봐요, 내가 어머니 있는 서울까지 오면 그땐 진짜 죽여버릴 거라고 했던 거 벌써 까먹었어? 치매야?”
“그 입 안 다무나!”
“말했잖아, 댁이 원하시는 대로 헌터 하고 살겠다고. 어차피 난 헌터가 될 거라던 영감님 저주가 통했다고요. 그러니까 그만 지랄하시고 내 인생에서 좀 나가라고.”
내뱉을 말이 더 있었으나, 이유영이 김신욱의 어깨를 붙잡았다.
김신욱은 그 이유를 자신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던전 들어가기 싫다고 떼를 쓰던 놈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이유를 캐물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유영은 김신욱에게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를 꺼냈다.
“부산 길드를 나가고 싶으면 제대로 길드를 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길드원인 네가 길드장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말하란 말이야.”
“뭐야, 딱딱하게.”
“길드원으로서 길드장과 헤어지는 법을 가르쳐준 거야.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남이 보기엔 아버지한테 떼쓰는 것밖에 안 돼. 네가 제일 싫어하는 걸 너 스스로 하고 있다고.”
이유영의 말에는 틀린 곳이 없었다.
알고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라 부정하려 했었다.
그러나 이유영이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게 보이는 바람에 차마 화도 낼 수 없었다.
김신욱은 정말로, 단 한 번도 후회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피아니스트의 삶이 끝난 걸 예감했을 때도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이유영이 지금 자신에게 지적하지 않았다면, 처음으로 후회라는 걸 했을지도 모른다.
노진수에 대한 반항심은 여전히 남아있었으나, 김신욱은 최대한 말을 골라 제 의사를 밝혔다.
“부산 길드 대표 이름에 올라간 제 이름 빼세요. 전 당신 아들이 아니고, 당신은 내게 아버지 행세를 할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헌터가 되었다고 해서 부산 길드원이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전 부산 길드에서 나가겠습니다.”
김신욱은 분명 노진수가 평소처럼 화를 못 이기고 패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노진수는 주먹만 쥔 채로 김신욱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의외였다. 노진수한테도 사람의 말이 통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게 네가 나한테 바라는 유일한 거냐.”
“네. 그렇게 내가 보고 싶으면 던전에서 만나자고요. 이 이상 엮이지 말고.”
노진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신욱은 또 때리는 줄 알고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지만, 노진수는 그런 김신욱을 보다가 이유영을 향해 한마디 할 뿐이었다.
“자네가 이놈 책임지고, 제대로 된 헌터로 키워내게.”
“이유영 길드장이면 신욱이 믿고 맡길 수 있겠습니다. 요즘 젊은 친구 같지가 않아. 사내야, 사내.”
우병삼도 한마디 거들었다.
말을 좀 들어주나 했더니, 또 이런 식으로 제 의견은 묻지 않고 제멋대로들 결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신욱의 의견을 묻는 사람이 있었다.
“그건 김신욱 헌터와 이야기를 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
우병삼의 말대로 이유영은 ‘요즘 젊은 애들’ 같지 않게, 남들은 무시하고 넘어갈 당연한 도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유영만큼은 확실히 믿을만한 놈이었다.
덕분에 김신욱은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었다.
“뭔 얘기? 네가 전에 나보고 길드 들어오라며. 바깥에 있는 피아노 내 거라며?”
애초에 부산 길드에서 나온다면 이유영네 길드 말고 다른 곳에 들어갈 생각도 없었다.
이유영은 당연히 받아줄 거라고 믿고 있어서 따로 물어보지도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유영은 잠시 김신욱을 쳐다보다가 노진수에게 말했다.
“김신욱 헌터는 이유 길드의 길드원으로 받겠습니다. 그 대신, 앞으로 부산 길드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저도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그럽시다. 영웅 힐러 길드장이랑 좋은 관계 유지하고, 우리도 좋지.”
김신욱은 싱글벙글 웃으며 이유영과 악수하고 있는 우병삼은 내버려 두고, 노진수를 바라봤다.
노진수는 별말 없이 이유영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일 뿐이었다.
“….”
김신욱이 노진수를 쳐다보고 있던 탓에, 노진수가 김신욱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다.
대화는 없었다. 그저 잠시 쳐다만 볼 뿐이었다.
노진수는 끝내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돌아섰다.
기분이 참 이상했다. 노진수와 대화가 통했다니.
이런 게 가능한 인간이었나? 노진수라는 건 흉악한 도깨비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말이다.
지긋지긋하던 부산 길드를 탈출했지만, 크게 기쁘진 않았다.
원래 인생이 그렇다.
싫어했던 걸 다 떨쳐내도 마냥 기쁘진 않다.
묘하게 심장에 구멍 하나 크게 뚫린 것 같은 허무함이 들고 그런다.
반면 삶에 전부였던 걸 잃어도 마냥 슬픈 건 아니다.
의외로 새로 시작할 길이 보이기도 하고, 지나온 길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잃고 나서야 보이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가령, 이 작은 길드의 인테리어가 생각보다 취향이었다든가.
이 작은 길드에 사람 살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든가.
“여기서 살면 월세 안 내도 되겠네?”
김신욱은 이유영이 부산 길드장을 배웅하는 사이, 이유 길드의 4층 숙직실을 구경했다.
마침 방도 하나 비어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