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악당의 결말 (1)
길드의 사훈이 정해진 다음 날.
윤지석은 붓글씨로 적은 사훈을 커다란 액자에 담아 1층에 잘 보이게 걸어뒀다.
사훈이 그럴듯하게 걸려 있는 덕에 한층 길드다워 보였다.
고주연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활을 시험해보고 있었고, 김신욱은 짐을 싸 들고 길드에 들어왔다.
김신욱은 기어코 부산에 안 가고 핸드폰과 지갑 속 내용물을 새로 맞추느라 바빴다. 덕분에 진준성은 김신욱과 부딪히지 않고 편하게 지내는 듯했다.
호두는 진준성에게 훈련을 받으며 잘 성장하고 있었고, 구지상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오랜만에 평화로운 하루였다.
오늘은 신경 써야 하는 던전도 없었고,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었다.
많은 일이 해결되고 드디어 평화가 찾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기억했어야 했다.
폭풍이 들이치기 전에는 늘 평온한 법이란 것을 말이다.
그날 밤, 핸드폰으로 문자가 한 통 왔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이용건이었다.
「이유영 씨, 지금 당장 인천항으로 와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한이경을 미행하는 중인데, 한이경이 도주하려는 것 같습니다.
인천항으로 향하는 걸 보면 밀항을 시도하려는 것 같아요.」
낮에 있었던 평화가 모두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폭풍이 찾아왔다.
문자가 온 시각은 새벽 3시였다.
당장 와달라는 말을 전화도 아닌 문자로 보낸 걸 보면, 다급한 상황인 것 같았다.
나는 문자를 보자마자 급하게 신발을 신고 방을 나왔다.
이용건에게 전화를 걸며 급히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직까지 훈련장에 불이 켜져 있는 게 보였다.
새벽 3시까지 훈련장에 있을 만한 사람은 구지상 하나밖에 없었다.
한이경 같이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을 잡으려면 쓸 수 있는 패는 많은 편이 좋았다.
나는 구지상한테 자연스럽게 상황을 알리기 위해, 훈련장 앞에 서서 스피커폰 모드로 바꿨다.
『이유영 씨, 안 주무시고 계셨군요…!』
“예, 지금 출발할 겁니다. 혹시 한이경 옆에 박이원 길드장이나 신윤현 헌터도 있습니까?”
『신윤현 헌터는 저희 집에 있습니다. 이건 사연이 좀 기니까 나중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박이원 길드장이 지금 한이경이랑 같이 있어요. 한이경 한 명이면 제가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박이원 길드장까지 있으면 제가 붙잡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원이 필요합니다.』
한국 5대 길드의 두 길드장이 함께 있다면 이용건 혼자서는 상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든든한 지원군이 있어야 한다.
나는 훈련장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구지상 헌터와 같이 갈 테니 무리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예, 서둘러 주세요! 곧 인천항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혹시 모르니 한이경 차 번호가 8888이라는 말씀 미리 드립니다.』
꼼꼼하게 한이경의 차 번호까지 말해준 뒤, 이용건은 전화를 끊었다.
구지상도 통화 내용을 자세히 들으려고 했는지, 훈련장 문에 기대어 있었다. 상황 파악은 충분히 했을 것이다.
“구지상 씨, 지금 운전 가능하십니까?”
“가능해야만 하는 상황 같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구지상은 서둘러 차 키를 가지러 갔다.
구지상은 전화 내용을 듣고도 의외로 침착했다.
차에 시동을 걸어 운전대를 잡을 때까지, 구지상은 내게 별다른 질문이 없었다.
나는 구지상의 차에 타며 서정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이경이 인천항으로 도주하고 있다고 보내자, 금방 답장이 왔다.
서정현도 아직까지 안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이경이 제가 확실한 증거를 붙잡았다는 걸 알고 도망가려나 봅니다. 협회에 지시해서 인천항 포위해두겠습니다.」
무슨 확실한 증거를 붙잡았다는 건지 보충 설명이 없었다.
이 녀석과 문자를 하는 것도 귀찮아서 나는 전화를 걸었다.
서정현은 금방 받았고, 나는 구지상도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폰으로 바꿔둔 뒤 녀석에게 말했다.
“증거를 붙잡았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부산 길드의 도움으로 지금 막 시위 선동자를 붙잡은 참입니다. 역시나 한이경의 스킬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꽤 웃긴 사람을 하나 더 붙잡았습니다.』
구지상은 네비게이션으로 인천항을 찾으며 운전하다가,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에 당황한 듯 손을 멈췄다.
서정현의 목소리가 한 번 들으면 식별이 가능한 미성이긴 했다.
내가 스피커폰인지 모르는 서정현은 계속해서 말했다.
『강남 길드의 유태오 헌터라고 아십니까? 한이경이 이 헌터를 이용해 선동자를 죽이려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도 한이경의 스킬에 걸려 있더군요.』
“유태오가 그 사람을 왜 죽이려 한 겁니까?”
『한이경이 스킬을 해제하려면 스킬을 건 사람과 접촉해야 합니다. 부산에 있는 시위 선동자와 한이경이 접촉해야 한다는 말인데, 한이경이 그러겠습니까? 그냥 죽이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쉽게 말해 자기 무덤을 판 거죠.』
궁지에 몰린 사람은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서정현이 차근차근 한이경을 몰아넣은 덕에 한이경은 최악의 수를 뒀고, 서정현은 승리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내 관심사는 그쪽이 아니라서 중요한 것부터 물었다.
“유태오랑 시위 선동자 모두 무사한 겁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두 사람 모두 김 팀장님의 능력으로 제압 중입니다. 이유영 씨가 힐을 해주실 때까지 김 팀장님이 묶어둘 예정이고요. 이쪽보단 도주를 시도하는 한이경 쪽이 시급합니다.』
“제가 인천항 쪽으로 가는 중입니다. 구지상 헌터랑 같이 가는 중이니 문제없을 겁니다.”
구지상이 있다면 도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현장에는 이용건도 있고, 박이원을 구출하는 것만 신경 쓰면 될 것이다.
구지상이 같이 간다는 말에 서정현이 이제야 물었다.
『이거 혹시 스피커폰입니까?』
나는 일반 통화로 돌린 후 귀에 핸드폰을 가져다 대며 대답했다.
“이젠 아닙니다.”
서정현은 속으로 욕이라도 하고 있는 건지, 잠시 대답이 없었다.
이후 녀석은 현장에서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서정현이 비밀이라고 했던 걸 어떻게 구지상한테 말해둬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서정현이 직접 얘기해준 덕에 해결되었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구지상에게 말했다.
“박이원 길드장은 한이경의 스킬에 걸려 있는 것으로 추정 중입니다. 지금 인천항에 박이원 길드장이 있는 이유도 한이경 때문입니다.”
“….”
구지상은 내 말을 듣고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저 무표정하게 운전대를 잡고 앞만 바라볼 뿐이었다.
얼굴만 보면 별생각 없는 것 같지만, 구지상은 아까부터 단속 카메라에 찍혀도 신경도 안 쓰고 과속하는 중이었다.
차 없는 새벽이라 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나랑 구지상은 내일 아침 신문 1면에 교통사고 소식으로 실렸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아무 말도 안 하던 구지상이 입을 연 건 인천 톨게이트를 지나면서였다.
“…한이경은 형을 왜 데리고 간 걸까요?”
이유는 뻔했다. 한이경 혼자라면 누군가에게 잡힐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박이원이 있다면 박이원 자체가 인질이 되기도 하고, 박이원을 조종해 시간을 벌도록 만들 수도 있다.
어쨌거나 철저하게 이용해 먹으려 데려갔다는 것이다.
“한이경이 구지상 씨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친 것 같습니다.”
물론 구지상이 있으면 전부 소용없다.
구지상이 우리나라 최고의 헌터인 이유는 그 누구도 스킬을 쓰는 구지상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조급했던 한이경은 구지상과 마주칠 가능성을 잊었을 것이다. 게다가 보아하니 구지상은 표정은 없지만, 조용히 분노를 삭이고 있는 게 보였다.
구지상은 톨게이트를 지나자마자 다시 엑셀을 밟으며 물었다.
“형은 언제 스킬에 당한 걸까요?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닌데.”
“한이경이 강남 길드장 직을 내려놓기 이전일 겁니다. 시기상으로 보면, 라이브 방송 하기 전일 것 같네요. 박이원 씨가 가장 방심한 순간을 노렸을 것 같은데, 짐작 가는 때가 있으십니까?”
“아, 그때려나.”
구지상은 제대로 짐작 가는 날이 있는 듯했다.
그 이후로 구지상은 인천항에 들어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를 주차한 구지상은 안전 벨트를 풀며 말했다.
“길드 나가겠다고 말할 때 형이랑 잠시 싸웠어요. 아마도 그때인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드네요.”
“잘못은 한이경이 했는데 왜 구지상 씨가 죄책감을 느낍니까. 이상한 생각 마시고, 한이경이나 잡으러 가죠.”
구지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용건에게 전화를 걸며, 천리안을 발동했다.
구지상이 과속한 덕에 말도 안 되게 빨리 도착했지만, 이용건과 한이경은 이미 도착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통화 연결음을 듣다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이용건 씨가 전화를 안 받습니다.”
“인천항으로 온 건 확실하죠?”
나는 천리안으로 주차된 차들의 번호판을 확인했다.
그중 8888이라는 눈에 띄는 번호를 찾아내는 건 쉬운 일이었다.
“한이경이 있는 건 확실하네요.”
하지만 한이경 본인을 찾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항구가 복잡하기도 했고,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사람과 사물이 구분되지 않았다.
그런데 구지상이 차에서 내리더니, 곧장 어느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녀석은 확신을 갖고서 내게 손짓했다.
“이쪽이에요!”
“그걸 어떻게 압니까?”
“소리가 잘 들리는 서브 스킬이 있어요. 서두르죠!”
새삼스럽지만, 구지상은 정말 보통 놈이 아니었다.
내게 천리안 스킬이 있듯이, 구지상에게도 천이통(天耳通)의 능력이 있는 듯했다.
나는 구지상을 따라가며, 가고 있는 방향에 시동이 걸린 배가 없는지 천리안으로 살폈다.
바다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부둣가로 오고 있는 배 한 척이 있었다.
그 근처를 살펴보니, 사람 그림자 세 개가 대치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구지상에게 말했다.
“한이경 쪽으로 배가 한 척 오고 있습니다. 이용건 씨는 그걸 보고 전투를 감행한 모양입니다. 저희는 우선 한이경이 배에 타는 것부터 막아야겠습니다.”
“이유영 씨가 먼저 한이경의 주의를 끌어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구지상의 말대로, 내가 먼저 주의를 끌고 구지상이 기습하는 게 유리했다.
구지상과 나는 그 자리에서 흩어진 뒤, 내가 한발 앞서 한이경이 있는 부둣가에 도착했다.
근처까지 다가가자, 어두워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이용건은 한이경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고, 한이경은 박이원을 자기 앞에 세우며 이용건을 비웃었다.
한이경은 은색 리볼버를 소환해 이용건에게 겨누며 말했다.
“멍청하고 능력도 없는 새끼가…. 상황이 이러니까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아?”
이용건은 녀석의 말에 대꾸하지 않으며 총탄을 피했다.
그러나 기습적으로 날아온 박이원의 주먹을 피하진 못했고, 이용건은 안면을 맞고서 뒤로 고꾸라졌다.
한이경은 넘어진 이용건을 보며 미친놈처럼 웃었다.
“후회되지? 아, 그냥 집에서 잠이나 잘걸. XX 괜히 따라왔다,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닌데. 후회되잖아, 어? 그러길래 어딜 감히 나를 따라와…!”
한이경은 다시 한번 이용건에게 총구를 겨눴고, 나는 그런 한이경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이경아!!”
부둣가에 내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한이경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선 급하게 눈동자만 굴렸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며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도망가지 말라고 했는데, 여기서 뭐 하냐!!”
“뭐, 뭐야! 누구야?!”
한이경은 당황하며 급하게 내 쪽으로 총을 발사했다.
단순한 총알이 아닌 듯, 총알이 박힌 곳은 산성 물질에 맞은 것처럼 부식되었다.
나는 총알에 의해 타들어 가는 바닥을 보며 생각했다.
‘이거 내가 아는 총 같은데?’
나는 녀석의 총을 유심히 보며 다가갔다.
총을 자세히 보니, 내가 예상했던 무기가 맞았다. 회귀 전에 진준성이 사용하던 애시드 건(Acid Gun)이라는 무기였다.
몬스터에게도 치명타를 남기는 A급 무기인데, 이 미친놈이 그걸 사람한테 쏘고 있었다.
한이경은 내가 이용건 옆까지 오고 나서야 날 알아본 것 같았다.
녀석은 날 알아본 뒤로 더는 총을 쏘지 않았다. 내가 총으로 쓰러질 놈이 아닌 걸 알 테니, 다른 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뒷걸음질을 치며 정박한 배 앞까지 도달한 한이경은 지금까지 쓰던 존댓말도 집어치우고, 간절한 투로 설득하듯이 말했다.
“이봐, 이유영. 현실적으로 생각해. 네가 날 붙잡는다고 너한테 이득 되는 게 뭐가 있지?”
“그러게, 딱히 없네. 그래도 그 총은 좀 탐나는데.”
“총, 이 총을 원해? 주도록 하지! 줄 테니까 날 내버려 둬…!”
이 녀석이 기껏 생각해낸 꼼수가 뭔지 눈에 보였지만, 나는 일단 총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한이경은 순순히 내게 그 총을 넘겨주는 듯했다.
그러나 그 순간, 등 뒤에서 무언가가 나를 습격했다.
쾅!
나는 피하지 않았지만, 맞지도 않았다.
내게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줄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지상이 공격을 받아내는 사이, 나는 한이경에게서 총을 빼앗았다.
한이경은 당황하며 뻔한 대사를 외쳤다.
“이게 무슨… 여, 여길 어떻게!”
한이경의 꼼수는 뻔했다.
내게 총을 주는 척하며 박이원에게 기습적으로 내 뒤통수를 치게 했을 것이고, 그 사이 배에 올라타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구지상이 박이원을 막은 탓에 그 꼼수는 끝나버렸다.
구지상은 곧장 한이경을 향해 스킬을 발동했다.
쿠구궁!
땅이 흔들리며 대지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솟아난 대지는 한이경과 배 사이에 커다란 벽을 만들었고, 한이경은 자신을 가두는 대지의 벽을 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한이경에게 말했다.
“총 고맙다. 난 약속 지킬 건데, 구지상 씨는 아닌 것 같으니까 잘 얘기해봐.”
“잠깐, 잠깐 기다려! 구지상! 내 말을 들어봐…!”
한이경은 절박하게 구지상에게 외쳤으나, 구지상은 듣지 않았다.
구지상은 박이원을 기절할 정도로 때린 건지, 박이원은 쓰러져 있었다.
나는 목단의 줄기를 발동해 박이원의 손발을 묶었다.
서정현이 올 때까지 박이원을 제압해 둘 필요가 있었다.
부둣가의 낌새가 심상치 않자, 정박해 있던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는 한이경을 버리고 떠나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그 배를 바라봤다.
쾌속선처럼 보이는 배에는 깃발이 하나 걸려 있었다.
그런데 깃발에 그려진 심볼이, 어딘가 익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