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에덴에서 온 초청장 (4)
김신욱은 리플레이를 알려준 뒤로 오늘 아침이 될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면 당장 따지러 올 놈이 방에 틀어박혀 있는 걸 보면, 생각보다 마음에 든 모양이다.
구지상은 고주연과 함께 던전에 보냈고.
길드에는 김신욱을 비롯해 호두도 있고, 신윤현과 윤지석도 있다.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제 서정현은 협회장이 만나고 싶어 하니 협회로 찾아오라고 했다.
그런데 이 자식은 오라고 해놓고 몇 시에 오라는 말이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협회원들이 출근할 아침 9시에 맞춰 협회를 찾아갔다.
오전 9시의 협회는 꽤 한산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몇몇의 협회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한구석을 보는 게 느껴졌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1층 민원 창구 앞에서 민간인들과 섞여 있는 한 녀석이 보였다.
도나리는 태연하게 민간인들 사이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협회장이라는 인간이 하도 태연하게 앉아있는 탓에 나도 그냥 지나칠 뻔했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얇은 흰색 가운만 걸친 도나리의 모습은 영락없는 백수 꼴이었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 미디어 노출도 꺼리는 인간이라, 민간인들은 도나리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협회원도 몇몇만이 그녀를 알아보고 뻣뻣하게 굳어 있을 뿐이었다.
도나리는 마시고 있던 자판기 커피의 종이컵을 구기더니,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은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서 내게로 다가왔다.
도나리를 알아보는 협회원들의 시선은 도나리를 따라 내게 꽂혔다.
나는 그 시선들을 무시하며 도나리에게 인사했다.
도나리는 건성으로 인사를 받고서 말했다.
“오랜만에 좋은 소식을 하나 전해주지. 에어컨이 풀로 가동되는 협회장실을 포기하고 바깥의 땡볕으로 나간다면 재수탱이랑 안 만날 수 있다. 어떻게 할래?”
“그게 왜 좋은 소식입니까? 재수탱이가 누군데요.”
“너랑 닮은 놈.”
아무래도 서정현을 말하는 것 같은데, 여기서 내가 ‘부협회장이요?’라고 말하면 내가 그놈과 닮았다고 인정하는 꼴이다.
나는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도나리를 멀뚱히 쳐다봤다.
그러자 도나리가 말했다.
“어설픈 연기는 관두는 게 좋아. 넌 연기를 못하거든.”
“솔직한 겁니다. 그런데 고작 부협회장 피하자고 한여름에 밖에서 대화를 나눠야 하는 겁니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야.”
도나리는 부협회장을 한여름의 폭염보다 더한 재앙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녀석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한테 전화를 걸더니, 내려오라는 말 한마디만 하고서 끊어버렸다.
잠시 뒤, 김상엽 팀장이 허겁지겁 내려와 도나리를 찾았다.
도나리는 급하게 다가온 김상엽에게 차 키를 던지며 말했다.
“한가하지? 운전 좀 해.”
“아, 예. 알겠습니다.”
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갑질 풍경에 할 말을 잃었다.
김상엽 팀장은 이미 이런 일을 몇 번이나 겪었던 건지, 익숙하게 차 키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김상엽을 대신해서 도나리에게 말했다.
“김상엽 팀장님한테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합법적으로 땡땡이치게 해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재수탱이가 눈치채기 전에 얼른 나가기나 해.”
도나리가 휙 나가버리는 탓에 나도 녀석을 따라가야 했다.
김상엽 팀장에겐 미안하지만, 나 역시 부협회장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김상엽은 군말 없이 차를 몰고 와서 뒷자리에 도나리와 나를 태웠다.
차에 오르자, 도나리는 차에 있던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내게 휙 던지며 말했다.
“받아.”
도나리가 던진 서류 봉투에는 기밀이라는 도장이 크게 찍혀 있었다.
봉투에는 여러 장을 묶어놓은 서류가 하나 들어있었는데,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종이를 넘겨 보며 물었다.
“이게 뭡니까?”
“보면 몰라? 기밀 서류지. 에덴 가기 전까지 전부 외워두도록.”
각국 헌터들의 얼굴과 이름, 길드, 스킬 계통 등, 개인 정보가 적힌 기밀 서류였다.
나는 종이를 넘길수록 이들이 에덴에 오는 헌터들의 명단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걸 구해낸 것도 놀라웠지만, 협회원도 아닌 내게 이런 기밀 정보를 떡하니 넘기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종이를 넘겨 보며 도나리에게 물었다.
“저한테서 뭘 뜯어가려고 이런 걸 주시는 겁니까?”
“무슨 오해를 하는지 모르겠군. 나라 망신시키지 말라고 주는 거다. 동그라미 친 녀석들을 눈여겨 봐둬.”
서류에는 도나리의 말대로 붉은색 동그라미가 쳐진 인물들이 몇 있었다.
무슨 기준으로 친 동그라미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공통점이 보이지 않았다.
설명을 요구하기 위해 도나리를 쳐다보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잘 기억해두도록. 네가 붙잡아 넣은 구 강남 길드 놈들을 내 능력으로 조사했다. 그러던 중 그 녀석들과 만성의 관계성을 알게 됐지.”
“만성이라면, 아시아에서 가장 큰 길드인 만성 길드 말씀입니까?”
“그래. 한이경이 도주를 시도했을 때 직접 배를 보내줬다지? 그럴 만도 한 사이더군.”
김상엽 팀장도 이미 알고 있던 얘기인지, 묵묵히 운전만 하고 있었다.
나는 종이를 내려두고서 도나리가 하는 말에 집중했다.
도나리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지. 만성은 네 적이다.”
나는 강남 길드를 무너트렸다.
그 결과 강남 길드 헌터들은 협회의 손에 넘어갔고, 도나리는 그들에게 본인의 스킬인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해 모든 기억을 읽어냈다.
협회가 만성과 강남의 관계성을 모조리 알게 된 것이다.
도나리는 이어서 설명했다.
구 강남 길드의 1분대장의 기억을 스킬로 읽어보니, 그가 만성이 한국에 심어둔 ‘스파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만성은 그와 같은 스파이를 각국에 심어뒀다.
스파이들의 역할은 타국의 괜찮은 각성자들을 물색해, 만성에 보내는 것이었다.
만성에 보내진 각성자들은 강삼과 같은 청부 살인 헌터로 만들어지거나, 만성의 길드원이 되거나, 또는 타국의 스파이로 길러진다.
길러진 스파이들은 또 각성자를 물색해서 만성에 보내고, 그 덕에 만성은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우는 것이었다.
한참 설명하던 도나리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만약 네가 만성 길드장이라면, 한국에 있던 만성의 싹을 뿌리째 뽑아버린 이유영이라는 헌터를 어떻게 할래?”
“죽이거나 자기 길드로 끌어들이겠죠.”
“그래. 그 명단에 있는 동그라미 친 녀석들은 만성의 스파이들이다. 아마 정체를 숨기고 널 표적으로 삼을 거야. 처음엔 널 회유하러 들 거고 그게 안 통하면, 죽이려 하겠지. 넌 만성의 비밀을 모두 알아버릴 가능성이 높은 놈이니까. 실제로 방금 모두 알게 됐고 말이야.”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도나리가 내게 이런 일로 거짓말할 녀석은 아니다.
게다가 회귀 전 만성 길드의 결말을 떠올리면, 도나리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서류에 있는 동그라미 쳐진 인물들을 살펴봤다.
회귀 전의 기억과 빗대어 봤을 때 크게 눈에 띄는 인물은 없었는데, 한 명 걸리는 사람이 있었다.
야마다 미츠하.
카타나 길드라는 일본 최고의 길드에 있는 여자 헌터로, 회귀 전에 만난 적 있던 사람이다.
일본에서는 미츠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헌터다.
그런 여자까지 만성의 스파이라는 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이 스파이들은 정말 스파이인 게 확실합니까?”
“내 정보를 못 믿는 건가? 미리 말해두지만, 같잖은 동정심 따위에 휘둘려서 일을 그르치지 마. 네가 죽어서 오면 국가 망신이다.”
도나리가 틀리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야마다 미츠하는 만성의 스파이가 맞다.
회귀 전의 그녀는 만성의 스파이인 것을 들키지 않고, 끝까지 일본의 대표 헌터로 살아남았다는 말이다.
웬만한 남자들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청순한 이미지의 그 야마다 미츠하가, 사실은 누구보다 독한 녀석이었던 모양이다.
에덴의 붕괴 예지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이런 녀석들까지 상대할 여유는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에덴에 혼자 가는 게 아니다.
구지상과 김신욱은 내가 다른 나라 길드 헌터한테 시비를 털리면 가만히 있을 놈들은 아니었다.
나는 도나리에게 말했다.
“이렇게 기밀 서류까지 주셨는데, 국가 망신은 안 시키고 오겠습니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너만 잘하지 말고 데려가는 놈들도 챙기도록 해. 그놈들은 가능하면 말을 시키지 마.”
만성 길드 녀석들은 나보단 구지상이나 김신욱한테 먼저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구지상은 어리고 물렁한 놈이지만, 쉽게 빈틈을 보이는 녀석은 아니라서 괜찮을 것이다.
다만 김신욱은 도나리의 말대로 일을 열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가능한 눈 감고 리플레이만 하도록 시키는 게 좋을 듯했다.
나는 도나리에게 말했다.
“에덴에 일이 하나 터질 겁니다. 그 일이 잘 안 풀리면 당분간 한국에는 못 올 거고요. 그동안 별일 없도록 신경 좀 써주시죠. 어쩌면 한국에도 큰일이 닥칠지 모릅니다.”
“그 말은 꼭 에덴에 큰일이 닥치는 게 기정사실이라는 것처럼 들리는군.”
운전하고 있던 김상엽 팀장은 걱정스럽게 백미러로 우리를 쳐다봤다.
도나리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도나리도 잠시 말이 없었다.
곧 침묵을 깨고 도나리가 말했다.
“한국의 헌터들은 내가 있는 이상 질서를 잃지 않아. 질서를 잃지 않은 한국의 헌터들은 위험에 무너지지 않지. 그러니 넌 가서 네 목숨 부지할 생각이나 해.”
평소처럼 장난을 치거나 비꼬는 말이라도 할 줄 알았더니, 도나리는 웬일로 협회장다운 말을 하고 있었다.
마치 에덴이 멸망한다는 중대 사안을 예상해낸 사람처럼 진지한 반응이다.
아무리 도나리라고 해도 그게 가능했을 리 없을 텐데, 순간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는 허무맹랑한 생각까지 스쳤다.
도나리는 김상엽에게도 말했다.
“곰탱이, 오늘 들은 얘기 다른 녀석한테 말하면 해고야.”
“예, 비밀로 하겠습니다.”
“알았으면 이제 그만 협회로 돌아가. 언제까지 이 주위만 빙글빙글 돌 거야?”
도나리의 명령에 김상엽은 차를 돌렸다.
확실히 이상한 녀석이긴 해도, 도나리가 괜히 협회장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후 김상엽은 차를 우리 길드 근처에 세워 친절하게 나를 내려줬다.
도나리는 협회에 가지 않고 날 배려해주는 김상엽을 나무랐지만, 원래 그런 이상한 녀석이라는 걸 김상엽도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인사한 뒤, 도나리에게서 받은 서류 봉투를 들고 길드로 향했다.
구지상과 김신욱, 두 녀석한테도 만성 길드와 에덴에 관한 정보를 어느 정도 말해줘야 한다.
나는 두 사람을 불러서 에덴과 만성에 관한 정보를 알려줬다.
두 놈은 서로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앉아 내 얘기를 들었다.
둘이 입 다물고 있는 덕에 질문 하나 없어서, 나는 빠르게 얘기를 전달해줄 수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상황이 꽤 심각합니다. 두 분이 싸울 여유가 없다는 거 미리 알고 계시고, 웬만하면 친한 척하세요. 괜히 적한테 빈틈 보이지 말고.”
두 사람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서로가 마음에 안 들어 보였지만, 이전처럼 죽일 듯이 노려보지 않는 걸 보면 어제보단 나아진 것 같았다.
이제부턴, 나도 이 두 사람을 신뢰하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