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폭풍 속의 에덴 (2)
이 고급스러운 에덴 전용기는 한 길드당 한 공간을 쓸 수 있을 만큼 객실이 잘 분리되어 있었다.
러시아 길드는 처음부터 제일 안쪽의 프라이빗룸을 이용하고 있었고, 핀란드 길드도 조금 전 자야겠다면서 자리를 옮긴 참이었다.
핀란드 길드가 자리를 옮기면서, 이곳에 남아있는 건 한국 길드뿐이었다.
구지상과 김신욱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슬그머니 내 앞으로 모였다.
둘은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 얼른 얘기해보라고 재촉했고, 나는 두 사람에게 나쟈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스파이가 우리 셋이 만성의 비밀을 이미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챈 것 같습니다.”
“벌써요? 이유영 씨가 티를 냈을 리는 없고, 어떻게 눈치챈 거예요?”
“걔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나는 대충 그 여자가 했던 말을 빌려서 두 사람에게 말했다.
“두 분이 너무 어리고 티를 내서 재미없다고 했습니다. 아마 확증은 없고, 경계 어린 반응으로만 눈치챈….”
“누구 보고 어리다는 거야? 그거, 우리 깔보는 거잖아.”
“음, 저희 셋 평균 연령이 스물다섯이니까 어리긴 하죠.”
김신욱은 성질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화를 냈고, 구지상은 그런 김신욱을 다시 앉히고 있었다.
나쟈가 눈치챈 가장 큰 원인은 사실상 이 둘이었다.
뭐, 이런 녀석들이니 그 눈치 빠른 여자가 금방 눈치채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만성의 스파이들은 ‘이유영이 한국에서 체포된 만성의 스파이로부터 만성에 관한 비밀을 전부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라는 정보를 전달받았을 게 분명하다.
나쟈는 그 정보가 사실인지 이 둘의 반응으로부터 확인을 끝냈다고 봐야 한다.
나쟈가 알게 되었으니, 그 사실은 만성 녀석들에게 넘어갈 것이고. 만성 녀석들은 본격적으로 나를 타겟으로 삼아 움직일 것이다.
만성 길드장 입장에선 내가 한국을 배반하고 자기네 길드로 오길 바랄 것이다. 나를 죽이는 것보다야, 그편이 훨씬 이득일 테니 말이다. 나뿐만이 나와 함께 온 두 사람도 회유하려 들 가능성이 크다.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저 러시아 스파이가 눈치챘으니, 에덴에 도착한 시점부터 만성이 움직일 가능성이 큽니다. 두 분 다 스파이들 얼굴은 제대로 외웠죠?”
“네, 다 기억하고 있어요.”
“어어.”
김신욱의 대답이 묘하게 부실했지만, 일단은 넘어갔다.
본론은 따로 있었다.
“만성 길드장은 저희를 자기 길드로 끌어들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두 분은 만약 스파이들과 마주치게 되면, 무조건 자리를 피하세요.”
“도망가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시간 동안 나쟈를 겪으면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 둘은 스파이들과 만나게 해선 안 된다.
조금 전만 해도, 이 둘이라면 나쟈와의 도발에 쉽게 넘어가 내기에 응했을 것이고, 그대로 술 내기를 했으면 분명 이기지 못해 곤란해졌을 것이다.
나쟈가 아닌 다른 스파이들도 사람 구슬리고 볶아먹는 기술이 상당할 텐데, 이 두 놈은 그런 것에 당하기 딱 좋은 인간상이었다.
구지상은 사람을 너무 믿는 경향이 있고, 김신욱은 열받으면 뇌에서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말하는 놈이다.
이 둘이 헌터로서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상대가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스파이들한테 휘둘릴 바에야 도망치는 게 훨씬 이로웠다.
하지만 두 녀석은 내 말을 납득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도망가면 무사하니까, 우리는 그냥 피하기나 해라?”
“혹시 이유영 씨는 저희가 그분들이랑 싸워서 못 이길까 봐 걱정하시는 건가요?”
두 놈은 자존심이 밟히기라도 한 것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나는 두 놈을 이해시키기 위해 한 번 더 설명했다.
“저희의 목적은 모두 무사히, 아무런 사고 없이 에덴을 다녀오는 겁니다. 마성과는 싸움을 만들지 않는 게 이기는 겁니다. 몬스터가 아니잖습니까.”
두 녀석은 여전히 제대로 납득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어쨌든 할 말은 없었는지 더 이상 토를 달진 않았다.
대화는 거기서 끊겨 버렸다.
잠에서 깨어난 러시아 길드의 두 헌터들이 우리에게 인사하러 온 탓이다.
그 둘은 나쟈와의 술 내기에서 진 탓에 뻗었다며, 인사가 늦어서 미안하다고 넉살 좋게 말을 붙여왔다.
스파이는 떼어놓고 둘만 온 걸 보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실제로 우리와 간단히 인사를 마칠 때까지 별일 없었다.
이후 비행기가 도착할 때까지도 평범했다.
우리는 핀란드 헌터들과 모여서 화기애애하게 기내식을 먹거나, 우리가 공략했던 SS급 던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거나 하면서 친목을 쌓았다.
무슨 꿍꿍이인지 몰라도, 나쟈는 술 내기 이후로 한 번도 프라이빗 룸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심하고 있을 순 없는 탓에, 나는 그 스파이 여자를 경계하며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구지상과 김신욱도 경계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 스파이 녀석 덕분에 우리는 미국까지 가는 비행기에서 잠 한숨 자지 못하고 긴장해야 했다.
비행기는 순항하던 끝에 창밖으로 화려한 미국의 도시 위를 비췄다.
다행히 이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승객 여러분. 저희 비행기는 착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에덴의 전용 활주로를 이용하여 지상에 착륙할 예정으로…』
승무원의 착륙 안내 방송이 기내에 울려 퍼지고 나서야 우리는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리와 달리 잠을 푹 자고 일어난 핀란드 헌터들은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시작했다.
핀란드 길드장은 내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이유영 헌터,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이브닝 파티 때 자주 얼굴 비춰주시겠어요? 또 만나서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물론입니다. 저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나는 비즈니스 미소를 장착하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이 아저씨의 바람과 달리 우리는 이브닝 파티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에덴 길드는 8월 31일에 열리는 본 파티 전까지 7일 동안 매일 밤 이브닝 파티를 연다.
친목을 다질 수 있는 자리로 참여가 자유롭고, 같이 저녁 식사를 하며 춤과 음악을 즐기는 가벼운 자리다.
다른 나라 길드와 사교를 다지고 정보 교환을 위해 대체로 많은 나라들이 참여한다.
하지만 각국의 만성 스파이들에게 노려지고 있는 내가, 본 파티도 아닌 이브닝 파티에 나갈 이유는 없다.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눈 핀란드 길드를 보낸 뒤, 구지상이 내게 말했다.
“저희는 이브닝 파티 동안에도 숙소에 있어야겠죠?”
“그래야죠.”
“그래도 저희 셋은 그동안 많이 친해지겠네요!”
살짝 시무룩해 하던 녀석은 다시 긍정적인 점을 찾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두 놈과 종일 방에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않아졌다.
김신욱도 같은 생각을 하는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우리가 대화하는 중에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왜 숙소에만 있으려고 그래? 나 만나러 와.”
나는 이 목소리의 주인을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어깨에 팔을 걸치려는 녀석의 움직임을 피할 수 있었다.
나는 신발 끈이 풀린 척 앉으며, 나쟈의 손길을 피했다.
나쟈는 어정쩡하게 공중에서 팔을 뻗은 채로 나를 쳐다봤다.
“지금 나 피한 거니?”
“신발 끈이 풀려서요.”
나쟈는 아주 탄탄하게 잘 묶여 있는 내 신발 끈을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녀석은 구지상을 쳐다보며 물었다.
“너희 길드장 원래 이렇게 뻔뻔하니?”
“…매사에 당당한 분이죠!”
구지상이 애써 좋은 말로 해석해준 대답에, 나쟈는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뻔뻔하게 신발 끈을 묶는 시늉도 하지 않고는 몸을 일으켰다.
때마침 러시아 헌터들이 프라이빗룸에서 나와 나쟈와 함께 섰고, 나쟈는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나 너무 미워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 응?”
나쟈의 시선 끝에는 김신욱이 있었다.
아무래도 SNS를 블락해버린 것 때문에 하는 말인 것 같은데, 김신욱은 시선을 외면할 뿐이었다.
나쟈는 그런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여유를 부리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또 보자?”
마지막까지 불필요한 인사를 빼놓지 않으며, 녀석은 러시아 헌터들과 함께 비행기를 빠져나갔다.
핀란드 헌터들 역시 우리에게 쾌활하게 인사하며 비행기를 나갔고, 우리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저분… 우리가 만성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거 눈치챘다고 하셨죠? 그런데 왜 저렇게 여유로운 걸까요? 만약 러시아 분들한테 폭로해버리면 스파이 생활도 끝일 텐데.”
구지상은 비행기를 빠져나오며 내게 물었다.
구지상의 말대로 초조해야 할 쪽은 우리가 아니라 저 여자다.
만약 우리가 녀석이 만성의 스파이라는 사실을 러시아 헌터들에게 밝히면, 나라를 배신한 매국노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자국의 각성자를 다른 나라로 빼돌린다는 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험한 꼴을 당하게 될 텐데도 나쟈는 한없이 여유로울 뿐이었다.
“자기가 스파이인 거 알아봤자, 말도 못 하는 등신이라고 깔보는 거 아니야? 야, 너 뭐 가진 증거 같은 거 없냐? 당장 까발려버리게.”
김신욱은 멋대로 내 가방을 열어보며 증거를 찾아댔다.
내 가방에는 없지만, 한이경과 강남 길드 1분대장이라는 만성의 스파이가 우리나라 헌터 수감소에 살아있는 상황이다. 그 녀석들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만큼 상황의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즉, 나쟈의 여유로움은 우리를 혼란에 빠트리려는 작전일 뿐이다.
에덴에 도착하면 우리에게 더 손을 뻗치기 어려워질 텐데도, 나쟈는 비행기라는 은폐된 장소를 이용하지 않고 에덴으로 향했다.
이것만으로도 그 녀석한테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화약을 쥐고 있는 건 우리다.
이 화약이 모래처럼 잠잠하게 있을지, 폭탄이 될지 결정하는 것 역시 우리였다.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최대한 만성 사람들은 우리는 에덴에서 벌어질 일들에만 대비합니다. 이게 우리가 일주일 동안 해야 할 일입니다. 다른 건 생각도 하지 마세요.”
두 사람은 이번에도 시원찮은 반응이었다.
싸움을 거는 상대가 있는데 무시하라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다.
하물며 우리는 싸우기 위해 각성자가 된 헌터다. 본능적으로 싸움을 피하는 게 쉽지 않은 족속들이지만, 본능대로 살면 그건 짐승이지 사람이 아니다.
지금은 싸움을 참아야 했다.
“어째 똥 싸다가 끊긴 것처럼 기분이 더러운데.”
“비행기에서 무슨 일 벌어질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그래도 공통의 적이 생겨서 그런지, 저 둘의 사이가 어느 정도 개선된 것 같았다.
치고받고 싸우던 놈들이 지금은 합심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내가 나름 이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점을 찾으며, 비행기에서 내리려던 때였다.
“이유영 헌터님, 맞으십니까?”
비행기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에덴 길드원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에덴의 유니폼인 흰 양복을 입고 있는 금발의 남자가 말했다.
“한국의 두 헌터분은 제가 안내해드릴 테니, 이유영 헌터님은 곧 오실 다른 간부님을 따라가시죠. 짐은 제가 옮겨 드리겠습니다.”
에덴 길드원은 내가 들고 있던 짐을 가져가 대신 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구지상과 김신욱도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누가 미카엘의 부하 아니랄까 봐, 다짜고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나는 에덴 길드원에게서 다시 내 짐을 가져오며 말했다.
“어딜 가야 하는지부터 말씀해주시죠.”
“자세한 건 곧 오실 간부님께서 알려드릴 겁니다.”
녀석은 다시 내 짐을 빼앗아 들더니, 멋대로 구지상과 김신욱을 데리고 가기 시작했다.
내가 황당함에 녀석을 뒤쫓으려던 순간.
갑작스럽게 내 눈앞에 누군가 등장했다.
스슥!
등장한 녀석은 누구인지 판별할 틈조차 주지 않고 내 어깨를 콱 붙잡았다.
동시에 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기분과 함께 시야가 왜곡되며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마치 공간을 이동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눈앞의 세상이 변했다.
그렇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 있었다.
내 옆에는 날 이동시킨 녀석이 서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에덴 길드의 간부, 미카엘의 충직한 부하이자 ‘순간이동’이라는 희귀한 스킬을 가진 녀석.
사빈.
나는 녀석의 순간이동에 당해, 순식간에 길드원들과 떨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