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폭풍 속의 에덴 (4)
나는 짧은 회담을 끝내고 에덴 길드장실을 나와 사빈을 찾았다.
그러나 길드장실 바깥에는 조금 전 차 심부름을 해온 에덴 길드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 길드원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내게 다가와 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굴 찾으십니까?”
“조금 전에 길드장실에서 나온 분, 어디 계십니까?”
“유감이지만 이곳에는 줄곧 저밖에 없었습니다.”
이 길드원도 길드장실에서 나온 사빈을 봤을 텐데, 전혀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볼일이 끝나셨다면, 한국 헌터분들이 계신 숙소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길드원은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빈은 순간이동 능력자답게 신출귀몰하기도 하고, 원래 사빈 같은 에덴 간부들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은 구지상과 김신욱에게 가보는 게 먼저인 것 같았다.
나는 에덴 길드원을 따라가며, 뒤늦게 둘한테 연락이라도 하려고 주머니를 뒤졌다.
그런데 핸드폰이 없었다.
에덴 길드원이 멋대로 나한테서 가져간 짐 속에 끼어있는 듯했다.
생각해보니, 그 두 놈 입장에선 갑자기 내가 에덴 길드원에게 납치된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나한테 핸드폰도 없어서 연락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은 1시간 정도 지난 것 같았고.
“…….”
불현듯, 그 두 놈이 나를 찾겠다며 사고를 치는 그림이 그려졌다.
나는 내 앞에 있던 길드원에게 급히 물었다.
“혹시 제가 에덴 길드장실에 있는 동안, 한국 헌터들이 뭔가 사고를 치진 않았습니까?”
“아직 보고 받은 내용은 없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다행히 사고를 치진 않은 듯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순간, 내 반응에 에덴 길드원이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쳐다보자, 녀석은 모르는 척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나는 한걸음의 간격을 유지하며 녀석을 쫓았다.
걸을수록 기묘한 위화감이 풍겼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피부로 감지되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긴장감이었다.
긴장을 풀지 않고 녀석을 따라 긴 복도를 걸었다.
한참을 따라가던 끝에, 파티 홀에서 나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녀석은 그 소란으로 들어가는 경계에 멈춰 서며 뒤를 돌았다.
나는 녀석을 경계하며 자세를 잡았고, 녀석은 말했다.
“빈틈이 없네. 여기서 한 번 자빠트려 버릴까 했는데.”
목소리는 여전히 굵직한 에덴 길드원의 목소리였으나, 이 특색적인 말투는 분명 나쟈의 것이었다.
“섭섭하게 도청기를 부숴버려서 몸소 찾아와야 했잖아. 에덴 길드장이랑 무슨 얘기 했니?”
마치 신내림 받은 무당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에덴 길드원의 몸속에 나쟈가 들어간 것 같은 광경이었다.
‘변장술인가?’
하지만 자신보다 큰 덩치의 남성으로 변장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단순히 변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이 있었다.
저 에덴 길드원의 몸에 나쟈의 영혼이 빙의된 듯한 느낌이었다.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어머, 지금 얘를 걱정하는 거구나? 걱정하지 마. 나도 미카엘은 무섭거든. 에덴 길드장한테 혼날 짓은 안 할 거야.”
본인의 몸뚱아리를 가리키며 ‘얘’라고 칭한 것을 보면, 내 직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쟈는 내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틈을 주고 싶지 않은 듯,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있잖아, 만성에 오지 않을래? 만성에 오지 않으면 넌 죽을 텐데, 난 네가 안 죽었으면 좋겠거든. 만성도 나쁘지 않아! 세계 2위 길드잖니.”
에덴 길드원의 입으로 나오는 나쟈의 말들은 위화감을 넘어서 불쾌감까지 들었다.
귀신한테 조종당하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괴상했고, 나쟈가 왜인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어서 더욱 광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녀석에게 물었다.
“왜 제가 만성에 가지 않으면 죽어야 합니까?”
“만성 길드장이 원래 그런 사람이야. 장애물은 덤프트럭으로 밀어버리는 타입. 넌 지금 그분의 장애물이고. 하지만 네가 만성에 들어오면 죽지 않을 거야. 어때, 들어올 마음이 생겨?”
만성 길드장은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는 놈이고, 그런 녀석이 날 죽이려고 한다는 건 새삼스럽지 않았다.
다만 나쟈가 몸소 찾아와 내게 이 말을 전해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당신이 이러는 거 만성 길드장도 알고 있습니까?”
나쟈는 분명 비행기에서부터 지금까지 날 죽일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녀석은 지금 내게 죽지 않을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녀석이 말한 만성 길드장의 방식과는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나쟈는 대답 없이 신경질적으로 손을 까딱일 뿐이었고, 나는 그런 녀석에게 물었다.
“저한테 이러는 거 알려지면 당신 목숨이 위험해지는 거 아닙니까?”
녀석은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눈을 감던 녀석은 감정을 추스르듯 자신을 가라앉힌 뒤, 천천히 말했다.
“그래, 지금 내가 네게 호의를 베풀고 있는 거야. 만성 길드장은 말이야, 네 목에 5천만 달러를 걸었거든. 현상금을 걸었다는 뜻이야. 이해되니?”
“꽤 높네요.”
“얘, 지금 태평하게 반응할 때가 아니야.”
녀석은 날카롭게 말했다.
물론 말하고 있는 건 덩치 좋은 에덴 길드원이라 곰이 으르렁대는 것처럼 보였다.
5천만 달러면 한화로는 700억 원이다. 그 정도의 금액을 포기하고 호의를 베풀어주는 나쟈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나를 대신해서 화까지 내주고 있는 상황이다.
“저한테 왜 이런 호의를 보이시는 겁니까? 만성 길드장이 저를 살려서 데려오면 값을 더 쳐준다고 했습니까?”
“너 정말 답답하다! 살려서 데려오면 그래, 천만 달러를 더 준다고는 했어. 근데 넌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것처럼 보이니?”
그 정도 금액이면 의심이 될 법도 하지만, 희번득하게 뜬 눈이나, 희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나쟈의 흥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마저도 연기일 수 있지만, 이렇게 연기할 필요가 나쟈에게 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나쟈는 자기의 말을 들으라는 듯이 히스테릭하게 말했다.
“네가 만약 여기서 무사히 살아남아 한국에 돌아간다고 해도, 네 목에 걸린 돈을 노리는 애들은 계속해서 따라붙을 거야. 이해돼? 네가 죽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 거라고. 그건 지옥이나 다름없어.”
나쟈의 몸과 목소리로 말하는 게 아니었음에도, 실제로 지옥을 헤매본 사람의 경험담처럼 들렸다.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말의 의도만큼은 와닿았다.
“알겠습니다. 얘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성에 오는 거야?”
“아뇨.”
내 대답에 녀석의 표정은 순식간에 실망으로 물들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날 만성에 집어넣기 위한 연기가 아니었다.
나는 만성에 가지 않을 거지만, 이 녀석의 열변이 내게 아무런 결과물을 만들지 못한 건 아니다.
“지금은 만성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끝나면 만성 길드장한테 현상금 철회하라고 말해보겠습니다.”
“뭐? 너… 미쳤니? 내 말을 아예 못 알아들은 거야?”
그 목소리에는 황당함이 배어 있었다.
너 따위가 만성 길드장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 전에 네가 죽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하느냐, 이런 뻔한 말들이 내포되어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원래 만성 길드장을 만날 생각은 없었는데, 당신의 얘기를 듣고 생각이 바뀐 겁니다.”
만성이랑 엮일 생각 따위 조금도 없었다.
날 죽이려 하든 말든, 관심을 끄고서 에덴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데 집중하려 했다.
대체 에덴을 무너트린다는 그 태풍이 뭔지, 어떤 몬스터이길래 회귀자인 내가 전혀 모르는 건지.
아니면 내 일기장의 힘을 얻은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난 건지.
그런 문제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누군가는 몬스터를 멸절할 방법을 생각하는 동안, 만성 길드장이란 놈은 나른 죽일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수집한 인재들과 700억이 넘는 자본으로 하려는 일이, 고작 나를 죽이는 일이었다.
대체 왜일까.
세계 2위나 되는 길드의 길드장이라는 놈이 왜 몬스터 한 마리라도 더 없앨 생각을 하지 않고, 고작 사람 하나를 죽이려 하는 것일까.
자본과 권력을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 왜 몬스터와 싸우지 않는 걸까.
인류가 멸망한 이유는 단순히 오류에게 대항할 힘이 없어서일까?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심심풀이로 사람을 죽이는 놈이 권력을 잡고 있다면, 인류는 결코 오류에게 이길 수 없다.
700억의 돈과 만성의 여러 헌터들이 고작 나를 죽이는 데 사용되는 걸 알면, 인류의 적인 오류는 아주 기뻐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만성의 길드장에게 그 짓거리를 취소하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저는 당신을 포함한 만성의 인력들이 절 죽일 시간에 던전 한 개라도 더 공략했으면 좋겠습니다. 저한테 걸었던 돈은 뭐, 던전 연구소에라도 투자하면 좋겠네요.”
“너, 정말 이런 멍청이일 줄은 몰랐네. 이렇게 머릿속에 꽃밭만 들어찬 애인 줄 몰랐어. 괜한 시간 낭비를 했구나, 내가!”
인류가 멸망한 세상엔 꽃밭만 깔려있긴 했다.
오물이 걷어진 것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운, 뭐,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그 아름다운 세상에 나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시간을 되돌려 온 것이다.
“당신이 살인할 필요 없도록 만성 길드장한테 현상금 철회하라고 말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만성에 들어오라는 말은 그만 하세요. 어차피 안 갑니다.”
“나도 더는 벽에 대고 말할 생각 없어. 멍청한 자식!”
녀석은 짜증스럽게 외치고서 러시아어로 욕을 뱉었다.
그리고는 내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자마자, 에덴 길드원의 몸이 혼절하듯이 쓰러졌다.
나는 쓰러지는 녀석을 받아 생명의 의지를 발동했다.
[ 메인 스킬, 를 발동합니다. ] [ 대상자를 찾을 수 없습니다. ]힐이 들어가지 않는 걸 보면 몸 상태는 멀쩡한 것 같았다.
단순히 정신만 잃은 듯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쟈의 능력은 아마도 사람 몸에 빙의할 수 있는 능력인 듯했다.
그런 종류의 특수계 헌터들은 굉장히 드물기 때문에, 이 녀석이 만성의 스파이가 된 경위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
내게 충고하려고 능력까지 써 보인 걸 보면, 내 생각과 달리 만성에 어느 정도 적개심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쓰러진 에덴 길드원을 부축해서 일으키고 복도를 나왔다.
나쟈가 폭풍처럼 휩쓸고 간 탓에 잠시 잊어버렸지만, 지금은 우리 길드원 두 놈부터 찾아야 했다.
그런데 천리안을 사용할 것 없이, 얼마 걷지 않아서 익숙한 주황 머리가 보였다.
녀석도 천이통(天耳通)을 사용해서 나를 찾아낸 것 같았다.
구지상은 나를 향해 다급하게 뛰어오며 말했다.
“이유영 씨, 큰일 났어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이 녀석들이 벌써 사고를 쳤음을 직감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