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폭풍 속의 에덴 (5)
나는 쓰러진 에덴 길드원을 복도 벤치에 눕혔다.
사람을 부르면 일이 귀찮아지기 때문에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구지상은 내게 자초지종을 들은 뒤, 걱정스럽게 말했다.
“핸드폰 두고 가셔서 연락도 안 되고… 그런 와중에 에덴 길드원을 부축하고 계셔서 정말 놀랐어요.”
“말씀드렸지만 제가 쓰러트린 게 아닙니다. 그것보다, 말씀하셨던 큰일이 뭡니까?”
“그게….”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며 구지상의 이야기를 들었다.
구지상은 벤치에 앉아 심란하게 말했다.
구지상과 김신욱은 내가 사라진 뒤로, 우선 짐부터 내려놓고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숙소부터 향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길드가 지낼 숙소 근처에 일본 길드가 있었고, 그들과 마주쳤다고 한다.
구지상은 원래 일본 대표들과 친분이 있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일본의 대표 헌터가 구지상에게 말했다.
‘이번 대표 헌터는 지상 군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었다던데! 설마 이쪽은 아니겠지?’
그는 원래 성격이 뜨겁고 직설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문제는 그가 김신욱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김신욱은 당연하게도 날 선 말로 받아쳤고, 말싸움으로 번졌으며, 두 사람은 구지상이 말리기 어려울 만큼 싸우기 시작했다.
그때, 함께 온 일본 헌터가 두 사람에게 ‘스파링’을 제안했다고 한다.
스파링이란, 에덴에서 제공하는 헌터 결투 시스템으로, 몸에 부착한 상대의 판넬을 먼저 부수면 승리가 인정되는 일종의 게임이었다.
에덴은 헌터들의 원활한 스파링을 위해 ‘스파링 그라운드’라는 장소와 심사위원까지 제공해준다.
스파링을 통해 자웅을 겨루며 친목을 도모하라는 게 에덴의 주장이지만, 다른 나라 헌터들의 스킬을 볼 수 있어서 제공해주는 것뿐이다.
이 스파링을 통해 헌터들은 합법적으로 서열을 정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각 나라 최고 헌터들의 싸움이다 보니, 한 번 스파링이 열리면 구경꾼들이 엄청 모여든다.
에덴의 파티에 초청되면 볼 수 있는 대형 이벤트 중 하나인 셈이다.
“그래서, 김신욱이 그걸 승낙했습니까?”
“네. 한국 대 일본으로, 대표 한 명이 나와서 1대 1 대결을 하게 됐어요.”
구지상은 역시 사과드리고 없던 일로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스파링을 취소하면 보통 ‘무서워서 도망쳤다.’라는 취급을 받게 된다.
싸움을 승낙한 이상, 도망칠 수는 없었다.
“김신욱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어… 숙소를 지키고 있어요!”
사고를 쳐놓고 숙소에 편안히 누워있을 그놈의 상판을 생각하니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서둘러 숙소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던 때, 마침 에덴 길드원이 부스스 몸을 일으키며 눈을 떴다.
녀석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졸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에덴 길드원은 구지상과 나를 보며 혼란스러워했다.
“갑자기 쓰러지셔서 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에덴 길드원이 어떻게 나쟈한테 당한 건지 알아내기 위한 질문이었다.
내 물음에 그는 천천히 기억을 떠올려 보며 답했다.
“분명 길드장님의 차 심부름을 해 드리고… 누군가를… 굉장히 아름다운 여자분을 만났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 여자한테 무슨 짓을 당하진 않았습니까?”
“그럴 리가요. 길을 잃었다고 해서 제가 길을 찾아드리겠다고 했던 것밖에 없습니다.”
에덴 길드원은 만났던 헌터가 정말 예뻤다는 말만 반복할 뿐, 딱히 생산적인 정보를 주진 않았다.
어쩌다 정신을 잃었는지도 떠올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아름다운 여자는 분명 나쟈일 것이다.
저렇게 홀린 듯이 말할 정도라면 그 녀석밖에 없다.
어떻게 스킬을 걸었는지는 몰라도, 스킬을 걸려면 대상에게 접근해야 하는 모양이다.
스킬이 풀려도 상대에게 문제는 없는 것 같았고.
기억을 더듬어보던 에덴 길드원은 이럴 때가 아니라며,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서둘러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사라지는 에덴 길드원을 멀뚱히 보고 있는 구지상에게 물었다.
“구지상 씨, 스파링을 제안했다던 일본 헌터는 누구입니까?”
“야마다 미츠하 씨예요. 그. 만성 사람이요. 김신욱 씨는 야마다 씨가 만성 사람인 걸 잊고 있던 것 같더라고요.”
여전히 나쟈가 왜 호의를 베풀어 직접 내게 경고해준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녀석의 경고대로 벌써부터 만성 사람이 접근해오고 있었다.
나는 싸우지 말라고 몇 번이나 경고했는데도 잠깐 자리를 비운 틈에 스파링을 잡은 놈에게 직접 설명을 듣기 위해, 일단 구지상과 함께 숙소로 향했다.
***
에덴 길드는 7성급 호텔을 개조해서 만든 길드라, 손님들이 투숙할 수 있는 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다.
대부분의 가구에 금칠이 덧대어져 있어 호화로워 보이기 그지없었고, 방도 지나치게 넓어 세 명이 한 곳에서 지내도 문제가 없었다.
나는 ‘KOREA’라는 판넬이 붙어 있는 방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세상 편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있는 놈이 있었다.
“왔냐? 왜 핸드폰을 두고 가? 하도 연락이 안 돼서 어디서 객사한 줄 알았네.”
김신욱은 테이블에 놓인 내 핸드폰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나는 녀석이 앉은 소파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왜 그 잠깐 사이에 일본 길드랑 스파링을 하게 되었는지부터 설명해.”
“뭐야, 쟤가 벌써 꼰질렀냐?”
김신욱은 구지상을 흘겨봤다. 구지상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두 놈은 잠시 서로를 노려보다가, 김신욱이 먼저 고개를 돌리며 꽤나 당당하게 말했다.
“나한테 별 볼 일 없는 게 어떻게 저 아이돌을 이기고 대표 헌터가 됐냐고 그러잖아. 이걸 그냥 넘겨?”
“김신욱 씨가 먼저 일본 대표 헌터한테 대머리라고 하셨잖아요.”
“대머리를 대머리라고 한 게 뭐가 문제야?”
결국 이놈이 문제였다.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눈앞의 문제아를 쥐어박지 않기 위해 심신을 가라앉혔다.
그 사이 두 놈은 또 말싸움을 시작했고, 나는 참다못해 말했다.
“조용히 좀 하세요. 생각하게.”
다행히 뭐 하나 때려 부수기 전에 구지상부터 입을 다물었고, 김신욱도 조용해졌다.
나는 두 놈이 얌전해진 사이 스파링을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생각했다.
일단 스파링을 취소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가 패자 취급받는 건 내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김신욱을 스파링에 내보낼 수도 없었다.
김신욱의 합주 스킬은 다른 나라 헌터들에게 보일 수 없는 스킬이다.
김신욱은 그 진가를 잘 모르지만, 합주는 기본적으로 헌터의 기본 능력치 이상의 힘을 끌어내는 강화 스킬이다.
스킬의 운용이 난해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강화 스킬이란 본래 최상의 스킬 중 하나다.
특히 에덴에서는, 강화 스킬을 가진 헌터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은 최대한 숨겨야 했다.
합주가 없는 김신욱은 일본의 카타나 길드 헌터들에게 이길 수 없고, 만성의 스파이인 야마다 미츠하의 존재도 걸렸다.
결론적으로, 김신욱은 스파링에 내보낼 수 없었다.
대결 조건이 한국과 일본 헌터 한 명씩 나와 1대 1로 겨루는 거라면, 꼭 김신욱이 나갈 필요도 없었다.
나는 웬일로 아직까지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두 놈에게 말했다.
“스파링에는 제가 나가겠습니다.”
“…왜 네가 나가? 너 설마 나 못 믿냐?”
“이유영 씨가 나가야 한다면 차라리 제가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김신욱의 서브 스킬은 다른 나라 헌터들한테 보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야마다 미츠하가 있는 이상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웬만하면 안 죽는 제가 나가는 게 제일 낫습니다.”
한국 쪽에서 김신욱이 아닌 내가 나가려 하듯이, 일본 쪽에서도 정확히 누가 나올지 알 수 없다.
야마다 미츠하가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야마다 미츠하는 만성의 스파이들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아는 사람으로, 회귀 전에도 만난 적 있었다.
회귀 전, 녀석은 일본 대표 헌터로서 오류와의 전투 때까지 활약했다.
만성이 멸망하면서 스파이들도 전부 사라졌을 텐데 야마다 미츠하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독한 녀석일 가능성이 높다.
김신욱은 물론, 사람을 잘 믿는 구지상도 녀석과 붙게 할 수 없었다.
“만성 길드장이 제 목에 현상금을 건 모양입니다. 무려 700억 원에, 살려서 데려오면 800억이라더군요. 확실한 정보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조심할 필요는 있습니다. 내일 야마다 미츠하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그 정보가 사실인지도 판별될 거고요.”
이번 스파링은 나쟈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좋은 기회였다.
에덴에서 허가한 만큼, 여기보다 날 노리기 쉬운 곳도 없다. 정말로 내 목에 800억 원이 걸려 있다면 만성 놈들은 이때 최선을 다해 날 죽이려 할 것이다.
나는 800억이라는 숫자에 놀라고 있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만성의 스파이들이 두 분도 습격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만, 그냥 단련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대항하세요.”
“너 말이야, 우릴 너무 강하게 키우는 거 아니야?”
“오기 전부터 말씀드렸잖습니까. 두 분을 에덴에 데려온 건 자기 목숨은 챙길 수 있을 만큼 강해서입니다.”
이 둘이 해야 할 일은 에덴에서 벌어질 일을 대비한 자기 단련이다.
나는 만성 놈들한테 휘둘리고 있을 생각이 없다.
내가 에덴에 온 것은 에덴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고,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카린을 만나는 것이다.
그건 이 두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두 사람은 나와 같이 에덴 멸망에 대항해 싸워줘야 한다.
고작 만성 따위에 휘둘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 두 사람에게 예지 능력자 카린의 존재까지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지만, 에덴이 몬스터에 의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정보는 이미 전해뒀다.
나는 두 사람에게 미카엘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도 가능한 만큼 얘기했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왜 에덴 멸망을 막으려 하는지 정도는 물어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두 사람은 이의 없이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짧은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구지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가 이유영 씨의 발목을 붙잡지 않게 조심해야겠네요.”
김신욱도 투덜대며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보이고. 적어도 만성한테 당하지나 말라는 거네. 자존심 상하게.”
만성한테 당하지 않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내일 상대가 하필 야마다 미츠하가 될 수도 있는 만큼 내가 나서는 것뿐이고, 이후로는 이 둘도 스스로 살아 남아줘야 한다.
나는 드디어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깨달은 두 사람에게 한마디 했다.
“오늘 하루는 시차 적응하는 시간 갖고, 내일부터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해두세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어떻게 보면 손에 꼽게 강한 헌터들이 결투를 걸어오는 것이다.
이만큼 성장하기 좋은 발판이 또 없었다.
평화로워야 할 에덴의 파티는 우리에게 서바이벌 게임이 되었다.
나는 먼저 싸움을 걸어오는 그 녀석들을, 우리가 성장하는 데 철저히 이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