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폭풍 속의 에덴 (9)
김신욱은 솔직히 말해, 이유영이 가져다준 스파이 명단을 제대로 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유영이 눈여겨보던 놈들은 대충 기억하고 있다.
그중에서 김신욱과 구지상을 가둔 것으로 추정되는 ‘방어계 헌터’는 한 명뿐이었다.
어느 나라 헌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갈색 머리에 두꺼운 검정 뿔테 안경을 썼던 건 기억한다.
그놈을 찾아야 했다.
이런 종류의 스킬은 분명 근처에 있어야 쓸 수 있을 것이다.
스킬에서 빠져나온 김신욱은 현재 관계자석 벤치에 있었다.
스킬에 당하기 전에 있던 곳이다.
어느새 스파링이 끝난 건지 관객석은 텅 비어있었고, 경기장에도 아무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는 녀석이 없었다.
김신욱은 구지상을 툭 치며 말했다.
“야, 너 그 스킬 써봐. 개처럼 소리 잘 듣는 거. 주위에 숨어 있는 놈 좀 찾게.”
“쓰고 있어요. 두 사람 있네요.”
“그 갈색 머리에 뿔테 안경 쓴 놈도 있냐?”
구지상은 고개를 돌려 복도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선 김신욱도 들을 수 있을 만큼 어딘가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이렇게 다급하게 뛰어가는 놈은, 잘못을 저지른 놈밖에 없다.
그 갈색 머리 뿔테 안경남이 두 사람이 탈출한 걸 알고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구지상은 쫓자는 의미로 고갯짓을 한 번 하고서, 그 뜀박질 소리를 따라 맹렬하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김신욱도 천천히 구지상을 쫓아갔다.
구지상이 사바나의 치타처럼 뛰고 있어서 설렁설렁 걸어가도 될 것 같았다.
느긋하게 구지상을 쫓아 복도의 코너를 돌자, 도망치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갈색의 복슬거리는 머리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 남자.
그놈은 미친놈처럼 쫓아오는 구지상을 보며 질겁하고 있었다.
“히익…!”
저 삼류 영화에나 나올 법한 반응까지. 저놈이 범인이 확실했다.
맹렬하게 쫓아가던 구지상은 날아차기로 녀석을 쓰러트렸고, 곧장 헤드락을 걸어 제압했다.
깔끔한 제압이었다.
김신욱은 박수를 치며 갈색 머리를 향해 걸어갔다.
“반갑다, 개자식아. 분실물 전해주러 왔다.”
김신욱은 조금 전 주운, 부서진 흰색 큐브로 녀석의 안면을 가격했다.
뻑! 소리가 나며 흰색 큐브는 그대로 조각조각 흩어져 사라져버렸고, 갈색 머리는 코피를 흘리며 신음을 토했다.
“커흑!”
하지만 무자비한 구지상은 녀석의 목을 더 세게 졸랐다.
구지상은 잠시 복도의 코너 쪽을 쳐다보다가, 뿔테 안경남에게 물었다.
“호주에 계신 만성 스파이 맞으시죠?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는 사람은 동료인가요?”
“젠장, 이거 놔! 무슨 이런 무식한 힘이…!”
녀석은 구지상에게 목이 졸려 괴로워하면서도 스킬을 발동하려 했다.
오른손에서 김신욱이 주운 것과 똑같이 생긴 흰색 큐브가 만들어지려 했지만, 구지상이 더 빨랐다.
구지상은 그의 오른팔을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어버렸다. 너덜거리는 걸 보면 아마 팔이 탈골된 듯했다.
“끄아악!!”
녀석의 비명과 함께 손에서 만들어지던 큐브는 조각조각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김신욱은 녀석의 뺨을 툭툭 치며 말했다.
“야,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동료가 있어?”
“큭…!”
꼴에 스파이라고, 구지상한테 목이 졸려서 얼굴이 새파래져 가면서도 녀석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이 녀석이 아니라 그 동료 쪽을 신경 써야 할 것 같았다.
구지상의 말대로 복도에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걷는 소리가 한 사람 몫의 소리가 아니었다.
두 명, 세 명은 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점점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았다.
“뭐야? 한둘이 아니잖아.”
김신욱과 구지상은 경계하며 복도의 코너 쪽으로 다가갔다.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계속해서 사람은 늘어났다.
그러나 발소리를 제외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터벅터벅 걷는 소리만이 복도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설상가상 복도 끄트머리에선 수상한 연기가 흘러나오며, 한층 더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렇게 두 사람이 복도의 코너 쪽으로 온 신경을 기울이던 그 순간.
휘릭!
뒤에서 기습적으로 무언가 날아왔다.
코너에 신경을 쓰느라, 차마 뒤에서 접근하는 녀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던져진 것은 흰색 큐브였다.
슈오오!
공중에 떠오른 흰색 큐브에선 다시 한번 소용돌이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김신욱도, 구지상도, 그 소용돌이를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과 갈색 머리, 아마도 그의 동료까지, 다시 한번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멍청이들, 얌전히 그 안에서 시간을 축냈으면 목숨은 붙어 있었을 거다!”
김신욱은 그 찌질한 목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차렸다.
이 엿 같은 스킬은 큐브 근처에 있으면 전부 휘말려 들어오는 원리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조금 전에도, 김신욱이 구지상의 머리채를 잡는 바람에 같이 휘말린 게 아니었던 것이다.
아주 약간이지만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안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소화제를 먹은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며, 상황을 확인하자 눈앞에 뿔테 안경남이 찌질하게 떠들고 있는 게 보였다. 김신욱은 현재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김신욱의 뒤통수에 차가운 금속 물질을 갖다 대며 무거운 중저음의 목소리를 냈다.
“가만히 있어, 대가리에 구멍 나기 싫으면.”
뒤통수에 닿는 그 금속의 느낌으로 추측하건대, 어떤 개 같은 새끼가 뒤통수에 총을 겨누고 위협하는 듯했다.
눈을 흘겨 옆을 보니, 구지상도 같은 상황이었다.
뒤에 있는 놈이 고개도 못 돌리게 해서 어떤 인간인지 확인하긴 어려웠지만, 구지상을 위협하고 있는 놈은 살펴볼 수 있었다.
일단 키가 190 정도 되는 거구였다.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있었고, 옷으로 꽁꽁 싸매고 있어서 신원 확인이 어려웠다.
이 등신 같은 놈들이 진짜 스파이는 스파이였던 모양이다.
솔직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스파이는 영화에나 있는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총을 보니까 확 실감이 났다.
이놈들은 진짜로 범죄가 일상인 놈들이었던 것이다.
“너네 헌터 아니냐? 대체 왜 이러고 사냐.”
“멍청하기는. 헌터니까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이 굉장한 능력을 고작 몬스터 때려잡는 데만 쓸 수는 없잖아?”
김신욱의 물음에 뿔테 안경이 대답했다.
김신욱은 눈을 흘겨 구지상을 바라봤다. 김신욱이 알기로, 구지상과 이유영은 저런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
아니나 다를까, 구지상은 싸늘해진 눈으로 뿔테 안경을 보고 있었다.
구지상은 말했다.
“그건 만성 길드장님의 사상인가요?”
“그렇다면 어쩔 건데? 설마 그분의 팔도 이렇게 꺾어버릴 건가? 네까짓 게 어떻게?”
녀석은 자신의 너덜거리는 팔을 붙들며 조롱했다.
구지상은 저 뻔한 도발에 넘어간 것 같았고, 눈이 회까닥 돌아 있었다.
아무래도 구지상이 저놈을 죽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야 할 것 같았다.
김신욱은 구지상에게 외쳤다.
“야! 셋에 간다.”
구지상은 잠시 김신욱을 쳐다봤고, 돌아간 눈깔이 원래대로 되돌아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김신욱의 말에 뒤에 있던 남자는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 아주 우습게 아는군!”
녀석은 김신욱의 머리를 총구로 비비며 조롱했으나, 당연히 우스울 수밖에 없다.
이 녀석은 SS급 던전에서 만난 몬스터처럼 살기를 뿜어내지도 않았고, 사람을 짓눌러버릴 듯한 패기도 없었다.
고작 총구를 머리에 겨눴으니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등신일 뿐이었다.
김신욱은 메인 스킬을 발동하며, 외쳤다.
“셋!!”
스킬이 발동되며 김신욱에게선 아주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섬광탄처럼 터져 뒤에 있던 녀석의 시야를 차단시켰다.
뒤에 있던 남자는 눈을 질끈 감으며 총알을 발사해댔고, 김신욱은 곧장 납작 엎드려 피했다.
엇나가는 총알들을 보며, 김신욱은 녀석의 가랑이 사이를 향해 힘껏 올려차기를 날렸다.
빡!!
“끄헉…!”
녀석은 다리를 오므리며 비틀거렸고, 김신욱은 곧장 녀석이 쥐고 있는 총을 발로 차 냈다.
총은 바닥에 떨어졌고, 김신욱은 그것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녀석의 가랑이 사이에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고자가 아니었던 인생과 작별을 고할 시간 3초 준다.”
“자, 자자 자, 잠깐…!”
지금 보니, 녀석은 구지상을 위협하던 놈과 똑같이 가면을 쓰고 있었다.
체격도 똑같이 190은 되는 거구였고, 착장도 똑같았다.
마치 넷플렉스 드라마에 나오는 범죄 조직이라도 따라 한 것 같았다.
김신욱은 총알이 장전된 것을 확인하고, 방아쇠를 깔짝거리며 말했다.
“싫으면 스킬이 뭔지부터 밝혀봐.”
“이 악마 새끼…!”
“뭔 개소리지? 누가 먼저 납치했어, 너희잖아!”
김신욱은 기습적으로 다시 한번 녀석의 가랑이 사이를 발로 찼다.
그런데 그곳에서 뻐걱, 하는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
힘 조절을 못 해서 생긴 실수였다. 실수니까 녀석도 이해해줄 것이다.
녀석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그런데 돌연, 녀석이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김신욱이 들고 있던 총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뭐냐, 몬스터야? 물리치니까 사라지네.”
뒤를 돌아보니, 구지상도 이미 가면 쓴 남자의 목을 조르며 총을 빼앗아 머리에 들이밀고 있었다.
그런데 뿔테 안경이 도망치려는 건지 벽면에 손을 올려 출구를 만드는 게 딱 보였다.
김신욱이 그 얍삽한 놈을 잡으러 가려던 때, 구지상이 먼저 움직였다.
탕! 탕!
구지상은 목 조르던 남자에게서 빼앗은 총을 녀석에게 망설임 없이 쐈다.
한 발은 녀석의 발등에 맞았고, 한 발은 녀석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녀석은 비명을 내지르며 자신의 발을 부여잡았다.
“끄아아악!!”
김신욱은 울부짖는 녀석의 머리채를 콱 잡아서 질질 끌고 중앙으로 왔다.
녀석은 총상의 고통으로 발버둥 치지도 못하며 끌려왔다.
“어딜 도망가? 너도 고자로 만들어줘?!”
“히익…!”
녀석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벌벌 떨었다.
김신욱은 녀석의 머리채를 단단히 쥐며, 아직도 가면남한테 헤드락 걸고 있는 구지상에게 말했다.
“야, 걔도 총으로 쏴봐. 또 몬스터처럼 사라지나 보게.”
“알겠어요.”
구지상은 총을 남자의 턱밑에 가져다 댔다.
그런데 가면을 쓴 남자가 버둥거리며 다급하게 외쳤다.
“아, 안돼! 안 사라져! 죽, 죽는다고!!”
“왜요?”
“그건….”
가면남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구지상은 총을 천장에 발포하며 살벌하게 위협한 뒤, 다시 턱 밑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몸을 바들거리던 가면남은 다급하게 말했다.
“그, 그건 내 분신이었고 난 본체니까…!”
녀석은 자신의 말을 증명하려는 듯 스킬을 발동했다.
주위로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며, 연기 속에서 차례차례 가면남과 똑같이 생긴 분신이 만들어졌다.
가면남은 바들거리며 말했다.
“순순히 스킬도 보여줬잖아. 이제 그 총을 내려놓는 게 어때, 응? 난 더는 싸울 마음이 없다고.”
하지만 그사이, 분신들은 슬금슬금 구지상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러나 구지상이 그런 뻔한 수에 당할 놈은 아니었다.
구지상은 총을 반대로 들어 쥐더니, 가면남의 안면을 내려쳤다.
퍽!!
그 덕에 가면이 쪼개지며 녀석의 얼굴이 드러났다.
동시에 분신들의 가면도 일제히 쪼개지며, 모두 같은 얼굴을 드러냈다.
구지상은 그 면상을 확인하며 말했다.
“브라질 대표로 온 만성 헌터시죠? 지금부터 분신이 절 공격할 때마다, 당신 얼굴을 한 대씩 칠 겁니다.”
“큭…!”
하지만 가면남의 분신은 이판사판이라는 듯, 일제히 구지상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김신욱은 뿔테 안경남의 머리채를 마라카스처럼 흔들면서 그 모습을 관람했다.
잠시 뒤, 가면남은 얼굴이 피떡이 될 정도로 처맞은 뒤에야 분신을 없앴다.
김신욱은 붙잡고 있던 뿔테한테 물었다.
“저쪽은 끝났고. 넌 어떻게 할래?”
“사, 살려주세요….”
이걸 놔주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죽일 수도 없으니, 참 처치 곤란이었다.
구지상은 피떡이 된 가면남을 질질 끌고 오며, 뿔테 옆에 앉혔다.
그리고 상태창을 열어 아이템 하나를 소환했다.
구지상은 그 아이템을 뿔테한테 들이밀며 말했다.
“이건 디케의 언약 증명이라는 아이템이에요. 다시는 사람한테 스킬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면, 풀어드릴게요.”
구지상의 의견이지만, 김신욱이 보기에도 좋은 방법이었다.
뿔테 안경은 어차피 다른 선택지도 없었기 때문에, 망설이던 끝에 결국 구지상과 계약했다.
사람을 상대로 스킬을 쓸 경우, 다시는 스킬을 쓸 수 없는 속박이 걸리는 계약이었다.
이후 구지상은 녀석에게 에덴의 힐러가 있는 의무실까지 데려다주냐고 물었고, 뿔테 안경남은 질겁하며 거절했다.
본인이 그렇게 패놓고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보면, 소름 끼치는 녀석이었다.
두 사람은 뿔테 안경남이 직접 만들어준 출구로 큐브에서 빠져나왔다.
저만큼 당했으니 저 녀석들도 다시는 이유영을 습격하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