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폭풍속의 에덴 (12)
밤 11시의 에덴 길드는 조용했다.
이브닝 파티를 하고 있는 파티 홀 안은 시끄럽겠지만, 그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 나오진 않았다.
나는 조용한 복도를 지나, 에덴의 정문으로 향했다.
카린이 말한 ‘비밀의 문’은 에덴의 정원 안에 있다.
정원은 길드 정문으로 빠져나가야 갈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스파이가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경계하며 복도를 걸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스파이는 이전에 만났던 러시아 스파이, 나쟈다.
만약 나쟈의 빙의 능력에 당해 몸을 빼앗기기라도 하면, 그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걸리는 스파이는 영국 스파이였다.
자료로 봤을 때 그는 종합 능력치가 A+인 공격계 헌터였다.
내 종합 능력치가 A인 것을 감안하면 기본적으로 힘에서부터 밀린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스파링 그라운드의 관람석에서 봤던 그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가능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정문을 빠져나와 곧장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 곳곳에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밤이어도 길이 어둡지 않았다.
목적지인 중앙 호수로 향하며, 에덴의 정원을 눈으로 훑었다.
에덴 정원은 꽃을 잔뜩 피운 정원처럼 화려한 건 아니지만, 절제된 미가 있다.
곳곳에 설치된 천사 조각상과 깨끗하게 관리된 나무와 풀은 정결했다.
반듯하고 엄숙한 느낌의, 딱 ‘에덴’다운 정원이었다.
회귀 전, 나는 최후의 인류가 된 뒤로 이곳에 찾아온 적이 있다.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세상이었음에도 협회에 남아있던 웜홀 아이템을 몇 개 발견해, 운 좋게 이곳에 올 수 있었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웜홀을 타고 도착한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원래부터 에덴 길드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텅 빈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처음엔 초토화되어 아무것도 안 남은 줄 알았다.
주변 풍경은 같은데 오직 에덴 길드만이 사라졌었고, 재해에 휩쓸려 아무것도 안 남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 정답을 알려줄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완벽한 정원을 보니, 그때 품었던 의문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과연 그렇게 잔해 하나 없이 깔끔하게 소멸되는 게 가능할까.
오류가 멸망시킨 건 오직 인간이다. 인류가 멸망한 세상에선 동식물은 대체로 종을 보존하고 무사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에덴은 이 정원까지 사라졌던 걸까.
에덴이 소멸되고 황량한 공터만이 펼쳐져 있던 풍경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한쪽에 심어진 싱그러운 사과나무를 보며, 그 황야를 떠올렸다.
아마 이 길드에는 분명 숨겨진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사과나무 밑으로 한 남자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는 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낮춰 풀숲에 숨으며 그 녀석을 지켜봤다.
피곤해 보이는 눈두덩이에 수염을 제대로 깎지 않은 얼굴. 갈색 더벅머리와 너저분한 옷을 입은 중년 남성은 라이터를 꺼내고 있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이것 참, 담배나 한 대 피우러 나왔더니 딱 마주쳐 버렸네. 날 보자마자 숨는 걸 보면, 이미 내가 누구인지도 아는 거겠지?”
녀석이 말을 건네는 상대는 나였다.
숨는 것도 소용없는 모양이다. 나는 최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풀숲에서 나왔다.
겉모습만 보면 평범한 아저씨였지만, 그는 내가 경계하던 스파이 중 하나인 영국 스파이였다.
나는 그를 마주 보며 확신했다. 그는 지금까지 싸워온 스파이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강하다. 훈련도와 경험 면에서 넘어서기 어려운 차이가 있었다. 존재 자체가 힘, 전투 따위로 이뤄진 병기에 가까운 인간이었다.
이길 수 없다.
몬스터와 맞닥뜨렸을 때도 느끼지 못한 낯선 공포가 엄습해 왔다.
당장 도망쳐야 했지만, 카츠라 료의 말대로 내가 약하다는 걸 인식하는 것 또한 싸움의 일부다.
내가 실력을 인식하면서부터 싸움은 시작된 것이다.
만약 내가 도망가면 저 녀석은 잡으러 올 것이고, 아마 나는 붙잡히고 말 것이다. 그럼 꼼짝없이 녀석과 전투해야 한다.
“잠깐. 미안한데 도망가진 말아줘. 이거 피울 때까지만 기다려주면 좋겠는데.”
녀석은 내 생각을 읽어낸 것처럼 타이밍 좋게 얘기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녀석도 나랑 싸우는 걸 망설이는 것 같았다.
도망가는 것이야말로 싸움의 신호탄이 될 테니, 나는 녀석의 말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자리에 서서 담뱃불이 타들어 가는 걸 바라봤다.
그는 나를 지켜보며 담배 연기를 내뿜다가, 말을 걸어왔다.
“난 길버트라고 한다. 이 나이 먹고 앞길 창창한 청년을 괴롭히려는 게 참… 그렇지만, 내가 빚이 좀 많거든.”
“그런 변명을 하시는 걸 보면 700억을 노리시는 겁니까?”
“글쎄다, 노린다면 800억을 노려야 하지 않겠어? 일단 너, 안 죽을 것 같거든.”
녀석은 무턱대고 덤벼들던 스파이들과는 다르게 나를 판단했다.
대부분의 스파이들은 날 설득할 수 없으니 죽여서 700억을 노리려고 했다. 하지만 길버트는 날 죽일 수 없으니 만성에 들어가게 설득하겠다고 선포하고 있었다.
길버트는 다시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마시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늦둥이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걔가 공부를 참 잘해. 대학원에 가고 싶다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고. 내가… 걔 학비까지는 대줘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빚쟁이더라도 일단은 오빠잖아.”
“살인해서 번 돈으로 여동생 공부를 시키려는 겁니까?”
“몇백억이면 살인이 뭔 대수냐 싶거든. 이 세상은 가난이 더 큰 죄잖아.”
녀석은 갈등하고 있었다.
길버트는 내 사지를 잘라서 만성 길드장 앞에 던져줄 수 있는 실력자다. 계속해서 녀석과의 전투를 머릿속에 그려봤지만, 내가 이기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이 녀석한테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저 심적 갈등을 이용하는 것밖에 없다.
나는 녀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사람을 죽여가며 번 돈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그 돈을 쓸 때마다 당신이 흘리게 한 피를 떠올리며 지금보다 더 큰 죄책감에 시달릴 겁니다.”
“너… 말을 잘하는구나. 이건 또 예상 못 했네.”
길버트는 중얼거리고서 담배 연기를 머금었다.
녀석은 그렇게 담배가 모두 탈 때까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담배의 재가 떨어지는 걸 보며 녀석의 선택을 기다렸다.
녀석이 돈의 유혹에 넘어간다면 나는 지금부터 최선을 다해 도망가야 한다. 하지만 진지하게 내 말에 죄악감을 느꼈다면, 나는 카린에게 갈 수 있을 것이다.
곧 녀석은 담배꽁초를 손으로 구겨 쥐며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주먹을 말아쥐었고, 녀석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하나만 물어보자. 솔직하게 대답해 주면 도망가게 해줄게.”
“뭡니까?”
“네겐 벗어나기 어려운 운명이 하나 있다. 아주 대단한 인간이 너를 갖고 싶어 하거든, 가질 수 없다면 죽여버리려 하고. 이제… 넌 어떻게 할 거지?”
길버트가 말하는 ‘아주 대단한 인간’이란, 만성 길드장일 것이다.
녀석은 내가 만성 길드장과 어떻게 대항할지를 묻는 중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 녀석도 나쟈처럼 만성 길드장에게 근본적으로 굴복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나쟈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
“직접 만나서 현상금을 철회하라고 말할 생각입니다.”
“소통을 해보겠다…. 너무 당연해서 되려 말도 안 되게 느껴지는군. 만약 그 인간이 대화가 전혀 안 통하는 인간이면 어쩔래?”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겠습니다. 만성 길드장은 아직 에덴에 오지도 않았고, 제겐 그것보다 급한 일이 있습니다.”
길버트는 잠시 나를 쳐다봤다.
그의 눈동자는 어떤 중요한 무언가를 포기한 사람처럼 탁한 색을 띠었다.
한참 나를 바라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놔줘야지…. 가 봐, 지옥 같겠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길 바란다.”
그는 먼저 등을 돌리고 멀어져 갔다.
나는 그대로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지켜봤다.
길버트와의 만남은 내가 계속해서 외면해 오던 어떤 생각을 더는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내게 현상금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나쟈와,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목숨을 구걸하던 브라질 헌터, 그리고 죄를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 갈등하는 길버트까지.
그들은 만성 길드장의 명령대로 인신매매를 하는 범죄자들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평범한 헌터 생활을 하지 못하고 만성 길드장을 따라 범죄를 수행하는 것일까.
스파이짓을 관두고 평범한 헌터 생활이나 하라고 생각했는데.
만약 그들이, 자신의 의지로는 도저히 그렇게 살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는 거라면.
나는 속 편하게 녀석들을 한심하다고 욕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그들이 범죄의 껍데기를 벗어던지지 않는 이상, 녀석들의 속사정에 의문을 갖는 것조차 내겐 사치였다.
어느새 자정까지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은 무엇보다 카린을 만나러 가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스파이들에게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무 뒤에 숨어, 가능성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은신을 발동하자 내 몸은 공기와 동화되듯 투명해져 갔다.
만약을 대비해 최후의 수단으로 아껴두던 스킬이었지만, 지금이야말로 써야 할 타이밍인 것 같았다.
나는 투명해진 몸으로 곧장 정원 한가운데 있는 분수로 향했다.
분수 근처에는 무화과나무가 심어진 곳이 있다.
그 키 낮은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면, 내 키와 비슷한 높이의 뱀 조각상이 나타난다.
그 조각상을 들어 올리면, ‘비밀의 문’으로 향하는 첫 번째 관문이 나타난다.
나는 조심스럽게 나무 사이로 들어와, 뱀 조각상을 단단히 잡고 온 힘을 다해 들어 올렸다.
대체 뭐로 만든 건지 장난 아니게 무거웠다.
공격력, 방어력 모두 A를 찍은 내 힘으로도 힘껏 들어 올려야만 움직이는 무거운 조각상이었다.
쿵!
조각상을 옆에 내려놓자, 밑에 있던 첫 번째 관문이 나타났다.
에덴 길드의 마크가 새겨진 육중한 철문이었다.
이 철문을 열어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철문을 힘껏 당겨보니, 살짝 들썩일 뿐 전혀 열릴 기미가 없었다.
공격력, 방어력 모두 A+인 헌터가 있는 힘을 다해야만 열 수 있을 듯했다.
이 상태라면 내가 열 방법이 없겠지만, 내겐 힘을 급증시킬 방법이 있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나는 솟아나는 힘으로 철문을 있는 힘껏 들어 올렸다.
뚜껑을 열듯이 손잡이를 잡고 문을 끌어올리자, 육중한 문짝이 조금씩 움직이며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힘을 쏟아부어 문짝을 열어젖혔다.
쿠웅!
무거운 소리를 내며 끝내 문이 열렸다.
나는 숨을 고르며 흐르는 땀을 닦았다.
자정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아슬아슬하게 비밀의 문 앞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철문 아래로는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고, 흰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계단은 먼지 한 톨 없이 말끔했다.
한 칸씩 밟고 내려가다 보니, 넓은 지하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지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아기자기한 정원이 펼쳐졌다.
땅에는 싱그러운 풀이 자라 있었고 천장에 달린 전등은 햇빛처럼 따사로웠다.
여러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세워진 이 공간의 중앙에는, 지엄한 모습의 천사 조각상이 있었다.
그 조각상 사이에, 카린이 말한 ‘비밀의 문’이 보였다.
겉으로 보면 그저 덩그러니 놓인 문짝일 뿐이었지만, 이 문이야말로 카린의 방으로 가는 유일한 문이었다.
회귀 전, 카린은 나를 이곳에 데려온 적이 있다.
녀석은 나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며, 이 비밀의 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직접 알려줬다.
먼저 이 문손잡이에 손을 올린 뒤, 천사 조각상과 눈을 마주쳐야 한다.
그럼 카린이 방에서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문고리가 스스로 돌아가면, 문을 밀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자정까지 남은 시간은 1분.
나는 문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천사 조각상과 눈을 마주쳤다.
만약 카린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겠지만, 내게 만나러 오라고 한 것은 카린이었다.
분명 문을 열어줄 것이다.
곧, 문고리가 스스로 돌아갔다.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나와 똑같이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