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현상금 철회
구지상은 카린과 고양이가 잠든 것을 보며, 방 문을 닫고 나왔다.
거실에는 김신욱이 명상을 하고 있었고. 이유영은 오전 내내 나갔다 오더니, 돌아오자마자 방으로 들어가서 잠들어버렸다.
잠깐 방을 들여다보니, 안 좋은 꿈이라도 꾸는 건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자고 있었다.
부담하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자고 있는데도 피곤해 보였다.
만성에 의해 엄청난 현상금이 걸려있기도 하고, 에덴의 위험에 대한 예지까지 신경 쓰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구지상은 이유영이 편히 잘 수 있게끔 잠시 숙소에서 나가 있기로 했다.
김신욱이 명상을 끝내고 눈을 뜨면 또 시비를 걸 것이고, 그럼 싸우게 될 게 분명한데. 그 소리에 이유영이 깨기라도 하면 미안할 것 같았다.
김신욱과 싸우지 않을 수는 없어서, 구지상은 차라리 밖에 나가기로 했다.
밖으로 나오니 숙소 앞을 지키고 있는 에덴 길드원들이 보였다. 카린을 경호하는 헌터들이었다.
구지상은 그 헌터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눴다.
무료로 경호 받는 것도 감사했고, 늦게까지 수고하고 계셔서 음료수라도 사드려야 할 것 같았다.
구지상은 에덴 길드의 후문 쪽에 있는 자판기에 가서 음료를 뽑았다.
늦은 시간이라 달리 음료를 살만한 곳이 없었다.
동전을 넣고 음료의 버튼을 누른 뒤, 음료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덜커덩 소리를 내며 캔이 떨어졌고, 그것을 꺼내기 위해 몸을 숙이던 그 순간.
구지상은 누군가 뒤에 서 있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주먹을 말아쥐었다.
상대의 체격은 구지상보다 훨씬 작다. 대략 160대 초반일 것이다.
다만 기척을 숨기는 데 능한 건지,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숨 쉬는 소리나, 어떤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구지상은 선제공격을 하는 게 나을지, 공격이 오면 어떻게 피할지 등을 빠르게 계산했다.
분명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었다.
순식간에 상대에 대한 파악을 끝낸 구지상은 반격을 준비했는데, 돌연, 뒤에 있던 상대가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경계하고 있으면 기습하는 사람이 눈치를 채버리잖니. 넌 몸에 힘을 빼는 법부터 배우는 게 좋겠다.”
부드럽고 독특한 목소리와 특유의 여유로움이 넘치는 익숙한 말투.
구지상은 그 익숙한 목소리에 조금 더 긴장해야 했다.
그의 정체는 비행기에서부터 이유영에게 접근했던 러시아의 만성 스파이, 나쟈였다.
구지상은 태연하게 자판기에서 음료를 빼내면서, 웃는 낯으로 뒤를 돌았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또 뵙네요!”
“그래, 안녕? 오랜만이다. 근데 그 웃는 얼굴 좀 치워줄래? 우리가 웃으면서 인사할 사이는 아니잖니.”
나쟈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확실히 두 사람이 웃으며 인사할 사이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사이 나쁘게 굴 수도 없었다.
구지상은 뽑은 음료수 캔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충고는 잘 새겨둘게요. 제게 접근하신 이유가 있으신 것 같은데, 하실 말씀이라도 있나요?”
나쟈는 구지상이 건네는 음료를 받지 않으며, 여전히 웃었다.
그 웃음 뒤에는 구지상의 변함없는 태도에 대한 짜증이 섞여 있는 듯했다.
나쟈는 긴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너희 말인데, 대놓고 에덴의 보호를 받고 있잖아. 어떻게 한 거니? 이유영 걔가 한 짓이지?”
“저희 길드장님 꽤 유능하시죠? 그 덕에 이상한 사람들이 더는 안 오더라고요!”
구지상은 눈앞의 스파이한테 유용한 정보를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활기찬 답을 들은 나쟈는 잠시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구지상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할 말이나 하고 꺼져줄게. 네 길드장 말인데, 만성 길드장을 만나겠다고 했거든? 근데 그 사람 안 올 거야.”
“이유영 씨가 만성 길드장을 만난다고 하셨어요?”
“너한테는 그런 말 안 했니? 뭐 어쨌든. 만성 길드장 대신 그 사람의 아들이 왔는데, 이유영이 만나러 간다고 하면 네가 말려. 만성 길드장보다 더 위험한 게 그 아들이니까.”
구지상이 알기로 만성 길드장에겐 두 명의 아들이 있다.
그 둘이 모두 헌터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어떤 사람들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알려진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 탓에 나쟈의 말대로 위험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이걸 말해주시는 이유는요?”
“너희는 사람이 친절을 베풀어주는데 왜 그렇게 이유를 찾니?”
새초롬하게 말하던 나쟈는 구지상이 들고 있던 음료수를 휙 채갔다.
그리고선 날카로운 눈으로 구지상을 보며 말했다.
“음료숫값. 됐지?”
한숨을 쉬던 나쟈는 그대로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가버렸다.
이렇게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이것도 스파이의 기술 중 하나인 걸까?
그런데 걸어가던 나쟈는 뒤늦게 무언가 생각난 사람처럼 다시 구지상에게 돌아왔다.
“너! 후문 밖으로 나가지 마…! 이 말을 하려던 건데 왜 엉뚱한 소리만 해버린 거지? 짜증 나.”
그렇게 가놓고 다시 돌아온 게 수치스러웠는지, 나쟈는 얼굴이 약간 붉어져 있었다.
할 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홱 돌아서며, 구두를 또각거리고 멀어져갔다.
구지상은 나쟈의 그 말이 후문 밖으로 나가도록 유도하려는 고도의 스파이 기술인지 아닌지 한참 생각하며, 음료수 한 캔을 더 뽑았다.
그 끝에 후문에 나가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냥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구지상은 캔을 한 아름 들고 조심스럽게 후문 밖으로 나갔다.
후문은 에덴 전용 공항으로 향하는 출구라, 정문 쪽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큰 주차장이 있었고, 비싼 외제 차들이 쭉 늘어서 있는 탓에 사람을 은근히 긴장시켰다.
하지만 나쟈가 경고할 만큼 특이한 게 있는 건 아니었다.
구지상은 주차장을 쭉 둘러보며 나쟈가 경고한 것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던 중, 가로등 밑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무리를 발견했다.
구지상은 차 뒤에 숨어서 그들을 잠시 살펴봤다.
한 남자를 중심으로, 부하로 보이는 사람 몇십 명이 늘어서 있었다.
그는 김신욱과 비슷해 보이는 나이대의 젊은 남자로, 고운 얼굴이었지만 옷 입은 스타일이나 풍기는 분위기가 조폭 같아서 전체적으로 묘한 인상을 줬다.
그는 말없이 담배만 피웠고, 그가 조용해서 다른 부하들도 전부 침묵하는 듯했다. 그런 긴장감이 감돌았다.
곧 그가 담배를 다 피웠다. 그러자 부하 하나가 나서서 두 손을 공손히 내밀었다.
그는 부하가 내민 그 손에 담배를 비벼서 껐다.
구지상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풍경에 잠시 당황했다.
부하는 그대로 꽁초를 버리러 사라졌고, 남자는 나머지 부하들을 이끌고 에덴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
구지상은 한참 이야기하던 끝에 내게 말했다.
“제 생각엔 그 사람이 만성 길드장의 아들인 것 같아요. 엄청… 강한 것 같았거든요.”
구지상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정말로 강한 헌터일 것이다.
외형 특징으로 봤을 때 그는 만성 길드장의 둘째 아들인 ‘류차오’이다. 23살로 김신욱과 동갑이며, 스킬은 알 수 없다.
그 외에도 다른 정보가 알려지지 않은, 여러모로 베일에 싸인 녀석이었다.
내가 자각몽으로 잠들어 있던 사이에 만성 녀석들이 에덴에 도착했던 모양이다.
가능하면 만성 길드장을 직접 만나 얘기하고 싶었지만, 내 목에 걸린 현상금을 당장 취소하려면 그의 아들이라도 만나야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구지상에게 말했다.
“만나고 와야겠습니다. 카린을 잠시 부탁드립니다.”
“어… 나쟈 씨는 이유영 씨가 만나지 못하게 말리라고 그러시던데, 괜찮으신 거죠?”
“괜찮습니다.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전화하겠습니다.”
내 목에 700억이나 건 놈의 아들이 도착했다는데,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각몽으로 한참 동안 일기장을 뒤지느라 계속 잠들어 있었더니, 깨어났을 땐 아침이었다. 어젯밤에 도착한 녀석을 바로 만나지 못한 게 아쉬울 지경이다.
아침 7시인 지금이라도 찾아가야 했다.
나는 곧장 중국 헌터 숙소로 향했다.
중국 헌터 숙소 앞에는 조폭 같이 험상궂게 생긴 놈들이 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에덴에 들어올 수 있는 각국의 헌터들은 세 명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이 녀석들은 우르르 몰려와서 뻔뻔하게 보초까지 서고 있었다.
10명이 넘는 헌터들이 숙소 앞을 지키고 있었고, 그들은 다가오는 나를 험상궂은 얼굴로 내려다봤다.
나는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안에 계신 분께 한국 헌터 이유영이 만나러 왔다고 말 좀 전해주시죠.”
그놈은 잠시 나를 쳐다봤다.
다만 그놈을 제외한 다른 놈들은 무기에 손을 대거나, 스킬을 발동할 각을 재기 시작했다.
내 이름을 듣고서 700억의 현상금이 탐난 모양이다.
이 복도에서 배짱 좋게 덤벼오는 놈이 있을지 한 번 보려고 했는데, 우두머리가 그보다 먼저 말했다.
“안 그래도 도련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지금 손가락 꿈틀댄 놈은 제가 죽여둘 테니 무례를 용서하시죠.”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극단적인 새끼가 다 있나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방금까지 내게 덤비려던 놈들이 저 말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진짜로 이 녀석한테 살해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나한테 농담을 한 게 아니라, 정말로 살해하겠다는 뜻이었던 모양이다.
“황당한 농담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용서했으니까 내버려 두시죠.”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시죠.”
많은 나라들이 첫 번째 던전브레이크 이후로 거의 무법지대에 가까워졌다지만, 이 녀석들한테는 살인이 일상이 된 듯했다.
이런 녀석들이 따르고 있는 게 어떤 놈일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녀석은 문을 열고 나를 안으로 들여보낸 뒤, 다시 문을 닫았다.
안에는 담배 연기가 눈에 거슬릴 만큼 잔뜩 차 있었다.
저절로 코를 막게 되는 지독한 연기였다.
그 속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놈이 보였다.
소파에 앉아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건지,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놈은 꽁초 더미와는 어울리지 않는 순진한 얼굴로, 순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기다리고 있었다는 놈이 연기가 이렇게 자욱해질 동안 창문을 열지 않은 걸 보면, 제정신은 아닌 듯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연기가 차 있었던 탓에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 선 채로 말했다.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제 목에 걸린 현상금 취소하세요.”
“음, 너무 본론인 거 아니에요? 전 당신과 대화를 좀 해보고 싶은데.”
“제가 비흡연자라 여기 있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는 내 말에 웃으면서도 손에 든 담배의 불을 끄지 않았다.
오히려 자욱한 담배 연기를 자연의 향기처럼 들이마시더니,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고향의 냄새가 나서 지금이 딱 좋아요.”
녀석의 웃는 얼굴을 보며, 잠시 나쟈가 왜 내게 경고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살면서 수많은 미친놈들을 봐왔지만, 이 녀석은 ‘진짜’였다.
녀석은 다시 담배를 물고서 중얼거렸다.
“현상금… 취소. 음. 좋아, 그렇게 할게요.”
“…정말입니까?”
“대신, 만성에 놀러 와주세요.”
녀석은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 같은 것을 꺼내 내게 던졌다.
금으로 된 동전에는 만성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현상금은 아버지가 벌인 일이라서요. 멋대로 취소하면 제가 죽을지도 모르거든요. 하지만, 당신을 만성에 불러오는 데 성공했다고 하면 용서해주실 거예요. 현상금도 취소될 거고요.”
“…이 동전은 뭡니까?”
“만성에 들어올 때 필요할 거예요. 제 손님이라는 증명품이거든요. 에덴 파티가 끝나고,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만성을 찾아와주세요. 괜찮은 제안이죠?”
이 녀석이 하는 말은, 800억을 노리고 나를 만성에 들이려던 놈들과 다를 게 없었다.
사실상 내가 만성 길드에 찾아가는 것 외에 현상금을 취소할 방법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솔직히 헛소리 그만하고 당장 현상금 없애라고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이쯤 되니, 그 문제 덩어리의 길드와는 언제가 되든 부딪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다면 녀석들이 나를 습격해오게 두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먼저 찾아가는 게 나았다.
“당신이 그 800억을 얻게 되는 거나 다름없어 보여서 현상금을 취소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겠습니다.”
“음, 그런가? 그럼… 만성 사람들한테 현상금은 취소되었다고 전해둬야겠네요. 아, 바쁘겠다.”
녀석은 하는 말과 다르게 여유 넘치는 얼굴로 웃으며, 다시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선 나를 향해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얼굴만큼은 순수해서 마치 비눗방울을 부는 것만 같아, 더 미친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이로써 나쟈를 비롯한 스파이들이 나를 노리진 않을 것이다.
번거롭더라도 그 녀석들을 현상금 사냥꾼이 아닌, ‘헌터’로 만들어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녀석들의 눈앞에 태풍이라는 적이 나타났을 때, 녀석들이 내가 아닌 몬스터만을 노릴 테니 말이다.
***
류차오는 문을 닫고 나가는 이유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힐러이고, 공격계 스킬도 갖고 있으며, SS급 던전을 무사히 공략하고 온 화제의 헌터. 암암리에 그가 SSS급 아이템을 독점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저런 헌터를 놓치는 건 참 아까운 일이다.
“그래서 만나봤더니… 생각보다 더 재밌는 정보를 얻어버렸네.”
류차오에겐 사람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
그의 ‘연기’를 들이마신 사람이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볼 수 있는 서브 스킬이었다.
이 스킬로 그는 헌터들의 약점을 잡아, 만성의 노예로 삼거나 스파이로 굴리곤 했다.
그 스킬을 이유영에게 써봤더니, 상당히 재밌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에덴이 태풍을 몰아오는 몬스터의 습격으로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우와, 아버지가 들으면 엄청 좋아하시겠는걸?”
류차오는 담뱃불을 끄며, 한참 동안 소리를 내 웃었다.
그 멸망을 눈앞에서 구경할 수 있을까?
파티가 기대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