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모두가 만족할 결말이란
류차오와 짜증 나는 대화를 마친 후.
나는 옷에 배어있는 담배 냄새를 빼내기 위해, 겉옷을 벗어 허공에 털어냈다.
숙소에는 카린이 있어서 담배 냄새에 전 옷을 입고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옷을 다 털고 한국 숙소로 돌아가려던 중, 내 뒤에서 날 물끄러미 보고 있던 사빈이 보였다.
내가 하던 짓을 구경하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녀석은 껌을 씹으며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뭡니까?”
마지막으로 봤을 때 녀석이 내 어깨를 부술 듯이 쥐었던 걸 기억하고 있다.
경계하며 녀석에게 말을 걸자, 녀석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여전히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녀석의 행동 스타일을 떠올렸을 때, 순순히 따라가지 않으면 녀석은 내 머리채를 잡고 순간이동 할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따라갔더니, 사빈은 계속 어디론가 걸어갔다.
말 한마디 없이 한참 걸어가던 중, 문득 녀석이 먼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넌 왜 에덴 길드를 구하려 하는 거지? 길드원도 아니면서.”
사빈은 내게 등을 보인 채로 그렇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궁금해할 만한 부분이긴 하다.
나는 에덴에 온 뒤로 미카엘, 카린, 요한 등 만나기 어려운 에덴 길드원들만 만나며, 에덴 멸망을 저지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에덴에 들어갈 것도 아니고, 딱히 에덴한테 보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면서, 노력하고 있다.
아마 미카엘만 믿고 단순히 파티나 즐기고 있는 다른 에덴 간부들보다 내가 더 고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에덴의 간부인 사빈의 입장에선 궁금할 만도 하다.
하지만 도와준다는데 그냥 감사해하면 될 것이지.
여태 말 한마디 없다가 이렇게 싹수없게 물어보는 게 아니꼬웠다.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꼭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
“사람은 의도가 있기 때문에 행동하지. 예를 들면 돈, 권력, 사랑, 사상이나 종교 세력의 확장…. 이런 걸 원하니까 선의를 베풀 수 있는 거다. 넌 어느 쪽이지?”
사빈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말하고 있었다.
평소에 워낙 말을 안 하는 놈이라서 어떤 성격인지 몰랐는데, 이렇게 배배 꼬인 놈인 줄은 몰랐다.
나는 잠시 녀석의 등짝을 쳐다보다가 답했다.
“어느 쪽도 아닙니다. 상대가 몬스터니까 싸우는 것뿐이고요. 그게 헌터의 본질 아닙니까?”
“그저 에덴을 습격하는 게 몬스터라서 싸우는 것뿐이라고?”
“당신네 길드장도 그러잖습니까.”
미카엘 역시 상대가 몬스터라면 상황이나 이유를 따질 것도 없이 죽인다.
그 녀석이 그렇게 사는 데에는 어떤 사연도 없다.
세상에는 이렇게 이유 없이 응당 그래야 하기에 하는 일들도 있는 법이다.
내가 에덴을 도우려는 것도 그런 것이다.
습격하려는 놈이 몬스터니까, 싸운다.
그뿐이다.
사빈은 고개를 돌려 잠시 나를 쳐다봤다.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었지만, 날 부정하면 본인이 모시고 있는 미카엘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녀석은 다시 고갤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을 따라갔다.
걷는 내내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참 조용히 걷던 끝에 도착한 곳은, 에덴 길드장실이었다.
사빈은 정중히 노크한 뒤 길드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이 길드장실의 주인이 있는 건 당연했지만, 어째서인지 요한도 있었다.
***
나는 잠시 모여있는 에덴 헌터 세 명을 보며, 자리에 선 채로 생각했다.
요한과 사빈은 카린이 나와 접촉한 후 가출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걸 미카엘한테 꼰질러서 내가 불려 왔다면, 지금부터 미카엘한테 처맞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당장 도주를 시도할 경우, 사빈에게 붙잡힌다. 그리고 미카엘한테 더 아프게 처맞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대화로 해결해야 했다.
나는 일단 침착하게 걸어가 요한의 맞은편에 앉았다.
요한은 인자한 미소로 내게 인사했고, 나도 예의 있게 인사를 나눴다.
그러면서 흘긋 미카엘을 보니, 섬뜩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길래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필사적으로 미카엘을 보지 않았지만, 엄청난 시선이 느껴져서 옆얼굴이 따가웠다.
녀석은 나를 시선만으로 뚫어버릴 것처럼 쳐다보며 말했다.
“내게 반항하지 않던 것들이 차례차례 날 거스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이유영, 네가 있더군.”
미카엘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심연이 들끓는 듯한 어둠이 느껴졌다.
사빈과 요한도 필사적으로 먼 산을 보고 있었다.
미카엘이 말하는 거스르는 녀석들이 바로 저 둘인 모양이다.
미카엘과 요한의 반응을 보면, 아무래도 요한이 카린의 가출 사유를 미카엘에게 전한 듯했다.
다만 요한이나 사빈을 움직이게 한 건 내가 아니라 카린이다.
카린이 옳은 요구를 들어달라며 행동력 있게 움직인 덕에 두 사람이 움직인 것이다.
그럼 카린을 불러서 제대로 대화를 해볼 것이지, 왜 나를 불러서 겁을 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미카엘을 외면하며 말했다.
“제가 아니라 카린 때문이라는 걸 아실 텐데, 왜 절 부르셨습니까?”
내 말에 미카엘에게선 몬스터에게서도 느낄 수 없던 압도적인 공포감이 뿜어져 나왔다.
이 절망적인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듯, 요한이 대신 답했다.
“자네를 부른 건 길드장님께서 카린의 의견을 들어주기 위해서일세. 자네가 다녀간 뒤로 사빈도 나를 찾아왔거든. 그래서… 길드장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습니까?”
“내가 사라지지 않고 에덴을 지킬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네.”
요한은 착잡한 얼굴이었다.
잠시 사빈을 쳐다보니, 사빈은 요한의 말이 안 들리는 사람처럼 각 잡힌 자세로 정면만 보고 있었다.
나한테는 왜 이유도 없이 선의를 베푸냐고 뭐라 하더니, 본인도 요한이 사라지는 건 원치 않아서 미카엘의 뜻을 거스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여튼 종잡을 수 없는 놈이다.
“늙은이 하나 때문에 이렇게 젊은 친구들이 마음 쓰는 게 안타까워서, 길드장님께 자네들 얘기라도 전달해 드리려 했네. 길드장님은 유영 군의 의견을 한 번 들어보겠다고 이렇게 부른 걸세.”
미카엘은 여전히 나를 진득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로 내 의견을 한번 말해보라고 강요하는 중이었다.
여러 의미로 미카엘과 말하기 싫었지만, 하필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평정심을 찾은 뒤, 천천히 얘기했다.
“…두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먼저 카린에 대한 건데… 카린은 자길 파티에 데려가 달라고 했습니다. 그 약속은 지킬 거지만, 파티장은 너무 위험합니다. 에덴 측에서 카린을 억지로 안전한 곳으로 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12살 꼬마의 부탁을 무시해 버렸다간, 그 녀석이 더는 어른을 믿지 못하는 비행 청소년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몬스터가 나타날 파티장 한복판에 녀석을 데려갈 수도 없었다.
그러니 절충안으로, 나는 착한 어른으로서 카린의 말을 들어주고, 에덴이 나쁜 놈이 되어서 카린을 억지로 숨기면 완벽해진다.
잠시 사빈이 나를 노려보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무시하며 계속 말했다.
“두 번째로, 에덴을 습격하는 태풍에 관한 겁니다. 그 태풍의 정체는 몬스터고, SS급 몬스터보다 더 강력할 겁니다. 아마 어떤 몬스터보다 더 사람 같을 거고요.”
내 말에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향했다.
오류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지금 시기에선 ‘사람 같은 몬스터’는 이상한 말이다. 다들 내가 헛소리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만 미카엘은 SS급 몬스터 블랙드래곤과 전투하며 보고 들은 게 있을 테니, 내 말에 깨닫는 게 있을 것이다.
녀석은 눈을 한 번 깜빡일 동안 이해를 마친 건지, 곧바로 내게 물었다.
“그 몬스터의 등장으로 던전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한국에서 발생한 ‘야생의 몬스터’ 사태와 비슷하다고 봐야 합니다.”
화신이 그 꼴이었으니, 시스템이 던전을 만들어내진 못할 것이다.
화신체를 복구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듯했고, 시스템에 더 위험한 일이 생기지나 않길 바라야 한다.
내 대답을 들은 미카엘은 이어서 요한을 쳐다보며 물었다.
“길드 내에서 가장 방어력을 높일 수 있는 구간은 어디지?”
“지하 쓰레기 소각장이면… 태풍 정도는 버티지 않을까 합니다.”
요한의 스킬이 정확히 뭐길래 길드장도 모르는 걸 아는 건지, 게다가 방어력을 높인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요한에게 물어볼 새도 없이, 미카엘이 내 주의를 끌었다.
“이유영, 넌 내게 사망자를 내지 말라고 요구했지. 또한 카린의 고집을 들어주라고 하고 있어. 그 두 가지를 모두 이루려면 요한을 대신해서 희생할 제물이 필요하다, 이해했나?”
“지금 저 보고 희생하라, 이겁니까?”
“잘 이해했나 보군. 희생양에 너만 한 적임자가 없지. 넌, 죽지 않잖아.”
황당한 얘기였다. 에덴을 위해 에덴과는 전혀 관계도 없는 나한테 희생양이 되라니.
하지만 내가 미끼가 되어야 몬스터를 해치울 수 있긴 하다.
어차피 몬스터를 유인해서 최소한으로 피해를 줄이며 싸울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 오만한 놈한테 얌전히 ‘네, 희생양이 되어드리겠습니다.’라고 해줄 생각은 없었다.
“적임자는 저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내 말에 미카엘의 입꼬리가 비뚜름한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요한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게 누구인지 궁금해했고, 사빈은 답을 예상한 건지 얼굴이 새파래진 채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미카엘을 보며 말했다.
“미카엘 길드장, 당신만큼 안 죽을 헌터가 없을 텐데요. 같이 희생양이 되시죠, 에덴을 위해서.”
솔직히, 아직 내 힘으로 SS급 이상의 몬스터를 해치우는 건 무리다.
하지만 이 녀석의 힘을 빌린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SS급 몬스터를 상대로 승리를 이끌어낸 미카엘과 내가 힘을 합친다면, 그 ‘태풍’을 상대로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저 녀석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기분 나쁠 정도로 밝게 웃고 있었다.
***
이후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됐다.
미카엘은 사빈에겐 파티장의 현장 지휘를 맡겼고, 요한에겐 미끼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스킬을 사용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내겐 몬스터와 전투할 방법에 대해 얘기했다.
이 작전은 카린을 안전한 곳에 가두면서 개시될 것이다.
카린은 내가 있을 곳과 가장 떨어진 곳에서, 요한과 함께 갇혀 보호받을 것이다.
카린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카린의 바람이 이뤄졌으니 녀석도 이해할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니, 카린은 구지상, 김신욱과 함께 파티 때 입을 드레스를 고르는 중이었다.
카린은 내게 어떤 드레스가 좋을지 골라달라며 세 개의 드레스를 보여줬다.
누가 봐도 파티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당신의 길드원 두 분께선 각각 1번과 3번을 고르셨어요. 당신은 어떤 드레스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럼… 2번이 좋겠네요.”
내 말에 구지상과 김신욱이 1번과 3번 드레스의 장점에 대해 설명하며 반박했다.
솔직히 세 개의 큰 차이점도 없었다. 길이나 모양만 다를 뿐, 전부 카린에게 어울릴 만한 옷들이었다.
하지만 카린은 진지하게 내 의견을 고려해 드레스를 고르기 시작했다.
한참 심각하게 고민하던 카린은 결국 2번 드레스를 선택했다.
구지상과 김신욱은 실망했고, 그 사이에서 만족스럽게 드레스를 보고 있는 카린의 얼굴은, 내가 회귀 전의 카린에게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미카엘과 나, 요한과 사빈이 각자의 생각이나 신념 따위를 포기하고 한자리에 모인 이유도 카린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카린의 저 모습을 보니 그 드레스는 안 입어도 된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