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에덴 멸망 파티 (3)
몬스터는 자신이 내린 비에 심취해 있었다.
나는 옷에 붙은 빗물을 털어내며 검을 들어 올리고 녀석을 경계했다.
저러다 언제 급발진할지 모르는 일이다.
미카엘은 내 맞은편에서 비를 내리는 몬스터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그때 머릿속에서 요한의 목소리가 울렸다.
『유영 군, 미카엘 길드장님이 자네에게 몬스터의 약점이 어디인 것 같냐고 물으시네.』
미카엘은 지금 몬스터의 약점을 공략해야 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확실히, 지금이야말로 몬스터의 약점을 노리기에 제격인 상황이었다.
약점이 있다면 말이다.
나는 지난 시간 동안 자각몽을 통해 ‘태풍’을 조사했다.
장담하는데, 저 태풍에겐 다른 몬스터와 같은 약점은 없다.
녀석을 물리칠 방법은 오직 내 일기장을 빼앗는 것뿐이다. 녀석을 구성하는 데 핵심이 된 페이지를 수거하면,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다만 그렇게 처맞았는데도 일기장 한 페이지 흘리지 않은 놈이다.
지금으로선 어떻게 일기장을 빼앗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요한에게 말했다.
“본인도 모르나 보네요. 모르겠을 땐 일단 목부터 분질러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알겠네, 그렇게 전하지.』
저 몬스터는 팔이 잘려도 금방 다시 자라나는 녀석이다.
어쩌면 내 생명의 의지보다 더 강력한 복구 능력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녀석의 목을 분지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만큼, 녀석이 내 일기장을 뱉어낼 확률도 높았다.
요한이 내 말을 전달한 건지, 미카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이 끼고 있는 검은 장갑에서 블랙 드래곤의 비늘이 솟는 게 보였다.
검고 윤기 나는 비늘은 미카엘의 팔까지 번지며 피부를 덮었고,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떨어진 샛별이 진동하는 걸 보면, 강한 마의 기운인 듯했다.
순간, 미카엘이 빗물을 가르고 매섭게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눈을 감고 비를 맞고 있던 몬스터는 번쩍 눈을 떴고, 미카엘의 팔을 보며 깨달음을 얻은 듯이 중얼거렸다.
『무기를 신체에 두른다…, 흥미롭구나!』
녀석은 미카엘의 비늘 장갑을 따라 하듯, 자신의 피부에도 바람을 두르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소용돌이가 갑주가 되어 녀석의 팔과 흉통을 감쌌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살이 찢길 듯한 공격적인 갑주였다.
그러나 미카엘은 전혀 개의치 않고 뛰어올라, 몬스터의 머리채를 쥐어 잡고 바닥으로 패대기를 쳤다.
쾅!!!
엄청난 힘이었다.
녀석은 곧장 몬스터의 목을 뜯어낼 듯이 꺾기 시작했다.
몬스터가 즉석에서 만들어 낸 갑주가 미카엘을 찢어발기고 있었으나, 녀석은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듯 오직 몬스터의 목을 꺾는 데만 집중했다.
피부가 뜯기고 피가 튀는 소리가 거세질수록, 몬스터의 목도 더욱 비틀렸다.
우드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의 목이 기역자로 꺾였다.
끔찍한 몰골이었으나 몬스터의 표정은 한없이 평온했다.
녀석은 목이 비정상적으로 꺾인 채로,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어허, 신의 목을 꺾다니. 무엄하다!』
“흠.”
미카엘은 이번엔 목을 아예 뜯어내려는 것 같았다.
몬스터나 저놈이나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카엘의 단점은 전투에 집중하면 주변 상황에 관심을 꺼버리는 것이다.
지금의 미카엘은 그 단점이 더 드러나는 듯했다.
나는 서둘러 달려가 미카엘을 그곳에서 밀쳐냈다.
그 순간, 몬스터의 갑주에선 칼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스가가각!
터져 나온 바람은 회오리치며 쓰레기장의 쓰레기들을 분쇄하고 날뛰기 시작했다.
바람이 스쳐 지나간 자리마다 살이 크게 베어져 나갔다.
간신히 그 폭풍을 피했지만, 신발 한 짝을 잃고 말았다.
조금만 늦었으면 저 쓰레기장의 쓰레기들처럼 분쇄되었을 것이다.
미카엘은 몬스터의 갑주에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녀석한테 생명의 의지를 발동해 치유하며 말했다.
“저 쓰레기처럼 되고 싶습니까? 정신 좀 차리고 싸우시죠.”
“네 눈엔 내가 저런 꼴이 될 것 같나?”
방금까지 딱 저런 꼴이 될 뻔한 주제에, 하여간 오만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나는 치유를 이어가며 말했다.
“저 갑주는 너무 위험합니다. 뒤로 빠지시죠. 목을 뜯어내는 것보단 베어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자신감이 보기 좋군.”
녀석은 치유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내려다봤다.
황당했지만 지혈은 끝냈으니 피 흘리다가 죽진 않을 듯했다.
“어디 한 번 시험해 보지, 네가 얼마나 잘 드는 검인지.”
녀석의 눈은 어느샌가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저건 미카엘의 서브 스킬 중 하나인 ‘지배’다.
녀석과 눈이 마주치면 즉각적으로 발동되는 스킬로, 미카엘의 생각이 마치 내 생각이 된 것처럼 움직이게 된다. 게다가 감각까지 공유되어 꼼짝없이 녀석에게 지배당하는 굉장히 기분 나쁜 스킬이다.
다만 이 사기적인 스킬이, 미카엘을 대전투의 지휘관으로 만들었다.
녀석은 이 스킬을 통해 헌터를 무기로 사용했고, 수많은 헌터들이 녀석에게 사용됐다.
어떤 누구도 미카엘보다 잘 싸울 수 없다. 그 절대적인 신뢰 아래 헌터들은 순순히 녀석의 무기가 되었다.
녀석의 보랏빛 눈을 본 시점부터, 나는 지배에 걸렸다.
불쾌하지만 이것보다 더 확실하게 몬스터와 맞설 방법은 없었다.
슬슬 내 머릿속에 미카엘의 생각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회귀 전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이 녀석의 사고는 광적으로 승리에 집중되어 있다. 그 외에 잡념이 전혀 없어서 두려울 정도다.
나는 녀석의 지배에 따라 검을 가볍게 잡고 몬스터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노려야 할 건 몬스터의 갑주를 이루는 핵으로 보이는 단단한 결정이다.
몬스터의 견갑골 사이에 박혀 있는 흰색 결정에서 칼 같은 바람이 뿜어져 나오므로, 저것을 파괴하면 갑주를 벗길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나는 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지금 자세히 보니, 몬스터의 등에서 작은 결정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미카엘 녀석은 전투 중에 저걸 발견한 모양이다.
결정을 부수려면 먼저 몬스터를 방심시켜야 한다.
몬스터 주제에 학습에 재미를 느끼는 듯하니, 속임수로 대응하는 게 좋다.
나는 딱히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배 때문에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못 뜯은 네 목은 이 검으로 베어주마.”
미카엘 같은 놈이나 할 법한 말이 내 목소리로 들리니, 속이 거북했다.
다행히 몬스터는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듯, 갑주를 변형시켜 목을 보호했다.
녀석은 신나게 웃으며 말했다.
『무엄하다, 무엄해. 혼쭐을 내줘야겠구나!』
녀석은 신 놀이에 재미가 들린 건지, 계속 유치한 말투로 얘기하고 있다.
저런 성격은 이용해 먹기 편하다.
녀석도 학습한다면, 학습한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무찌를 수 있었다.
나는 몬스터의 갑주를 벗겨내기 위해 칼춤을 췄다.
미카엘은 평소에 검을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섬세하게 검을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내가 다룰 땐 묵직하게 움직이던 떨어진 샛별이, 가볍고 경쾌하게 움직였다. 검 끝은 쉽게 갑주 사이를 파고들었고, 몬스터는 쓸데없이 갑주를 복원하느라 자주 빈틈을 보였다.
나는 녀석의 옆구리 새에 검 끝을 넣어 날카롭게 베어냈다.
몬스터가 휘청이는 순간, 가능성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를 사용합니다. ]몬스터가 내린 비 때문에 낙뢰를 무작정 쓸 수는 없다.
단 한 번의 일격에 파괴력을 증폭시키도록 사용해야 한다.
나는 즉시 뛰어올라 신발 끝에 전격을 집중시켜 기습적으로 갑주의 핵을 후려 찼다.
콰직!
핵이 명쾌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깔끔한 일격이었지만, 미카엘이 지배할 때만 몸이 이렇게까지 가뿐해지는지 알 수 없어서 찝찝함이 남았다.
어쨌든 핵이 깨졌으니 녀석의 갑주도 흩어질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부서진 핵에서 흰빛이 터져 나오며 돌풍이 일기 시작했다.
몬스터는 터져 나온 돌풍을 주먹에 휘감아 내 명치를 쳐올렸다.
“컥…!”
뱃가죽을 찢고 들어오는 직격타에 나는 날아가 벽에 처박혔고, 동시에 미카엘의 서브 스킬이 끊겼다.
나는 벽에 처박힌 채로 핏물을 토해냈다.
요란하게 부서진 벽은 공격의 위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찢어진 뱃가죽과 내상이 생명의 의지로 치유되기 시작했다.
위가 경련하며 머리가 멍해지고 시야가 흔들렸다. 나는 기침하며 입에 고이는 핏물을 뱉어냈다.
고통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심한 부상이다.
배가 뚫리지 않은 게 기적이고, 평범한 헌터였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옳거니, 내게 필요한 건 무기로구나.』
저 멀리서 떠드는 몬스터의 유쾌한 목소리에, 나는 몸뚱아리를 일으켜 세워서 다시 검을 쥐었다.
미카엘의 지배만 믿고 방심했다.
한 대 처맞으니까 상황이 파악됐다.
미카엘의 스킬은 아직 회귀 전의 미카엘만큼 발달되지 않았다.
녀석의 판단이 내게 전달되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고, 지배당하던 나는 계속 약간 느리게 움직였다.
싸우는 동안엔 그게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습 공격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나는 또 한 번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핏물을 울컥 뱉었다.
공격이 얼마나 센 건지, 계속 치유되고 있는데도 피가 멈추질 않았다.
내가 계속 피를 토해내는 탓에 들고 있던 떨어진 샛별은 피를 뒤집어써야 했다.
그때, 떨어진 샛별이 진동하며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떨어진 샛별’이 특정 조건을 감지합니다.」
떨어진 샛별의 날이 서서히 내 피를 흡수하며,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피를 흡수한 칼등은 일그러졌다가 날카로운 톱날이 되었고, 크기를 키우며 소드브레이커로 진화했다.
그런데 눈앞에 푸른 창이 한 번 더 떠올랐다.
「’떨어진 샛별’이 새로운 ■■을 감지합니다.」
「’떨어진 샛별’의 기능이 업그레이드됩니다.」
.
.
.
「업그레이드 완료.」
뭘 새로 감지했다는 거지?
떨어진 샛별의 업그레이드 같은 건 회귀 전에 없었던 일이다.
들고 있는 검을 보니, 변한 게 아무것도 없어서 뭐가 업그레이드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검이 저 몬스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검을 쥐고 있는 내게 검이 무엇을 원하는지 극렬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길게 생각할 시간은 없다.
몬스터는 마치 나를 따라 하듯이 바람 속에서 검을 한 자루 만들어 냈고, 그것을 쥐고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업그레이드한 건지 모를 떨어진 샛별을 쥐고서 녀석에게 다가갔다.
몬스터는 검을 장난감처럼 휙휙 휘둘렀다.
저 녀석에겐 이 전투가 일종의 놀이처럼 보였고, 그 사실이 나를 열받게 했다.
문득 녀석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역시 넌 몬스터로 만들어야겠구나.』
“뭔 개소리야?”
『어떠냐, 지금 저 녀석을 죽인다면 너를 몬스터로 만들어 주겠다.』
몬스터는 다가오고 있는 미카엘을 가리켰다.
미카엘은 아까 내가 맞았던 공격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고 분노한 듯, 얼굴이 도깨비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몬스터를 죽이겠다는 일념을 불태우고 있는 듯했다.
나는 잠시 ‘태풍’을 바라봤다.
미카엘을 죽이면 나를 몬스터로 만들어 주겠다니. 정말 내 일기장으로 만들어진 녀석이 맞나?
내 일기장을 몇만 장이나 품고 있으면서 왜 이렇게 똘추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마왕도 그렇고, 이 녀석도 그렇고. 집요하게 나를 몬스터로 만들려는 게 거슬렸다.
나는 떨어진 샛별을 단단히 쥐며, 녀석에게 달려들며 말했다.
“널 죽여야 내가 몬스터로 변할 일이 없는 거겠지.”
『흠, 그것도 맞는 말이다.』
녀석은 갖고 놀던 바람의 검을 휘둘러 떨어진 샛별과 부딪혔다.
검끼리 부딪치자, 떨어진 샛별의 톱날이 매섭게 녀석의 검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몬스터는 검이 갈리는 걸 보면서도 감탄하다가 훌쩍 물러났다. 나는 곧장 거리를 좁히며 다시 한번 검을 부딪쳤다.
챙!
나는 몬스터의 뒤에서 다가오는 놈의 시선을 피하며, 바람의 검을 부러트렸다.
그 순간, 미카엘이 몬스터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고 나는 몬스터의 목을 크게 베어냈다.
스각!!
떨어진 샛별에 의해 썰린 목이 바닥으로 떨어져야 했건만.
무언가 이상했다.
어째서인지 떨어진 샛별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미친 검이 베어내다 말고 멋대로 크기를 키우며 몬스터의 목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나는 말을 안 듣는 검을 빼내려고 했으나, 순간 몬스터의 벌어진 상처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고, 빛나는 종잇장이 펄럭이며 터져 나왔다.
저건 분명 내 일기장이다.
떨어진 샛별은 멋대로 그 종잇장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