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야생의 몬스터 (3)
요즘은 청소년 발육이 남다르기 때문에 스물 후반의 내가 체육복을 입고 돌아다닌다 해도 크게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당당하게 진준성과 나란히 걷고 있었더니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내 나이를 들은 진준성은 지금 이 모든 상황이 불안한 것 같았다.
“헌터님이 동안이셔서 그런가, 저희한테 신경을 안 쓰네요….”
“원래 사람들은 남한테 별로 관심 없어요.”
“그건 어른이 고등학교 침입하면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무, 물론 헌터님은 사건을 조사하러 온 거지만….”
나중에 크게 될 놈이라 그런지 소심해도 자기 할 말은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앳되어 보이는 진준성의 얼굴을 잠시 바라봤다.
회귀 전, 헌터 협회장의 오른팔이었던 ‘군사전략 진준성’.
그 어렵다는 헌터 협회 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해, 단숨에 협회장 바로 옆을 꿰찼던 인재다.
‘군사전략’이라는 지휘관의 능력을 갖추고 있던 탓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활약했던 놈이다.
이런 녀석을 헌터로 만들지 못하면 국가적, 아니, 인류적 손실이다.
내가 은신 스킬을 쓰지 않고 이런 꼴로 잠입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진준성은 과거 신라 고등학교 던전 사태 때 헌터가 되었다.
그러니 고주연을 강릉에서 각성시켰던 것처럼, 진준성도 여기서 각성시켜 볼 생각이다.
안 그래도 협회 팀장을 밀어주기 위해 심어둘 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제격인 녀석이 나타날 줄이야.
‘내 길드로 들이기엔 능력 발휘가 좀 어렵지.’
‘군사전략’이란 스킬은 전투 시에 적의 약점과 사람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가장 효율적인 전략을 도출해내는 스킬이다.
이 스킬은 전략에 쓸 사람이 많아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내 길드는 초반에 소수정예로 운영할 예정이라 진준성이 활약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헌터 협회로 간다면 분명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겠지. 겸사겸사 팀장도 좀 도와주고.
나는 귀여운 새끼 호랑이처럼 보이는 진준성에게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미리 내 손으로 길들여 놓고, 다 크면 협회에 풀어놓을 생각이었다.
진준성은 내 얼굴을 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지만, 어쨌든 나는 계속 친절한 미소를 유지했다.
“곧 야자 시작할 시간이라 애들 거의 없어서 돌아다니기 수월할 거예요.”
진준성의 말대로 교내는 확실히 한산했다.
진준성을 따라 지하 창고 쪽으로 가니, 문 앞을 차단봉으로 가볍게 막아둔 상태였다.
차단봉을 무시하고 넘어가 문고리를 돌려보았는데, 당연하게도 문이 잠겨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불안해하던 진준성이 말했다.
“잠겨 있는데 어쩌죠…?”
“혹시 창고 열쇠 받아올 방법 있습니까?”
“아뇨…. 어디에 있는지 아는데 받아오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어디에 있는지만 알아도 됩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진준성은 교무실 옆에 있는 준비실이라는 곳을 가리켰다.
“주번이었을 때 청소하다가 봤어요. 근데 안에 선생님들 계셔서… 퇴근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아뇨, 준성 학생이 들어가서 선생님 주의 끌어주세요. 제가 열쇠 가져오겠습니다.”
“네? 어떻게요? 설마 훔치는 건 아니죠…?”
나는 진준성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작전을 설명했다.
“지금부터 준성 학생이 먼저 준비실 문을 열고 들어가세요. 저는 모습을 감추고 따라 들어가서 열쇠를 가지고 나오겠습니다. 그동안 준성 학생은 선생님의 시선을 끌면서 갑자기 열쇠가 사라지는 걸 못 보게 하세요. 자, 그럼 갑니다.”
이런 건 오래 생각하게 둘수록, 생각이 복잡해져 망설이게 된다.
특히 진준성 같은 녀석들은 생각할 시간을 아예 주면 안 된다.
나는 곧바로 가능성 스킬, 은신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스킬이 발동되자 내 몸이 공기와 동화되듯이 투명해졌다.
진준성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눈을 비볐다가, 자기 뺨을 두 대 쳤다.
나는 어서 가라는 신호로 진준성을 문 앞으로 떠밀었다.
진준성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준비실로 향했다.
똑똑
준비실의 문을 정중하게 노크한 진준성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진준성의 뒤쪽에 따라붙은 채로 들어갔다.
그러자 노년의 남선생과 젊은 여선생, 체육 선생으로 보이는 남선생 하나가 보였다.
진준성은 노년의 남선생에게 볼일이 있는 것처럼 인사했다.
“저,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 정치와 법 시간에 문제 풀이한 거 물어볼 게 있어서 왔는데요….”
“오 그래, 준성이. 보자… 너희 반 진도가 오늘 어디까지 나갔더라?”
전교 1등이라 그러더니 선생님은 바로 진준성을 알아보며 답했다.
진준성이 책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자, 이쪽을 슬쩍 바라보고 있던 나머지 선생들도 다시 컴퓨터 화면에 집중했다.
나는 그사이 움직인다는 신호로 진준성의 어깨를 툭 쳤다.
준비실 안을 둘러보니, 문 옆에 있던 사물함 위에 열쇠들이 뭉텅이로 놓인 상자가 보였다.
정리가 안 되어 있어서 창고 열쇠를 골라내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문제는 진준성이 손을 떨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어서 시간을 오래 끌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별수 없지.’
나는 문 옆에 있던 전등 스위치를 껐다. 그러자 전등이 나가며 순간적으로 어둠이 찾아왔다.
곧바로 열쇠가 담긴 상자를 통째로 챙겨서 문손잡이를 돌리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어 뭐야. 정전?”
그리고 나선 재빠르게 문틈으로 손을 뻗어 스위치를 켰다.
그러자 불이 들어오며, 잠깐 정전이 일어났던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정전이에요? 컴퓨터는 멀쩡한데.”
“그러게요. 저 방금 만들던 수업자료 날아간 줄 알고 심장 떨어질 뻔했잖아요.”
“하하, 다행이네요.”
젊은 선생 둘이서 떠드는 동안에도 진준성은 노년의 선생에게 계속해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정전도 개의치 않고 설명을 이어가다니, 대단한 열정이었다.
열쇠 통도 사라졌고 문도 조금 열어뒀으니, 내가 준비실에서 나왔다는 걸 알 것이다.
진준성도 알아서 나오겠지.
나는 먼저 창고 앞으로 가서 열쇠를 비교했다.
뭐가 어떤 열쇠인지 알 수 없어, 열쇠를 일일이 넣어가며 열어봐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렸다.
일곱 번 정도 돌렸을 때쯤, 열쇠가 딱 맞아떨어지며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철컥!
그때 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유영 헌터님…?”
뒤를 돌아보니 진준성이 약간 기가 빨린 표정으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선생의 열정이 대단했던 모양이었다.
더 이상 은신 스킬을 쓸 필요는 없었으므로, 나는 가능성 스킬을 해제했다.
[ 메인 스킬, 이 종료됩니다. ]스킬이 해제되자, 투명화가 해제되며 천천히 몸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열었습니다. 가시죠.”
“아, 네…!”
진준성은 앞으로 멘 책가방을 허겁지겁 뒤로 제대로 메면서 나를 따라왔다.
나는 만약을 대비해 창고의 문을 다시 잠그고 열쇠 통은 진준성에게 넘겼다.
“나중에 반납 부탁드립니다.”
“헌터님 안 그렇게 생기셔서 꽤 막무가내이시네요….”
역시 나중에 크게 될 놈이라서 그런지 할 말은 꼭 하고 넘어가는 녀석이다.
나는 진준성의 말을 무시하며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
문 안에는 곧바로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문을 닫고 나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던 탓에,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나서야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퀘퀘한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신경 써서 관리하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계단을 다 내려오자 웬만한 강당만큼 넓은 공간이 나왔다.
넓은데 물건은 별로 없어서 그런지, 중앙에 놓인 무언가가 특히 눈에 띄었다.
내가 플래시로 중앙을 비추자, 진준성도 함께 중앙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게 뭘까요…?”
“제사를 지내는 제단 같네요. 소문이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제단 위에는 촛대 두 개와 황금돼지 저금통이 놓여 있었다.
다 녹은 양초가 촛대 위에 눌어붙어있었고, 저금통에는 십 원짜리 동전이 잔뜩 들어 있었다.
제단 위로는 그림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아무래도 누가 여기에서 의식을 지내고 그냥 내버려 둔 것 같았다.
그림 속에는 돼지 한 마리가 인간들을 거느리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돼지 그림…?”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됩니다.”
그림 앞으로 다가가던 진준성은 내 말을 듣고 조심스레 뒷걸음질 쳤다.
저 그림 속 돼지가 바로 몬스터였다.
D급 몬스터 ‘금돼지’. 능력은 그림 속으로 도주하는 것이었다.
회귀 전에는 수백 점의 그림이 걸린 던전에서 녀석을 찾아내, 놈이 숨어있는 그림 안으로 들어가 잡았어야 했다.
술래잡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 귀찮긴 하지만, 전투력 자체는 약한 놈이라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내 기억으로 신라 고등학교에서 생겼던 금돼지 던전은 다행히 던전 브레이크로 번지지 않아 피해자가 적었다.
던전 등급도 D등급이었고, 헌터 협회가 근처에 있어서 대처가 신속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진준성은 어쩌다 헌터로 각성한 거지?’
강릉에서 고주연이 강철이에게 죽을 뻔하고 헌터로 각성했던 것처럼, 보통은 어떤 사건을 맞닥뜨려야 상태창이 뜨며 각성자가 된다.
회귀 전에 내가 만났던 진준성은 자기에 관한 얘기를 안 하는 무뚝뚝한 녀석이었어서, 어떻게 헌터가 됐는지 듣지 못했다.
그런데 어릴 때는 이렇게 감정 표현이 풍부했던 녀석일 줄이야.
어쨌든 헌터 중에서 사연 없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렵기도 하고, 녀석이 또 예전처럼 변하지 않도록 도와주면 될 일이다.
나는 집중해서 그림을 관찰하는 진준성에게 물었다.
“그림을 보니 어떤 기분이 듭니까?”
“어… 그림 속 사람들이 묘하게 걸리네요. 저 사람 부분만 부자연스러워서 꼭 나중에 덧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예리한 관찰력이었다.
나는 우리 새끼 호랑이에게 친절한 미소를 지어주며 답했다.
“정답입니다. 아마 잡혀간 학생들이 저 그림 속 사람일 겁니다.”
“어…! 그러고 보니까 묘하게 닮은 것 같네요.”
“그럼 이제 구하러 가야겠군요.”
던전 안이라면 저 돼지만 없애도 공략에 성공했겠지만, 이곳은 던전이 아닌 현실이다.
돼지를 해치우러 그림 속에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창고 수도에 꽂혀 있던 기다란 호스를 뽑아내 허리에 감으며 진준성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준성 학생이 할 일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할 일이요?”
“예. 저는 그림 속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죽이고 학생들을 구해올 겁니다. 준성 학생은 그동안 이 호스를 잘 잡고 있어 주세요.”
나는 호스 끝을 진준성에게 넘겼다.
“이 호스를 왜…?”
“현실과 그림을 잇는 이 호스가 끊어지면 제가 그림 속에 갇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준성 학생이 잘 붙잡고 있어 줘야 저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몬스터를 해치우는 대로 이 호스를 당겨서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그때 호스를 끌어당기며 저와 학생들을 그림에서 빼내 주시면 됩니다.”
진준성은 떨리는 손으로 호스 반대편을 잡더니, 곧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위험은 없겠지만, 지금 이 상황 자체가 회귀 전에는 없었던 일인 만큼 주의가 필요했다.
“만약 준성 학생한테 무슨 일이 생길 때에도 이 호스를 당겨서 저를 그림 속에서 빼내세요. 몬스터는 다시 들어가서 해치우면 되지만, 준성 학생의 목숨은 하나니까 꼭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혹시… 몬스터가 밖에 나오거나, 밖에도 있거나…. 그런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을까요?”
그건 나도 모른다.
D급 몬스터가 내 손에서 탈출하는 그림은 전혀 그려지지 않기는 하지만, 화신이 주의를 주기도 했으니 조심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나는 아이템창에서 이무기의 여의주를 소환했다.
[ [A] ‘타락한 여의주’를 소환합니다. ]진준성은 내가 여의주를 넘겨주자, 이게 뭐냐는 듯 쳐다봤다.
“몬스터한테서 몸을 감출 수 있게 만드는 연막을 소환하는 아이템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강철이의 강한 기운으로 인간의 기운을 감추는 아이템이지만, 여기까지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다.
“만약 저를 부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 아이템을 사용해서 석호 태권도로 도망치세요. 윤지석 씨가 제가 남겼던 협회 쪽 번호로 전화해줄 겁니다. 그리고….”
나는 불안해하는 진준성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위로하듯이 툭툭 쳤다.
“준성 학생. ‘될놈될’이라는 말 압니까?”
“될 놈은 된다…. 맞죠?”
“네. 여차할 땐 준성 학생 본인을 믿으세요.”
모두가 침묵하는 상황에서 혼자라도 싸워보려 한 학생이라면 위기의 상황에서 시스템이 외면할 리가 없었다.
진준성은 마음을 다잡은 듯, 주먹이 하얘질 정도로 호스 줄을 쥐었다.
나는 진준성의 눈빛이 달라진 걸 확인하고 산책 나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이젠 야생의 몬스터를 사냥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