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태풍 (6)
아침이 되어 우리는 다시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거나, 언제까지 가야 하냐고 투덜거리며, 끝없는 절벽을 올랐다.
선두에는 내가 있었다.
그 뒤로 마르코, 나쟈, 김신욱, 구지상 순으로 일렬로 따라왔다.
체력을 감안해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나쟈와 김신욱을 중간에 넣고, 나랑 구지상이 앞뒤에서 속도를 조절했다.
점심때가 지났을 땐 다들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다.
고지에 가까워질수록 안개가 자욱해지며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래도 안개 속에 들어왔다는 건, 이 절벽의 끝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일행들을 부추기며 끈질기게 절벽을 오르자, 마침내 절벽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바로 뒤에 있어야 할 마르코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심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다들 무사하십니까?”
이상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번 큰 소리를 내려던 때, 몸이 휘청일 정도로 돌풍이 불어왔다.
나는 절벽 끝을 올라와, 주변에 흐릿하게 보이는 나무를 붙잡고 바람을 견뎠다.
그러면서 일행들을 향해 외쳤다.
“이유영입니다!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이번에도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사납게 부는 바람 소리 외에 들리는 게 없었다.
나는 다급하게 심연의 천리안을 발동했다.
[ 서브 스킬, 이 발동됩니다. ]그러나 어디를 살펴도 안개뿐이었다.
마치 안개 속에 갇힌 것 같았다.
“제 목소리 들리시면 답하세요! 이유영입니다!”
아무리 소리쳐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한참 동안 바람 소리만 들렸고, 보이는 것도 안개 속에 묻힌 나무 그림자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일행들을 찾기 위해 목이 쉬어라 소리치던 중, 드디어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는 또다시 숲이었다.
높은 전나무가 빽빽하게 심겨 있었고, 안개로 인해 공기가 축축하고 차가웠다.
그때, 어디선가 나무를 쇠붙이로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가자, 나무를 베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분명히 사람인 것 같은데, 동료들은 아니었고, 에덴의 공략대원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검은 머리에 나랑 비슷한 키, 내가 입고 있는 것과 같은 녹색의 점퍼를 입은 녀석이 도끼 하나를 들고서 나무를 베고 있었다.
도끼를 내려치는 자세와 무뚝뚝한 분위기, 사소한 습관들도 어딘가 나랑 비슷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말없이 나무만 베고 있었고, 나는 주먹을 말아쥐며 녀석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너… 뭐야?”
내 목소리에 녀석이 뒤를 돌았다.
그놈의 얼굴은, 내 얼굴이었다.
앳된 모습의, 어딘가 예민하고 날 선 분위기를 풍기는 회귀 전의 나였다.
녀석은 나를 보며 말했다.
“누구긴, 너잖아.”
소름 끼칠 만큼 나랑 똑같은 목소리였다.
내가,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
마르코는 안개 속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이 안개는 상태이상도 아니고, 위험한 안개가 아니다.
그럼 주위의 소리에 집중해서 흩어진 동료의 위치를 파악하고, 서로 소리를 내며 만나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마르코는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브라질 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유영이 한국의 국가를 불렀던 것처럼 일종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러면 대원들도 헷갈리지 않고 마르코를 알아볼 것이다.
“…나의 조국의 하늘에 한 줄기 비추네.”
그런데 조금 부끄러웠다.
이유영은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자기 나라 국가를 우렁차게 불렀던 걸까.
그래도 누군가 화답해 주길 바라며 마르코는 계속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가던 때, 마르코는 무언가 뛰어가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분명 사람 그림자여서 마르코는 우선 그를 쫓기 시작했다.
이유영 팀 사람이라면 도망가진 않았을 테니, 아마도 에덴의 공략대원인 것 같았다.
쫓아가며 마르코는 소리쳤다.
“브라질의 마르코다! 에덴 공략대원이야! 당신도 공략대원인가?!”
그러나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게다가 가까워질수록 이상했다. 체구가 어린아이 정도로 작아 보이는 사람이 뛰어가는 듯했다.
그때,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르코 씨! 그거 함정이에요!”
구지상의 목소리였다.
마르코는 곧장 발을 멈췄다.
그런데 어느샌가 안개 속을 빠져나온 듯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이곳이 숲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다행이다! 무사하셨네요, 마르코 씨!”
“너도 무사해 보이는군. 다른 동료들은 만났나?”
“아뇨, 제가 들을 수 있는 건 마르코 씨의 노랫소리뿐이었어요. 안개 속에서 다들 흩어졌나 봐요….”
구지상은 마르코를 따라 안개를 빠져나와 숨을 고르며 말했다.
굉장히 먼 곳에서 들리는 소리까지 잡아낼 수 있는 구지상의 서브 스킬로도 들리는 게 없다면, 당장 동료들과 재회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지금으로선 구지상과 마르코가 만난 것도 기적적인 일인 듯했다.
마르코는 우선 주위를 둘러봤다.
바닥에는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들이 쌓여 있었고, 주위에는 단풍이 든 나무들이 듬성듬성 심겨 있다. 이곳은 가을의 숲이었다.
숲속에는 나무로 된 오두막이 하나 보였는데, 방금까지 도망가던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마르코는 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저 오두막에 가보는 게 어떻겠나? 방금 내가 쫓던 녀석이 저 안으로 들어갔거든.”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몬스터의 함정일 거예요.”
“확실히 그렇긴 하지. 다만 침착하게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몬스터와 싸우는 일밖에 없어. 던전은 몬스터를 물리쳐야 다음으로 나아가는 구조니까.”
동료들을 다시 만나려면 우선 이 이상한 안개에서 벗어나야 한다.
던전은 몬스터를 처치하면 기믹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편이고, 저게 몬스터라면 이 안개를 만들어낸 범인일지도 모른다.
구지상도 설득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는, 그 어린아이 같은 몬스터가 내는 소리밖에 없어요. 지금은 저 아이랑 상대하는 게 유일한 지표인 것 같네요.”
그렇게 두 사람은 정체 모를 어린애가 있는 오두막으로 다가갔다.
마르코는 분신을 만들어 오두막에 들어가게 하고, 본체와 구지상은 수풀 뒤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마르코는 분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다. 분신에게 먼저 오두막에 있는 것의 정체를 밝혀내게 할 생각이었다.
마르코의 분신은 슬쩍 오두막의 문을 건드려 봤다.
다행히 잠겨 있진 않았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귀여운 오두막이었고, 그 아이를 제외한 다른 것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자, 꼬마가 바닥에 엎드려서 무언가를 사각사각 쓰고 있는 게 보였다.
정갈하게 옷을 입고 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아이는 체구로 보아 7살쯤 된 것 같았다.
그 애는 마르코가 들어오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마르코는 조용히 총을 꺼내며 꼬마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거기 꼬마, 뭐 하고 있는 거지?”
꼬마는 여전히 무언가를 끄적거릴 뿐, 마르코에겐 눈길도 주지 않으며 답했다.
“독후감을 쓰고 있어요.”
“독… 독후감?”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독후감을 쓰며 기다리고 있어요. 독후감을 쓰면 아버지가 칭찬해 주시거든요.”
마르코는 ‘아버지’라는 꼬마의 말에 마음이 쓰렸다.
물론 마르코는 저게 몬스터이거나, 몬스터가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몇 주간 보지 못한 딸이 있는 아버지로서, 아버지를 기다린다는 소년의 말에 마음이 쓰리지 않을 아버지가 있을까.
그래도 마르코는 총알을 장전했다.
“아버지를 많이 좋아하나 보구나.”
“네, 아버지는 엄청 멋있어요. 철 자재도 번쩍 들 만큼 힘이 세고 좋은 물건을 보는 안목이 있어서, 이 동네 철물점 중에서 제일 같이 일하는 맛이 나는 사람이랬어요.”
“그래, 멋진 아버지구나.”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말을 아주 잘하는 꼬마였다.
그런데 문득 마르코는, 어제 이유영과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분명 이유영의 아버지도 철물점을 운영했다고 했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그러고 보니 꼬마의 목소리도 어딘가 이유영과 비슷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꼬마의 얇고 찰랑거리는 검은색 머리카락 역시 이유영과 비슷했다.
마르코는 섬찟한 공포를 느꼈다.
장전된 총의 검지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고, 꼬마의 뒤통수에 총구를 겨누며,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꼬마, 너… 이름이 뭐야?”
마르코의 말에 꼬마가 드디어 고개를 들고, 마르코를 쳐다봤다.
똘망한 눈, 상대의 눈을 흐트러짐 없이 마주 보는 독특한 분위기, 그 시선 때문에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인상.
이유영이었다.
이유영의 꼬마 시절이었다.
대체 왜 어린 시절의 이유영이 이곳에 있는 거지?
아는 녀석에게 총을 쏘는 건 아무리 마르코라고 해도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그의 어린 시절이라니.
마르코의 본체는 자신이 보고 있던 것을 전부 구지상에게 전달했다.
구지상은 마음이 안 좋지만, 그건 이유영이 아니니까 당장 없애는 게 좋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마르코도 동의했다.
그런 와중에도 꼬마 이유영은 마르코의 분신에게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모르는 사람한테 함부로 이름을 가르쳐주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 이유영은 어릴 때부터 이런 분위기였군.”
꼬마 이유영은 크고 똘망거리는 눈을 깜빡거릴 뿐이었다.
마르코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그 애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탕!!
꼬마의 이마의 정중앙에 총알이 꽂혔다.
안타깝지만 금방 처치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마르코였다.
하지만, 눈앞의 꼬마는 총을 맞고도 멀쩡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재가 되어 사라지지도 않았다.
마르코는 당황하며 총을 연달아 발사했다.
탕 탕 탕!!
그러나 총알은 꼬마에게 닿자마자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고, 꼬마는 멀쩡하기만 했다.
꼬마는 자기의 이마를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아저씨, 뭐 하시는 거예요?”
마르코는 대꾸하지 않고 곧장 단검을 소환했다.
꼬마가 몬스터라는 게 확실해지자, 더 망설임 없이 공격할 수 있었다.
마르코는 단검을 휘둘러 곧바로 꼬마의 목을 베어버렸다.
스각!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살을 베어내는 게 아니라, 물을 베는 것 같았다. 분명히 검을 휘둘렀음에도 아무것도 자른 게 없었다.
꼬마 이유영은 멀쩡했다.
“자꾸 이러시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꼬마는 쓰고 있던 독후감 공책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르코는 한 손에는 총을, 한 손에는 단검을 쥐며 꼬마와의 거리를 벌리고 반격할 준비를 했다.
분신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어떤 공격을 펼칠지 제대로 봐두기 위해서 선공을 허락해줄 심산이었다.
그런데 꼬마는 독후감 공책을 야무지게 펼쳐, 한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저 학교에서 발표하듯이 또박또박 글씨를 읽을 뿐이었다.
꼬마가 발표하는 독후감 책은 ‘오즈의 마법사’였다.
“나는 마법사 오즈가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제목이 ‘오즈의 마법사’인지 알 수 없다. 나라면 ‘마법 소녀 도로시’라고 제목을 지었을 것이다.”
왜 ‘마법 소녀 도로시’인지 물어볼 틈은 없었다.
꼬마가 읽고 있던 노트에서 빛이 퍼져나오며, 공책 밖으로 무언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웬 여자아이와 강아지, 양철 나무꾼, 사자, 허수아비… 도로시를 마법 세계로 이끌고 온 폭풍까지 실체화되어 나타났다.
지금 읽고 있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인물들이 실체화된 것 같았다.
믿을 수가 없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편히 감탄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것들은 곧장 눈을 붉게 빛내며 마르코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콰광!
폭풍에 오두막이 쓸려나가며, 마르코의 분신은 사자의 이빨에 물어뜯기고 양철 나무꾼의 도끼에 썰려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 속에서 나온 인물들이면서 굉장히 강했다.
마르코의 본체는 구지상과 함께 자리를 피하며 말했다.
“꼬마 이유영을 죽이는 건 의미가 없어. 그 애가 쓰고 있던 노트를 노려야 해!”
“알겠어요!”
왜 이유영의 어린 시절이 이렇게 몬스터로 나타난 건지, 섬뜩할 정도로 싱크로율이 높은 건지는 알 수 없다.
당장은, 저것한테서 살아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