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태풍 (8)
그 시각, 마르코는 옆에 있는 구지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과거에 연예인이라고 했지?’
구지상은 남자도 인정할 만큼 잘생긴 녀석이다.
키도 훤칠하고 성격도 싹싹해서, 연예인이란 직종이 잘 어울리는 청년이었다.
그래서 헌터라기엔 과하게 반짝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지상만큼 헌터가 천직인 사람은 드물었다.
마르코는 살면서 다양한 헌터를 만나봤지만, 이렇게 헌터가 천직인 헌터는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미카엘이나, 만성 길드장의 아들 류차오 정도일까.
이들은 타고나길 강하고, 본능적으로 ‘사냥’하는 법을 깨우치고 있다.
그래서인지 도저히 사람으로, 같은 종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먹이사슬 위에 있는 포식자를 만난 듯한 두려움이 느껴질 뿐이다.
그들 앞에서 인간은 대체로 세 가지 반응을 하게 된다.
도망치거나, 배척하거나, 경외한다.
이유영처럼 맞서는 인간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아주 드물다.
보통은 도망가고, 반골 기질이 있는 인간들은 끼리끼리 모여 배척하며, 두려움을 받아들인 인간들은 경외한다.
그리고 마르코는 지금, 구지상에게 경외심을 느끼고 있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꼬마 이유영의 능력은 정말 강력했다.
하지만 구지상은 그보다 더 강했다.
평소엔 헤실거리며 순진하게 구는 탓에 많은 사람들이 실감하지 못하지만, 구지상을 상대해 본 마르코는 확신할 수 있었다.
구지상은 압도적인 강함을 가진 헌터다.
어쩌면 미카엘이나 만성 길드장처럼 대륙 하나를 휘어잡을 능력이 있는 ‘타고난 헌터’였다.
구지상은 스킬로 일대를 전부 뒤엎어, 꼬마 이유영이 만들어낸 괴물들을 생매장시켰다.
자연재해처럼 땅이 갈라지며 괴물들은 땅 밑으로 꺼졌고, 꼬마 이유영도 갈라진 균열 사이로 떨어질 뻔했다.
하지만 땅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손이 꼬마 이유영을 붙잡았다.
순식간에 꼬마 이유영을 포획한 것이다.
구지상은 별거 아니라는 듯, 상큼하게 웃으며 마르코를 바라봤다.
마르코는 남자고, 결혼도 한 몸이고, 심지어 딸도 있지만,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건 분명 경외심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구지상을 존경스럽게 쳐다보기만 한 건 아니다.
마르코는 메인 스킬 ‘분신’을 발동해, 꼬마 이유영의 독후감 노트를 찾았다.
꼬마 이유영은 공격을 모조리 흡수해버리는 까다로운 타입의 몬스터였다.
공격을 처음부터 방어하지 않는 걸 보면, 약점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녀석은 항상 노트만큼은 사수했다. 그렇다면 이 꼬마의 약점은 그 노트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행히 노트는 부서진 오두막 근처에 떨어져 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마르코의 분신이 노트를 들어 올리자마자, 노트가 살아있는 것처럼 아가리를 벌리더니 마르코의 손을 물어뜯었다.
까득!
손에서 짐승한테 물어뜯긴 것처럼 피가 흘렀고, 황당하지만, 노트가 마르코의 손을 질겅질겅 씹으며 그르렁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진 몰라도, 이 노트가 비범하다는 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종이다. 종이가 불에 약하다는 사실은 변할 수 없었다.
마르코는 라이터를 꺼내 그 괘씸한 노트에 불을 붙였다.
금방 타버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노트는 스스로 펄럭이더니 불을 꺼버리는 기행을 보였다.
노트 주제에 자아가 있었다.
마르코는 노트를 없애기 위해 별짓을 다 했다.
노트에 대고 총을 쏴보고, 표지를 벌려 쫙 뜯어보고, 발로 콱콱 밟아봤지만, 되려 노트에 당할 뿐이었다.
총알을 튕겨내거나, 낱장을 팔락여 마르코의 뺨을 철썩철썩 때리거나, 신발을 뜯어 먹었다.
한낱 노트의 방어력이 너무 높았다.
마르코는 하는 수 없이 분신에게 그 노트를 들고 멀리 달아나도록 시켰다.
지금으로선 마르코의 서브 스킬, ‘자폭’으로 그 노트를 없애는 수밖에 없었다.
여태 자폭으로 처리하지 못한 몬스터는 없었다. 문제는 이곳이 숲이라서, 최대한 구지상과 마르코의 본체한테 피해가 없도록 먼 곳에서 자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르코는 옆에 있던 구지상에게도 그 사실을 전달했다.
“내 분신이 그 노트를 폭파시킬 거다. 그동안 저 꼬마가 노트를 못 찾게 해야 해.”
“알겠어요!”
구지상은 상큼하게 알겠다고 하며, 그대로 꼬마를 없애버리려 했다.
꼬마가 노트를 못 찾도록 주의를 돌리자는 뜻이었는데, 구지상은 망설임 없이 꼬마를 압사시키려 하고 있었다.
거대한 손이 움직이며 꼬마를 콱 쥐었고, 금방이라도 꼬마가 끔찍한 몰골로 죽을 것 같았다.
마르코는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쿵쿵대는 것을 느꼈다.
저게 몬스터라는 걸 알고 있지만, 겉모습은 어린아이다. 그것도 이유영의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다.
그런데 이렇게 압사를 시킨다고?
“으아앙!”
꼬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마르코는 자기도 모르게 구지상을 밀치고 말았다.
그러나 구지상은 마치 마르코가 밀칠 거라고 예상한 것처럼, 그의 손을 손쉽게 피했다.
그 덕에 마르코만 바닥에 고꾸라졌지만, 차라리 다행이었다.
마르코가 방금 한 짓은 헌터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마르코 씨.”
구지상은 침착했다.
늘 듣기 좋은 미성으로 말하던 그가, 낮게 깔린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건 이유영 씨를 흉내 내는 몬스터고, 해치우는 게 맞아요.”
그는 가라앉은 눈으로 마르코를 쳐다봤다.
구지상한테 샌드백처럼 처맞아본 마르코는 구지상의 저 차가운 시선이 낯설지 않았다.
‘이 녀석, 몬스터가 이유영을 흉내 내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건가?’
꼬마 이유영은 압살 시도에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벌써 짓눌려 죽고 말았을 위력인데, 저 꼬마는 엉엉 울고 있을 뿐이었다.
마르코의 판단으로, 저건 죽일 수 없었다.
굳이 비정하게 마음을 먹고 꼬마를 괴롭혀봤자 소용없었다.
그런데도 구지상은 또다시 스킬을 쓰려는 듯 땅을 움켜쥐었다.
침착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고 있었다.
마르코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구지상, 몬스터가 동료를 흉내 내고 있으니 화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이건 옳은 방법이 아니야.”
“전 그저 몬스터에게 데미지를 누적시키고 있을 뿐이에요.”
“네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나? 지금은 다른 방법을 써야 해.”
구지상은 말없이 꼬마 이유영을 바라봤다.
꼬마 이유영은 엉엉 울면서 자기 노트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중이었다.
그 탓에 마르코의 분신이 들고 있던 노트도 짐승처럼 사납게 굴고 있었다.
구지상도 상황을 이해한 듯, 이성을 되찾고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 몬스터가 노트를 찾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죠? 공격할수록 더 노트를 찾으려고만 할 테니까…. 그런데 공격하지 않고 몬스터의 관심을 돌리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그야, 꼬마 이유영이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면 되겠지. 우리 딸은 비행기 태워주는 걸 좋아해.”
구지상은 꼬마 이유영을 몬스터 이상의 존재로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마르코가 보기에 저건 몬스터보다 이유영에 가까운데, 동료의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다.
“이유영 씨가 뭘 좋아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는데… 그보다 저건 이유영 씨가 아닌데 이 방법이 통할까요?”
“안 통하면 다른 방법을 떠올려 보자고.”
결국 구지상은 떨떠름한 얼굴로 스킬을 발동해, 놀이기구 태우듯이 꼬마 이유영과 놀아주기 시작했다.
***
마르코가 분신 스킬을 사용해 숨바꼭질도 해주고, 구지상의 뛰어난 스킬 활용력으로 놀이기구도 태워주며 꼬마 이유영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애썼다.
처음엔 울기 바빴던 꼬마 이유영도, 두 사람의 노력 끝에 어느샌가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 사이, 마르코의 분신은 폭발의 피해가 번지지 않을 만큼 먼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노트는 꼬마 이유영의 관심이 놀이에 집중되면서 더는 사납게 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평범한 노트가 되어 있었다.
마르코는 노트를 한 번 펼쳐봤다.
설마 진짜 이유영이 쓴 건 아니겠지만, 묘하게 이유영이나 생각할 법한 내용이 적혀 있던 게 걸렸기 때문이다.
몬스터가 이유영의 모습이었던 것도 이상하고, 여기에 뭔가 힌트가 있지 않을까 해서 빠르게 훑어보기나 했다.
훑어보던 중, 마르코는 꼬마 이유영이 읊었던 ‘오즈의 마법사’에 관한 독후감이 적힌 페이지를 발견했다.
「… 왜 제목이 ‘오즈의 마법사’인지 알 수 없다.
나라면 ‘마법 소녀 도로시’라고 제목을 지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도로시처럼 커다랗고 무서운 태풍을 타고 외딴곳에 혼자 떨어지게 된다면, 원래 있던 세상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 같다.
나는 도로시처럼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마법사 오즈처럼 숨어서, 원래 있던 세상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나도 도로시처럼 씩씩하고 당찬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는 도로시가 부럽다.」
어린 애가 썼다기엔 동심이 조금 부족해 보였지만, 특별할 건 없었다.
진짜 이유영이 쓴 독후감이라고 추측할 만한 증거는 어느 페이지에도 없었다.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이제 그만 터트리기 위해 노트를 덮으려던 때, 마르코는 적힌 글씨들이 일렁이는 것을 보고 말았다.
일렁이던 글씨들은 새롭게 문장을 창조해냈다.
「내가 좀 더 강했다면, 아버지가 그렇게 죽지 않았을 텐데. 아버지뿐만이 아니지, 모두가 죽었잖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최초의 던전브레이크가 터졌을 때부터? 애초에 왜 몬스터가 세상에 나타난 거지? 왜 몬스터는 인류를 멸망시킨 거지?」
「이 모든 건 오류 때문이다. 죽일 것이다. 어떻게든 죽여야 한다. 죽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죽여야 돼, 죽이고 싶어, 제발, 나한테 힘이 있었다면….」
마르코는 그 저주 같은 문장들을 보고 놀라서 노트를 확 덮어버렸다.
처절하고 악독한 마음을 눌러쓴 듯, 보는 것만으로도 애처로워지는 문장들이었다.
이건 분명, 누군가의 일기였다.
‘왜 꼬마 이유영의 노트에서 이런 내용이….’
마르코는 쿵쾅대는 심장을 붙들고 온몸이 긴장된 채로 다시 노트를 펼쳤다.
그런데 방금 읽은 문장들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평범한 독후감 노트로 되돌아와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환각을 본 걸까?
그렇다기엔 너무 생생한 문장들이었다.
심지어 이유영도 아버지를 최초의 던전브레이크에서 잃었다고 말했다.
그때 자기가 좀 더 강했다면 아버지를 잃지 않았을 거라는 말도 했었다.
설마 방금 그건 이유영이 직접 적은 문장인 걸까?
‘……그럴 리가 없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였다.
이유영의 어린 시절이 나타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한 일이 벌어진 상태다.
진짜 이유영의 일기장 같은 게 나타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마르코는 헛것을 봤다고 생각하며, 잊어버리기로 했다.
원래 하려던 일이나 하고자, 노트를 끌어안은 채 서브 스킬 자폭을 발동했다.
쾅!!!!!!!!!!!!!!
굉장히 먼 곳까지 떨어졌는데도 숲이 흔들릴 만큼 커다란 폭발이 휘몰아쳤다.
분신은 순조롭게 자폭했고, 노트는 분신과 함께 잿더미가 되었다.
마르코는 분신의 자폭으로 인해 느껴지는 살이 타는 고통에 몸을 웅크리다가, 꼬마 이유영을 봤다.
다행히 노트를 없애는 게 정답이었는지, 꼬마 이유영은 재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꼬마 이유영은 자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듯, 구지상과 마르코에게 달려왔다.
꼬마는 구지상과 마르코의 다리를 한 번씩 끌어안으며 행복하게 웃었다.
“재밌었다! 형아, 다음에 또 놀아주라!”
무뚝뚝한 이유영의 얼굴로는 평생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맑은 웃음이었다.
꼬마는 그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금세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몬스터를 물리쳤는데도 이렇게까지 뒷맛이 찝찝한 건 처음이었다.
승리했음에도 패배한 것처럼 입이 썼다.
이 불편한 기분까지 보스 몬스터의 계략이라면, 그건 이미 인간의 지능을 넘어섰을지도 모른다.
마르코는 표정이 굳어있는 구지상의 등짝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이유영을 찾으면 방금처럼 웃어보라고 해야겠군. 그래야 우리의 트라우마가 잊혀질 것 같아.”
“이유영 씨는 그렇게 웃는 분이 아닌걸요.”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네가 모르는 이유영도 있을지 모르잖아. 그보다, 근처에 동료가 있는지 찾아줘. 언제부터인지 안개가 걷힌 것 같거든.”
구지상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새 안개가 걷혀서 주위 풍경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다행히 이젠 서브 스킬이 통하는지, 구지상은 금방 주변에서 사람의 소리를 잡아냈다.
누군가 도망치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