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태풍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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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 스킬, 가 상태이상을 감지합니다. ]나는 눈을 떴다.
눈앞에선 생명의 의지가 상태이상을 감지했다는 알림이 떠 있었다.
전에도 이런 알림을 받은 적이 있던가?
[ 메인 스킬, 가 상태이상을 탐색 중입니다. ] [ 메인 스킬, 가 상태이상을 분석 중입니다. ]생명의 의지가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며 나를 깨우고 있었다.
나는 우선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여긴 태풍 던전이 아니다. 숲도 없었고, 바닥도 시멘트 바닥이었다.
‘…서울인가.’
주위에는 무너진 건물들이 보였다.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우산도 없이 길바닥에 앉아 비를 맞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종종 차가 지나다닐 뿐 전반적으로 거리가 조용했다.
내가 처량하게 비를 맞고 있었던 것보다 신경 쓰이는 건, 눈앞에 있는 저것이다.
던전 게이트.
나는 어째서인지 난데없이 서울 한복판에 떨어져, 게이트 앞에서 비를 맞는 중이었다.
비를 맞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 머리부터 옷까지 다 젖어 있었다.
몸이 으슬으슬거리며 추위가 몰려왔고, 팔다리가 무거워서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생명의 의지가 제 기능을 못 하는 듯했다.
그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확인해보니, 문자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WEB발신] (광고) 올라잇저축은행 대출 한도 간편 확인 안내」
평범한 대출 광고 문자였지만, 적어도 핸드폰이 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후 9시였고,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이다.
그러니까, 내가 25살이었을 때다.
최초의 던전브레이크가 터진 해였다.
아직 협회도, 대형 길드들도 세워지지 않은 시기다.
협회는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피해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다.
그래서 눈앞에 게이트가 있는데도 협회원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지금이야 게이트가 열리든 말든 협회와 길드에서 알아서 처리해주니, 사람들은 게이트를 경계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초의 던전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무렵에는, 누구도 게이트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게이트 목격담을 들은 헌터들만이 찾아올 뿐이었다.
‘그래서 주위가 이렇게 조용한 건가.’
사람들이 일상을 되찾기 시작한 건 대형 길드와 협회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하지만 붕괴된 건물과 도로의 꼴을 봐선, 아직 도나리가 협회에 취임하기도 전인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상태이상에 걸렸길래 나는 이 시기에 내던진 것일까.
[ 메인 스킬, 가 상태이상을 분석 중입니다. ]생명의 의지가 대답이라도 하듯 알림창을 띄웠다.
어찌 되었든, 생명의 의지가 곧바로 저항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상태이상에 빠진 것이다.
상태이상 ‘변이’처럼 말이다.
변이에 걸렸을 때는 기적적으로 탈출했지만, 이번에도 기적이 오길 바랄 수는 없다.
태풍이 직접 건 상태이상인 만큼 쉽게 탈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략대가 걱정이었지만, 던전에는 미카엘과 구지상이 있다.
결코 쉽게 당하지 않을 녀석들이다.
그 녀석들이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동안, 이 상태이상에서 탈출해야 한다.
정확히 무슨 상태이상인지는 몰라도, 태풍이 왜 하필 이 시기로 날 보낸 건지는 알 것 같았다.
2년 전이라면 나는 소위 ‘폐급’헌터 시절로 돌아온 것이다.
이때의 나는 대체로 제정신이 아니었어서, 솔직히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누구나 잊고 싶은 기억이 있기 마련이고, 이때는 내게 있어서 잊고 싶은 때다.
하지만 바닥에 앉아 비를 맞고 있던 것과, 대출 광고 문자.
그리고 눈앞에 있는 게이트를 보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최악이네.’
태풍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녀석은 내게 ‘정답을 찾을 때까지 번뇌하라’라고 했다.
애써 잊고 살던 뭣 같은 기억을 강제로 떠올리게 하다니. 그야말로 번뇌였다.
그때였다.
퍽!
누군가 내 뒤통수를 갈겼다.
2년 전 F급이던 시절의 몸이라, 뒤에 누가 오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몸이 둔감했다.
게다가 고통도, 누군가 날 때린다는 사실도 익숙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나는 뒤를 돌아 나를 친 놈을 쳐다봤다.
“야, 폐급 새끼 또 던전 왔네?”
“….”
“눈깔 봐라, 뭘 꼴아봐? 확 파버릴까 보다.”
녀석은 두 손가락으로 내 눈을 찌를 듯 위협했다.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자, 녀석은 낄낄거리며 조롱하듯이 내 뺨을 툭툭 쳤다.
이래서 잊고 살았던 기억인데.
“폐급이면 얌전히 집에나 처박혀 있지. 왜 자꾸 기어나 와? 민폐야, 이 새끼야.”
이 녀석은 D급 헌터로, 활동 구역이 겹쳐서 본의 아니게 자주 만났던 헌터다.
날 만날 때마다 폐급이라고 까내리며 괴롭힘을 일삼는 놈이었다.
이름은 모른다. 이런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녀석을 시작으로 몇몇 헌터들이 몰려왔다.
대체로 E급, F급, D급인 헌터들이었다.
C급인 녀석도 한 명 있었다.
아마 그 녀석을 따라 모인 헌터들인 것 같았다.
이땐 헌터들 사이에서 종합 능력치가 계급처럼 작용했다.
D급인 놈들이 당당하게 게이트 앞을 차지했으며, E급인 녀석들이 그 중간에 널널하게 섰다.
나 같은 F급들은 눈치를 보며 맨 뒤로 빠져야 했다.
이 광경을 보니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이때로 나를 돌려보내다니, 누가 내 일기장으로 만들어진 놈 아니랄까 봐.
내가 무엇을 혐오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뭔 폐급이 이렇게 많아? 오늘 운수 x나 거지 같네.”
“그러는 님도 E급이시잖아요.”
“예예, 하지만 폐급은 아니죠?”
낄낄거리며 웃던 녀석들은 뒤에 있던 우리를 향해 침을 뱉었다.
이 분위기에 저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런 멸시가 아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 뒤에 있던 한 F급 헌터는 한숨을 쉬며 웅얼거렸다.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헌터를 해야 하나….”
“그, 그래도 보상템 팔면 돈 벌 수 있잖아요…. 힘내세요.”
다른 F급이 그를 위로했다.
F급끼리라도 뭉쳐야 버틸 수 있었으니까.
고작 E급한테 왜 못 덤비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각성하자마자 F급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린 이들이 아니면 이 기분은 이해하지 못한다.
시스템이라는 신 같은 존재에 의해 급이 정해졌다.
내 ‘급’에 실망하고 부정해봤자, 결국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원래 이런 놈인가 보다, 하고 급을 받아들이게 된다. 달리 이 낙인을 지울 방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어서, 뭐든 마음에 안 드는 건 참지 않았다.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입을 열어, 그놈들을 향해 말했다.
“야, 폐급!”
내 목소리에 낄낄대고 웃던 두 놈이 뒤를 돌아봤다.
나는 그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지금 쓰레기인 거 스스로 인정하셨네요? 웃기다.”
“저 x발 새끼가….”
녀석들은 내 멱살을 쥐고서 주먹을 날렸다.
나는 처맞고 넘어졌다.
그런데 아무도 말리지 않자, 녀석들은 작정하고 나를 패기 시작했다.
나는 던전에 들어가기도 전에 맞아야 했다.
그 누구도 이 녀석들을 말리지 않았다.
처맞는 나를 흘끔 쳐다볼 뿐이다.
“등신 새끼.”
제일 처음 나를 폐급이라고 비웃던 새끼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녀석의 뒤를 따라 헌터들이 하나둘씩 게이트를 넘었다.
내 근처에 서 있던 F급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앞선 헌터들의 뒤를 따랐다.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이땐 생명의 의지도 더디게 발동되어서, 회복 속도가 매우 느렸다.
안 아프게 맞는 법도 몰랐던 때이기도 하고. 바로 치유되질 않으니, 고통이 적나라했다.
나는 입에서 핏물을 토해냈고, 녀석들은 낄낄대고 웃었다.
“폐급으로 태어났으면 얌전히라도 살아. 스킬 각성하니까 뭐라도 된 것 같냐?”
녀석들은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렇게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고, 녀석들을 마지막으로 게이트는 닫혀버렸다.
나는 게이트에 들어갈 수 없었다.
침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게이트가 열리는 곳을 찾아가기 위해 걸었다.
걸어가면서 아까 F급 헌터가 중얼거렸던 말을 생각했다.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헌터를 해야 하나….’
문득 고개를 들어 바라본 전광판에선, A급 헌터 구지상에 대한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콘서트 도중 발생한, 최초의 던전 브레이크를 마주한 구지상.
그 자리에서 각성했으며, 거기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지킨 헌터. 그야말로 영웅.
구지상 같은 헌터들이야말로 진짜 헌터이다.
저런 헌터들이 있기에, 사람들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구지상에 비하면 나 같은 F급 헌터는 쓸모없는 존재다.
라고, 나보다 두 살 어린 아이돌을 부러워했던 적도 있었다.
분명 구지상처럼 남에게 사랑받는 걸 타고나는 인간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놈들은 그놈들이고, 나는 나다.
그 구지상도 녀석만의 고충이 있고 말이다.
누구나 그렇다.
내가 헌터가 된 이유를 남에게서 찾아선 안 된다.
‘뭐, 이 당시엔 그런 생각이 불가능했지.’
사람은 환경에 의해 달라진다.
미쳐있던 내가 변한 것도 고주연을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고주연은 던전을 공략하고 난 후, 내게 국밥을 먹였다.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해도 국밥을 먹였다.
고주연 덕분에 나는 헌터가 된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따뜻한 식사를 했다.
그 친절을 계기로 변했고,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변해버린 내게 이런 과거를 보여준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태풍의 바람대로 몬스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할 리가 없었다.
[ 메인 스킬, 가 상태이상을 분석 중입니다. ]‘빨리 분석해봐. 얼른 탈출하게.’
[ 메인 스킬, 가 ‘아직’ 상태이상을 분석 중입니다. ]마치 내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듯, 구태여 ‘아직’ 분석 중이라고 알림을 띄웠다.
화신의 짓이 분명했다.
어쨌든 시스템도 나를 탈출시키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 메인 스킬, 가 상태이상을 감지합니다. ]이번에는 또 감지한다는 말이 떴다.
설마 화신이 놀리는 건가 의심이 들던 때.
파앗!
세상에 불이 꺼지듯 시야가 암전되었다.
상태이상에서 벗어난 건가?
하지만 벗어났다면, 생명의 의지가 감지했다는 알림을 띄우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25살의 나에게서 벗어나, 다시 한번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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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 스킬, 가 상태이상을 감지합니다. ] [ 상태 이상, ‘번뇌’에 저항을 시도합니다. ]생각해보면, 이전에 7대죄 중 ‘나태’인 꿈달팽이와 싸웠을 때도 나는 내 과거를 마주하며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내겐 통하지 않았다.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다시 겪게 하는 정신 공격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최후의 인류로서 5년 동안 살아남았던 내 정신력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하지만 잊고 있던 기억들을 끄집어 오는 건 얘기가 다르다.
‘여긴….’
나는 다시 한번 눈을 떴다.
방금 전까지 서울이었는데 지금은 부산에 있었다.
이곳을 보자마자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때는, 내가 힐러로 각성했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