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비 온 뒤 맑음 (3)
에덴 길드와 동맹을 체결했다.
이로써 이유 길드는 만성 길드의 멸망을 위해 에덴과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계약서에 지장을 찍으니, 계속 똥 씹은 얼굴이었던 미카엘도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나 역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앞으로 에덴의 전용기 정도는 빌릴 수 있을 것이고, 돌아가는 비행깃값도 아낄 수 있을 듯했다.
또 에덴의 명성이 있는 만큼 진준성과 윤지석이 기뻐할 것 같았다. 신윤현도 좋아해 줄 것 같고.
‘고주연은… 그냥 그러려니 하려나. 이런 데 워낙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까.’
어쨌든 고생했다는 말은 해줄 것이다.
한국에 있는 길드원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타지에서 고생한 보람이 느껴졌다.
우리가 떠나있는 동안 길드원들도 열심히 훈련했을 것이다. 얼마나 달라졌을지 빨리 보고 싶었다.
감상에 잠기며 길드장실을 나오는데, 문득 복도에 있던 요한과 눈이 마주쳤다.
“유영 군! 몸은 괜찮은가?”
“보다시피 멀쩡합니다. 그러는 요한 씨야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고말고. 잠을 오래 잔 덕에 더 건강해진 것 같네.”
요한은 넉살 좋게 웃었다. 그의 말대로 건강을 되찾은 모양이다.
다행히 정신 공격에 대한 부작용이나 후유증도 없어 보였다. 전보다 안색도 맑아진 것 같고,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나는 길드장실 쪽을 흘끔 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카린이… 요한 씨와 사빈 씨가 걸린 정신 공격을 풀어줬습니까?”
“사빈 군이 말하진 않았을 테니, 카린에게 들었나 보군. 미카엘 길드장님께선 그 일로 심기가 편치 않으시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린이 말해준 건 아니지만, 그냥 그런 척하고 넘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혹시 어떤 정신 공격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이번 던전의 몬스터도 특수한 정신 공격을 사용했어서 말입니다.”
“그것이 말일세…. 카린의 스킬의 영향인지, 기억이 전부 날아가 버렸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까?”
“음… 흐릿하게 그리워하던 것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게 뭐였는지도 모르겠군.”
모호한 얘기였지만, 요한의 말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이 확인할 수 있었다.
요한이 걸린 정신 공격 역시 사람의 ‘기억’을 이용한 듯했다. 태풍의 번뇌처럼 사람의 기억을 이용해 정신세계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 공격은 알에서 부화한 몬스터들의 공통점이 틀림없었다.
태풍을 물리쳤지만, 나머지 두 몬스터는 아직 건재하다. 이번 실패를 경험 삼아 태풍보다 더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덤벼올 것이다.
무엇보다 그놈들의 ‘정신 공격’은 상당히 위험하다. 대항할 수단을 갖춰야 했다.
생명의 의지로는 타인이 걸린 정신 공격을 해제할 수 없다.
야생의 몬스터가 일으킨 ‘변이’도 해제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내 스킬은 상태이상 치유보단 부상 치유에 특화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사람의 정신 건강을 치유하는 능력에 특화된 힐러가 필요한 상황이다.
마침 이유 길드에는, 그런 인재가 있다.
***
신윤현. 나랑은 전혀 다른 타입의 힐러로, 정신 건강을 회복시키는 데 특화되어 있다.
신윤현이라면 정신 공격에 대항할 약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이라도 신윤현에게 연락하고 싶었지만, 지금 내겐 핸드폰이 없었다.
이전에 태풍과 싸우면서 핸드폰이 가루가 되어버렸다.
그 탓에 협회와도 연락을 못 하고 있었다.
서둘러 한국으로 복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 카린과 한 약속은 지켜야지.’
나는 요한과 헤어진 뒤, 곧장 정원으로 향했다.
구지상이 카린은 요한과 있다고 했고, 요한의 신발에 흙이 묻어 있었으니 카린은 정원에 있을 것이다.
정원의 분수로 향하던 중, 익숙한 뒷모습들이 보였다.
키 큰 주황 머리와 검은 머리가 키 작은 흰 머리 여자애랑 쭈그려 앉아, 작당 모의라도 하듯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때 구지상이 내가 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뒤를 돌며 반겼다.
“어, 이유영 씨!”
그 목소리에 카린과 김신욱도 뒤를 돌아서 나를 바라봤다.
세 명은 모두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이 달린 안경과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곧 셋이 파티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구지상은 그 이상한 콧수염이 달린 안경을 쓴 채로 말했다.
“한참 기다려도 안 오시길래 저희가 찾으러 갔거든요. 근데 이유영 씨가 안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넌 이 꼬맹이 만나러 간다면서 왜 엉뚱한 곳에서 오냐?”
김신욱도 그 이상한 콧수염이 달린 안경을 쓴 채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 이상한 콧수염을 보며 답했다.
“미카엘 길드장님 뵙고 왔습니다.”
카린은 나에게도 그 이상한 콧수염 안경과 고깔모자를 씌워줬다.
거부권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주는 대로 썼다.
“미카엘은 왜 만나고 왔는데?”
“에덴이랑 동맹 체결하고 왔어. 만성 길드 무너뜨리는 목적으로.”
“뭐… 뭐? 뭔 소리야, 자세히 말해.”
김신욱뿐만 아니라, 구지상도 놀란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구지상에게 만성에 가야 한다는 얘길 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는 녀석들에게 미카엘과 나눈 대화 내용에 대해 설명해줬다.
에덴이 만성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어떤 방식을 택했는지, 동맹을 맺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했다.
구지상과 김신욱은 다행히 내 결정에 납득하는 것 같았다.
“그럼 저는 바로 중국으로 가면 되나요?”
“네, 부탁드립니다.”
“맡겨 주세요! 이번엔 제대로 도움이 되어 드릴게요.”
구지상은 아이돌처럼 웃으며 답했다.
솔직히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불만을 들을 각오로 말했는데, 참 성격 좋은 녀석이다.
김신욱은 쓰고 있던 고깔모자를 벗으며 말했다.
“이놈의 파티가 끝나자마자 바로 비행기 타야겠네. 야, 꼬맹이. 파티 언제 할 거냐?”
잠자코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카린은, 김신욱이 벗은 고깔모자를 다시 씌워주며 답했다.
“파티는 이유영 씨가 깨어나신 날 시작할 예정이었어요. 오늘 깨어나셨으니, 오늘 저녁이 되겠네요.”
“그럼 이럴 때가 아니라 파티 준비를….”
“파티 준비는 이유영 씨가 던전 공략에 들어간 사이 이미 마쳤습니다.”
구지상과 김신욱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익숙하다는 반응이었다.
카린은 나를 준비해둔 파티장으로 데려갔다. 조금 걷다 보니, 분수가 있는 에덴의 정원이 야외 파티장으로 꾸며져 있는 게 보였다.
“요한 씨와 사빈 씨가 도와주셨어요. 주방장님께서도 저녁 만찬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파티장을 호화스럽게 꾸며둔 것도 그렇고.
미카엘에게 혼날 걸 알면서도 요한과 사빈을 구한 것도 그렇고.
우리가 던전에 들어간 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많은 일을 했던 모양이다.
나는 카린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며 말했다.
“요한 씨랑 사빈 씨를 구해준 게 카린 양이라던데, 사실입니까?”
“다들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시던데 이유영 씨는 구해줬다고 표현하시네요. 맞아요. 그 탓에 앞으로 예지를 볼 수 없게 되었죠.”
“잘했습니다.”
내가 칭찬해주자 카린은 나를 멀뚱히 쳐다봤다. 칭찬을 들을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카린은 자신 없어 보이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제 예지를 볼 수 없어요. 인류가 유일한 예언자를 잃었으니, 잘한 일은 아닙니다.”
“원래 인간은 미래를 못 봤습니다. 그래도 잘만 살았고요. 그것보단 지금 위험한 사람들 구해주는 게 낫습니다.”
인류의 유일한 예지자가 사라진 타격은 당연히 크다. 태풍 역시 카린의 예지가 없었다면 에덴도, 나도 닥쳐올 재앙에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인류는 끝내 해결책을 찾아낸다. 예지자가 없을 때도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왔다.
카린은 내 말에 위로받은 듯 안색이 조금 펴졌다.
이상한 콧수염이 달린 안경을 벗던 카린은 다시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사가 늦었지만, 이유영 씨, 에덴을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길드장님도 요한 씨도 무사하지 못했을 거예요.”
“당연한 일을 한 겁니다. 카린 양도 고생 많았습니다.”
우리는 훈훈하게 인사를 나눴다.
김신욱이 파티 준비나 도우라며 분위기를 깬 탓에, 얼마 가진 못했지만 말이다.
***
그날 저녁.
다시 한번 에덴의 파티가 열렸다.
핀란드 헌터, 터키 헌터를 포함한 타국의 헌터들과 에덴의 헌터들, 마르코와 나쟈도 참석했다.
요한이 정원을 한층 더 밝게 꾸며준 덕에 야외 파티장의 분위기는 멋스러웠다.
곳곳에 주황빛 조명이 잔잔하게 빛나며, 천사 조각상과 탐스럽게 피어난 꽃들을 밝혔다.
맑은 하늘은 어느새 해가 기울어 선명한 노을을 만들었고, 파티의 분위기를 한층 살려줬다.
에덴의 주방장은 고급스러운 요리를 준비해, 사람들은 음식을 즐겼다. 와인과 샴페인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웃음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모두가 공략대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고 있었다.
카린은 저번에 입었던 파티 드레스를 예쁘게 입고 나타났다.
구지상과 김신욱도 그에 맞춰 파티 정장을 입고 있었고, 김신욱은 아직도 그 이상한 콧수염이 달린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나는 저번에 입은 정장이 처참하게 망가진 탓에 그냥 헌터복을 입으려 했지만, 사빈이 내 꼬라지를 보고 옷을 빌려줬다. 카린이 이날을 얼마나 기대했는지 아냐고 하는 탓에 거부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에덴의 헌터처럼 백색 정장을 입은 상태였다.
“오, 이유영 헌터! 얼굴색이 밝아 보여서 다행이군. 이번에 한국 헌터들의 활약은 아주 대단했어. 모든 헌터들이 그대들의 활약을 칭송하고 있네. 그래서 말인데, 그 차림은 혹시… 에덴에… 들어가게 된 건가?”
터키의 헌터가 나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그는 재밌는 찌라시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눈을 빛내고 있었다.
사빈이 빌려준 백색 정장을 입은 탓에, 저 말을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모두가 내 활약을 칭찬하며 에덴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린 거냐고 물어왔다.
나는 자본주의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럴 리가요. 세계 1위 길드 에덴에 들어가기엔 제가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
“이 친구도 참, 미카엘 길드장님이 들으시면 서운할 소리를 하는군!”
그는 껄껄 웃으며 나와 악수를 나눴다.
뭐, 에덴은 우리 길드에 무려 동맹을 제안했다는 말을 하면 좋겠지만, 널리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
만성의 귀에 들어가면 계획이 무산될 테니까.
나는 계속 귀찮게 말을 걸어오는 헌터들을 피하며, 카린에게 다가갔다.
에덴을 떠나기 전에 주고 싶은 게 있었다.
앞으로도 에덴이라는 좁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어린아이에게 딱 알맞은 선물, 내 명함을 카린에게 선물했다.
“제 번호와 길드 주소가 적힌 명함입니다. 친구나 어른이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하세요. 놀러 와도 좋고요.”
“이유영 씨는 제게 우리의 연이 여기서 끝은 아니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네요.”
“정확합니다.”
고작 종잇조각인 명함이지만, 이건 에덴 밖의 세상에도 카린의 편이 있다는 증거물이었다. 언젠가 이 소녀에게 힘이 될 것이다.
영리한 카린은 내가 명함을 준 의미를 모르지 않는 듯했다.
“미카엘이 괴롭히면 저희 길드로 도망쳐 오세요. 길드원들 모두가 반겨줄 겁니다.”
카린은 미미하게 웃었다.
아무리 달관한 예언자라고 해도, 열두 살 소녀에겐 웃는 얼굴이 제일 잘 어울렸다.
그때, 파티장의 단상에 사빈과 미카엘이 나타났다.
미카엘이 나타나자 파티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순식간에 시끌벅적하던 파티장이 조용해졌다.
사빈은 파티장을 둘러보다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지금부터 미카엘 길드장님의 파티 개회사가 있겠습니다. 모두 집중해주시길 바랍니다.”
사빈이 미카엘을 설득해서 데려온 건지, 미카엘은 내키지 않아 보였다.
딱 봐도 개회사를 해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는데, 사빈이 카린을 들먹이며 불러낸 탓에 나온 것 같았다.
미카엘은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와인잔을 하나 들어 올리며 말했다.
“먼저, 던전 공략에 성공한 공략대의 전원 무사 귀환에 축배를 든다.”
녀석의 한마디에 모든 에덴의 헌터들이 일제히 잔을 들어 올렸다.
카린은 오렌지 주스가 담긴 잔을 들었고, 나도 테이블 위에 있던 아무 잔이나 집었다.
미카엘은 나랑 카린을 흘긋 보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다음으로, 에덴을 도와 던전 공략에 참여한 헌터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낸다. 에덴은 이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며, 세계 1위 길드라는 에덴의 명성을 굳건히 지켜 그들을 수호할 것을 약속한다. 이제, 알아서들 놀아.”
미카엘은 잔에 담긴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단상에서 내려갔다.
녀석의 말에 파티장에 있는 모두가 환호했다.
시끄러운 환호성 속에서 파티의 분위기는 한층 달아올랐다.
어쨌든 두 번째 에덴 파티는 성공적이었다.
카린도 즐거워 보였고, 에덴 길드원들과 힘들게 싸운 타국의 헌터들, 마르코와 나쟈, 구지상이랑 김신욱도 즐거워 보였다.
모두가 오늘만큼은 공략대의 성공을 축하하기로 약속한 듯 즐기고 있었다.
***
파티가 끝난 다음 날.
어김없이 해는 밝았고 에덴을 떠나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나는 요한과 카린, 에덴 길드원들과 마르코에게 작별의 인사를 남긴 뒤 에덴을 떠났다.
구지상은 나쟈와 사빈과 함께 베이징으로 향했고, 김신욱과 나는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금의환향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