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달라진 길드원들 (1)
진준성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몰라도 지금의 날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이 녀석의 스킬이라면 그 정도는 파악했을 텐데, 답지 않게 질 게 뻔한 승부를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승부를 받아들였다.
진준성은 지금 회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런 질 게 뻔한 승부도, 회귀 전의 진준성이라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녀석의 이런 변화가 싫지 않았다.
도리어 이번 생의 진준성은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서정현은 진준성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날 이기라고 당부한 뒤, 우리를 보내줬다.
진준성은 맞짱 선언을 한 뒤로 한결같이 결연한 얼굴이었다.
나는 진준성과 함께 택시를 타며 물었다.
“저한테 결투 신청까지 한 이유가 뭡니까?”
“제 실력을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안 데려가실 것 같아서요.”
“준성 학생을 안 데려가는 건 약해서가 아닙니다.”
“저도 알아요. 제가 미성년자라서 그러시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싸워서 길드장님을 이기는 수밖에 없죠.”
진준성은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삐진 것 같은데, 위험한 곳에 안 데려간다고 서운해하는 건 이 녀석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우리 눈치를 보고 있던 택시 기사가 슬쩍 말을 걸어왔다.
“저… 손님들? 어디로 모실까요?”
나는 진준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간 많습니까?”
“많죠. 대학 합격한 고3만큼 한가한 사람이 또 있어요?”
“그럼 강원도로 가죠.”
곧장 길드로 돌아가면 다짜고짜 나랑 싸우려고 할 테니, 잠깐 머리 식힐 시간을 줘야 할 것 같았다.
겸사겸사 고주연도 데려올 겸, 우리는 강원도 산골짜기로 향했다.
***
택시는 더는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산길 앞에서 우릴 내려줬다.
고주연이 적어둔 주소는 여기인데, 아무래도 이 산 어딘가에 있다는 의미로 쪽지를 남긴 것 같았다.
진준성은 높은 바위 절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늘 안에 고주연 헌터님 찾을 수 있을까요? 벌써 해가 지고 있는데요.”
나는 ‘심연의 천리안’을 발동해 산속을 살폈다. 회귀 전의 기억을 살려 고주연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보니, 바위 절벽에 위태롭게 지어져 있는 기와집 하나가 보였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곳이었지만, 뒷마당에 양궁 과녁이 하나 걸려 있는 걸 보며 확신했다.
“찾았습니다.”
“벌써요?”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절벽을 올라야 할 것 같네요. 준성 학생, 절벽 오를 수 있겠습니까?”
“저 바위 절벽을요? …… 다, 당연하죠.”
진준성은 마지못해 답하는 것 같았지만, 자존심을 굽힐 수는 없는지 나보다 앞서 절벽을 향해 걸어갔다.
나야 던전에서도 자주 절벽을 올랐고 회귀 전에 고주연과 산속을 다닐 때가 많아서 맨손으로 절벽을 오르는 게 익숙했지만, 진준성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진준성은 미끄러지지 않고 곧잘 절벽을 올랐다.
“저도 놀고만 있진 않았어요. 부협회장님께 배운 것도 많고요.”
“다행히 제대로 과외를 해줬나 보네요. 부협회장이 괴롭히진 않았습니까? 오늘 학교 가는 날인데도 부른 거 보면 못살게 구는 것 같던데.”
“대학 합격했는데 무슨 학교를 가요. 학교 갈 바에 협회 가는 게 낫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혹시 학교에서 누가 괴롭힙니까?”
내 질문에 진준성은 절벽을 오르다 말고 숨을 골랐다.
나는 멈춰 서서 녀석을 기다렸다. 곧 진준성은 다시 바위를 짚고 올라오며 답했다.
“다 괴롭히죠. 원래 사람들은 남 잘되는 꼴은 못 보잖아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저한텐 이유 길드가 있으니까.”
“……준성 학생이 다 크긴 했네요. 그런 기특한 말도 할 줄 알고.”
그때, 절벽 꼭대기에서 사람 그림자가 나타나 우리를 내려다보고 사라졌다.
우리의 말소리를 듣고 온 것 같은데, 고주연은 아닌 것 같았다.
“근데요 길드장님, 이제 준성 학생이라고 그만 부르시면 안 돼요? 그냥 준성아, 하셔도 되잖아요. 김신욱 헌터님이랑은 말 편하게 하시면서.”
진준성이 사춘기 소년다운 부탁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잠깐 조용히 해보라는 의미로 검지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고 귀를 기울였다.
위쪽에서 개 짖는 소리와 철이 끼릭끼릭거리는,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진준성도 그 소리를 들은 건지 조용한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요?”
“고주연 씨일 수도 있어. 가보자.”
“어? 지금 말 놓으신 거예요?!”
“네가 놓으라며.”
진준성은 히죽이며 나를 따라왔다.
나는 속도를 높여서 빠르게 위로 향했다. 10분 정도 절벽을 오르자 마침내 끝이 보였다.
나는 꼭대기에 올라서 진준성을 올려줬다.
진준성은 내 손을 잡고 올라와 주위를 둘러봤다.
해가 져서 깜깜한 산속에는 나무와 잡초가 질서 없이 자라있어 걷는 걸 방해했다. 우리는 그 무성한 풀 사이로 낡은 기와집 하나를 발견했다.
사람이 사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낡은 기와집이었지만, 그 안에서 사나운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누군가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게다가 개 짖는 소리 사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거운 쇳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끼릭―
음산하게 퍼지는 쇳소리에, 진준성과 나는 긴장한 채로 기와집에 다가갔다.
대문도 없는 기와집에는 가시 박힌 울타리가 쳐져 있어서 더욱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 울타리 사이로 쇳소리의 정체가 드러났다.
사람보다 커다란 철제 원반을 여러 개 낀 역기가 위아래로 움직이며, 끼릭끼릭 소리를 내고 있었다.
깔리면 즉사할 것같이 무거워 보이는 역기로 벤치프레스를 하고 있던 긴 머리의 여자는, 개 짖는 소리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 듯 숫자를 세고 있었다.
“구백구십칠, 구백구십팔, 구백구십구….”
마침내 1,000을 채우자, 그녀는 역기를 아래로 내려놨다.
귀신처럼 풀어헤친 머리를 쓸어넘기던 그녀는, 방금까지 역기를 1,000개나 들어 올린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한의 아르테미스라는 별명다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얼빠진 얼굴로 구경하고 있는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뭘 구경하고 있어. 왔으면 인사라도 해.”
한층 강해진 것 같은 고주연이 우리에게 차가운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고주연답게 차갑지만, 나름대로의 정이 담긴 인사였다.
***
우리는 살벌하게 쳐진 울타리를 제치고 조심스럽게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사납게 짖던 개들은 고주연이 우리를 아는 체한 순간부터 조용해지더니,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기까지 했다.
고주연은 개들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웬일이야? 내가 알아서 돌아간다고 했는데.”
“길드장님이 고주연 헌터님 모시고 길드로 돌아가야겠대요.”
“왜, 뭔 일 있었어?”
고주연은 내가 에덴에서 죽었다는 소문이나 에덴이 습격당했다는 소문을 못 들은 건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전파도 안 터지는 이곳에서 계속 훈련만 했던 모양이다.
나는 우선 만성에 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중국에 일이 생겨서 고주연 씨의 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길드로 같이 돌아갔으면 하는데, 가능하십니까?”
“심각한 일인가 보네. 알겠어.”
고주연은 쿨하게 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벗고 기와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방 장지문 앞에 무릎 꿇고 앉던 고주연은 장지문에 대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독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와라.”
고주연이 ‘감독님’이라고 부른 사람으로부터 중후한 목소리의 답이 돌아왔다.
고주연은 문을 열며 우리에게도 오라고 손짓했다. 나랑 진준성은 엉거주춤 고주연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방에는 흰 두루마기를 걸친 중년의 남자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조선의 선비처럼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던 남자는 조용히 우리를 쳐다봤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그가 절벽 꼭대기에서 우릴 내려다보던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용케 올라왔구나.”
그는 나랑 진준성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기세에 눌려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으나, 그도 딱히 대답을 들으려던 건 아니었는지 이어서 얘기했다.
“해가 졌으니 밤은 지나고 가라. 주연이 너도, 하산하면 다시 올라오지 마.”
“…네. 그간 감사했습니다.”
고주연이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이미 떠날 걸 알고 있는 듯했다.
고주연도 별말 없이 깍듯이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승과 제자 사이인데도 두 사람의 관계는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우리는 고주연을 따라 정중하게 인사한 뒤, 방에서 나왔다.
고주연은 우리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갔다. 고주연이 지내고 있던 방인지 침낭이 하나 깔려 있었고, 가방 하나가 놓여 있었다.
“쉬고 있어. 난 마저 연습하고 올게.”
밖은 해가 져서 깜깜한데, 고주연은 칠성활을 소환하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고주연이 쓰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침낭을 들춰 보다가, 진준성의 부름에 내려놓았다.
“길드장님, 저거 보세요.”
진준성이 가리킨 곳에는 사진이 하나 있었다.
사진에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고주연과 고주연의 어머니, 그리고 또 다른 양궁 선수로 보이는 남자와, 방금 만난 고주연의 스승이 찍혀 있었다.
어려 보이는 고주연은 금메달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진준성은 그 사진을 보며 내게 속닥거렸다.
“생각났어요. 저 퇴계 이황 닮으신 분, 유명한 양궁 감독님이세요. 여기 이 남자분도 감독님 아들, 양궁 선수고요. 근데… 왜 유명한 감독님이 이런 곳에서 은거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네요.”
고주연과 꽤 친밀한 사이였던 것 같은데, 지금의 고주연과 감독은 어째서인지 이 사진 속 순간처럼 가깝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고주연을 바라봤다.
고주연은 달빛에 의지해 활을 쏘고 있었다.
바람이 거칠게 부는 이 바위산에서도, 고주연이 쏘는 화살은 과녁의 정중앙을 뚫고 들어갔다.
이전보다 화살에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다.
나를 따라 그 모습을 구경하던 진준성이 중얼거렸다.
“와, 고주연 헌터님… 어느새 A+로 오르셨네요.”
진준성은 스킬을 쓴 건지, 눈을 푸르게 빛내며 고주연을 분석하고 있었다.
근 한 달 사이에 A+까지 올랐다는 것도 경이로운데, 진준성은 더 놀라운 얘기를 했다.
“저도 이런 건 처음 보는데… 특징으로 ‘약점이 없다’라고 나와요. 이전에는 근거리 공격과 낮은 방어력이 약점이셨거든요. 근데 그걸… 극복하셨나 봐요.”
약점이 없는 원거리 공격계 헌터, 회귀 전에 사람들이 고주연을 높이 평가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고주연은 자신의 최고치에 도달한 모양이다.
내가 없는 사이에 길드원들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성장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