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다 (2)
나는 협회장과 가게 구석에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협회장 도나리는 순순히 나를 따라오며 테이블 위에 소주병 하나를 올려놨다.
도나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일 새벽 3시, 인천항으로 가.”
“저 아직 한국 들어온 지 이틀밖에 안 됐습니다.”
“싫으면 지금 당장 가게 해주지.”
도나리는 손을 들어 올려,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협회원들을 부르려 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답했다.
“내일 가겠습니다.”
어차피 내일 간다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는 것 같았다.
당장 내일 한국을 떠날 생각은 없었지만, 나도 한국에 오래 있으려던 건 아니다.
구지상 혼자 보낸 게 걸리기도 하고, 서둘러 김상엽 팀장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하니까.
도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를 물잔에 가득 따라줬다.
내가 찰랑거리는 소주를 황당하게 보는 사이, 도나리가 말했다.
“인천항에 가면 칭다오로 향하는 백제 그룹의 무역선이 있을 거야. 준비는 해뒀으니 그 배를 타고 밀항하도록. 사흘 뒤에 네가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에 갔다는 기록은 남겨주지. 3일만 불법체류자로 지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3일간 만성의 눈에서 벗어난 채로 움직이라는 거야. 그거 하나 못 알아듣나?”
먼저 알아듣게 얘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도나리가 왜 내게 밀항을 권유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
지금 중국은 만성의 지배하에 굴러가고 있다. 미국 역시 에덴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지만, 만성은 경우가 다르다.
민간 사회에 가능한 개입하지 않는 에덴과 달리, 만성은 사회 체제에 전반적으로 만성이란 이름을 각인시키고 있다.
중국에 입국하는 순간부터 만성의 감시망 안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길드원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중국에 입국하면, 만성은 곧바로 알아채고 날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만성 몰래 움직이려면 어쩔 수 없이 밀항을 해야 한다. 아마 구지상과 나쟈, 사빈 역시 만성에 들어갈 때 밀항을 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협회장이라는 인간이 직접 밀항을 권유하나?
나는 도나리가 따라준 소주를 들이켜며 물었다.
“그래서, 뭘 하면 됩니까?”
“사람 하나를 만나라.”
도나리는 내게 은색 동전을 하나 던져줬다. 받아보니 어딘가 익숙하게 생긴 은색 동전이었다.
가운데에 적(赤)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었지만, 류차오가 내게 줬던 금화랑 디자인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동전을 돌려보는 사이, 도나리가 말했다.
“칭다오에 도착하면 ‘붉은 두건의 수장’을 찾아. 그 녀석이 만성에 관한 정보를 제일 많이 갖고 있다. 어떻게든 네 편으로 만들어.”
“그게 누굽니까? 어디에 있는데요?”
“그건 네가 알아내야지. 그러라고 사흘이나 시간을 벌어주는 거 아니야.”
누군지 가르쳐주지도 않고 대뜸 찾아내서 만나라니. 황당함에 말문이 막혔다.
일단, 내가 알아내야 한다는 건 도나리도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건데.
도나리는 내가 아는 놈들 중 가장 정보력이 뛰어난 녀석이다. 이 녀석도 모른다면, 그 ‘붉은 두건의 수장’은 대단히 신출귀몰한 녀석일 것이다.
그런 놈을 나 보고 어떻게 찾으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만성에 관한 정보를 제일 많이 갖고 있다면 무조건 만나야 하는 건 사실이었다.
“그 사람이 김상엽 팀장님을 원래대로 되돌릴 정보도 갖고 있습니까?”
내 질문에 도나리는 남은 소주를 자기 컵에 따랐다.
시원하게 한 컵을 입에 털어 넣은 녀석은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내며 빈 잔을 탈탈 털었다.
알이 큰 안경 너머로 눈을 가늘게 뜨며 날 쳐다보던 도나리가 문득 물었다.
“미카엘과 만성을 무너뜨리겠다고 작당 모의를 했다지?”
“사람들은 그걸 동맹이라고 부릅니다. 작당 모의가 아니라.”
“그래, 동맹. 붉은 두건의 수장은 너희들의 그 ‘동맹’에 필요한 놈이야.”
그 붉은 두건의 수장이라는 놈이 뭐 하는 녀석인지는 몰라도, 동맹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가 만성과 친하지 않다는 건 확실하다.
즉, 도나리는 지금 내게 ‘붉은 두건의 수장’과 손을 잡아 만성을 무너뜨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도나리는 이렇게 과격한 방법을 권유하지 않는다. 서정현이면 몰라도, 도나리는 협회에 피해 가지 않도록 한발 물러서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굳이 이런 정보를 준다는 건, 어떤 확신이 있어서일 것이다.
“협회장님도 만성을 무너뜨리는 게 김상엽 팀장님을 구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니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쓸데없는 짓까지 시키는 거 아니겠어?”
도나리는 김상엽을 살릴 방법이 만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그리고 나 역시, 도나리와 같은 의견이었다.
‘변이’를 해제하려면 변이를 일으킨 몬스터를 없애야 한다. 만성이 그 몬스터를 이용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도 만성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몬스터의 힘을 악용해 몬스터 같은 짓을 하고 있는 놈들이다. 그런 녀석들과 싸워서 질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이해가 빨라서 좋군. 칭다오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보이는 술집에 들러. 그럼 그 은화를 찾는 녀석이 나타날 거야.”
“그 사람이 ‘붉은 두건’입니까?”
“그래.”
도나리는 내게 붉은 두건의 ‘수장’을 만나라고 했으니, ‘붉은 두건’은 어떤 조직을 칭하는 은어일 것이다. 만성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이 되는 이들이라면, 만성에 대항하는 비밀 결사라고 봐야 한다.
이 은화는 그들을 만나는 방법인 듯했다.
“그 녀석들에게 밉보이면 알몸으로 중국에서 내쫓길 테니, 명심해. 네 얄미운 말투로 그놈들을 어떻게든 꼬셔서 수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 봐.”
“참 어려운 걸 부탁하십니다.”
도나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쪽지 하나를 던져줬다.
쪽지에는 인천의 어느 주소와 새벽 3시 20분이라는 시간이 적혀 있었고, 비행기 표 세 장이 같이 접혀 있었다.
“배 위치다. 늦지 않게 타고, 그 비행기 표는 네 길드원들에게 전해.”
“제가 길드원 세 명을 데려가는 건 어떻게 알고 딱 세 장을 준비하신 겁니까?”
“네 생각이야 뻔하지.”
고주연과 김신욱은 그렇다 치고, 진준성을 데려가는 건 오늘 결정한 일인데 어떻게 알아낸 건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예매표를 펴보니 3일 뒤 베이징으로 향하는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로 예매되어 있었다.
…이미 예매된 표를 취소할 수는 없으니 일단 받아두기로 했다.
도나리는 내 주머니로 들어가는 비행기표를 보며 말했다.
“넌 붉은 두건의 수장을 만난 뒤, 네 길드원들이랑 합류해 만성으로 가라. 내가 뒷조작을 해뒀으니 만성은 네가 길드원들과 같이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생각할 거야.”
“웬일로 친절하게 도와주십니다, 협회장님답지 않게.”
“알면 잘해, 곰탱이 살려낼 방법 못 찾으면 돌아오지 말고.”
도나리는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대기업인 백제 그룹의 배는 어떻게 빌린 건지, 붉은 두건의 존재는 어떻게 아는 건지는 몰라도, 도나리가 평소보다 무리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늘 여유가 흘러넘치던 도나리의 얼굴이 피로에 찌들어 있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른쪽 뺨에 큰 밴드를 붙이고 있었다.
김상엽을 살리기 위해 도나리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도나리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팀장님 되돌리는 건 제게 맡기시고, 그간 협회장님은 제 길드랑 한국에 신경 써주시죠.”
내 말에 도나리는 피식 웃었다.
대답 대신 손을 대충 휘적이던 녀석은 곧 협회원들과 함께 가게를 떠났다.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몰라도 떠나던 녀석은 평정심을 되찾은 듯 한결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
그날 저녁 회식 값은 전부 도나리가 계산했다.
길드원들은 협회장님이 생각보다 착한 사람인 것 같다며 칭찬했지만, 내겐 반드시 임무에 성공하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져서 부담스러웠다.
나는 고주연과 진준성에게 내일 떠나야 한다는 얘기를 전하며 도나리가 준 비행기 표를 건네줬다. 두 사람 다 불만이 있어 보였지만, 퍼스트 클래스 표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불만이 사라진 듯했다.
우리는 베이징 공항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 뒤, 각자 집으로 귀가했다.
김신욱은 술 몇 잔을 마시고 뻗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녀석을 등에 업고 신윤현과 함께 길드로 돌아갔다.
길드로 돌아와 신윤현과 힐러의 삶에 대해 몇 마디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고, 신윤현은 내게 안부 인사를 남기며 지하 공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일어나지 않는 김신욱의 핸드폰을 빌려 구지상에게 곧 만성에 간다는 연락을 남긴 뒤, 눈을 감았다.
에덴에서 일어난 일들, 그 사이 한국에서 벌어진 심상치 않은 사건, 만성의 행보와 붉은 두건이란 자들을 생각하니 피로가 밀려왔다.
내일 새벽이면 또다시 한국을 떠나야 한다.
‘그래도 떠나기 전에 회식이라도 해서 다행인가.’
이번 만성 일이 해결되면 길드원들과 하루 정도 여행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눈을 꿈뻑이며 천장을 보니, 새삼스럽지만 이유 길드가 정말로 내게 돌아올 장소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아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는 듯했다.
해야 할 일이 태산인데도, 나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
한편, 이유영이 챙겨놓은 짐 속에서 눈을 뜬 존재가 있었다.
그것의 이름은 ‘화신’. 최후의 인류인 이유영이 붙여준 이름으로, 시스템이 이유영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낸 존재였다.
화신은 이유영의 가방 속에서 빠져나와, 잠이 든 이유영을 바라봤다.
『흠… 이유영을 깨워야 할지 말지 고민이군요.』
화신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유영 옆에 그의 동료가 잠들어 있었지만, 화신의 목소리는 오직 이유영만 들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려도 어차피 들을 수 있는 건 이유영뿐이었다.
『또 다른 알이 부화하진 않았지만, 시스템이 새로 감지한 에너지의 흐름… 이에 대해 이유영한테 말한다면 얼른 원인을 알아내라고 잔소리를 할 텐데… 아직 시스템도 이 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단 말이죠.』
화신은 작은 앞발을 턱에 대며 생각에 빠졌다.
시스템은 현재 오류가 만들어낸 세 개의 알 중 한 개체를 던전에 가두기 위해 추적을 계속하다가, 비정상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감지했다.
몇몇 헌터에게서 계속해서 에너지가 빠져나가, 알 수 없는 경로로 이탈하고 있었다.
시스템은 문제를 인식하자마자 곧장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알아낸 정보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유영에게 소식을 전달해봤자 잔소리만 듣게 될 것이다.
화신은 이유영의 이마에 자리 잡고 앉으며 말했다.
『이유영이 물리친 ‘태풍’, 그리고 나머지 두 개의 알은 모두 인류가 가장 무서워하는 ‘재해’로부터 탄생했다는 게 시스템 내에서 가장 유력한 가설이에요. 하지만, 이것도 말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군요…. 시스템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죠.』
오류가 만들어낸 세 개의 알은 전부 다른 종류의 자원으로부터 수집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이유영의 일기장으로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을 분석한 오류가 ‘자연재해’를 몬스터로 만들어낸 것이 그 세 개의 알의 정체라고, 시스템은 판단했다. 하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는 탓에 시스템 내에서 의견이 부딪히고 있는 상황이었다.
화신은 이유영의 얼굴을 주위를 맴맴 돌며 고민했다.
‘최후의 인류’ 이유영은 현재 혼자서 너무 많은 일을 부담하고 있었다. 그러니 아직 시스템 내에서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정보까지 전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조차도 시스템 내에서 의견이 분분했지만, 화신은 결국 이유영에게 말하지 않기로 판단했다.
『새로운 짐을 떠안기지 않는 멋진 자세, 화신에게 고마워하라고요, 최후의 인류!』
화신은 다시 이유영의 가방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시스템의 화신체가 마지막으로 기동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