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1
21화. 세상일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2)
세상일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헌터 협회에 심으려고 기껏 헌터로 각성시킨 천재 고등학생이 대뜸 내 길드에 들어오고 싶어 하질 않나.
사건의 뒷수습을 하러 온 협회 팀장한테 이런 말을 듣질 않나.
“이유영 헌터님, 걸리는 게 하나 있습니다.”
기절해있는 학생들과 선생을 병원으로 무사히 이동시켰는데도, 팀장은 아직 중요한 일이 남아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도 덩달아 긴장한 상태로 그에게 대답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그게… 혹시 헌터 협회의 도나리 협회장님을 아십니까?”
“…이름은 들어봤습니다.”
도나리, 한국 헌터 협회의 수장으로, 이름보다는 ‘또라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어느 국회의원의 동생이라든가, 백제 그룹의 막내딸이라든가, 그래서 헌터 협회를 먹었다든가.
여러 뜬소문이 있지만, 확실한 건 두 가지다.
그 여자는 미쳤고, 강하다.
그런데 도나리라는 이름이 갑자기 왜 나오는 거지?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더니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협회장님께서 제게 직접 이유영 헌터님에 관해 물으셨습니다.”
“협회장이 저를 왜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분이라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팀장의 말대로 도나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운 인간이다.
그래서 꺼려진다.
특히나 도나리의 능력은 내게 치명적이다. 그 능력이면 내가 멸망한 세계의 최후의 인류이며 회귀자라는 사실을 들킬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무려 협회의 수장, 잘만 구슬려서 내 편으로 만들면 무조건 이로운 놈이다.
나는 무해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협회장님이 관심을 보이신다니 영광이네요. 참, 이 친구가 이번에 헌터가 됐습니다. 헌터 등록을 해야 해서 제가 보호자로 같이 가줄까 하는데, 협회까지 데려가 주실 수 있습니까? 가는 김에 드릴 말씀도 있고요.”
말하면서 진준성을 가리키자, 진준성이 놀란 듯이 흠칫거렸다.
팀장의 커다란 덩치나 근엄한 인상을 보면 저런 반응이 당연하긴 하다.
팀장은 진준성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고등학생 각성자라니, 굉장히 희귀한 케이스네요.”
“게다가 공부로도 전교 1등이라네요. 머리도 좋고, 학생들도 전부 이 친구 덕분에 구한 거예요.”
“아, 그렇습니까? 영리한 학생인가 봅니다.”
내가 자랑하듯이 말하자, 팀장은 진준성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요청했다.
진준성은 덜덜 떨며 그 손을 맞잡았다.
“던전 관리 1팀의 김상엽 팀장입니다.”
“네, 네……. 진, 진준성이라고 합니다.”
“어떤 스킬을 얻으셨습니까?”
“그게…… 전략? 을 짜는… 스킬인 것 같아요.”
“전략이요?”
대뜸 진준성을 소개한 건, 팀장이 진준성의 스킬을 듣게 하기 위해서였다.
헌터 협회에서 일하는 헌터들은 무기를 다루는 방법을 교육받을 뿐, 메인 스킬은 헌터들을 통솔할 수 있는 스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헌터들을 관리할 수 있는 스킬일 경우, 협회 면접에서 가산점을 받기도 한다.
그런 만큼 ‘군사전략’이라는 스킬을 가진 진준성은 협회에서 탐낼만한 인재였다.
무려 협회의 팀장이 본인에게 관심을 보이면, 진준성도 생각이 좀 바뀔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이 대화할 시간을 만들고서 이번 몬스터, 금돼지한테서 얻은 정보를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헌터 협회장 정도 되는 인간을 만나려면 나도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
“우선 저는 이 사태를 ‘야생의 몬스터 사태’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야생의 몬스터 사태’요….”
팀장과 나는 헌터 협회에 도착해, 진준성의 헌터 등록을 기다리며, ‘금돼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금돼지라는 몬스터와 싸워보니, ‘야생의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와 몇 가지 다르다는 걸 파악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던전 없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큰 특징 같은데, 다른 특징도 있습니까?”
“일단 몬스터의 지성이 꽤 높습니다. 동료도 있어 보였어요. 무리를 짓기 시작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무리를 이끄는 통솔자도 있는 것 같습니다.”
힘이 강해졌다는 말은 일부러 제외했다.
나야 과거의 몬스터라는 비교할 상대가 있지만, 이 사람은 아니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말을 덧붙였다.
“외부에까지 알려지면 혼란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선은 협회 내부에서만 공유를, 가능하다면 팀장님과 팀장님의 최측근까지만 알고 계시면 어떨까요.”
팀장은 그 말에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이 사람한테 모든 걸 다 맡길 생각은 아니다.
다 떠맡게 하지 않으려고 진준성을 따라 협회까지 온 거니까.
잠시 뒤, 헌터증을 발급받은 진준성이 설레는 얼굴로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이유영 헌터님! 접수 절차 끝났어요!”
“준성 학생, 고생했습니다. 종합 능력치는 몇 등급입니까?”
“아, B-가 나왔어요!”
“그렇군요….”
…나보다 높다.
얼른 등급을 올리지 않으면 안 되겠군.
“그러고 보니 이유영 헌터님의 스킬은….”
“잠깐, 거기!”
진준성이 말하던 중, 뒤에서 키가 작은 청소부 한 명이 진준성을 부르며 다급하게 다가왔다.
나이스 타이밍이다. 진준성은 나를 힐러라고 알고 있을 텐데,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자세한 건 말해줄 수 없었다.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메인 스킬이 두 개라는 건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길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신비주의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를 찾아온 청소부는 진준성의 어깨를 잡았다.
“네가 준성이야? 핸드폰을 두고 갔어.”
“핸드폰이요?”
진준성이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더니, 비어있는 주머니를 확인하고 청소부를 바라봤다.
그녀는 진준성에게 핸드폰을 쥐여주며 은근히 손을 붙잡았다.
나는 그 청소부를 유심히 쳐다봤다.
캡 모자를 눌러써서 얼굴을 확인하긴 어려웠으나, 유난히 작은 키와 목소리까지 감출 순 없었다.
헛웃음이 나와서 웃었더니, 팀장도 그제서야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영문을 모르는 진준성만 그녀에게 손이 붙잡혀 있을 뿐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응응, 준성이. …진준성. 재밌는 스킬을 갖고 있구나?”
“네?”
“으흠, 이유영의 길드로 들어갈 생각이고? 오. 그래, 그래. 이유영은 날 만나려고 협회에 온 모양이지? 좋아, 이제 필요 없어.”
그 여자는 진준성의 손을 내팽개치듯이 놓았다.
얼떨떨해하는 진준성을 뒤로하고, 그 여자는 캡 모자를 벗어 던지며 내게 인사했다.
“안녕, 이유영! 자기소개는 생략할게. 나에 대해 다 알고 있지?”
“글쎄요, 여기서 일하시는 청소부 신상을 알고 있을 만큼 유능하진 않아서요.”
내가 떠드는 동안 팀장은 90도로 몸을 접어서 그녀한테 인사했다.
그녀는 인사를 받아주는 대신, 팀장의 손을 잡아 올렸다.
팀장이 당황하든 말든 그녀는 손을 잡은 채로 떠들어댔다.
“음음. 그러니까 이번 사태는 ‘야생의 몬스터 사태’라고 한단 말이지? 이거 큰일이구만? 아주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어. 좋아, 이제 필요 없고.”
이번에도 팀장의 손을 내팽개치듯이 놓은 그녀는 나를 바라봤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그녀의 모습을 확인했다.
중학생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작은 키, 알이 큰 안경, 대충 묶은 긴 머리. 그리고 안경으로도 감춰지지 않는 광기 어린 커다란 눈.
헌터 협회장, 도나리. 마지막 기억이랑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다.
도나리는 내가 주머니에서 손을 뺄 생각이 없다는 걸 눈치챈 건지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유영?”
“네. 말씀하시죠.”
“너 정체가 뭐야? 말해주면 네게 헌터 협회 부회장의 자리를 주지.”
이거 부회장이랑 합의는 된 사안인 건가?
나는 헛소리를 가볍게 무시했다.
“협회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는 건 이미 팀장님한테서 확인하셨을 텐데요? 그다지 매력적인 제안은 아닙니다.”
“권력도 필요 없나 봐? 그래, 그래. 길드를 세운다고 했던가? 협회가 길드를 제재할 권한을 갖고 있는 건 알 테지?”
“협박도 안 무섭습니다. 할 말이나 하시죠. 절 왜 찾았습니까?”
도나리는 히죽거리며 웃어댔다.
진준성은 뭐가 무서운 건지 팀장 뒤로 가서 몸을 숨겼다.
나야 처음부터 이 인간을 만나러 온 거지만, 진준성은 도나리가 누군지도 잘 모를 것이다. 나 못지않게 신비주의 컨셉을 밀고 나가는 협회장이기 때문이다.
도나리는 내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왜긴 왜야? 저기 준성이 때문이지! 내가 널 도와줄 테니 준성이는 우리에게 넘겨.”
이렇게 나오시겠다?
누가 누굴 돕는다는 건지, 하여간에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다.
나는 진준성을 힐끔 바라봤다.
진준성은 안색이 파래진 채로 버려진 고양이 같은 눈빛을 보내왔다.
뭐, 협회에 보내고 싶긴 하지만, 기껏 구축한 신뢰 관계를 내다 버리며 보낼 생각은 없다.
“싫은데요?”
“잘 생각하고 대답하는 거야? 쟤가 그렇게 소중해? 내 도움보다? 한국 헌터 협회장의 직접적인 도움보다?”
“제가 왜 뭘 내줘야 합니까? 그런 거 없이도 도와주실 거 압니다.”
내 대답을 들은 도나리가 큰 소리로 깔깔대며 웃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주목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쓰는 건 진준성과 팀장뿐이었다.
“내가 널 왜 도와줘? 정신이 나가버린 거야?”
“도와주시겠죠. 저처럼 나사 빠진 사람들 좋아하시잖아요.”
“뭐, 그건 맞지! 보는 눈이 있네.”
도나리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명함을 꺼내 내게 건넸다.
명함을 이따위로 관리하는 게 도나리랑 내가 비슷한 인간이라는 증거다.
“네가 이 사태를 어떻게 파악했는지는 특별히 넘어가 주지! 난 네가 있어야 그 ‘야생의 몬스터 사태’가 해결될 것 같거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정도로 어리석은 짓을 하진 않아. 넌 내가 이럴 걸 알고 있었나? 대체 어떻게?”
“제가 좀 유능해서요. 용건 끝나셨죠? 이제 제 용건 말하겠습니다.”
나는 팀장과 진준성을 바라봤다. 그리고 강원도에서 만난 종훈이도 떠올렸다.
“야생의 몬스터 사태를 해결할 때까지 협회에 전문 팀 하나 만들어주세요. 비밀에 부치시고, 월급은 좀 더 주시고요. 그 팀의 팀장은 뒤에 계신 김상엽 팀장님으로 부탁드립니다.”
“아주 제멋대로인 부탁인 건 알지?”
“참, 박종훈이라는 협회원도 일 잘하던데 그 팀에 넣어주시면 좋겠네요.”
“거기다 건방지기까지 하네?”
생각해 보니 김상엽 팀장님의 의견은 조금도 묻지 않았다.
나는 뒤늦게 진준성을 보호하고 있던 팀장을 바라봤다.
이런 미친 상황은 태어나서 처음인 것처럼 당황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싫다면 의견을 분명히 밝힐 사람이다.
나는 팀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예. 제게도 고민할 시간을 주셨다면 좋았겠지만, 대의를 위해 협회에 들어온 만큼 업무 변경은 크게 상관없습니다.”
잠깐 고민할 만도 한데, 경이로울 만큼 이상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감동을 담아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팀장 뒤에 있던 진준성도 꽤나 감명받은 눈빛이었다.
도나리는 이런 훈훈한 분위기가 소름 끼친다는 것처럼 팔을 쓸어내리며 분위기를 깼다.
“재미없어! 거절해야 이야기가 재밌어진다는 걸 모르는 거야?”
나는 팀장이 순진한 대답을 하기 전에 말을 가로챘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야생의 몬스터 사태는 최대한 은밀하고 빠르게 처리하는 게 목표니까, 협력해주시고요.”
“그래, 어려울 건 없지. 내가 너보다 더 유능하거든! 하지만 이 질문의 대답을 듣고 나서 해줄 거야.”
“하시죠.”
“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개인이 책임질 일이 아닐 텐데. 저 곰탱이처럼 대의 같은 대답을 지껄인다면 방금 한 모든 약속은 파기하겠어.”
도나리가 꺼려지는 이유는 한둘이 아니지만, 특히 이런 점이 곤란하다.
사람의 기억을 책처럼 읽어내는 ‘사이코메트리’라는 능력을 갖춘 탓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건지.
사람의 복잡한 내면에서 요점을 파악하는 게 빨랐다.
쉽게 말해 곤란한 질문만 하는 녀석이었다.
이럴 땐 그냥 대충,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최선의 대답이겠지.
“멸망한 세상은 좀 별로일 것 같아서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준성 학생, 가요.”
흘끗 도나리를 살피니, 웃기만 할 뿐 입을 더 열지는 않았다. 약속은 지켜줄 것이다. 자기가 한 말은 지키는 놈이니까.
나는 진준성을 데리고서 협회를 나왔다.
참, 세상일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진준성과 석호 태권도 방향으로 걸으며 생각했다.
이제, 내가 떠맡기로 한 이 고등학생 헌터를 어떻게 해야 하나….